회귀 후 메이저리거 155화
포스트시즌 3홈런.
빠르진 않았지만, 수호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놓치지 않고 홈런을 차근차근 적립해 갔다.
그리고 그 기회는 6회에도 찾아왔다.
-1사 주자 1루 상황에서 한수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경기 첫 번째 타석에서 오타니 쇼헤이를 상대로 선제 솔로홈런을 기록했던 한수호 선수, 두 번째 타석에서도 오타니를 상대로 2루타를 기록하면서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성이 좋지 않은 거 같습니다. 한수호 선수는 올 시즌 97마일 이상의 공을 가장 잘 공략한 메이저리그 선수였습니다.
-사실 한수호 선수는 패스트볼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구종의 공을 다 잘 공략한 선수였죠.
-하하! 그것도 맞는 말씀이시네요!
타율 4할이 의미하는 건 구종이나 코스를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이번 시즌 수호가 왜 4할 이상을 때렸는지는 그의 타격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마치 테드 윌리엄스의 마지막 4할 시즌을 연상케 할 정도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었다.
거기에 빠른 공이든 느린 공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런 수호였기에 오타니의 주특기인 고속 슬라이더나 100마일의 패스트볼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 녀석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수호의 이런 장점은 상대 투수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
오타니에 이어 두 번째로 마운드에 오른 피터 멀피는 속으로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포수 새뮤얼 힐이 사인을 보냈다.
‘바깥쪽으로 최대한 유인하도록 해.’
‘알았어.’
수호의 홈런 빈도를 보면 몸쪽이 가장 확률이 높았다.
특히 시즌 초반에는 홈런이 몸쪽으로만 형성됐을 정도로 극단적인 풀 히팅 히터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올스타 직전에 바깥쪽 공도 적극적으로 밀어치더니 시즌이 끝났을 때는 비율이 비슷해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몸쪽이 미세하게 높을 정도로 강한 면모를 보였다.
‘제구가 조금이라도 실패하면 끝장난다.’
피터 멀피는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공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퍽!
“볼.”
초구는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
당연히 수호의 배트는 나오지 않았다.
원하지도 않았다.
그저 제대로 제구되기를 원했을 뿐이다.
퍽!
“볼.”
2구 역시 바깥쪽에 꽂히는 패스트볼이었다.
원래는 공 반 개를 뺄 생각이었지만, 한 개 정도는 빠졌다.
이번에도 수호의 배트를 유도해 내지 못했다.
퍽!
“볼, 쓰리!”
3구는 떨어지는 체인지업이었다.
제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실제 수호의 배트가 나오는 걸 보고 스트라이크를 잡아낼 수 있단 희망이 생겼었다.
하지만 중간에 멈추면서 결국 볼이 되었다.
-볼 3개가 스트레이트로 들어옵니다. 승부를 피하는 걸까요?
-그것보다는 어떻게든 정면승부를 피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던진다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고의사구였다면 바로 내보내려고 했을 거예요.
해설위원들의 말대로였다.
고의사구를 할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든 보더라인에 걸치게 해서 카운트를 잡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호의 뛰어난 선구안이 이러한 의도를 현실로 바꾸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바에는 그냥 공을 빼서 내보내는 게 낫겠어.’
하지만 의도를 드러낼 이유는 없었다.
팬들에게도 썩 좋은 이미지를 주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벤치에서 작전이 나오지 않았는데, 자신이 주도적으로 고의사구를 택할 수도 없었다.
제구가 실패해서 볼을 만들어 내보내는 게 최선이었다.
‘바깥쪽 패스트볼, 웬만하면 빼도 돼.’
새뮤얼의 사인에 피터 멀티가 고개를 끄덕이고 세트포지션에서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수호의 바깥쪽으로 날아갔다.
보더라인에서 공 한 개가 빠지는 코스였다.
수호의 선구안이라면 배트가 나오는 게 이상할 정도의 공이었다.
그런데 그 이상한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딱!!
“파울!”
-4구 배트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공을 무리하게 걷어내면서 파울이 됩니다!
-볼 쓰리 상황에서 무리한 스윙을 할 이유가 없는데. 조금 이상하네요.
-그렇습니다. 확실히 지금 공은 흘려보내는 게 좋았을 텐데요.
해설진도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가장 의아한 건 투수인 피터 멀피였다.
‘저 공을 때린다고? 굳이? 왜?’
수호는 무서운 타자다.
단순히 장타율이 문제가 아니었다.
장타율만큼이나 정확도가 어마어마했다.
메이저리그 전체로 보더라도 올 시즌 그의 출루율을 넘어서는 선수는 없었다.
볼넷도 가장 많이 얻어냈다.
이는 엄청난 장타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존이 확실하다는 소리다.
선구안이 뛰어나 그를 삼진으로 처리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녀석이 왜 이렇게 무리한 스윙을 하는 거지? 경기에서 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박빙의 경기를 펼치고 있는 것도 아닌데.’
현재 스코어는 4 대 0으로 필리스가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었다.
물론 4점 차이야 야구에서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었다.
하지만 수호가 무리하게 점수를 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뭐지? 그냥 실수인가?’
오늘 이런 모습을 처음 보여주었기에 단순히 실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딱!!
“파울!”
-5구 역시 파울입니다! 스트레이트 볼 세 개를 얻어냈지만, 두 개의 파울이 나오면서 풀카운트가 됩니다!
-이번에도 떨어지는 커브를 무리하게 쳐내면서 파울이 됐습니다.
두 번 연속 무리한 스윙이 나온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다.
‘왜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녀석이 내 공에 속기 시작했어.’
피터 멀피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존이 흔들린 건가? 아니면 뭐 다른 목적이 있는 걸까?’
자신이 수호가 아니었으니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녀석을 잡을 수도 있겠어.’
한수호라는 괴물을 자신이 사냥할 수도 있었다.
풀카운트가 됐으니 이제는 스트라이크 하나면 아웃 카운트가 올라간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수호가 삼진으로 물러난 경우는 없었다.
물론 범타는 있었지만, 삼진은 단 하나도 없었다.
만약 자신이 잡아낸다면?
팀의 에이스이자 기둥인 오타니조차 하지 못했던 일을 자신이 해낼 수 있다면?
‘그만큼 개쩔겠지.’
위상이 높아질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새뮤얼의 생각은 달랐다.
‘이 녀석 뭔가 노림수가 있어서 이런 무리한 스윙을 하는 거 같은데?’
새뮤얼은 오늘 경기에서 수호를 계속 상대해왔다.
오타니를 상대로 때린 홈런이나 이후에 또 나온 2루타를 때려낸 스윙을 봤을 때 타격 컨디션은 정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스윙을 한다?
무언가 숨어 있는 의도가 있다 봐야 했다.
‘이번에도 유인구로 가자.’
결정을 내린 새뮤얼이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피터가 고개를 저었다.
‘승부를 보겠어.’
‘무슨 소리야? 녀석과 승부를 봤다가는 한 방 제대로 맞을 수 있어. 여기에서 추가 실점이 나오면 우리가 불리해진다.’
다시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피터는 고집부리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직접 사인을 보냈다.
‘승부를 볼 수 있게 해줘.’
이번 타석에서 한 번도 던지지 않았던 몸쪽 공을 요구해왔다.
결국 새뮤얼의 시선이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이 직접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더그아웃의 사인이 필요했다.
감독과 눈이 마주치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풀카운트 승부까지 왔으니, 승부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 수호의 상태도 이상하니 한번 승부해 보도록 해.’
감독 역시 수호의 모습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그렇기에 승부를 보라는 사인을 보냈다.
감독의 허락이 떨어지자 새뮤얼은 더는 반대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지. 하지만 몸쪽으로 가는 건 위험해. 다시 바깥쪽으로 가도록 하자.’
새뮤얼의 사인을 본 피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억지를 들어주었으니 이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피터 역시 수호의 몸쪽에 공을 던지는 건 조금 두렵기도 했고 말이다.
“후우…….”
마운드 위에서 한숨을 내쉰 피터가 슬라이드 스텝을 밟았다.
타닥!
스트라이드를 내디딘 그가 몸을 회전시키며 전력을 다해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바깥쪽 보더라인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코스는 가장 낮은 곳을 찌르는 완벽한 공이었다.
만약 때린다 하더라도 장타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었다.
‘걸렸어.’
수호가 바깥쪽 공을 노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노렸던 공이 그대로 들어왔을 때 홈런으로 연결하지 못했던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후웅!!
먹잇감을 기다리던 늑대처럼 그의 배트가 매섭게 돌아갔다.
그리고 단숨에 먹잇감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딱!!
-때렸습니다-!!
사냥에 성공한 늑대가 마치 울음을 터뜨려 동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듯.
수호는 자신의 배트를 던지며 자신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만천하에 알렸다.
-그리고 한수호 선수는 배트를 던졌습니다!!
배트를 던지는 순간 모든 이는 알 수 있었다.
-풀카운트 승부 끝에 때려낸 타구가 우측 펜스를 넘어갑니다!! 오늘 경기 두 번째 홈런이자 투런포를 작렬하는 한수호 선수!!
수호가 포스트시즌 네 번째 홈런을 기록했다는 걸 말이다.
* * *
완승이었다.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에서 한수호 선수가 2홈런 포함 4타수 4안타 7타점을 기록하며 LA다저스를 침몰시켰습니다.]
수호의 성적은 완벽했다.
[한수호 선수는 오늘 경기에서 두 개의 홈런을 추가하며 이번 포스트시즌 4홈런을 기록해 절정의 타격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반면 다저스는 비난받았다.
[경기 전 전문가들은 다저스와 필리스가 박빙의 대결을 펼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만큼 전력이 비슷하다고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수호 선수를 공략하는 데 실패하면서 8 대 1이라는 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7전 4연승제로 시작하는 챔피언십에서 필리스는 홈에서 2연승을 거두며 유리한 고지를 점했습니다.]
이제 무대는 바뀌었다.
[2연승을 거둔 필리스는 홈구장을 떠나 LA다저스의 홈인 다저스타디움에서 챔피언십 시리즈를 끝내기 위해 3연전을 펼칩니다.]
다른 지구의 경기도 계속 이어졌다.
[뉴욕 양키스가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2연승으로 제압하고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우위를 점했습니다.]
수호의 라이벌 역시 막강한 화력을 보여주었다.
[애런 저지는 이날 경기에서 2연타석 홈런을 작렬하며 4타점을 경기를 펼쳤습니다.]
이런 결과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많은 이가 기대했다.
-월시 필리스랑 양키스가 붙는 거 아니냐?
-월시에서 수호 vs 저지의 2차전 펼쳐질 각인데?
-크으! 이번 월시 꿀잼이겠네.
-와…… 벌써 기대된다.
-아직 설레발 ㄴㄴ
-챔시 끝난 게 아님.
-하지만 2연승 거둔 팀이 올라갈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이지.
-이번 시즌 수호랑 저지가 압도적이긴 하다.
한수호와 애런 저지는 페넌트레이스에서 한 번의 맞대결을 펼쳤다.
거기에서 두 선수는 각각 4연타석 홈런을 때려내는 기염을 토하면서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런 두 선수의 2차전이 월드시리즈에서 펼쳐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람들의 기대감이 높아졌다.
챔피언십 시리즈는 무대를 옮겨 각각 다저스와 화이트삭스의 홈구장에서 경기를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