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95화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마지막 경기.
1선발인 앤드류가 마운드에 올랐다.
-전반기 9승 5패를 거두면서 두 자릿수 승수에 실패한 앤드류가 후반기 첫 등판을 합니다. 그리고 파트너는…… 예상 밖으로 리얼무토가 아닌 한수호 선수가 마스크를 씁니다!
-그동안 앤드류 페인터와 호흡을 맞추었던 리얼무토인데요. 부상이라도 입은 걸까요?
-아직 공식 입장은 없고 리얼무토 본인도 4번 지명타자로 출전을 했기에 부상은 아닌 거 같습니다.
수호가 마스크를 쓰고 캐처박스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수호가 마스크를 써도 문제가 없잖아.”
“그렇긴 하지.”
“요즘 수호가 더 안정적인 거 같기도 해.”
“오늘 앤드류가 10승을 올리면 좋겠네.”
팀의 에이스인 앤드류 페인터가 10승을 올리지 못한 건 필리스 팬들에게 불편했다.
이미 다른 팀은 대부분의 에이스가 10승을 올린 상황이기에 더욱 그랬다.
승수가 과거처럼 중요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에이스이기에 기대하는 게 있었다.
‘드디어 수호와 호흡을 맞추는군.’
마운드 위에서 가볍게 공을 던지는 앤드류는 마음이 편했다.
자신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수호는 콤비를 거부했었다.
그 뒤로 이렇다 할 진정이 없는 상태로 시간이 흘렀다.
리얼무토에 대한 불만은 계속 있었지만, 다른 백업 포수와 호흡을 맞출 생각은 없었다.
수호가 아니라면 리얼무토가 팀 내 최고의 포수였으니 말이다.
‘오늘 10승을 올리겠어!’
수호와 호흡을 맞추던 잭은 벌써 11승을 거두었다.
지금 같은 페이스라면 자신을 넘어서 필리스 최다승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 수호와 호흡을 맞추게 되었으니 그런 고민은 사라졌다.
“흡!!”
쐐애애액-!!
뻐어억!!
연습 투구를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안정됐다.
미트에 공이 꽂히는 소리도 평소와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공이 묵직하게 꽂히는 것이 컨디션이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같은 컨디션이라면 사고를 칠 수 있겠군!’
앤드류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런 앤드류와 달리 수호는 냉정하게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확실히 공 자체만 놓고 보면 필리스에서 가장 뛰어난 투수네요.’
[ㅇㅇ 공의 회전이 다르네.]
[구속도 빠르고.]
[볼 끝이 마지막까지 살아서 들어온다.]
[전력투구가 아닌데도 잭보다 공의 위력이 좋다.]
앤드류 페인터의 평균 구속은 96마일이다.
최고 구속은 100마일까지 나오며 주 무기로 사용하는 건 포심과 커브볼이었다.
특히 커브를 다양하게 던지는 걸로 유명했다.
‘70마일 중반이 찍히는 슬로우 커브, 80마일 중반이 찍히는 슬러브, 거기에 슬로우 커브와 같은 궤적을 그리는 70마일 후반에서 80마일 초반의 파워커브까지.’
[커브의 마법사네.]
[그 정도면 커브 뷔페 아니냐?]
[뭔 커브를 그렇게 많이 던져?]
‘처음 그에게 야구를 가르쳐 준 선생님이 커브를 주로 알려줬대요. 다른 변화구도 던질 수 있는데, 본인의 손에 가장 잘 맞는 공이 커브라 하고요.’
[간혹 그런 애들이 있긴 하지.]
[레퍼토리가 많다는 건 좋은 거지.]
[단점도 있지만.]
‘구속에 차이를 주고 변화가 다르긴 하지만, 커브라는 점은 동일하니까요. 릴리스 포인트에서 눈치를 채기 좋습니다.’
커브는 운동 방향이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커브라는 걸 타자들이 알아차리기 좋았다.
만약 레퍼토리가 조금이라도 단조로워진다면 타자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상대 쪽에선 연구가 끝났을 테고.]
‘예. 한 팀의 에이스이니만큼 연구는 이미 끝났습니다.’
[네 역할이 중요하네.]
단점은 명확했지만, 그만큼 장점이 있는 투수였다.
그 장점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다른 에이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투수가 된다.
그걸 알기에 수호도 처음부터 집중력을 올렸다.
“플레이볼!!”
타자가 들어오고 구심의 외침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 * *
딱!!
-5구를 강타!! 타구 높게 떴습니다!
“마이! 마이!!”
2루수가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그의 백업을 오던 우익수가 멈춰서 2루수의 포구 장면을 지켜봤다.
퍽!
“아웃!”
“나이스 캐치!”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세 번째 아웃 카운트가 올라갑니다! 1회 안타 하나를 허용했지만, 후속 타자를 깔끔하게 잡아내면서 이닝을 마감하는 앤드류 페인터!
1회 세 명의 타자를 가볍게 돌려세운 앤드류가 마운드를 내려가다 수호를 불렀다.
“한! 오늘 내 공 어땠어?”
“괜찮았어. 그런데 7번째에 던진 공이 내 사인과는 반대로 들어오던데?”
“아아, 미안. 손에서 미끄러졌거든.”
“그래? 아직 손이 덜 풀렸나 보네. 그거 제외하고는 아주 좋았어.”
7번째 공은 두 번째 타자를 상대할 때 나왔다.
수호는 거기에서 몸쪽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파워커브를 요구했다.
하지만 앤드류가 던진 건 바깥쪽에서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파워커브였다.
그 공은 볼이 되었고 이후의 공에서 타자가 바로 안타를 만들어냈다.
‘어차피 수호가 요구한 공을 던졌더라도 볼이 됐을 테니까. 다를 게 뭐 있겠어?’
사실 손에서 빠진 게 아니었다.
몸쪽에서 떨어지는 커브를 던지기 싫었던 앤드류는 일부러 반대 투구를 했다.
‘첫 호흡인데 괜히 녀석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줄 필요는 없지.’
현재 팀에서 위상이 가장 높은 수호였다.
앞으로도 그와 계속 호흡을 맞출 터였는데, 괜히 처음부터 고개를 저을 필요가 없었다.
‘1년이라도 더 뛴 내가 넓은 마음으로 이끌어가야지.’
자신이 한 행동이 옳았다고 생각하며 앤드류가 더그아웃에 앉는 사이.
수호는 타격 장비를 챙겨 대기 타석으로 향했다.
‘바쁘다, 바빠.’
[ㅋㅋㅋ 포수가 제일 바쁘지.]
[그나저나 앤드류 저 녀석 7번째에 던진 공이 정말 실수였을까?]
‘글쎄요. 일단 말은 그렇다고 하니 믿어야겠죠.’
[그게 맞긴 하지.]
[하지만 반대 투구를 일부러 했다면 정말 병신짓 한 건데.]
‘동감입니다.’
수호의 볼 배합은 그 공 자체도 중요했지만, 이후를 생각해서 하는 것이었다.
7구를 몸쪽으로 요구했던 것도 공의 구속을 조금 더 빠르게 타자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이후에 바깥쪽으로 슬로우커브를 요구하면 타자의 감각과 실제 구속에 괴리가 생기면서 헛스윙이나 빗맞은 타구가 나올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반대 투구가 되면서 그러한 괴리감이 생기지 않음으로써 안타가 나왔다.
물론 수호는 8번째 공에서 슬로우커브가 아닌 패스트볼을 던져 허를 찔렀지만 말이다.
‘앤드류의 포심도 나쁘지 않지만, 구속이 빨라진 메이저리그에선 평범한 수준이에요.’
[ㅇㅇ 커브와 시너지가 발생하지 않으면 힘들지.]
[저 녀석 정도의 공이라면 지금 내가 타석에 서도 충분히 칠 수 있음.]
[난 바로 홈런으로 만들지.]
레전드들의 자신감 있는 채팅을 보며 미소를 지은 수호가 곁눈질로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앤드류를 바라봤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
약간의 불안감을 가진 채, 수호가 타석에 설 준비를 했다.
* * *
퍽!
“볼, 베이스 온 볼.”
-첫 타석에서 볼넷을 얻어내는 한수호 선수!
-투수가 한수호 선수와의 승부를 피하는 게 눈에 보이네요.
-그래도 무리하지 않고 볼넷을 얻어낸 한수호 선수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괜히 이럴 때 무리하게 스윙을 하다가 좋은 감을 잊어버리기 쉬우니까요.
1루에 출루한 수호가 보호장구를 벗는 사이 타석으로 브라이스 하퍼가 들어섰다.
-브라이스 하퍼가 타석에 섭니다.
-올 시즌 21개의 홈런을 때려낸 브라이스 하퍼, 한수호 선수의 뒤를 받쳐주며 타석에서 제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번 타석에서 장타 한 방이면 한수호 선수를 홈까지 불러들이기 충분합니다.
수호의 발이 빠르다는 건 이제 메이저리그에 정평이 나 있었다.
그렇기에 투수도 수호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수호의 리드가 길다. 견제 한번 해서 리드폭을 줄이게 해.’
‘오케이.’
브라이스 하퍼만 상대해도 까다로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수호의 존재는 그와의 승부에만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1구를 던지기 전에 투수는 1루에 견제구를 던져야 했다.
퍽!
“세이프.”
-1루에 견제구가 날아왔지만, 한수호 선수는 여유롭게 귀루합니다.
-아무리 봐도 한수호 선수는 루키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마치 십 년 이상을 뛴 베테랑처럼 베이스에서도 침착해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호 본인만 하더라도 40대까지 살았던 중년이었고 그의 몸 안에는 괴물들이 득실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초구를 던지기 전에 견제구부터 던지네.]
[아무래도 널 많이 신경 쓰나 보다.]
[이런 타이밍이면 한 번 더 허를 찌르겠는데.]
‘그렇겠죠?’
원래라면 초구부터 달릴까 생각했다.
실제 수호는 초구에 달리는 걸 즐겨 사용했다.
투수의 허를 찌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 데이터를 상대 역시 알고 있을 터였다.
‘1구는 아예 빼버리자.’
‘알았어.’
그 데이터를 이용해 1구를 아예 피치아웃으로 택했다.
사인을 확인한 브루어스의 더그아웃은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터를 봤을 때 수호가 성공시킨 27번의 도루 중 초구에 뛴 것이 17번이나 된다. 50퍼센트가 넘는 확률이니 피치아웃을 해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데이터 야구 시대.
답안지가 옆에 있는 것처럼 선수들의 모든 것이 데이터가 되어 적에게 알려졌다.
브루어스 역시 스몰마켓인 탓에 이런 데이터 야구에 진심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수호를 상대로 초구에 피치아웃을 하는 건 좋은 선택이란 걸 알았다.
“흡!!”
투수가 전력으로 공을 뿌리고.
브루어스의 감독 맥킨의 시선이 1루 베이스로 향했다.
“어?”
“응?”
옆에 있던 코치의 입에서도 맥킨과 같은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명 초구부터 달릴 거라 생각했던 수호는 베이스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피치아웃 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말이다.
퍽!!
“볼.”
-초구부터 피치아웃을 택한 브루어스 배터리! 하지만 한수호 선수는 뛰기는커녕 일찌감치 베이스로 귀루합니다!
-한수호 선수의 통찰력이 대단하네요! 자신이 초구에 뛰는 걸 브루어스가 알고 있을 거라 판단하고 아예 뛸 생각을 접었어요!
-덕분에 브라이스 하퍼는 꽁으로 볼을 하나 얻어냈습니다!
브루어스의 이런 선택을 지켜보던 필리스 관중들이 일제히 조롱을 쏟아냈다.
“푸하하하! 너희들 뭐 하냐?”
“스탠딩 코미디라도 찍는 거야?”
“너희들끼리 생쇼를 해라!!”
“이게 브루어스의 야구냐?”
“야야! 수호야, 쟤네들이 저렇게 원하는데 좀 뛰어라!”
필리건들의 엄청난 조롱에 투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만큼 이번 선택은 놀림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맥킨 감독 역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젠장…… 마치 우리의 생각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행동이군.’
뛰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차피 6 대 4 정도의 확률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수호가 산책하듯 귀루하는 건 피치아웃을 할 것임을 알고 하는 것과 같았다.
한마디로 이쪽의 작전이 완벽히 읽혔다는 소리다.
그것도 데뷔 첫해인 루키에게 말이다.
이것만큼 치욕은 없었다.
‘작전이고 나발이고 확실하게 녀석들을 잡아버려!!’
맥킨의 사인에 포수가 정신을 차리고 사인을 보냈다.
‘스트라이크를 하나 잡아서 만회하자.’
‘알았어.’
몸쪽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인 투수가 3구를 던지기 위해 슬라이드 스텝을 밟았다.
그 순간.
타닥!!
“뛰었어!!”
그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수호가 스타트를 걸었다.
‘젠장!’
투수가 할 수 있는 건 이를 악물고 공을 던지는 거였다.
쐐애애애액-!!
빠르게 날아온 공이 포수의 미트에 꽂혔을 때.
퍽!!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 포수가 2루로 공을 뿌리려다 이내 멈췄다.
촤아아아앗-!!
그런 그의 눈에 미끄러지듯 2루에 들어가는 수호가 보였다.
-도루 성공!! 피치아웃 이후 28번째 도루를 성공시키는 한수호 선수!!
-이야~ 이거 정말 멋진 도루였습니다! 초반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가져옵니다!!
홈런이 아니더라도 수호에게 농락당하는 브루어스 배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