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17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전용기였다.
한국과 달리 미국의 땅덩이는 말도 안 되게 넓었다.
도시를 이동할 때 몇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며칠이 걸리는 일도 허다했다.
선수들의 컨디션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고 이동 시간 역시 단축해야 하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당연하게 전용기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전용기는 구단들마다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운영한다.
항공사와 계약을 맺고 대여를 하는 전세기 방식과 아예 항공기를 구매하는 경우가 있었다.
대부분 선수들은 후자를 선호했다.
전세기의 경우 아무래도 대여의 개념이 강했기에 내부를 함부로 손볼 수 없었다.
조금씩 손보기는 했지만, 대부분 그냥 이용해야 했다.
하지만 구매한 경우는 달랐다.
선수들의 요구에 맞춰 시설이 모두 바뀐다.
모든 좌석이 퍼스트클래스에 선수들이 즐길 수 있는 유흥거리 역시 다수 설치된다.
포커를 위한 시설이나 당구를 칠 수도 있었고 다양한 주류들이 준비되기도 했다.
그리고 필리스는 전용기를 보유한 구단 중 하나였다.
내부 시설은 필리스 선수들의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새로 리모델링했다.
덕분에 이동하는 놀이 공간이라 불릴 정도로 최신식 설비로 가득했다.
“한! 너도 이제 슬슬 포커 한 게임 하는 게 어때?”
“모르면 알려줄게!”
“미안하지만, 나는 카드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말이야. 다른 거라면 함께할게. 차라리 장기나 바둑 같이할래?”
“패스~”
“으으…… 나는 체스도 머리가 나빠서 못 하는 인간이야.”
수호의 제안에 동료들이 손사래를 쳤다.
자유의 몸이 된 수호는 비행기 내부를 이동하며 동료들이 노는 걸 바라봤다.
‘다트에 누군가는 당구를 치고 저기는 또 플스를 하고 있네.’
[이제 너도 적응 좀 해라 ㅋㅋ]
[그러게 말이야.]
[매번 놀라면 우야냐?]
‘놀라는 거 아니거든요. 그냥 신기한 거죠.’
[그게 그거지 ㅋㅋ]
레전드들의 놀림에 고개를 저었다.
전생에서도 퍼스트클래스는커녕 비즈니스석도 타보지 못했던 수호였다.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살았던 그로서는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진 걸 위안 삼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때 조니 로버트가 스마트폰을 들고 나타났다.
“헤이! 한, 내 팔로워들이 너 좀 보여달라고 해서 말이야.”
“응? 촬영 중이야?”
“라이브야. 팔로워들에게 손 한번 흔들어줘.”
“아, 하이.”
“오우! 반응 장난 아닌데? 이거 봐.”
조니 로버트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우측에 보이는 채팅이 정말 쉴 새 없이 올라갔다.
언어 역시 다양했다.
영어, 일본어, 한국어는 물론이거니와 불어와 아랍어, 거기에 알아보기 힘든 언어들도 있었다.
“도대체 몇 명이나 들어와 있는 거야?”
“지금 1,200명. 오~ 방금 2천 명 넘었다. 역시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답네!”
2천 명이 라이브를 본다니.
조니 로버트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버트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라이브를 계속하는 모습을 보던 수호는 주위를 둘러봤다.
‘의외로 영상을 촬영하거나 라이브를 하는 애들이 많네.’
[요즘이야 글보다는 영상의 시대니까.]
[선수들도 보면 젊은 애들 위주는 유튜브나 별스타그램 같은 걸 많이 하지.]
[영상으로 소통하는 게 하나의 방법임.]
확실히 자신도 이전의 삶에서 유튜브나 톡톡과 같은 영상 매체를 많이 이용했었다.
지금이야 훈련과 경기를 하느라 바쁜 나날이었지만 말이다.
‘팬들과 직접적인 소통이라…….’
문득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체력을 회복하는 데 먼저 시간을 쓰고 싶었다.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
눈을 감고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이동시간에 최대한 휴식을 취해야 했다.
* * *
수호와 저지의 대결은 이제 메이저리그를 보는 사람은 물론 관심 없는 사람들도 하나둘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오늘 경기에서 한과 애런 저지, 둘 중에 누가 먼저 홈런을 때려낼까?”
“애런 저지의 요즘 페이스가 심상치 않으니까. 애런 저지가 홈런을 때려내지 않을까?”
“아니야. 저지는 아무래도 몰아치기에 좀 특화되어 있어. 내가 봤을 때 꾸준한 건 한이야.”
거리의 어디를 가더라도 수호와 저지의 대결 소식이 들려왔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관심이 없는 이들도 친구나 지인, 동료들을 통해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다가도 계속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없던 관심도 생기는 법이었다.
“애런 저지가 메이저리거지?”
“응, 맞아.”
“뭐야? 너 애런 저지가 누군지도 몰랐어?”
“마크 이 녀석은 베이스볼을 좋아하지 않아. 얘가 주로 보는 게 영국 축구 쪽이거든.”
“내가 관심 있는 건 프리미어리그가 아니라 라리가야.”
“그게 무슨 차인데?”
“후우……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애런 저지가 또 홈런 신기록이라도 달성하는 거야?”
“그럴 가능성이 높지. 몇 년 전에 기록했던 62개 홈런을 넘어서서 이번에는 70홈런을 넘을 가능성이 높거든.”
“그래? 그럼 걔가 또 메이저리그 1위 하겠네.”
“아니, 그게 이번에는 어려울 수도 있어.”
마크라고 불린 축구 팬이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70홈런이라면서? 내가 야구를 모른다지만, 그 정도면 메이저리그 신기록 수준 아니야?”
“정확히는 73개지.”
“그거나 그거나. 그 정도면 1위를 해야지. 왜 못 한다는 거야?”
“그게 이번에는 엄청난 라이벌이 나타났거든. 루키인데. 걔가 지금 54개로 1위고 애런 저지가 52개로 현재 2위야.”
“루키? 루키가 1위를 하고 있다고? 그럴 수 있는 거야?”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
“애초에 루키 최다 홈런 기록은 갱신한 상태야. 이 상태로 간다면 70홈런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고.”
마크의 눈이 커졌다.
아무리 야구에 문외한이라지만 저게 가능한 수치인가 싶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 거야?”
“말이 안 되지. 그러니까 사람들이 난리인 거지.”
“그 루키가 한국에서 온 것도 엄청난 화제를 몰고 있는 거고.”
“한국? 코리아에서 온 루키가 애런 저지와 비등한 대결을 펼치고 있다는 거야?”
“응.”
“왓더…….”
야구에 관심이 없는 마크조차 저지와 수호의 홈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친구들이 스마트폰에 유튜브를 틀어서 보여주었다.
“올 시즌 전반기에 한이랑 저지가 한 경기에서 홈런대결을 펼친 적이 있거든? 이게 그 하이라이트인데 한번 봐.”
가장 큰 화제가 됐었던 수호와 저지의 홈런대결.
4연타석 홈런이 나왔던 그 경기에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없던 마크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이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었다.
[뉴욕 양키스 vs 필라델피아 필리스, 애런 저지와 한수호의 역대급 홈런대결이 나왔던 바로 그 경기!]
[조회 수 : 6,425,773회]
수호와 애런 저지의 정면 대결이 있었던 경기의 조회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하나둘 두 선수의 대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 * *
수호가 이동하는 사이, 애런 저지가 홈에서 LA 에인절스를 맞이했다.
-에인절스를 상대로 한 양키스가 1차전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애런 저지가 이끄는 양키스가 에인절스를 가볍게 이겨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애런 저지의 컨디션이라면 충분히 에인절스를 이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인절스는 애런 저지를 봉쇄하는 데 성공하면서 경기를 5 대 2로 후반까지 끌고 갔다.
-오늘 경기 에인절스는 애런 저지를 고의사구로 모두 내보내면서 그의 타격을 아예 봉쇄시켰습니다.
-아무래도 애런 저지의 최근 타격 감각이 무섭다 보니 에인절스가 그를 피하는 선택을 한 거 같습니다.
-마치 한수호 선수가 후반기에 접어들어 볼넷의 개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LA 에인절스의 선택을 비난하긴 어려웠다.
고의사구 역시 하나의 전략이었고 그만큼의 리스크를 짊어지는 작전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애런 저지나 한수호 선수에게 이러한 견제는 계속 들어올 겁니다. 그리고 이런 견제에서 이겨내는 것 역시 선수들의 능력에 달려 있는 거죠.
-맞습니다. 견제를 이겨내고 대기록을 세워야 합니다.
경기가 점점 에인절스에 기울고 있는 상황에서 애런 저지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딱!!
-때렸습니다! 선두타자가 안타로 출루에 성공하는 양키스!
선두타자의 출루에 이어 두 번째 타자와 세 번째 타자 역시 볼넷과 안타를 때려내며 연이어 출루에 성공했다.
딱!!
-삼유간을 가르는 안타!! 2루 주자 홈까지는 노리지 못했지만, 만루의 찬스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타석에는 오늘 경기 3볼넷 경기를 이어가고 있는 애런 저지가 들어섭니다! 드디어 그에게 기회가 왔어요!
양키 스타디움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타석에 들어선 애런 저지의 모습에 사람들은 응원을 보내면서도 에인절스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궁금해했다.
-과연 오늘 경기 모든 타석을 볼넷으로 출루한 애런 저지! 만루의 상황에서 에인절스가 그를 또 고의사구로 내보낼지 궁금합니다!
만루에서 고의사구.
과거에도 있었지만, 자주 나오는 기록은 아니었다.
‘애런 저지를 고의사구로 내보내서 1점만 내준다 하더라도 문제는 다음 타자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만루의 찬스가 계속 이어진다면 경기를 내줄 가능성이 컸다.
결국 에인절스의 감독이 사인을 보냈다.
‘승부해.’
애런 저지를 잡아주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최악의 선택이 됐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입니다! 승부를 하기로 결정한 에인절스!!
에인절스가 승부를 결정하자 애런 저지의 눈이 빛났다.
‘승부를 한다면…….’
오랜 시간 참아온 그의 힘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투수가 던진 2구를 향해 일순간에 그 힘을 폭발시켰다.
‘받아주겠어!!’
부앙!!
돌풍과 함께 돌아간 배트가 그대로 공을 낚아챘다.
딱!!
-때렸습니다!! 엄청난 타구가 좌측 담장을 넘어 그대로 경기장 밖으로 사라집니다!! 애런 저지의 장외 홈런이 터집니다!!
-마치 한수호 선수에게 보란 듯이 그랜드슬램을 장외 홈런으로 작렬시키는 애런 저지!!
애런 저지가 노리고 때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이 장외 홈런은 팬들을 더욱 열광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애런 저지 장외 홈런 작렬!
-키야~ 수호가 하니까 저지도 바로 따라가는구나!
-진짜 역대급 대결의 향연이다!
-와……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는 진짜 장난 없네.
-홈런대결에서 누가 이길지 모르겠다.
팬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눈치가 빠른 기업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내년 시즌 새로운 메이저리그 게임을 내놓아야 할 PA 스포츠였다.
“다음 시즌 모델로 한수호나 애런 저지 원톱을 내세울 생각이었지만, 대중의 관심이 이렇게 뜨겁다면 계획을 바꾸는 게 좋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투톱 모델로 해서 두 사람을 모두 조명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거 나쁘지 않군. 당장 두 선수에게 의향을 물어보고 준비하도록 하지.”
기업들의 관심도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팬들은 수호의 다음 경기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한수호, 첫 캐나다 원정경기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만난다!]
수호의 다음 상대는 블루제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