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06화
오랜만에 홈을 떠나 원정에 나섰다.
원정지인 피츠버그에 도착한 수호는 호텔에 짐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음 날.
경기장에 도착한 그를 엄청난 숫자의 기자들이 맞이했다.
‘오늘따라 한국 기자들이 많은데.’
기자들의 숫자가 많은 거야 이제는 일상이나 다를 바 없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슈퍼스타가 되었기에 어디를 가더라도 기자들이 몰려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늘은 한국 기자들이 평소보다 많이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수호가 등장하자 마치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마이크를 들이댔다.
“한수호 선수! 최근 양기자라는 유튜버가 사과 영상을 올렸는데. 알고 계셨나요?”
“양기자의 영상에 따르면 한수호 선수가 그를 고소한 거라 하는데, 사실입니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들의 질문을 통해 대충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보라스가 일 처리를 잘하고 있나 보네요.’
[그러게. 너한테 연락 한번 안 오게 하다니. 중간에서 일 처리 잘하네.]
[그런데 걔도 참 이상하다. 왜 사과 영상 같은 걸 올린다냐?]
[쫄리는 거지 ㅋㅋ]
[보라스 정도면 상당히 거액을 고소했을 텐데. 당연한 거 아니냐?]
[채널 팔아도 충당하기 힘들 듯.]
레전드들의 채팅을 보던 수호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예. 에이전시가 저를 대신해서 고소를 진행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가 사과 영상을 올린 사실은 모르고 있었네요.”
“그의 영상에 따르면 형사고소가 아닌 민사소송을 걸었다는데 이유가 뭔가요?”
“제가 미국에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형사 사건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묻고 싶은 게 무엇이죠?”
“금액이 너무 과도하다는 여론이 있습니다. 산정한 피해 금액이 3,000만 달러이고 합의금으로는 1,000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하던데. 이 산정 금액은 어떻게 나온 겁니까?”
기자들의 질문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 새끼들은 피해를 입은 너한테 관심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자극적으로 만들려는 생각밖에 없네.]
[기자라는 놈들이 옛날부터 저랬지.]
[시대가 변해도 기자들은 변하질 않는구나.]
레전드들 역시 현역 시절 기자들에게 시달렸었다.
그렇기에 기자들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왜 말씀이 없으시죠?!”
기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수호가 입을 막 열려고 할 때였다.
“그런 질문은 선수가 아닌 저에게 물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는 스캇 보라스가 한 직원과 함께 서 있었다.
왜 저 사람이 여기에 있는 걸까?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보라스는 수호의 옆으로 오더니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기자님들이니 영어로 말씀드려도 이해하시겠죠?”
“물론입니다.”
“보라스 씨께서는 저희의 질문을 이해하셨나요?”
“예. 훌륭한 직원과 함께하고 있었기에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도록 하죠.”
기자들의 시선이 보라스에게 집중됐다.
그때 보라스와 함께 왔던 동양인 직원이 수호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여기는 보스가 맡으실 테니, 안으로 들어가셔도 됩니다.”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직원의 말에 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대략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으니 함께하도록 하죠.”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수호는 여직원과 함께 클럽하우스 안쪽으로 들어갔다.
카페 테라스에 자리를 잡은 뒤 여직원이 자기소개를 했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에서 일하고 있는 엘리스라고 해요. 교포라서 한국어가 가능하다 보니 한수호 선수를 서포트하게 되었어요.”
“그러시군요. 그런데 보라스가 여기에는 웬일입니까?”
“파이리츠의 에이스인 고든이 보라스의 고객이거든요. 올 시즌이 끝나고 FA로 풀릴 예정이라 그와 약속이 있어서 왔어요. 사실 어제의 일정이었고 오늘은 이미 LA로 돌아가셨어야 하지만, 한국에서 그 일이 터진 걸 보고 받고는 일정을 다 미루셨죠.”
“그 일이요?”
“네. 기자들이 와서 아시겠지만, 양기자라는 유튜버가 사과 영상을 올리면서 이쪽에서 요구한 조건을 모두 오픈했어요.”
앞에 놓인 생과일주스를 마시며 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자기 딴에는 영리한 행동이라 생각했겠군요.”
“네. 내용을 검토해 보니 정에 호소하는 내용이 많더군요. 무엇보다 자신의 상황이 이렇게 나쁘니 선처해 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어요.”
“흔히 하는 패턴이죠. 그걸 들어줄 생각은 없습니다.”
“하하!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때 보라스가 등장했다.
“후우…… 기자들이 꽤 끈질기군요. 조만간에 공식 보도 자료를 보내는 걸로 일단 돌려보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괜히 한국에서의 일로 골치 아프게 만들었네요.”
“한수호 선수가 사고를 친 게 아닌데 골치 아플 건 전혀 없습니다. 단지 요즘 1인 미디어가 활발해지면서 그들 역시 미디어의 힘을 사용해서 조금 까다로울 뿐이죠.”
수호도 동감하는 바였다.
최근 1인 미디어는 기존 언론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가지기도 했다.
그 힘을 지닌 이들이 자신들의 힘을 모를 리 없었다.
양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통해 자신에게 좋지 않은 여론을 만들고 있었다.
미디어가 가진 힘으로 말이다.
“이번 일과 관련해서 한국에서는 꾸준히 말이 나올 거 같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보라스의 조언에 수호도 동의했다.
“소송을 취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쪽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내버려 두세요. 법적으로 막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막는 게 좋겠지만,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으로 양기자는 자신의 죄를 스스로 입증했습니다. 오히려 증거 자료로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우리로서는 이득입니다.”
양기자의 행동은 스스로를 옭아매게 될 것이다.
“이번 일에 대해서 용서는 없습니다. 철저하게 그에게서 보상을 받게 해주세요.”
“믿고 맡겨주십시오.”
그냥 넘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 *
수호의 다짐과는 달리 언론에서는 계속 수호와 양기자에 대한 기사를 계속 쏟아냈다.
[유튜버를 고소한 한수호.]
[3,000만 달러의 피해 금액은 과연 어떻게 산정되었는가?]
[1,000만 달러 규모의 소송전에 휘말린 유튜버 양기자는 누구인가?]
[국내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해보았다! 과연 한수호 선수가 산정한 1,000만 달러의 피해 보상은 적절했나?]
좋은 먹잇감을 찾았다는 듯 기자들이 수호를 물고 늘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와 관련된 기사가 올라가면 조회 수가 수직상승 했다.
특히 이번에는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유튜버와 엮인 일이었다.
그것도 1,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산정되었다고 하니 거기에 반발을 가지는 이들도 있었다.
-한수호 돈독 올랐냐?
-자기 연봉의 10배를 소송 금액으로 거네 ㅋㅋ
-자기가 무슨 오타닌줄 아나 보네.
-오타니도 이 정도의 돈은 못 받겠다.
-이제 갓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애가 너무 자기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거 아님?
-도대체 이 금액이 어떻게 산정된 거야?
-이렇게 돈만 밝히는 거 봐서는 오래 못 가겠다.
물론 이런 의견에 반론을 제시하는 팬들도 있었다.
-한수호가 지금 어떤 선수인데, 아직도 이런 반응이냐?
-메이저리그 역사상 이런 선수가 있었을 거라 봄?
-그리고 피해자는 한수호가 가해자는 양기자 아님?
-양기자 두둔하는 놈들 뭐냐?
-실드 장난 아니게 치네.
-악플러들 옹호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
인터넷에서 여론전이 펼쳐졌다.
자신들이 맞다는 주장을 쏟아내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세웠다.
그리고 이런 일을 만들어낸 양기자 채널은 뒤에서 그 모습을 보며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야야, 포털사이트 기사에도 댓글 좀 달도록 해. 여기에서 여론이 밀리고 있잖아.”
“오케이, 알았어.”
김태식의 말에 채널의 운영진들이 텔레그램에 만든 비밀 채팅방에 공지를 올렸다.
[N사 기사에 화력지원 요청.]
[ok]
[알겠습니다.]
[곧 출발합니다.]
공지를 올리자마자 답변이 나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에 양기자에게 유리한 댓글들이 달렸다.
-천만 달러는 말도 안 되지.
-양기자도 사과했는데 그냥 넘어가야 한다고 봄.
-솔직히 한수호가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천만 달러냐?
하나둘 올라오던 댓글은 순식간에 양기자에게 유리한 댓글들로 도배되었다.
“좋았어. 다른 사이트들은 어때?”
“여론이 빡세기는 해도 지금 상황이면 나쁘지 않을 거 같아.”
“우리 쪽 알바들 게시글을 보고 의견 바꾸는 애들도 나오고 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여론전은 우리 쪽 승리로 갈 거 같은데?”
“좋아! 이대로 쭉 가자고.”
양기자 김태식이 미소를 지었다.
조금씩 여론전에서 승산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흐, 한수호 네가 아무리 난 놈이라 하더라도 결국 여론이 기울기 시작하면 부담을 느끼겠지.’
김태식이 노리는 건 여론전에서 밀린 한수호가 자신과 합의를 하는 것이었다.
‘천만 달러는 말도 안 되고 대충 몇천만 원 선에서 처리하면 최고지. 그리고 채널을 팔고 새로운 채널을 만들어서 활동하면 되는 거야.’
김태식은 이미 이후에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도 모두 계획에 두고 있었다.
사과 영상에서 흘렸던 눈물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이번 일을 어떻게 잘 넘기는지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있었다.
* * *
국내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수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 선발투수는 보라스 코퍼레이션의 고든이군.’
같은 에이전시를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면식은 없었다.
단지 고든이 얼마나 대단한 투수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시즌이 끝나고 3억 달러의 계약을 끌어내는 선수가 되지.’
장기 계약과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는 고든이다.
언제든지 100마일의 공을 던질 수 있고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97마일이 나올 정도로 뛰어났다.
거기에 칼날처럼 휘어져 나가는 슬라이더는 오타니의 것을 뛰어넘는단 평가를 받았다.
커브와 체인지업 역시 훌륭해서 플러스 등급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선수 시절 초기에 주로 던졌던 포크볼 역시 나쁘지 않았지만, 부상의 위험 때문에 자주 던지지는 않았다.
‘우완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지.’
작년 시즌에도 고든은 15승을 올리면서 팀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올 시즌은 벌써 14승을 거둔 상태였다.
작년의 성적을 뛰어넘는 게 이미 확정적인 상황.
‘오늘 경기에서 애런 저지는 홈런을 추가하지 못했다.’
49개의 홈런을 때려낸 저지는 50홈런 고지에 올라서지 못했다.
이제 기회는 수호에게 찾아온 상황.
만약 오늘 홈런을 추가한다면 애런 저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고 멀티홈런을 작렬시키면 애런 저지를 넘어서 50홈런 고지에 올라서게 된다.
[40홈런도 네가 먼저 올라섰지?]
‘예. 그랬죠.’
[그럼 50홈런도 먼저 올라서야 하는 거 아니냐?]
[ㅇㅈ]
[언제든지 일빠따가 최고지.]
레전드들의 말에 수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물론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이번 시즌 제일 먼저 50홈런 고지에 도전할 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