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10화
파이리츠와의 3차전.
두 번째 타석에서 안타로 출루에 성공한 수호가 1루 베이스에서 리드를 가져가자 관중들이 들썩였다.
“오~ 뛰려는 거 같은데?”
“이제 기록까지 몇 개나 남았지?”
“앞으로 4개!”
“피츠버그를 떠나기 전에 기록 달성하면 좋겠는데!”
“4개까지는 힘들지 않을까?”
“아~ 이거 내 눈으로 직접 못 보는 거잖아? 아쉽다.”
“차라리 다음 원정도 따라갈까?”
“티켓 구할 수 있으려나?”
40-40클럽.
메이저리그에서 이 기록이 나왔던 건 2006년 알폰소 소리아노가 마지막이었다.
팬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기록 달성을 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소수의 팬들은 수호의 원정경기도 따라다니고 있었다.
-한수호 선수가 주자로 나갈 때 이렇게 가슴이 뛰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기록 달성까지 몇 개 남지 않은 상태이기에 더욱 가슴이 뛰는 거 같습니다.
-피츠버그의 배터리 역시 이러한 부분을 알고 있기에 한수호 선수에 대한 견제를 심하게 하고 있네요.
그때 투수가 공을 뿌렸다.
퍽!
“볼.”
-초구는 높은 공이 들어갑니다. 한수호 선수가 뛸 거라 예상하고 던진 공으로 보입니다.
-맞습니다. 아무래도 공이 높게 들어오면 2루에 송구하는 게 편해지니까요. 하지만 한수호 선수는 뛰지 않았고 리얼무토 선수에게 오히려 유리한 볼카운트가 되었습니다.
타석에서 물러나 가볍게 배트를 돌린 리얼무토가 다시 들어오며 말했다.
“어제 한 방 맞고도 정신을 못 차린 거야? 지금 상대해야 하는 건 나일 텐데.”
“아니, 그게 아니라…….”
토니가 말을 더듬었다.
사실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리얼무토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젠장…… 그래도 저 녀석을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토니의 시선이 1루 베이스에 서 있는 수호에게 향했다.
긴장하기는커녕 1루수인 챈들러와 장난을 치는 모습이 신인이 맞나 싶기도 했다.
‘대기록을 앞둔 루키 맞아? 하…… 모르겠다. 일단 리얼무토와 승부에 집중해야지.’
괜히 수호에게 집중하다가 어제처럼 홈런을 얻어맞을 수도 있었다.
토니가 리얼무토에게 집중하며 사인을 보냈다.
‘몸쪽 꽉 차게 하나 보내주라고.’
‘오케이.’
사인을 교환한 투수가 세트포지션에서 수호를 노려봤다.
좌완이었기에 세트포지션 상황에서 바로 수호를 볼 수 있었기에 따로 견제를 하지 않아도 됐다.
수호가 달릴 기색이 없자 투수가 슬라이드 스텝을 내디뎠다.
그 순간.
타닥!!
수호가 달렸다.
성큼성큼 땅을 박찬 그가 순식간에 2루 베이스와 거리를 좁히더니 핏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베이스를 밟았다.
그리고 토니는 공을 던질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2루 베이스에 들어가는 수호를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보며 토니가 허탈한 표정으로 리얼무토에게 물었다.
“J.T, 당신이라면 저 녀석 잡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실전에서는 아직 붙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지.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번 시즌 저 녀석의 주루플레이는 레전드들과 비슷하다는 거야.”
“레전드들이요?”
“루 브록이나 리키 핸더슨 같은 대도들 말이야.”
“어후…….”
한숨이 절로 나오는 이름들에 토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수호 선수가 시즌 37번째 도루에 성공합니다!!
“한! 한! 한! 한!!”
그런 토니와 달리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 * *
파이리츠와의 3차전은 필리스의 승리로 돌아갔다.
수호는 이날 경기에서 2타수 1안타 1도루 1타점이란 성적을 올리면서 팀의 승리에 일조했다.
시즌 타율은 0.411이 되었지만, 여전히 4할 이상을 유지하는 상황.
7월이 끝나가는 시점에서도 4할을 유지하고 있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연하게도 언론에서도 이 부분을 거론했다.
[한수호가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4할! 과연 그는 테드 윌리엄스 이후 최초로 4할로 시즌을 끝내는 타자가 될 수 있을까?]
[현대야구에서 불가능할 거라 이야기하던 4할 타율에 도전하는 루키 한수호.]
[그가 2027년 걸어가는 길이 모두 역사가 되고 있다.]
수호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4차전을 앞두고 수호는 하퍼를 비롯해 몇몇 동료들과 함께 피츠버그의 한 레스토랑에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은 우리가 전세 냈으니 마음껏 먹어보자고!”
하퍼가 호기롭게 외쳤다.
하지만 리얼무토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음껏 먹자는 거치고는 치사한 거 아니야? 경기 전에 데려오다니 말이야.”
“응?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배부르게 먹으면 경기력에…….”
“하하하! 자자, 여기 안심스테이크가 정말 일품이야!”
말을 돌리는 하퍼를 보며 리얼무토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던 잭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설마 하퍼가 한 끼로 마무리하겠어? 오늘 경기에서도 이기면 한턱 더 내겠지.”
“아니! 그걸 왜 나만 내는데?!”
“네가 캡틴이잖아.”
“어흐흑…… 캡틴이라고 지갑만 털리는구나.”
눈물 흘리는 시늉을 하지만, 그게 장난이란 걸 아는 팀원들이 고개를 저었다.
“내 연기 별로였나?”
“차라리 캣 우먼에 나오던 할리베리의 연기가 더 나았을 거 같은데.”
“그게 뭡니까?”
수호의 질문에 리얼무토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나이가 들긴 했나 보다.”
“그러게.”
“아무리 그래도 할리베리를 모르네.”
그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스테이크가 나오기 시작했다.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보기만 하더라도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게 허기를 자극했다.
“자~ 먹자!”
하퍼의 말과 함께 칼질을 시작했다.
확실히 그가 자신했던 만큼 스테이크의 맛은 일품이었다.
절반쯤 먹어가던 와중에 하퍼가 수호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 한국에서 뭐 소송 중이라며?”
“예. 유튜브로 저한테 시비를 걸던 사람이 있어서요.”
“그래? 집에 돈이 많나?”
“그게 아니면 미국에 있으니 한국에서는 걸어도 된다고 생각한 거 아닐까?”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
“보라스가 대리해서 소송을 진행하는 건가?”
잭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한국 지부에서 현지 일을 처리하고 소송 자체는 본사에서 처리하고 있어요.”
“보라스라면 그 녀석 인생은 끝장났네.”
“그러게. 그 양반 괜히 악마의 에이전트가 아니지.”
“돈 뜯어내는 거 하나는 정말 지옥에 있더라도 찾아올 거 같은 양반이야.”
선배들의 말에 보라스에게 걸린 양기자가 얼마나 지옥을 맛볼지 얼핏 보이는 거 같았다.
그때 리얼무토가 말을 받았다.
“고소 시작했으면 초반부터 아예 확실히 진행하는 게 좋아.”
“맞아. 그쪽에서 봐달라고 애걸복걸해도 그냥 밀어붙여 버려. 어차피 나중에는 안면을 싹 바꿀 테니까.”
“그럴 생각입니다.”
“대답 한번 시원시원하네. 그래, 그래야 우리 팀의 슈퍼루키답지.”
하퍼가 칭찬을 쏟아내고 칼질을 이어나갔다.
오늘 그가 왜 이런 멤버로 식당을 따로 찾았는지 얼핏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내 소송 이야기를 들어서 조언도 해줄 겸 날 챙겨주려고 이런 멤버로 자리를 마련했구나.’
[딱 팀의 베테랑으로 꾸려졌네.]
[확실히 이런 자리를 괜히 마련할 필요는 없지.]
[경기 전에 식사 자리를 마련한 이유도 대충 보니 네 멘탈 좀 챙겨줄 생각이었네.]
[마음에 드는 녀석인데?]
레전드들의 말에 동의하면서 수호도 고기를 입에 가져갔다.
“맛있네요.”
“그치?”
자신의 말에 씩 웃는 하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뉴욕 양키 스타디움.
양키스는 홈에서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를 맞이했다.
7회 말.
두 팀이 팽팽한 경기를 이어가고 있을 때, 애런 저지가 타석으로 들어섰다.
-양키스의 상징이 된 선수, 애런 저지가 타석으로 들어섭니다.
-49홈런을 터뜨린 이후 3경기 연속 홈런을 추가하지 못한 애런 저지가 아홉수를 넘길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애런 저지는 여전히 49홈런에 막혀 있었다.
일명 아홉수라 불리는 상황이었다.
과거 60홈런에 도전하던 애런 저지는 59홈런에서 한참 정체되어 있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한 녀석이 나보다 빨리 50홈런에 올라섰단 말이지.’
가볍게 배트를 돌리고 타석에 선 그가 루틴을 하나하나 밟으며 타격 자세를 취했다.
‘루키시즌에 50홈런에 먼저 올라서다니 대단한 녀석이야. 끝을 알 수 없는 그 녀석과 마지막까지 승부하고 싶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승부욕일까?
애런 저지는 메이저리거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걸 이루었다.
이미 역사에 남을 계약을 이루면서 평생을 써도 쓰지 못할 돈도 얻었고 선수로서의 명성 역시 하늘을 찔렀다.
자연스레 매너리즘이 그를 옥죄여왔다.
더 이상 이룰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업적을 쌓을 일만 남은 그에게 도전자가 등장했다.
자신을 넘어서는 재능을 가진 선수일 수도 있다.
그동안 잠들어 있던 승부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승부를 계속하기 위해선 나도 녀석과 같은 위치에 올라서야겠지.’
애런 저지의 집중력이 올라갔다.
-사인을 교환한 투수가 공을 던집니다!
“흡!!”
쐐애애애액-!!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애런 저지의 몸쪽을 찔러왔다.
‘이렇게 잘 포장되어 배달되면…….’
그걸 본 애런 저지가 다리를 내디뎠다.
뒤이어 하체를 회전시키며 힘을 집중시켜 스윙을 이어나갔다.
‘잘 먹어줘야지!!’
딱!!
-때렸습니다!! 잘 맞은 타구가 중앙 펜스를 향해 날아갑니다!! 이번 타구는……!! 펜스를 넘어갑니다!! 메이저리그 두 번째이자 아메리칸리그에서 첫 번째로 50홈런 고지를 밟는 애런 저지!!
양키스 팬들의 환호를 듣던 애런 저지가 배트를 가볍게 던졌다.
‘자, 후반전을 시작해 보자고. 한수호!’
두 사람의 홈런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
* * *
애런 저지의 50홈런과 함께 양키스가 레드삭스를 누르고 승리를 챙겼다.
그리고 이 소식은 기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그들이 노리는 건 당연히 한수호였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홈런경쟁을 이어가고 있는 두 선수이니만큼 수호의 코멘트를 따고 싶은 기자들이었다.
훈련을 끝내고 수호가 클럽하우스에 들어서자 기자들이 빠르게 그를 쫓았다.
“애런 저지가 50홈런을 때려내면서 다시 공동 1위가 되었는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번 시즌 그와의 홈런경쟁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이라 보십니까?”
“벌써 7월이 끝나가는데. 올 시즌 배리 본즈의 기록을 넘을 수 있을 거라고 보시나요?”
질문들이 쏟아졌다.
수호는 잠시 생각하다 질문들에 대해 답을 이어나갔다.
“먼저 저지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홈런경쟁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저지도 그렇지만 저 역시 컨디션이 매우 좋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배리 본즈의 기록은…….”
수호가 말을 흐리자 기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리고 클럽하우스에 있는 다른 선수들 역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배리 본즈가 남긴 한 시즌 73홈런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깨지지 않을 불후의 기록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애초에 70홈런을 넘는 거 자체가 약물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어려울 거란 전망도 많았다.
실제 70홈런을 넘은 선수들이 모두 약물의 도움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선수들 역시 수호가 이번 시즌 70홈런을 넘을 수 있을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수호가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까지 온 이상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보고 싶네요.”
“그 말씀은 넘을 수 있을 거라 보신다는 겁니까?”
“부상이 없다면 가능할 거라 봅니다.”
기자들의 손이 빨라졌다.
선수 본인이 배리 본즈의 기록을 넘을 수 있을 거라고 발언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던 선수들 역시 환호를 보냈다.
“말 한번 잘했다!”
“우리 루키 말 잘한다!!”
“그래! 여기까지 왔으니 넘겨 버려야지!!”
“새로운 기록을 써버리자고!!”
동료들의 환호를 받으며 수호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날.
경기 시작 전부터 그의 발언은 기사화되어 모든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한수호, 배리 본즈의 73홈런을 넘기겠다 발언!!]
다소 과장되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