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52화
딱!!
-때렸습니다!!
오타니의 배트에 맞은 공이 빠르게 날아갔다.
하지만 타구의 방향은 관중석으로 향해 파울라인 밖으로 흘러나갔다.
“파울!”
-파울입니다! 승부가 길어집니다!
-어느덧 7구까지 승부가 왔습니다. 그리고 볼카운트에 모두 불이 들어오면서 오타니와 잭의 대결이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타니는 끈질겼다.
수호와 잭은 어떻게든 그를 돌려세우려 했지만, 좀처럼 되지 않았다.
‘확실히 타격존이 넓어. 거기에 어디로 던지더라도 힘을 실어서 타격할 수 있다.’
오타니의 타격 메커니즘은 안정적이었다.
어느 한 코스를 고집하는 게 아니라 골고루 때려냈다.
무엇보다 제대로 힘을 실어서 매번 외야로 날려 보낼 정도로 파워가 좋았다.
‘이렇게 되면 방법은 하나다.’
1, 2번 타자를 상대로 볼카운트를 아꼈다지만, 이제는 슬슬 오타니를 돌려세워야 한다.
한 타자를 상대로 8구 승부까지 이어지면 투수는 물론 야수들의 집중력도 떨어진다.
이는 경기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정답.]
[잘 알고 있네.]
[슬슬 돌려세워야 한다.]
[볼넷은 머리에서 지우고 확실하게 녀석을 잡아내도록 해.]
레전드들의 조언을 들으며 수호가 사인을 보냈다.
그의 사인을 받은 잭이 다시 확인했다.
‘정말 그거면 돼?’
그의 질문에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아함이 있었지만, 재확인을 받은 이상 망설일 생각은 없었다.
‘녀석이 이런 사인을 내밀었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야.’
잭과 수호의 호흡이 좋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신뢰에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건 잭은 수호의 사인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간혹 재확인을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건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확인을 받은 뒤에는 망설이지 않고 그의 리드를 따랐다.
지금처럼 말이다.
“흡!!”
쐐애애액-!!
잭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코스는 오타니의 바깥쪽 낮은 코스였다.
오타니는 처음과 비슷한 코스로 들어오는 공을 보고는 배트를 돌리려 했다.
우뚝!
하지만 이내 공이 보더라인에서 반개쯤 빠진다고 판단해 배트를 멈췄다.
공은 히팅 포인트를 지나 홈플레이트 위를 통과하려 하고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 수호의 상체가 들렸다.
거구인 그의 상체가 올라오자 자연스레 구심의 시야를 순간적으로 가렸다.
그사이 공은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 가상의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고 수호는 다시 상체를 내리며 구심의 시야를 정상으로 돌렸다.
직후 존을 통과한 공이 수호의 미트로 들어왔다.
촤르르르릇-!!
이전처럼 묵직한 소리가 아닌 가죽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트의 볼집이 아닌 웹으로 잡은 탓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드러났다.
“스트라이크.”
구심이 스트라이크 콜을 외치며 화려한 동작과 함께 콜사인을 냈다.
“배터 아웃!!”
“와아아아아!!”
구심의 외침과 함께 관중석이 들썩였다.
그만큼 긴 싸움이었고 팬들이 느끼는 희열은 더욱 컸다.
-삼진입니다! 풀카운트 승부 끝에 삼진을 당하고 마는 오타니 쇼헤이! 필리스의 잭, 한수호 콤비가 다저스의 최고 타자를 돌려세웁니다!
-오타니 선수는 구심에게 무언가 확인을 받는 거 같네요.
카메라에 여전히 타석에 남아 구심과 이야기를 나누는 오타니가 잡혔다.
“존을 통과했다고요?”
“그래.”
“하…… 이 정도 코스를…… 아닙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던 수호가 곁눈질로 오타니를 바라봤다.
짜증스러운 표정이지만, 더 이상 항의하지 않고 돌아가는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한 거야?”
그때 잭이 다가와 물었다.
“내가 던진 공은 분명 볼이었는데. 그걸 프레이밍으로 집어넣은 거야?”
“예. 맞습니다. 그래서 포구 소리가 이상했던 거고요.”
“이야…… 정말 대단하네. 그나저나 오타니가 그 코스를 때리지 않을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
“오타니의 성격상 볼이 될 공을 일부러 때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확실히 볼이었으니까요.”
수호와 오타니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같은 동양인이라는 점이었다.
특히 환경이 비슷한 한국과 일본에서 자란 탓에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모든 동양인이 같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봐온 오타니는 애매한 공에 배트를 내밀어 무리하게 처리하는 것보단 뒤로 넘기려는 경향이 더 컸다.
‘만약 애런 저지였다면 자신이 처리하려고 했겠지.’
사람의 성향까지 파악하고 내린 작전이 정확히 먹혀들었다.
* * *
1회 수비를 깔끔하게 끝낸 수호는 자신의 타석을 기다렸다.
-LA 다저스의 선발투수는 2선발 빈센트 윌리엄스가 맡게 되었습니다.
-오타니 쇼헤이는 2차전에 등판할 가능성이 큽니다.
-아무래도 디비전 시리즈 4차전에 등판해서 99개의 투구 수를 기록한 것이 영향을 끼쳤겠죠?
-그럴 겁니다. 오타니는 자신의 루틴을 철저하게 지키는 타입이니까요. 구단 역시 상당히 그걸 존중하는 편이고요.
투 웨이 플레이를 위해서는 체력관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했다.
다저스는 그런 부분을 철저하게 지켜주면서 오타니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 노력했다.
그건 포스트시즌이라 해도 다를 게 없었다.
-과연 빈센트 윌리엄스가 필리스의 막강 타선을 막을 수 있을지! 선두타자로 조니 로버트가 들어섭니다.
-디비전 시리즈와 달리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필리스는 한수호 선수를 본래 자리인 3번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아마 LA 다저스라면 한수호와의 승부를 피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겁니다.
-또 하나, 한수호 선수가 디비전 시리즈에서 보여준 엄청난 주루능력과 야구 센스 때문에 LA 다저스가 그를 고의사구로 내보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수호가 기록한 8개의 도루는 역대 디비전 시리즈 최다 도루로 기록됐다.
특히 한 이닝 3도루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었다.
거기다 카디널스 선수들은 수호가 그라운드를 활보하자 말 그대로 정신 줄을 놓았다.
그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수비라인이 붕괴되니 범타로 끝날 공들도 안타가 되기도 했었다.
‘그런 꼴을 보고 있을 바에는 차라리 승부하는 게 낫지.’
LA 다저스의 생각은 그러했다.
그래서 수호가 타석에 들어오더라도 승부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생각이 현실로 옮겨갈 순간이 다가왔다.
딱!!
-때렸습니다! 3구를 공략한 브라이스 하퍼!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기록합니다!
로버트가 범타로 물러나고 타석에 들어선 하퍼가 안타를 때리며 출루에 성공했다.
“한! 한! 한! 한!!”
뒤이어 관중석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1사 1루의 찬스에서 타석으로 한수호 선수가 걸어오고 있습니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엄청난 환호성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역시 메이저리그의 역대급 선수로 평가받는 한수호 선수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수호가 타석에 들어서자 관중들의 환호성은 더욱 커졌다.
“한 방 날려!!”
“일단 1회부터 점수 먹고 시작하자!”
“가즈아-!!”
“대-한! 민! 국!!”
“한국의 자랑이다!”
영어는 물론 한국어로 외치는 응원도 자주 들렸다.
태극기가 경기장에 펄럭였고 응원의 열기는 이전보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팬들은 알고 있었다.
수호가 타석에 들어서면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는 걸 말이다.
“후우…….”
수만 명의 기대를 받는다는 건 일반 사람에게는 견딜 수 없는 중압감이었다.
하지만 수호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것을 떨쳐냈다.
‘좋았어.’
타석에 들어선 그를 보며 타이 콥이 물었다.
[넌 긴장을 안 하네.]
[얘 긴장하는 거 본 적 없음.]
[기억이 안 나는 듯.]
‘선배님들이 항상 제 일상을 보는데. 긴장할 게 있습니까?’
[그런가?]
‘예. 이미 평소에 단련되어서 괜찮습니다.’
[그래도 숫자는 현실이 더 많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선배님들은 한 명, 한 명이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은 레전드들이잖아요.’
자신이 속한 업계의 대선배들이다.
그것도 엄청난 업적을 남긴 이들이 모두 자신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
일반 경기보다 더한 중압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평소에 단련해서 실전에서도 큰 중압감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뭐, 물론 제 생각입니다만. 어쨌든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하긴 그건 그렇지.]
[ㅇㅈ]
[반론을 못 하겠네.]
[뭐가 됐든 한 방 날리자.]
베이브 루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타석에 들어선 수호가 주축이 될 왼발로 스트라이드 지점의 흙을 고르고는 스파이크를 땅에 박아 단단히 고정했다.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1회 다저스는 기회를 놓쳤다.
정확히 말하면 오타니가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분위기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필리스는 달랐다.
1사 1루.
나쁘지 않은 기회를 잡았다.
거기에 타석에는 77홈런을 때려낸 자신이 있었다.
‘여기에서 한 방 날린다면 경기의 분위기는 단숨에 저희가 가져올 수 있겠죠.’
[정답.]
[ㅇㅇ 그렇지.]
‘초반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챔피언십 시리즈고요.’
[7전 4선승제니까.]
[원래 단기전은 초반 기세가 중요함.]
[기세를 잡는 팀이 결국 쭉쭉 나가는 법이거든.]
‘그러니 반드시 잡아내겠습니다.’
야구는 흐름의 스포츠다.
이런 말이 있을 정도로 흐름을 타는 게 중요했다.
그것을 위해서는 점수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특히 오늘 마운드에 오른 건 다저스의 에이스가 아닌 2선발이다.
물론 필리스도 3선발인 잭을 내보내긴 했지만, 어쨌든 에이스가 아닌 투수가 나왔을 때 1승을 적립할 필요가 있었다.
“후우…….”
깊게 한숨을 내쉰 수호가 타격 자세를 취했다.
그런 수호의 모습을 바라본 포수가 사인을 보냈고 투수 빈센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트포지션을 취했다.
‘달릴 생각 없으니 그냥 던져라.’
하퍼는 곁눈질로 자신을 보는 빈센트를 보며 무게중심을 1루로 옮겼다.
수호가 타석에 있는데 자신이 무리하게 주루플레이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퍼의 의사를 확인한 빈센트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렸다.
스트라이드를 내디딘 그의 몸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휘릭!
하체에서 시작된 회전이 상체로 이어져 하체의 힘을 그대로 상체로 끌어 올렸다.
좋은 투수였다.
힘의 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흡!!”
쐐애애액-!!
힘의 전달이 잘 이루어졌으니 당연히 공의 구속이나 위력 모두 뛰어났다.
98마일의 최고 구속을 던지는 그인 만큼 지금 던진 공 역시 97마일이 찍히며 위력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코스도 아주 좋았다.
수호의 몸쪽을 정확히 찔러왔다.
무브먼트는 예측이 어려웠다.
뱀처럼 좌우로 크게 흔들리면서 수호의 히팅 포인트에서 벗어나려 요동쳤다.
쉽사리 때릴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휘릭!!
하체를 단단히 고정한 수호가 하체를 회전시켰다.
그리고 그 힘을 상체로 이동시키며 모든 힘을 배트에 집중시켰다.
후웅!!
그리고 어지럽게 요동치며 도망치려는 공을 향해 배트를 돌렸다.
그의 배트는 마치 먹잇감을 노린 매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좌우로 도망치려는 공의 움직임은 매 앞에 있는 한 마리 쥐의 발악일 뿐이었다.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동시에 수호는 알 수 있었다.
이건 넘어갔다는 것을.
휘릭!!
그걸 깨달은 수호가 배트를 던지고 날아가는 타구를 바라보며 천천히 1루로 뛰었다.
-배트를 던진 한수호 선수!! 그리고 타구는 좌측 담장을 넘어갑니다!! 첫 타석부터 홈런을 작렬시키는 한수호 선수입니다!!
스코어 2 대 0.
레코드 브레이커가 다시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