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07화
필리스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에이스 고든이 마운드에 오릅니다.
-올 시즌 14승 2패 평균자책점 1.88을 마크 중인 고든 선수는 세부지표에서도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탈삼진이 벌써 170개를 넘어서면서 올 시즌 커리어 두 번째 200탈삼진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FA를 앞두고 있는 시즌이니만큼 고든 본인에게도 큰 동기부여가 되는 거 같습니다.
올 시즌 고든의 질주는 사이영상 레이스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실제 전문가들은 내셔널리그의 사이영상 주인공이 고든 아니면 오타니가 될 것이란 의견을 내놓고 있었다.
그만큼 고든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1회부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나섰다.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조니 로버트를 4구 만에 돌려세우는 고든! 첫 타자부터 삼진으로 잡아내며 쾌조의 스타트를 보여줍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3구에 던진 포심 패스트볼이었습니다. 구속이 무려 99마일이나 찍히면서 컨디션이 좋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고 있어요.
-한창 더운 시기임에도 지친 기색을 전혀 보여주지 않네요.
고든의 질주는 계속됐다.
두 번째 타자인 하퍼를 상대로도 공격적인 피칭을 이어나갔다.
그 결과.
딱!!
-2구를 강타! 하지만 뻗지 못하는 타구 우익수가 거의 제자리에서 잡아냅니다. 투아웃!!
-커터성 무브먼트를 보여준 패스트볼에 배트의 중심에 제대로 맞추지 못했습니다.
타석에서 물러난 하퍼가 수호를 지나치며 말했다.
“저 녀석 공 생각보다 더 지저분해. 테일링이 심하니까, 그걸 염두에 두고 히팅 포인트를 정하는 게 좋을 거야.”
“오케이. 좋은 정보 고마워.”
테일링 패스트볼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무브먼트가 심하게 일어나는 공을 의미한다.
투수는 분명 포심의 그립을 잡고 던지지만, 타자나 제삼자가 보기에는 마치 투심이나 커터와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그런데 구속은 포심 패스트볼과 같으니 상당히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테일링이 심하다는 데이터는 있었지만, 실전에서는 더 심한가 본데.’
문제 될 건 없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들을 상대하다 보면 괴물 같은 공은 언제든지 마주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한수호 선수가 타석으로 들어섭니다!
-오늘 경기에서 가장 궁금한 건 파이리츠가 한수호 선수와 승부를 할 것인지네요.
-로키스는 철저하게 그를 피하는 승부를 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파이리츠의 선발투수가 에이스 고든이란 점에서 승부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파이리츠에서도 수호와 관련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수호의 최근 페이스를 생각하면 정면승부보다는 피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에이스를 믿지 못하면 경기를 어떻게 하겠어?’
파이리츠의 선택은 수호와의 승부였다.
-사인을 교환한 파이리츠 배터리, 고든 선수가 한수호 선수를 상대로 초구 던집니다!
와인드업에 이은 고든이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빠르게 날아든 공은 수호의 몸쪽을 찔러 들어왔다.
수호는 당연하게 그 공을 놓치지 않고 오픈 스탠스를 내디디며 배트를 돌렸다.
후웅!!
그의 배트가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는 순간.
휘릭!!
공의 급격하게 흔들리더니 배트의 헤드를 향해 궤적을 바꾸었다.
빠악-!
-때렸습니다! 하지만 타구는 파울라인을 벗어납니다!
“파울!”
파울이 된 타구에 수호는 잠시 배트를 바라보다 더그아웃으로 걸어갔다.
-한수호 선수가 더그아웃으로 걸어갑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배트를 교체하네요.
-아마도 배트가 부러진 거 같습니다.
수호의 배트는 끝부분이 갈라졌다.
분명 스윗스팟에 맞히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공의 테일링이 심해 헤드에 맞아버린 것이다.
“생각보다 공의 변화가 더 심한가 보군.”
리얼무토가 건넨 스틱을 받아 배트의 손잡이에 송진을 바르며 대답했다.
“상당히 지저분해요. 지금까지 상대했던 패스트볼 중에서는 최고 수준입니다.”
“음, 확실히 작년보다 테일링이 더 심해진 거 같군. 하지만 떨어지는 공에는 다소 약점을 가지고 있으니 참고하도록 해.”
“감사합니다.”
리얼무토의 짧은 조언을 듣고 수호가 다시 타석에 섰다.
떨어지는 공에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패스트볼이 저 지경이면 브레이킹볼에 타이밍을 맞추는 건 어렵겠어.’
[ㅇㅇ 괜히 브레이킹볼을 공략하려 했다가는 타이밍이 어긋나겠다.]
[패스트볼의 무브먼트에 익숙해지는 게 더 낫겠어.]
[마지막 순간에 변화가 일어나니 거기에 맞춰서 스윙에도 변화를 주면 될 거 같은데?]
레전드들의 말을 들으며 수호는 가볍게 배트를 돌렸다.
확실히 저 테일링 패스트볼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스윙에도 변화를 주어야 했다.
보통 선수라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스윙 메커니즘은 함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수호는 달랐다.
그의 몸속에는 레전드들의 스윙 메커니즘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장점을 모두 받아들인 상태였다.
‘여기에서는 행크 애런 선배님의 손목 컨트롤과 타이 콥 선배님의 컨택 능력을 더 중점적으로 활용하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수호는 그중에서 어떤 레전드의 능력을 더 중점적으로 활용할 것인지 조율하면 됐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게 더 어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수호 본인의 능력이 바로 저들의 능력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었기에 가능했다.
“후우…….”
-배트를 교체한 한수호 선수가 다시 타석에 섰습니다.
-초구, 테일링 무브먼트에 배트가 부러질 정도로 상당히 위력적인 공이었습니다. 변화도 상당히 심했고요.
-과연 그 공을 어떻게 대응하냐에 따라 오늘 경기의 향방이 결정되겠군요.
-맞습니다. 과연 한수호 선수가 그 공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2구가 기대됩니다.
고든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 공에 제대로 반응은 했지만, 변화는 따라오지 못했어.’
수호는 명실상부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의 타자였다.
그리고 자신 역시 최고의 투수였고 말이다.
‘이 승부는 내가 이긴다.’
초구에서 보여준 반응에서 자신감을 얻은 고든이 사인을 교환했다.
‘2구는 슬라이더로 반응을 보자.’
고개를 끄덕인 고든이 와인드업에 이어 2구를 던졌다.
“흡!!”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부메랑처럼 휘어져 존을 빠져나갔다.
뻐억-!!
“볼.”
-2구는 88마일의 슬라이더! 하지만 한수호 선수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최근 배드볼을 많이 때리긴 했지만, 수호의 선구안은 테드 윌리엄스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당연히 유인구의 목적을 가지고 던지는 공에 배트를 내밀 정도로 녹록하지 않았다.
‘역시 이 정도로는 안 되나. 그렇다면 정면승부로 부수는 방법밖에 없겠어.’
결정을 내린 포수가 사인을 보냈다.
‘바깥쪽 낮은 코스의 패스트볼. 한 번 더 녀석의 배트를 부러뜨리자고.’
‘오케이!’
사인을 받은 고든이 피처 플레이트를 밟았다.
-원볼 원스트라이크에서 사인을 교환한 고든이 3구를 던질 준비에 들어갑니다!
와인드업에 들어간 고든이 있는 힘껏 공을 뿌렸다.
그 역시 여기가 승부처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흡!!”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아웃코스 낮게 날아갔다.
정확히 존의 보더라인에 걸치는 공이었다.
그걸 확인한 수호가 발을 내디뎠다.
콰직!!
배터박스에서 홈플레이트에 가깝게 발을 내디뎌 단단하게 고정시킨 수호의 하체가 회전했다.
휘릭!!
하체의 회전력이 올라오자 골반을 돌려 상체로 옮겼다.
뒤이어 상체까지 회전시키며 팔을 돌리려는 찰나.
휘릭!!
공의 궤적이 변했다.
마치 동물의 꼬리처럼 보더라인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공의 궤적을 확인한 수호는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던 하체를 자유롭게 하면서 히팅 포인트를 옮겼다.
그리고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공에 히팅 포인트를 고정시켰다.
‘하체의 힘은 쓸 수 없지만…….’
행크 애런의 손목 컨트롤을 담아 배트를 돌려 도망치는 공에 스윗스팟을 정확히 가져갔다.
딱!!
스팟에 공이 적중하는 순간, 수호는 상체를 한 번 더 회전시키며 마지막 순간까지 배트에 힘을 보냈다.
‘그대로 넘겨 버리겠어!’
“흐압!!”
기합 소리와 함께 배트를 있는 힘껏 돌렸다.
-때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타구 우익수 키를 넘어 그대로 펜스를 넘겨 버립니다!! 한수호 선수가 에이스 고든을 상대로 선제 솔로 홈런을 작렬시킵니다!!
-엄청난 스윙입니다! 분명 하체가 빠지면서 제대로 힘을 실을 수 없었는데. 손목과 상체의 힘만으로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공을 홈런으로 만들어냈어요!!
-시즌 49번째 홈런을 작렬시키는 한수호 선수!! 애런 저지와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자신을 상대로 홈런을 만들어낸 수호를 바라보는 고든은 이를 악물었다.
‘그 공을 홈런으로 만들었다고?’
실투가 아니었다.
자신의 손을 떠난 공은 의도대로 날아갔다.
구속 역시 100마일이 찍혔을 정도였고 1회이니만큼 제대로 힘이 실린 공이었다.
그런데도 결과는 홈런이었다.
‘망할 자식……!’
수호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번 승부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절망하거나 분노하진 않았다.
오히려 가슴속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승부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타석에서 두고 보자.’
홈을 밟는 그를 보며 나 홀로 복수를 다짐하는 고든이었다.
* * *
[(속보)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한수호 선수가 1회 선제 솔로 홈런 작렬!
[(속보) 시즌 49번째 홈런을 기록한 한수호!]
수호의 홈런은 곧장 속보로 한국에 전달됐다.
애런 저지와 역대급 홈런레이스를 펼치고 있으니 그의 기사가 속보로 전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각종 커뮤니티 역시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여윽시 한수호!
-한수호 49호 홈런 ㅅㅅㅅㅅ
-애런 저지가 홈런 추가 못하니까 바로 쫓아가네.
-애런 저지가 홈런왕 될 거라고 했던 애들 어디 갔냐?
-양기자와 소송이 영향 갈 거라고 했던 놈들이 더 어이없었지 ㅋㅋ
-영향은 개뿔. 바로 홈런 때리죠?
-양기자 실드치던 애들 다 아닥중이네.
-이제야 좀 게시판이 클린해졌네.
수호가 때린 홈런은 국내에서 양기자의 이야기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만큼 애런 저지와의 홈런레이스는 한국 팬들의 절대적인 관심을 모으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애런 저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만드는 홈런을 1회부터 터뜨렸으니 당연히 양기자 같은 유튜버와의 소송에 관련된 이야기는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양기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젠장! 모든 게시판에서 나와 관련된 소송 이야기가 모두 사라졌잖아? 알바들 풀고 있어?”
“풀고는 있는데, 문제가 게시판 화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야구와 관련된 사이트는 물론이고 일반 커뮤니티에서도 수호의 홈런과 관련된 게시글로 도배되고 있어서 따라가질 못해.”
“알바 업체 측에서 추가 요금을 요구하는데?”
“뭐? 걔들 돈을 얼마나 주는데. 또 추가 요금이야?”
“지금 화력을 따라가려면 추가 요금이 필요하대.”
“젠장…… 어쩔 수 없지. 어떻게든 여론을 우리 쪽으로 돌려야 해! 당장 입금해 줘.”
“알았어.”
양기자 채널에 소속된 직원들은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한국인들은 냄비 근성이야. 홈런에 대해서 뜨겁게 달아올라도 금방 식겠지. 어떻게든 내 쪽으로 여론을 돌려야 해.’
이번 일의 중심에 있는 김태식은 초조해진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입술을 물어뜯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