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15화
앤서니의 합류는 예상 밖이었다.
‘트리플A에서 올린 성적은 7승 3패. 평균자책점 3.14. 그렇게 뛰어난 성적이 아닌데도 메이저리그에 콜업이 되었네요.’
[성적도 중요하지만, 팀 상황이 더 중요하지.]
[ㅇㅇ 앤서니 같은 사이드암이 적은 것도 하나의 이유고.]
[리얼무토를 지키면서 타자 쪽에 여유가 생긴 것도 또 하나의 이유겠지.]
[거기에 불펜의 현재 상황도 체크해야 하니까.]
‘선수 한 명을 올리는 데 신경 써야 할 게 많군요.’
[당연하지.]
[너 회사 다닐 때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됨. 예를 들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같은 전공의 애를 두 명이나 둘 필요 있음?]
‘때로 필요하겠지만, 겹치는 포지션은 웬만하면 제외시키죠.’
[ㅇㅇ 그런 거임.]
[지금 필리스에선 앤서니가 필요했다. 딱 그 정도지.]
레전드들 중에는 지도자를 경험했던 이들도 제법 있었다.
덕분에 궁금증을 금방 풀 수 있었다.
[그리고 올린 건 별거 아니야.]
[쟤 찾아보니까, 작년에도 메이저리그에서 잠깐 뛰었네.]
[아마 마지막 기회일 듯.]
‘마지막 기회요?’
[나이도 있고 메이저리그에 올라와도 큰 활약하지 못하면 굳이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지.]
[메이저리그가 돈이 많긴 하지만, 딱 쓸 곳에만 쓴다.]
냉정하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
메이저리그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수들을 굳이 데리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뭐, 크게 생각할 필요 있냐?]
[ㅇㅈ. 그냥 네 경기에만 신경 써.]
‘예.’
예상치 못한 앤서니의 합류였지만, 수호는 이내 신경을 끄고 자신의 루틴을 밟아나갔다.
* * *
브레이브스의 2차전을 앞두고 뉴욕에서 하나의 소식이 나왔다.
“저지! 한수호 선수가 배리 본즈의 기록을 넘어설 것이라 선언했는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단 그 패기에 경의를 보냅니다. 그리고 배리 본즈를 넘어서는 건 제가 먼저 해낼 겁니다.”
“그 말씀은 애런 저지 당신도 본즈의 73홈런에 도전하겠다는 말씀입니까?”
“당연한 소리를 질문으로 하는군요. 메이저리그 타자라면 누구든지 최고의 위치를 꿈꿉니다. 무엇보다 라이벌이 그런 도전을 입에 담았는데. 나라고 말하지 못할 게 있겠습니까?”
애런 저지의 입에서 처음으로 라이벌이란 말이 언급됐다.
이는 두 선수 사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연히 언론은 이 부분을 대서특필했다.
[애런 저지 배리 본즈의 73홈런에 도전하겠다! 선언!!]
[한수호는 라이벌이다! 그가 한다면 나도 할 수 있다!]
[라이벌과의 승부를 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애런 저지!!]
애런 저지는 명실상부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타자였다.
그런 선수가 라이벌로 직접 루키를 지목했다.
이 소식은 메이저리그 팬들을 달아오르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동안 별다른 언급이 없었지만, 역시 저지도 수호를 경계하고 있었네.
-당연한 소리지. 이 둘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라이벌이 될 거임.
-이번 시즌 자체가 둘의 라이벌리의 시작이지.
-우리 아버지가 왜 매번 맥과이어와 소사를 이야기했는지 이제 알겠다.
-이게 더 대단한 게 약쟁이들의 대결이 아닌 순수한 타자들의 대결이란 점임.
└그걸 누가 알겠음?
-얘네들도 나중에 약쟁이로 터질 수도 있다.
└괜히 입 잘못 놀리다간 너도 철컹철컹임.
└└한국의 유튜버 하나가 수호한테 약쟁이라 했다가 2,000만 달러 소송에 휘말린 거 모르냐?
└└└너희 집 돈 많냐?
-저지 vs 수호. 역사에 남을 이 대결을 내 눈으로 보는구나.
미국의 메이저리그 팬들의 반응만큼이나 한국에서도 저지의 발언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와…… 메이저리그 최고 선수에게 라이벌로 인정받네.
-진짜 수호가 메이저리그로 직행해서 다행이다.
-작년에 계약할 때만 하더라도 여론 진짜 나빴는데.
└ㅇㅈ. 그때 고교생이 겉멋 들어서 메이저리그 간다는 말도 있었지.
-얘는 KBO를 들를 이유가 없었던 애임.
-한수호 덕분에 올 시즌에도 메이저리그에 직행하려는 애들 많겠네.
└벌써 1라운드급 애들은 메이저리그 구단하고 접촉한다더라.
└└이제 KBO는 메이저리그의 팜이 됐음.
-내년부터 우리나라 애들 메이저리그에서 많이 뛸 듯.
└마이너리그겠지 ㅋ
이런 소식은 경기를 준비하는 수호에게도 전해졌다.
“한수호 선수! 애런 저지가 당신을 라이벌로 지목했습니다! 이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의 질문에 수호가 되물었다.
“저지가 직접 저를 지목한 겁니까?”
“예. 인터뷰에서 직접 한수호 선수를 지목해서 라이벌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거 참…… 난감하네요.”
“난감하다고요?”
“제가 먼저 말하고 싶었는데. 애런 저지에게 선수를 뺏겼네요.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와 함께 ‘역대급’ 시즌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수호의 대답에 기자들이 눈이 반짝였다.
오랜만에 대박이라 불릴 만한 기사들을 잡았다.
* * *
두 선수가 서로를 라이벌이라 칭하면서 뉴욕 양키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리그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승패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또한 팬들은 서로를 외친 두 사람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도 궁금해했다.
-한수호와 애런 저지! 이번 시즌 리그의 홈런을 이끌고 있는 두 선수가 서로를 라이벌이라 밝히면서 엄청난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사실 팬들 입장에서는 이미 두 사람이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당사자들이 직접 밝혔다는 게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위대한 라이벌로 불리는 선수들이 존재했지만, 개인적으로 맥과이어와 소사의 라이벌리가 가장 대단했다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기록이 아니라 당시의 반응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혹여나 논란이 될까 해설위원의 부연설명이 이어졌다.
한마디로 두 사람의 라이벌 관계만큼이나 저지와 수호의 라이벌이 걷는 길이 대단하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런 관심을 폭발시키기라도 하겠다는 듯, 애런 저지가 선공을 날렸다.
딱-!!
-저지의 벼락같은 스윙!! 이건 굿바이입니다!! 중앙 펜스를 넘어가는 홈런!! 애런 저지가 한수호 선수를 1개 차이로 따라잡는 51호 홈런을 작렬시킵니다!!
-오늘 선전포고를 날렸던 애런 저지가 한에게 선제타격을 날립니다!!
같은 시각.
애런 저지가 홈런을 때렸다는 소식이 필리건들에게 전달됐다.
“애런 저지가 홈런을 때렸는데?”
“뭐야?!”
“저지가 홈런을 때렸는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지!!”
“한!! 저지가 한 방 날렸으니까! 너도 한 방 날려 버려!!”
“저지가 51호 홈런을 날렸다!!”
“우리도 질 수 없지!! 한!! 당장 펜스 밖으로 날려 버려!!”
아직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수호를 연호하는 필리건들의 외침에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타석에 들어서던 아쿠냐 주니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직 우리 공격인데. 너무 한 거 아니야?”
“우리 팬들이 좀 극성이긴 하지.”
“극성인 게 아니라 저건 거의 미친 거 같은데요? 아무리 그래도 수비에서 홈런을 어떻게 때려요? 그것도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데.”
아쿠냐 주니어의 말에 리얼무토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힐끔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수호를 바라봤다.
‘팬들의 성원이야 언제나 고마운 거지만, 실시간으로 애런 저지의 소식을 전달해 주는 건 그리 달가운 상황이 아닌데.’
수호도 저지를 라이벌이라 지칭했다.
그것도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말했기에 그걸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애런 저지가 먼저 홈런을 날렸으니 영향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
차라리 경기가 끝나고 알았으면 모를까 경기 도중에 알게 된 것이 그의 멘탈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
‘뭐, 그렇게 멘탈이 약한 녀석은 아니니까.’
리얼무토는 걱정을 떨쳐내고 캐처박스에 앉았다.
‘일단 이 녀석부터 처리하도록 할까.’
리얼무토의 시선이 마운드에 서 있는 앤서니를 바라봤다.
오늘 경기 세 번째 투수로 올라온 앤서니가 어떤 투수인지는 데이터를 통해 확인했다.
‘성적이 빼어난 건 아닌데도 메이저리그에 올렸다는 건 그만큼 무언가가 있다는 소리겠지.’
데이터만 봤을 때 특별할 건 없었다.
아쿠냐 주니어 타석에 원포인트 투수로 올린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사이드암에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아쿠냐였으니 말이다.
‘그럼 일단 이 녀석을 가볍게 돌려세우자고.’
리얼무토의 사인에 앤서니가 고개를 끄덕이고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액-!!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앤서니의 얼굴에 당혹감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건 리얼무토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구했던 몸쪽 공이 아닌 존의 중앙으로 공이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쿠냐 주니어는 이런 공을 놓칠 리 없었다.
‘아싸!’
딱!!
속으로 쾌재를 외치며 휘두른 배트에 정타로 맞은 타구가 그대로 우측 담장을 향해 날아갔다.
-아~ 이 타구는 넘어갔습니다!! 아쿠냐 주니어가 시즌 47번째 홈런을 작렬시킵니다!!
-역전을 허용하는 투런을 내주고 마는 앤서니 투수입니다!
메이저리그 콜업 첫날부터 사고를 치는 앤서니였다.
* * *
애런 저지의 선제공격으로 수호의 다음 타석이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거기에 2점이 뒤진 상황.
앤서니가 저지른 불로 인해 필리건들이 수호를 원하는 수준은 거의 월드시리즈를 방불케 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다른 선수들을 압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로버트!! 수호 앞에 주자를 쌓아!!”
“네가 아웃되면 쟤네들이 수호를 거를 수 있어!!”
“어떻게든 출루에 성공해라!!”
필리건들의 응원 아닌 응원에 타석에 들어선 로버트가 어색하게 웃었다.
“저런 팬들을 두고 있는 것도 꽤 힘들겠네요.”
“이제 적응 좀 돼서 괜찮아.”
그런 표정이 전혀 아니었지만, 호세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긴장한 얼굴이니까, 가볍게 처리하자고.’
‘오케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호세의 생각이었다.
투수가 초구를 던지는 순간.
로버트가 간결하게 배트를 내밀었다.
딱!!
-빗맞은 타구! 홈플레이트 앞에서 크게 튀어 오릅니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크게 튀긴 타구가 3루 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3루수가 공을 처리하기 위해 달려 나오며 그걸 잡아 1루로 던지려는 순간.
“던지지 마!!”
호세의 외침에 3루수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1루를 봤을 때 이미 베이스를 통과하고 있는 로버트가 보였다.
“무슨 발이…….”
“젠장, 타격이 아니라 발로 안타를 만들어내네.”
여유롭게 1루 베이스에 도착한 로버트가 더그아웃을 향해 주먹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관중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잘했다! 로버트!!”
“역시 우리의 리드오프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뒤이어 타석에는 브라이스 하퍼가 들어섰다.
그의 등장에 관중석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졌다.
“하퍼! 하퍼! 하퍼!!”
“슈퍼스타다운 모습을 보여달라고!!”
팬들의 엄청난 환호성에 부응하듯 하퍼가 투수의 3구를 받아쳤다.
딱!!
-때렸습니다!!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 연속 안타를 만들어내는 필리스!! 그리고 타석에는……!!
카메라가 대기 타석을 비추었다.
거기에는 배트를 가볍게 휘두르는 수호가 서 있었다.
-한수호 선수가 들어섭니다!!
“와아아아아아!!”
그의 등장에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얼마나 큰 환호성인지 경기장 전체가 들썩이는 기분이었다.
“미친…….”
호세의 입에서 절로 욕이 터져 나왔다.
정말 자신들이 월드시리즈를 치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환호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지?’
호세의 시선이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수호와의 승부는 더그아웃에서 사인이 나오기 때문이다.
브레이브스의 감독은 고민에 잠겨 있었다.
‘노아웃 상황이니 거르는 게 맞다. 하지만 리얼무토의 타격감이 나쁜 것도 아니야. 만루 상황에서 리얼무토가 들어서면 2점을 줄 가능성이 높아져.’
수호와 승부를 피해도 뒤에는 리얼무토가 버티고 있었다.
무작정 수호를 피할 수 없는 이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
‘오늘 애런 저지와의 해프닝이나 관중들의 비정상적인 반응을 생각했을 때 수호라고 해도 부담을 느낄 게 분명해.’
아무리 수호가 대단한 선수라지만, 이런 상황에서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게 이상했다.
이런 계산에서 감독의 사인이 나왔다.
‘승부해.’
사인을 확인한 호세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타석에 들어선 수호가 타격 자세를 잡자 사인을 교환했다.
‘바깥쪽으로 승부하자.’
‘오케이.’
사인을 주고받은 투수가 1구를 뿌렸다.
“흡!!”
쐐애애액-!!
아웃코스로 들어오는 패스트볼이었다.
전력투구를 했기에 구속은 98마일이 찍혔다.
코스 역시 골반 높이로 들어오는 나쁘지 않은 공이었다.
거기에 코스 역시 보더라인을 아슬아슬하게 걸쳤다.
무엇으로 보든 완벽한 공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호는 그걸 예상하고 있었다.
타닥!!
발을 내디딘 그가 하체를 회전시켰다.
휘릭!!
순간 그의 몸이 회전하며 작은 돌풍이 불었다.
뒤이어 그 회전력은 배트로 이어졌다.
부앙!!
작은 돌풍은 하나의 토네이도가 되어 홈플레이트 위를 휩쓸고 지나갔다.
딱!!
그리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이 호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젠장…….’
그리고 배트를 던지는 수호의 모습에 투수가 고개를 떨어뜨리는 게 눈에 보였다.
‘이것도 넘기냐…….’
절망한 호세의 시야에 우측 관중석을 넘어 그대로 경기장 밖으로 사라지는 타구가 보였다.
‘괴물 자식…….’
절망하는 호세와 달리 필리건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와아아아아아!!”
“장외 홈런이다!!”
-경이로운 파워입니다!! 한수호 선수가 라이벌 애런 저지에게 화답하는 53호 홈런을 장외 홈런으로 기록합니다!!
두 사람의 대결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