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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메이저리거-102화 (101/340)

회귀 후 메이저리거 102화

1회.

로키스의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수호는 타석에 들어선 타자의 데이터를 떠올리고는 사인을 보냈다.

‘바깥쪽 낮은 코스, 패스트볼.’

사인을 보내자 페인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마치 그걸 기다렸다는 듯 투구 자세에 들어간 뒤, 와인드업으로 이어졌다.

“흡!!”

쐐애애액-!!

뻐억!!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입니다. 구속은 94마일! 바깥쪽 낮은 코스에 제대로 꽂혔네요.

-구속도 좋았지만, 제구 역시 일품이었습니다. 타자에게서 가장 먼 곳을 정확히 찔렀어요.

좋은 공이었다.

수호도 같은 생각을 하며 2구에 대한 사인을 보냈다.

‘같은 코스로, 이번에는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로 가자고.’

페인터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망설임은 없었다.

와인드업에 이어 뿌린 공은 정확히 수호가 원하는 코스로 날아들었다.

마치 프리스비처럼 궤적을 그리며 날아드는 공에 타자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부웅!!

퍽!

“스윙! 스트라이크 투!”

-헛스윙입니다! 이번에는 슬라이더에 타자의 배트가 힘없이 허공을 가르네요!

-1구와 같은 코스로 들어오다가 밖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가 정말 좋았습니다!

2구까지 받아본 수호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오늘 컨디션이 좋은 거 같은데.’

[ㅇㅇ 망설임이 없네.]

[구위도 나쁘지 않고.]

[이런 공이면 상당히 때리기 힘들겠다.]

레전드들의 말대로였다.

그렇다면 생각을 길게 할 필요는 없었다.

‘낮은 코스, 패스트볼.’

사인을 보내자 페인터가 바로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액-!!

이전과 비교해도 분명히 강한 공이었다.

구속 구위 모든 게 상승했다.

그래서인지 제구가 살짝 부족했다.

요구했던 공보다 반개쯤은 아래로 들어왔다.

이대로 들어오면 볼이 된다.

그걸 눈치챘는지, 타자도 스윙할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공이 홈플레이트 위를 막 지나려는 타이밍.

그 순간 수호가 상체를 들어 구심의 시야를 방해했다.

보통 포수라면 어려웠을 터였다.

하지만 근육질에 190㎝가 넘는 수호였기에 가능한 자세였다.

촤앗-!!

뒤이어 공이 미트에 들어오는 순간, 상체를 다시 낮추며 동시에 손목을 돌려 포구 위치를 위로 올렸다.

결과적으로 구심이 눈으로 본 것은 미트의 위치밖에 없었다.

그걸 본 구심이 몸을 돌리며 주먹을 뻗었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아니, 이게 들어왔다고요?”

“들어왔어. 미트의 위치를 봐.”

“하…….”

구심의 말에 타자가 한숨을 내쉬더니 수호를 째려보고는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삼진입니다! 첫 타자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앤드류 페인터!

-다소 낮게 들어왔다고 생각했지만, 한수호 선수의 신들린 프레이밍으로 구심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합니다!

페인터 역시 정확히 볼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미트를 들어 스트라이크로 만들다니.’

다른 포수가 저런 걸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하네.’

그런 대단한 포수이기에 오늘 마음을 먹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던져주겠어. 하지만 결과가 나지 않으면…….’

수호의 사인대로 공을 던지기로.

그리고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다음부터는 자신의 마음대로 하기로 말이다.

* * *

딱!

-타구 높게 떠오릅니다! 중견수 거의 제자리에서 잡아내며 5회 역시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감합니다!

-앤드류 페인터 대단합니다! 오늘 경기 단 1개의 볼넷을 제외하고는 모든 타자를 범타로 돌려세우고 있습니다!

-올 시즌 보여준 투구 중 가장 빼어난 투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페인터의 호투가 이어졌다.

본인조차 놀랄 정도로 오늘 경기에서 투구가 편했다.

‘별로 고민을 하지 않고 던져서 그런 걸까?’

투수라고 해서 항상 포수가 리드해 주는 대로 던지는 건 아니었다.

투수 본인도 고민하고 타자에 대해 생각을 한 뒤 포수의 사인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그저 공 던지는 기계가 된 것처럼 수호가 리드해 주는 대로 공을 던질 뿐이었다.

그러니 오직 자신의 공에 대해서만 집중할 수 있었다.

‘제구나 구위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오히려 편하군. 분명 과거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그게 언제였을까?

벤치에 앉아 곰곰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딱!!

“와아아아아!!”

“때렸다!!”

그라운드에서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료들의 외침에 페인터의 시선이 그라운드로 향했다.

거기에는 리얼무토가 홈런을 때리고 배트를 던지고 있었다.

외야 쪽을 바라보자 담장을 넘어가는 타구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리얼무토와 처음 호흡을 맞췄을 때 그랬었지.’

자신이 메이저리그에 막 올라왔을 때.

리얼무토와 처음 호흡을 맞추었다.

메이저리그 데뷔라는 상황이 그의 시야를 좁게 만들었다.

가슴이 세차게 뛰었고 머리는 새하얗게 변했다.

그런 자신에게 리얼무토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나만 믿고 던져라. 책임은 내가 진다. 그 말을 듣고 내 공을 던질 수 있었다.’

리얼무토라는 슈퍼스타가 해준 한마디였기에 온전히 믿고 던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그를 무시하고 있었구나.’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필리스의 에이스가 되었다.

그사이 리얼무토는 나이가 들었고 새로운 루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자신 역시 그때의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칫…….’

고개를 저어 상념을 떨쳐낸 페인터는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동료들을 맞이했다.

“나이스 홈런, J.T!”

“고맙다.”

리얼무토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왜인지 모르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페인터였다.

* * *

리얼무토의 투런포로 점수는 단숨에 7 대 0으로 벌어졌다.

-필리스가 로키스를 상대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경기에서도 한수호 선수는 홈런을 추가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2경기 연속 멀티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수호를 상대로 로키스 역시 경계를 하는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공이 존을 벗어나는 것이었고 그나마 존으로 들어오는 공도 외곽에 떨어지는 것들이었다.

수호는 그것들을 받아쳐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절정의 타격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타석에서 이런 타격감이 폭발했다.

-6회 말, 한수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미 점수가 벌어진 상황이기에 로키스에서는 굳이 한수호 선수와의 승부를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해설위원의 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승부해 버려! 여기에서 분위기 반전을 노린다!’

수호와의 승부는 질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만약 여기에서 수호를 잡아낸다면 팀의 사기를 끌어 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기에 로키스의 벤치에서 그와의 승부를 선택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96마일의 패스트볼! 몸쪽을 강하게 찌릅니다!

-로키스가 한수호 선수와의 승부를 택한 거 같습니다!

초구를 지켜본 수호는 로키스의 의도를 간파했다.

‘상대를 해주겠다면 나 역시 피할 이유는 없지.’

수호가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곧 혼자만의 공간에 들어간 수호의 눈에 투수가 던지는 공이 보였다.

공의 궤적이 눈에 보이고 그 궤적에 맞춰 수호가 배트를 돌렸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집중력이 깨지며 저 멀리 날아가는 타구가 보였다.

휘릭!!

“빠던! 빠던! 빠던!!”

수호가 배트를 던지자 필리건들이 기다렸다는 듯 빠던 콜을 외쳤다.

필리스의 홈구장에서만 볼 수 있는 일종의 수호에 대한 응원이었다.

그리고 이 콜이 쏟아질 때면 항상 홈런이 나왔다.

-큼지막한 타구!! 타구가 좌측 담장을 넘어갑니다!! 시즌 46번째 홈런을 작렬시키는 한수호 선수!!

이번에도 어김없이 수호의 홈런이 작렬했다.

* * *

9회 초.

페인터는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스코어 11 대 0. 오늘 필리스는 로키스를 상대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투타의 밸런스가 이렇게까지 완벽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완벽한 경기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 선수가 있었죠. 앤드류 페인터가 노히터 조건을 충족한 상태로 마운드에 오릅니다.

앤드류 페인터.

필리스의 에이스지만, 올 시즌 성적은 그렇게까지 압도적이지 못했다.

실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필리스가 1위를 달릴 수 있었던 건 투수들보다 타선의 힘이라 말했다.

그만큼 필리스의 마운드는 이런저런 문제를 많이 보였다.

3선발인 잭 휠러가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만큼은 페인터가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93마일의 패스트볼이 미트에 꽂힙니다!

-100구가 넘으면서 구속이 다소 내려갔지만, 투구 템포는 여전히 빠릅니다!

-페인터 본인이 공에 대한 자신감이 넘친다는 의미겠죠!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페인터는 코스와 구종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있었다.

‘바깥쪽 체인지업.’

그저 수호가 사인을 보내면 곧장 투구에 들어갔다.

“흡!!”

쐐애애액-!!

딱!!

-때렸습니다! 하지만 3루수 정면! 브룩스가 맨손으로 공을 잡아 1루로 러닝 스로우!

쐐애애액!

뻑!!

“아웃!!”

-아웃입니다! 환상적인 수비로 에이스의 노히터를 지켜내는 브룩스!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2개.

평소였다면 긴장이 되거나 했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나만 믿고 던져라.’

캐처박스에 앉아 있는 수호를 보고 있으니 긴장이란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이게 고작 루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일까?’

마치 리얼무토가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거 같았다.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건 녀석을 믿는 거다.’

경기 전 가졌던 일말의 의심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를 믿고 던짐으로써 노히터라는 결과가 눈앞에 다가왔는데, 아직도 의심한다면 그거야말로 미친 것일 테다.

“후우…….”

심호흡을 뱉은 페인터가 상체를 숙이고 수호의 사인을 지켜봤다.

‘몸쪽 패스트볼.’

고개를 끄덕인 페인터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흡!!”

쐐애애액-!!

뻐어억!

“스트라이크!!”

노히터를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도 그의 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 * *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콜로라도 로키스를 상대로 11 대 0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번 경기에서 한수호 선수는 시즌 46번째 홈런을 작렬시키며 2위인 애런 저지와의 차이를 다시 2개로 늘렸습니다.]

[필리스의 에이스 앤드류 페인터가 커리어 첫 번째 노히터를 달성함과 동시에 시즌 첫 13탈삼진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번 경기 MVP로 뽑힌 앤드류 페인터는 인터뷰에서 한수호 선수를 거론하며 그를 믿고 던지니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공을 돌리는 겸손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앤드류 페인터의 인터뷰는 큰 화제가 되었다.

보통 에이스가 자신의 대기록을 달성하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수호에게 공을 돌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모습은 필리스 팬들에게 좋게 보였다.

-페인터가 이런 캐릭터였나?

-뭔가 어른스러워졌네.

-오늘 노히터 하면서 빠른 템포로 공 던지는 거 좋더라.

-한수호와 호흡도 좋은 거 같던데?

-이제야 우리 팀의 에이스답네!

-한수호도 잘했지만, 오늘 경기 MVP는 페인터가 맞는 듯.

의도했든 아니든 페인터의 가치가 높아진 경기였다.

수호 역시 메이저리그 홈런 전체 선두를 지켜내면서 데뷔 시즌 홈런왕을 향해 순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딱!!

-때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타구 중앙 펜스를 넘어갑니다!! 대형 홈런을 작렬하는 애런 저지!! 3연타석 홈런을 작렬시키며 메이저리그 전체 홈런 선두에 올라섭니다!!

아직 홈런경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애런 저지가 몰아치기로 단숨에 47번째 홈런 고지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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