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36화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홈에서 지구 4위를 확정 지은 마이애미 말린스를 만납니다! 말린스는 이번 시즌 일찌감치 지구 4위를 확정 지으면서 사실상 리빌딩을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주축 선수를 모두 트레이드하고 베테랑들과 루키들로 팀을 꾸려 리빌딩에 들어갔습니다. 특히 루키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면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마이애미 말린스의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수호는 오늘 경기에서도 지명타자로 출전하기에 벤치에서 경기를 보고 있었다.
‘말린스는 1선발이 오를 차례인데도 유망주가 등판을 하네요.’
[리빌딩에 들어갔으니까.]
[그래도 공은 제법 빠른 거 같더라.]
[ㅇㅇ 데이터상 97마일까지도 찍는 듯.]
[8이닝 이상 던진 경기도 1경기가 있음.]
[무엇보다 공격적이다.]
공격적이란 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 기회가 있겠군요.’
[그렇겠지.]
[말린스도 굳이 피할 생각은 없을 듯.]
[오히려 상대해야지.]
[ㅇㅇ 앞으로 비슷한 시대에 뛸 텐데. 미리 경험해 두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할 거임.]
수호는 레전드들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리빌딩이란 유망주들의 경험을 쌓게 해줘야 하는 단계다.
애런 저지가 수호를 제치고 70홈런에 먼저 도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를 상대한 유망주 투수들이 저지라는 이름값에 눌리지 않고 승부를 해준 덕분이다.
“후우…….”
부담감은 없었다.
단지, 자신을 응원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다.
응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이다.
* * *
-말린스의 공격은 세 명의 타자가 모두 범타로 물러나면서 끝났습니다. 이어서 필리스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 조니 로버트를 시작으로 2번 타자 브라이스 하퍼, 그리고 3번 한수호 선수로 이어지는 평소대로의 타순입니다.
-오늘 경기 말린스의 선발투수는 루이스 가르시아가 올라왔습니다.
-루이스 가르시아는 말린스가 기대하는 선발투수 요원 중 한 명 아닙니까?
-맞습니다. 최고 구속 97마일까지 던지고 평균 구속은 95마일이 찍히는 강속구 유형의 투수입니다. 수준급의 슬라이더와 주특기인 스플리터를 던지면서 차세대 말린스의 스타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 선수입니다.
-메이저리그 통산 전적은 아직 6전밖에 없지만, 모두 선발투수로만 등판했었네요?
-말린스는 그를 선발투수로 키울 생각이기에 메이저리그 경험은 모두 선발로만 시키고 있는 거 같습니다.
루이스 가르시아.
같은 루키이기는 했지만, 나이는 수호보다 많았다.
그래서인지 수호에 대한 묘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맞이할 내 시대에서 가장 큰 벽이 될 녀석이야. 여기에서 확실히 내 존재감을 보여줘야 한다.’
본인이 의도했든 아니든 수호는 메이저리그 유망주들에게 벽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투수들에게는 무너뜨려야 하는 산이었고 타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앞을 달려가고 있는 존재였다.
고작 데뷔시즌에 이런 선수가 되었다는 것이 수호가 얼마나 위대한 시즌을 보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경기 시작됩니다!
루이스가 상체를 숙이고 포수의 사인을 확인했다.
‘감독의 허락도 떨어졌으니 제대로 필리스 녀석들을 잡아봐. 인코스로 붙여.’
포수의 사인을 받고 고개를 끄덕인 루이스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로버트는 그런 루이스의 투구 박자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들었다.
“흡!!”
쐐애애액-!!
루이스의 손에서 공이 떠나 로버트의 몸쪽을 찔러왔다.
기다렸던 코스인 듯 로버트의 배트가 매섭게 돌았다.
후웅!!
뻐어억-!!
“스윙! 스트라이크, 원!!”
-초구 헛스윙입니다! 몸쪽에 반응했던 조니 로버트! 하지만 배트가 허공을 가릅니다!!
로버트의 헛스윙이 시원하게 나왔다.
얼마나 시원했는지 본인의 스윙에 균형이 무너질 지경이었다.
“푸하하! 로버트 넌 네 스윙도 견디지 못하냐?”
“하체 힘 좀 길러야 하는 거 아니야?!”
“여자들 좀 그만 꼬시고 하체 운동이나 해라!!”
필리건들의 조롱이 쏟아졌다.
조니 로버트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건 필라델피아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덕분에 그의 별명이 카사노바라는 건 필리스의 팬들이라면 다 알고 있었다.
‘하체가 부실한 건지 모르지만, 저 헛스윙은 그렇게 해서 나온 게 아니야.’
수호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로버트의 헛스윙이 다소 크게 나오긴 했지만, 그 이유는 루이스의 공이 좋아서였다.
[생각보다 공이 더 뻗어서 오는데?]
[구속도 빠르고 무브먼트도 좋은 편이다.]
[루키가 저 정도라면 확실히 앞으로가 기대되는 녀석이네.]
레전드들도 동의했다.
그만큼 루이스 가르시아의 공은 일품이었다.
괜히 말린스가 그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는 게 아니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첫 타자 조니 로버트를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루이스 가르시아!!
-환상적인 투구였습니다. 3할 초반의 타율을 유지하는 조니 로버트를 상대로 공격적인 피칭을 이어나가 그를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필리스의 선봉장이 공 3개에 돌아섰다.
하지만 루이스의 질주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사…… 삼진입니다! 두 타자 연속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루이스 가르시아!!
-설마 브라이스 하퍼까지 공 3개로 돌려세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두 타자 연속 삼구삼진.
그것도 하위타순의 타자도 아니고 1, 2번.
게다가 한 명은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인 브라이스 하퍼를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루이스 가르시아가 얼마나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투수인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경기 시작 이후 두 명의 타자를 모두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운 루이스 가르시아! 그리고 그를 상대하기 위해 타석으로 한수호 선수가 들어섭니다!!
-이거 갑자기 기대감이 높아지네요. 루이스 가르시아의 페이스가 이렇게 좋다면 한수호 선수와의 승부를 거를 이유가 없습니다!
루이스 가르시아의 호투는 눈부셨다.
그렇기에 필리스와 수호를 응원하는 팬들은 기대를 가지기 시작했다.
-야야, 루이스 개쩌네.
-두 타자 연속 삼구삼진 지렸다.
-이 정도면 수호랑 승부하지 않겠냐?
└ㅇㅈ
-두 타자 연속 삼구삼진 잡은 투수에게 고의사구 작전을 내리진 않겠지.
-승부할 듯.
-크으! 수호야 제발!!
중계를 보는 팬들이 들썩였다.
수호와 승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모두가 그를 응원하는 건 아니었다.
-이미 수호의 타격감은 바닥임.
-페이스 다 떨어졌쥬?
└아…… 진짜 쥬쥬. 집에서 인형 가지고 놀아라. 댓글 쳐달지 말고.
└└반박 못 하쥬? 열 받쥬?
└└└ㅅㅂ 너 어디 사냐?
-한물간 애한테 뭘 기대함?
-한빠들 벌써 김칫국 마시네.
아침 일찍부터 인터넷 중계에 와서 수호를 까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시즌 내내 수호의 활약이 이어졌기에 막판에 찾아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물고 놓질 않았다.
마치 하이에나처럼 말이다.
-타석에 들어선 한수호 선수가 자세를 잡습니다.
수호가 자세를 잡고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뒤이어 루이스 가르시아가 사인을 교환하고 투구 자세에 들어갔다.
“후우……!”
깊게 숨을 몰아쉰 루이스의 눈이 빛났다.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조니 로버트는 물론이고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 중 한 명인 브라이스 하퍼를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웠다는 사실이 자신감을 상승시켰다.
‘메이저리그 슈퍼스타들에게도 내 공은 통한다. 아무리 네가 최고의 타자라고는 하지만, 내 공을 쉽게 때리진 못할 거야.’
자신감은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특히 유망주라면 더더욱 자신감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루이스는 오늘 경기 최고의 공을 던졌다.
“흐읍!!”
쐐애애액-!!
루이스 가르시아가 던진 공이 수호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피할 생각은 없었다.
하퍼까지 두 타자 연속 삼구삼진을 잡아낸 투수에게 볼넷을 지시할 감독은 없었다.
몸쪽으로 파고드는 공은 어지러운 무브먼트를 보여주며 포수의 미트를 향해 파고들었다.
그리고 홈플레이트 앞을 막 지나려는 순간.
후웅!!
수호의 배트가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
부앙!!
속도를 더하더니 그대로 공을 낚아챘다.
딱!!
-때렸습니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경쾌한 타격소리.
뒤이어 수호는 손에 꽉 쥐고 있던 배트를 놓았다.
휘릭!!
-그리고 배트를 던졌습니다!!
캐스터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카메라는 빠르게 날아가는 타구를 쫓았다.
-좌측 담장을 향해 날아가는 타구!! 이번 타구는…… 넘어갔습니다!! 10경기의 침묵을 깨는 69번째 홈런을 터뜨리는 한수호 선수!! 그가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돌아왔다.
그 표현이 딱 어울리는 한 방이었다.
* * *
[(속보) 한수호 침묵을 깨는 69호 홈런 작렬!]
[(속보) 한수호 1회부터 홈런포 가동!]
[(속보) 한수호 69호 홈런 기록]
1회 첫 타석에서 만들어낸 홈런에 필리스의 기세가 올랐다.
하지만 루이스 가르시아의 호투에 후속타는 터지지 않았다.
-유망주답지 않게 홈런을 허용한 뒤에 추가 실점을 하지 않은 루이스 가르시아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맞습니다. 한수호 선수에게 초구 홈런을 헌납하면서 충분히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후 리얼무토를 잘 잡아내면서 이닝을 깔끔하게 마무리했어요.
한국 중계진 역시 루이스 가르시아를 칭찬했다.
그만큼 그는 인상적인 투구를 선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1회만이 아니라 2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세 번째 아웃 카운트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오늘 경기 5번째 탈삼진을 기록하는 루이스 가르시아!
-확실히 공이 위력적입니다. 이런 선수의 공을 초구에 홈런으로 만들어낸 한수호 선수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루이스 가르시아의 활약이 이어질수록 수호의 초구 홈런이 더욱 빛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루이스 가르시아 쩌네.
-이런 애한테 초구 홈런이라니.
-한수호 타격감 지렸고요.
-70홈런 딱 대라.
-야야, 1회 홈런이면 오늘 경기 진짜 70홈런 넘는 거 아니냐?
-이 정도면 베이브 한이라 불러야 된다고 본다.
-예고 홈런 성공 각 섰다!
팬들이 기대하는 건 수호가 예고했던 70홈런이 나오느냐 마느냐였다.
첫 타석 홈런으로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상황.
그리고 수호가 다음 기회를 얻은 건 4회였다.
퍽!!
“아웃!!”
-마이애미 말린스의 공격이 마무리됩니다. 두 팀의 투수들이 호투를 펼치면서 스코어는 여전히 1 대 0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4회 말이 기대되네요. 한수호 선수가 두 번째 타석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한수호 선수가 본인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지킬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4회 말.
마운드에는 루이스 가르시아가 다시 올라왔다.
수호에게 홈런을 내준 걸 제외하고는 오늘 경기 안타를 내주지 않았던 그였다.
그렇기에 더욱 이를 갈고 있었다.
‘이번 이닝에서 반드시 녀석을 잡아낸다.’
의욕을 불태운 루이스 가르시아는 그를 상대하기 위해 타석에 들어선 브라이스 하퍼를 상대로 공격적인 피칭을 이어갔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오늘 경기 두 타석 연속으로 삼진을 당하는 브라이스 하퍼!!
-베테랑 하퍼가 루키 루이스 가르시아에게 맥을 추지 못합니다!
하퍼가 고개를 저으며 타석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더그아웃으로 걸어가다 수호와 교차할 때 조용히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 주인공이 나는 아닌가 보다.”
툭!
하퍼가 수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힐끔 루이스를 바라봤다.
“오늘 주인공은 네가 될 거 같으니까, 확실히 끝내버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타석에 들어선 수호가 루틴을 밟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말린스의 포수가 자신들의 더그아웃을 바라봤다.
수호와의 승부는 더그아웃의 사인이 필요한 상황.
그의 시선이 닿자 말린스의 감독인 데이비드 윌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부해.’
허락은 쉽게 떨어졌다.
말린스에게 중요한 건 승패가 아니라 루이스의 경험이었다.
그렇기에 수호와의 승부를 피할 이유는 없었다.
‘허락은 떨어졌으니…….’
포수의 사인이 나왔다.
그걸 본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사이 타격 자세를 취한 수호가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사인을 교환한 루이스 가르시아가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촤앗-!
킥킹을 한 루이스가 힘을 모아 전력을 다해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아웃코스 낮은 곳의 보더라인을 정확히 걸치고 들어왔다.
수호에게는 멀 수밖에 없는 코스.
하지만 수호는 마치 그곳으로 공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
타닥!
클로즈드 스탠스를 밟아 히팅 포인트를 아웃코스에 고정하고 배트를 돌렸다.
후웅!!
딱!!
-때렸습니다!! 이번에도 초구를 노린 한수호 선수!! 이번 타구도……!
수호는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자연스레 배트를 던졌다.
휘리릭!!
수호의 시야에 닿는 곳에는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타구가 보였다.
-넘어갔습니다!! 연타석 홈런을 작렬시키는 한수호 선수!! 메이저리그 최초로 루키시즌 70홈런 고지를 밟습니다!!
그가 70홈런 고지를 밟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