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88화
차에 오르고 방송을 끈 수빈에게 물었다.
“아까 하던 거 뭐야?”
“별스타그램 라방! 나 팔로워 벌써 10만 명이나 됐다?”
“10만 명? 어떻게?”
“그냥 프로필에 오빠 동생이라고 적어두니까 사람들이 팔로우를 계속 누르더라고!”
“아…….”
“정말 우리 오빠 인기가 이렇게 높을 줄 누가 알았겠어~”
동생의 반응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던 수호에게 고모가 말했다.
“사실 너한테 전화하고 나서 수빈이랑 이야기를 했었는데. 아예 신경을 안 쓰더구나.”
“그랬어요?”
“당연하지! 내가 그런 애들한테 한 소리 듣는다고 신경이나 쓸 거 같아?”
자신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자 수빈이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나한테 시비 건 애들은 관종들이라서 그런 거야. 다른 애들이랑 얼마나 친한데! 거기다가 난 오빠 유명해져서 더 좋은데? 내 팔로워도 늘어나고 말이야! 히히!”
고모는 수빈이를 걱정했지만, 요즘 아이들인 수빈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MBTI가 ESTP였지.’
[그게 뭐냐?]
[요즘 MBTI 많이 떠들긴 하던데.]
[ESTP면 뭐 다름?]
‘그냥 성격이에요. 자신감이 넘치고 현실적이며 외향적인 애였죠. 그래서 상처를 받더라도 금방 훌훌 털어내기도 했어요. 거기에 꽁해서 마음속에 담아두는 타입도 아니었고요.’
[오우…….]
[인싸였네.]
[그런 성격이면 세상 살아가기 편하겠네.]
‘단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실 지금 상황이 수빈이한테는 더 좋을 수도 있겠네요.’
끊임없이 외부에서 자극을 주기에 수빈의 성격상 전생보다 지금의 삶이 더 좋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오빠! 나랑 동영상 하나 찍자!”
“동영상?”
“응! 간단히 별스타그램에 올릴 쇼츠 찍을 거야! 몇몇 어그로꾼들이 내가 진짜 오빠 동생 아니라고 어그로를 계속 끌고 있거든!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쳐내 줘야지!”
“아, 그래.”
동생이 즐겁다면야.
이 정도 부탁을 들어주는 건 어려울 것도 없었다.
수호는 수빈이에 대한 걱정을 덜어내며 그녀와 함께 동영상을 찍었다.
* * *
수빈이 올린 동영상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와! 벌써 조회 수가 백만을 넘었네!”
단 몇 시간 만에 백만 뷰를 넘으면서 단숨에 인기 급상승 1위를 찍었다.
‘역시 오빠가 SNS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니까 나한테 관심이 쏠리네!’
어린 나이임에도 수빈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수호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이, 수빈 역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수호가 모르는 사이 그녀 역시 성장한 것이었다.
“우와아아아!!”
“수호다!!”
“오늘도 한 방 날리자!!”
“이제 두 경기밖에 안 남았어!!”
그때 경기장이 들썩였다.
관중들이 모두 수호의 이름을 외치며 그의 활약을 기대했다.
“우와…… 이게 무슨 일이야?”
“몇 개월 전에 왔을 때랑은 완전히 달라졌는데요?”
고모와 고모부가 감탄하는 모습을 보며 수빈도 동의했다.
‘오빠 인기가 정말 장난 아니네.’
SNS는 아무래도 인기를 체감하기 힘들다.
팔로워가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온라인의 일이었다.
학교에서 체감한다고는 해도 친구들의 반응은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는 달랐다.
먼 미국 땅에서 수만 명의 관중이 일제히 오빠의 이름을 부르자 피부로 와닿았다.
오빠가 정말 대단한 선수가 되었다는 게 말이다.
‘나도 오빠한테 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지!’
수빈은 그런 수호를 보며 자신 역시 오빠 못지않은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선택한 게 SNS였다.
별스타그램을 통해 오빠의 후광을 받으며 성장할 거다.
그리고 미래에는 자신만의 장점을 살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갈 계획이었다.
‘지금은 오빠의 후광 좀 받을게!’
스마트폰을 꺼내 관중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카메라에 담으며 별스타그램에 올릴 새로운 릴즈를 제작에 들어간 그녀였다.
* * *
남은 경기는 단 2경기.
하지만 오늘도 투수의 집요한 견제가 이어졌다.
퍽!
“볼, 베이스 온 볼.”
-아~ 한수호 선수! 세 번째 타석도 볼넷으로 출루합니다.
-첫 번째 타석과 세 번째 타석 모두 볼넷으로 출루한 한수호 선수, 분명 출루율은 높아지고 있지만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늘 경기 세 번의 기회 중 두 번의 볼넷, 그리고 한 번은 중견수가 펜스에 부딪히며 타구를 잡아냈다.
홈런을 추가하지 못하던 수호에게 네 번째 기회가 찾아온 건 8회였다.
-8회 말, 두 번째 타자로 한수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경기에서 아직 안타를 기록하지 못한 한수호 선수. 과연 오클랜드가 이번에는 그와 승부를 걸어올지 궁금합니다.
-현재 스코어는 6점 차로 필리스가 이기고 있기에 오클랜드가 승부를 피할 이유는 굳이 없겠네요.
이미 승부는 기울었다.
더 이상 오클랜드가 수호와의 승부를 피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냥 승부해.’
감독의 오더에 고개를 끄덕인 오클랜드의 배터리가 수호와의 승부를 준비했다.
-사인을 교환하고 1구를 던집니다!
수호는 정신을 집중하고 투수의 공을 지켜봤다.
와인드업과 함께 뿌린 공이 몸쪽으로 빠르게 들어오며 그대로 존을 통과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몸쪽에 강한 패스트볼! 구심의 손이 올라갑니다!
-오클랜드가 한수호 선수의 허를 찌릅니다!
몸쪽 초구를 확인한 수호가 타석에서 물러나 가볍게 배트를 돌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승부를 보겠다는 소리군.’
[이 점수 차에 피할 이유는 없지.]
[너한테는 땡큐 아니냐?]
‘그렇죠.’
정리를 끝낸 수호가 다시 타석에 서며 정신을 집중시켰다.
“후우……!”
호흡을 뱉으며 정신을 집중하자 주위의 풍경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오늘 경기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일은 없었다.
그동안 투수들이 자신과의 승부를 피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집중력은 매우 높은 상태였고 투수의 움직임을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사인을 교환한 오클랜드 배터리가 과연 2구는 어떤 공을 던질지! 2구 던집니다!!
오클랜드의 배터리가 선택한 공은 몸쪽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커브였다.
몸쪽에 수호가 배트를 돌릴 것이라 예측하고 일부러 유인구를 던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부웅!!
공이 날아오자 수호가 배트를 돌렸다.
‘걸렸어!’
공의 궤적이 밑으로 뚝 떨어지면서 수호의 스윙을 피해갔다.
이대로 헛스윙과 함께 수호의 균형이 무너질 거라 생각했다.
그 순간.
휘릭!
상체를 뒤로 눕히며 수호가 스윙의 궤적을 바꿔 버렸다.
제대로 힘을 실을 수 없을 것 같은 스윙이었지만, 수호는 마지막 순간까지 손목 컨트롤을 유지하며 공을 저 멀리 날려 버렸다.
딱!!
-때렸습니다!! 높게 떠오른 타구! 좌익수 뒤로! 좌익수 뒤로!!
타구가 높게 떠오를수록 홈런이 될 확률은 낮아진다.
하지만 수호가 날려 보낸 타구는 떨어지지 않은 채, 계속 날아갔고 결국 좌익수는 워닝트랙에서 타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넘어갔습니다!! 시즌 39번째 홈런을 마지막 타석에서 작렬시키는 한수호 선수!! 대기록까지 단 1개의 홈런만을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시즌 39번째 홈런이 터졌다.
* * *
역사적인 전반기 40홈런이란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필라델피아는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였다.
“우리 세대에 이런 대기록을 보게 될 줄이야!”
“그것도 우리 필리스 선수가 이런 기록을 터뜨릴 줄 누가 알았겠어?!”
“수호와 연장 계약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당연히 해야지! 녀석을 놓치면 폭동이라도 일으키겠어!”
팬들은 벌써 연장 계약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유망한 선수들을 선점하기 위해 연장 계약을 맺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였다.
그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14년 3억4천만 불이라는 메가톤급 계약을 22살에 맺으며 메이저리그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었다.
그 뒤로 약물 복용이라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그에 대한 가치가 하락했지만, 현재까진 계약 자체는 성공적이란 평가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사례가 있기에 수호에 대한 연장 계약도 당연히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전반기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수호는 필리스의 한 남자와 면담을 가졌다.
“우리 필리스의 미래를 너무 늦게 만나게 되는군. 존 미들턴이라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구단주 존 미들턴.
그가 선수와 개인 면담을 가지는 건 브라이스 하퍼 정도밖에 없었다.
그만큼 수호의 입지가 팀 내에서 상승했다는 걸 말해주는 만남이었다.
“한수호입니다.”
담백한 인사와 함께 두 남자가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화의 주제는 별게 없었다.
그저 팀에서 불편한 점은 없느냐 운동은 힘들지 않느냐 같은 평상시의 대화였다.
상투적인 대화가 끝나고 존 미들턴이 본래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자네가 필리스 유니폼을 입고 앞으로도 함께했으면 하네.”
“제 가치를 인정해 주시면 제가 다른 유니폼을 입을 일은 없을 겁니다.”
수호의 당돌한 대답에 존 미들턴이 순간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련한 사업가답게 금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정답이지. 프로선수는 성적으로 말하고 구단은 거기에 맞는 금액을 지불해야지. 아주 좋은 대답이었어.”
“감사합니다.”
“오늘 경기에서도 좋은 활약 기대하겠네.”
“직접 오신 만큼 재미있는 장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인사와 함께 그가 나가자 돔브로스키가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드신 거 같습니다.”
“아주 마음에 들었어. 어린 나이지만 당돌한 게 왜 메이저리그 루키시즌에서 저런 활약을 하는지 알 수 있겠더군.”
“연장 계약을 하려면 만만치 않은 돈을 준비해야 할 거 같습니다.”
“메이저리그의 새 역사를 쓰고 있으니 그렇겠지. 게다가 보라스가 뒤에 있다면 연장 계약 자체가 힘들 수도 있어.”
“하긴…… 그는 연장 계약보단 FA를 선호하니까요.”
“그래도 가능성은 높여둘 필요가 있지. 저 친구 가족들이 지금 미국에 있다고?”
“예. 이틀 전에 미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올스타전을 위해서겠군. 티켓은 구해주었겠지?”
“물론입니다. VIP석을 어렵게 구해서 전달했습니다.”
“그럼 내 전용기를 하나 내줄 테니. 가족들과 함께 이동할 때 쓰라고 해.”
“알겠습니다.”
구단이 사용하는 전용기가 아닌 구단주의 전용기를 내주는 건 메이저리그에서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수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존 미들턴 구단주 역시 진심이란 소리였다.
“오늘 경기에서 꼭 기록을 달성하면 좋겠군.”
존의 말에 돔브로스키도 동의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올스타전을 앞둔 전반기 마지막 경기.
단 4번의 기회밖에 없는 수호가 기록 달성에 성공할지 궁금했다.
* * *
필라델피아가 멈췄다.
농담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멈추고 TV 앞에 앉아 필리스의 중계를 보고 있었다.
이날 필리스와 어슬레틱스의 경기는 월드시리즈를 뛰어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미 전역과 전 세계 야구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1회 초, 세 명의 타자를 가볍게 돌려세운 잭 휠러가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평소 잭 휠러와 호흡을 맞추는 한수호 선수지만, 오늘 경기에선 지명타자, 2번 타순으로 출전했습니다.
-아무래도 타격에만 집중하라는 매디슨 감독의 배려겠죠?
-그렇게 봐야 할 겁니다. 포수라는 포지션이 체력 소모가 심하기에 그런 부분을 배려한 걸로 보입니다.
수호 역시 매디슨 감독의 배려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그아웃에서부터 정신을 집중하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필리스의 공격은 1번 타자 조니 로버트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대기 타석에는 한수호 선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기 타석에 선 수호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하지만 수호는 그들의 응원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높은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늘 집중력 쩌네.]
[올 시즌 경기 중 최고 수준인데?]
[수비로 나가지 않아도 되니까, 처음부터 집중을 하는 거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하니까.]
전반기 40홈런.
이 기록이 수호의 선수 경력 중 다시 찾아올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기회가 왔을 때 잡았으면 하는 것이 레전드들의 바람이었다.
딱!!
-때렸습니다! 하지만 2루수 정면! 가볍게 잡아 1루로!
퍽!
“아웃!!”
-아웃입니다. 선두타자 로버트가 범타로 물러나며 타석에는 한수호 선수가 들어섭니다.
타석에 선 수호는 적막이 흐르는 공간에서 루틴에 맞춰 타격 자세를 취했다.
“후우…….”
그리고 호흡을 뱉음과 동시에 마운드에 있는 어슬레틱스의 선발투수 셸비를 바라봤다.
-사인을 교환한 어슬레틱스의 에이스 노아 셸비가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에이스라는 이름답게 그 역시 대결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역사에 희생양으로 남게 되더라도 싸움을 피할 생각은 없다.’
이곳은 메이저리그였다.
선수 한 명, 한 명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에이스는 더더욱 그러했다.
‘붙어보자고!’
“흡!!”
쐐애애애액-!!
셸비의 손을 떠난 공이 단숨에 바깥쪽 낮은 코스를 찔렀다.
딱!!
“파울!!”
-초구 파울입니다! 구속 97마일의 빠른 공에 반응했으나, 뒤 그물을 때립니다!
-셸비의 볼 끝이 상당히 좋습니다. 역시 이번 시즌 벌써 두 자릿수 승수를 챙긴 투수답습니다!
셸비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빠르게 투구를 이어나갔다.
퍽!
“볼.”
-2구는 떨어지는 커브! 하지만 한수호 선수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퍽!
“스트라이크!!”
-백도어 슬라이더에 구심의 손이 올라갑니다! 투스트라이크!
-셸비의 투구가 거침없습니다! 마치 쳐볼 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공을 던지고 있습니다!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아낸 어슬레틱스의 에이스 노아 셸비! 과연 그는 여기에서 어떤 선택을 할 건지! 4구 던집니다!!
와인드업에 이어 셸비의 손을 떠난 공이 바깥쪽을 찔러왔다.
이번에도 수호가 배트를 돌렸다.
후웅!!
그 순간 공의 궤적이 크게 변하며 수호의 몸쪽을 찔러왔다.
수호는 그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오픈 스탠스로 바꾸며 스윙의 궤적을 바꾸었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타구.
그리고 수호는 배트를 던졌다.
-배트를 던진 한수호 선수!! 그리고 타구는 좌측 담장을 향해 날아가 그대로 펜스를……!
역사적인 기록을 달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넘어갑니다!!!
전반기 40홈런.
누구도 밟지 못했던 그곳에 수호가 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