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86화
뉴스를 닫은 수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기록 달성이야 하고 싶지.”
[하지만 쉽진 않지 ㅋㅋ]
[이야~ 투수들의 견제가 장난 아니더라.]
[진짜 ㅋㅋ]
“승부를 하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볼넷으로 출루하는 것도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물론 알고 있습니다.”
조급함을 가지는 순간 타격 페이스가 깨질 거다.
지금의 좋은 감각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족들 초대 안 할 거냐?]
[첫 올스타전인데 미국으로 초대해야지.]
[이번에는 퍼스트클래스로 끊어드려라~]
“물론이죠. 그렇지 않아도 오늘 전화하려고 했습니다.”
한국의 시간을 확인한 수호가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은 대기음이 흐르고 곧 고모가 전화를 받았다.
-수호니?
“네, 고모. 잘 지내셨죠?”
-우리야 잘 지내고 있지! 그런데 이 시간에 웬일이야?
“다름이 아니라 7월 초에 미국에 한번 오시라고요.”
-미국? 하긴 수빈이가 바람 한번 쐬는 게 좋긴 하겠지.
“네? 수빈이요? 그게 무슨 소리세요?”
-응? 수빈이 때문에 미국에 오라고 했던 게 아니야?
“올스타전 때문에 오시라고 했던 건데. 수빈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아…… 이런 내가 괜한 소리를 했구나. 네가 신경 쓸까 봐 수빈이가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거 같은데.
“괜찮아요. 말씀해 주세요.”
수호의 단호한 말에 고모는 잠시 망설이다 한숨과 함께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은 반 친구들이랑 최근에 사이가 좋지 않은 거 같아. 얼마 전부터 유튜버인 양기자인지 뭔지 하는 양반이 너에 대해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
“양기자요?”
-응. 나도 얼마 전까지 몰랐단다. 뉴스 같은 곳에서도 나오지 않은데다가 고모랑 고모부는 모르는 유튜버라서…….
고모가 미안한 듯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요약하면 간단했다.
양기자라는 렉카 유튜버 한 명이 자신에 대해 루머 동영상을 찍었고 그걸 본 반 친구들이랑 수빈이가 싸웠다는 거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수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만간에 티켓 보내드릴게요. 미국에 와서 좀 쉬었다가 가세요.”
전화를 끊은 수호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감히 내 동생을…….”
차라리 자신을 건드렸다면 그냥 웃어 넘겼을 거다.
하지만 동생은 다르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다.
그런 동생을 건드렸다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수호는 이내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오~ 수호,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십니까?
상대는 다름 아닌 악마의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였다.
“보라스, 저를 위해 해주실 일이 생겼습니다.”
그와 계약한 이후 처음으로 부탁이란 말을 꺼냈다.
* * *
몇 시간 뒤.
보라스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동영상을 확인하고 내부적으로 법률적인 검토를 끝냈습니다.
“상당히 빠르군요.”
-한수호 선수의 부탁이니까요. 무엇보다 동영상 자체가 너무 저질이라서 길게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말씀은 가능하시다는 겁니까?”
-예, 가능합니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국에서 고소를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알아보니 한국에선 명예훼손도 형사 사건으로 처리가 되더군요. 저희 쪽 사람을 보내서 대리인 자격으로 사건을 진행하면 한수호 선수가 출석할 일은 없을 겁니다. 이후 민사소송까지 진행한다면 꽤 괴로운 일이 될 겁니다. 아, 물론 상대방에게요.
“미국에서 진행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일단 미국에서 명예훼손은 형사 사건이 아닙니다. 민사소송을 통해 실질적인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절차가 필요하죠. 그런 면에서 봤을 때 한국보다 더 까다롭습니다. 단, 실질적인 피해를 입증할 수 있다면 거기에 따른 보상금이 나오기에 금액은 천문학적인 수준이 될 겁니다.
“한마디로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진행할 수 있다는 거군요.”
-한수호 선수는 한국 국적이면서 미국에서 돈을 벌고 있으니까요. 그는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겁니다. 하하!!
스캇 보라스가 호탕하게 웃었다.
사실 수호는 한국에서의 형사, 민사 소송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가능하다면 굳이 한국에서 진행할 이유가 없었다.
소송의 나라로 불리는 미국에서의 소송이, 양기자라 불리는 그를 더 나락으로 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하도록 하죠. 비용이 얼마가 들든, 기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습니다. 양기자라는 그 유튜버를 처벌해 주세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한수호 선수는 이번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모든 건 저희 보라스 코퍼레이션에서 처리할 겁니다. 그저 야구에만 전념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 동생이 미국에 와서 지내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 부분도 곧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보라스는 무척이나 예의 바르게 수호를 대했다.
전화를 끊은 보라스에게 부하 직원이 다가왔다.
“보스, 누구의 전화인데 그렇게 예의를 갖춰서 받으십니까?”
“2020년대 최고의 상품이지.”
“……한수호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
“분명 최근 활약만 놓고 보면 확실히 대단한 선수죠. 하지만 그가 오타니와 비교할 수 있는 상품일까요?”
보라스는 평소 시대별 최고의 상품을 이야기했다.
2000년대에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였고 2010년대에는 오타니 쇼헤이였다.
그런 보라스가 2020년대 최고의 상품으로 한수호를 거론한다는 건 그를 두 사람과 동급의 위치에 두고 있다는 소리였다.
“오타니도 분명 좋은 선수지. 투웨이 플레이어로서 새로운 길을 개척했으니까.”
“예. 그렇기에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그의 상품성을 인정해 준 거죠.”
“정확해. 그래서 한수호가 더 가치가 있는 거지.”
“예?”
“한수호는 누군가 걸었던 길을 걷고 있어. 심지어 끝난 길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면서 나아가고 있지.”
“아…….”
“누구도 오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산을 다시 정복하고 그보다 높은 산에 올라가는 선수이기에 가치가 더 높은 거다.”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건 투웨이 플레이어로서 대단한 성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만약 하나의 포지션에서만 뛰었다면?
분명 특A급 선수는 될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엄청난 인기를 누리진 못했을 거다.
하지만 수호는 다르다.
역사상 누구도 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배리 본즈의 기록에 도전하고 그의 기록들을 깨고 있었다.
거기에 두 번 다시는 등장하지 않을 거라던 4할 타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역사에 쓰여 있는 이름들이 한수호로 인해 바뀌게 될 거야.”
보라스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니 이 한국의 유튜버를 어떻게 족칠 건지에 대해서 법률팀에 넘기도록 해. 한수호의 마음에 들 수 있게끔 최대한 지옥을 보여주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수호의 여동생이 미국에 와서 지낼 만한 학교와 환경 등에 대해서도 플랜을 제시해야 하니까, 준비하도록 하고.”
“예.”
선수의 마음을 어떻게 해야 잡을 수 있는지 잘 아는 보라스가 공격적으로 움직였다.
* * *
사람들의 관심은 더 이상 수호의 도핑 따위가 아니었다.
오직 수호가 전반기 40홈런 돌파가 가능할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한수호 선수가 세 번째 타석을 맞이합니다.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7경기가 남은 상황.
수호의 타석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앞서 첫 번째 타석에선 볼넷, 두 번째 타석에선 우익수의 슈퍼플레이에 2루타성 타구가 잡히면서 아쉽게 돌아섰습니다.
-최근 한수호 선수에 대한 견제가 심해지면서 제대로 된 공이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부분 결정구라 할 수 있는 것들이 바깥쪽으로 형성되고 있죠?
최근 수호를 상대하는 팀들은 스트라이크존의 바깥쪽을 철저하게 공략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건 수호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 됐다는 의미였다.
-한수호 선수가 때리는 장타의 대부분은 빠른 공, 코스는 몸쪽일 때 나왔습니다. 이 부분을 상대팀이 이제 분석을 끝냈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바깥쪽 공도 홈런으로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예. 하지만 비율이 낮습니다. 지금까지 때린 35개의 홈런들 중 몸쪽 공이 28개였고 나머지 7개가 바깥쪽에 형성된 공을 때려서 만들어낸 홈런이었습니다.
-확실히 몸쪽 공에 강했네요.
수호의 이미지는 스프레이 히터보다는 풀스윙 히터에 가까웠다.
그리고 데이터 역시 그러한 부분을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이런 부분은 상대 전력분석팀에게 빠르게 간파되었다.
이 부분을 빠르게 간파한 팀들도 있었고 조금 늦게 간파한 곳들도 있었다.
이제는 대부분의 팀들이 이런 부분을 간파하고 수호의 공략에 활약하고 있었다.
덕분에 수호의 홈런 페이스가 다시 늦어졌다.
-이렇게 페이스 늦어지면 전반기 40홈런 깨는 건 어렵지 않냐?
-그러게.
-한 번쯤 보고 싶었는데…….
-지금 성적도 충분히 잘 하고 있었지만, 아쉽긴 하네.
-이것도 메이저리그를 보는 이유기는 하지.
-뛰어난 선수가 등장하면 그 선수를 철저하게 분석해서 공략하는 재미가 있는 법이니까.
메이저리그는 세계 최고가 모이는 무대다.
당연히 그들을 서포트하는 이들도 세계 최고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전력분석팀은 새로운 선수들이 등장하면 최대한 빠르게 분석을 통해 약점을 찾아낸다.
그 약점을 공략하는 건 선수의 몫이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선수들 역시 메이저리그에서 뛸 정도의 최고였으니 말이다.
-과연 한수호 선수가 이런 메이저리그의 견제를 어떻게 부술 수 있을지! 사인을 교환한 투수 공을 던집니다!
투수들의 바깥쪽 승부는 수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내가 바깥쪽에 약한 이유는 테드 윌리엄스의 스윙을 중점적으로 썼기 때문이다.’
테드 윌리엄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유명한 극단적인 풀 히팅 스타일의 타자였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수비시프트가 최초로 생긴 것이 테드 윌리엄스를 잡아내기 위해 좌측을 비우고 우측에 모든 외야수를 포진시킨 게 처음일 정도였다.
그런 그의 스윙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수호의 스윙 메커니즘 역시 당겨치기에 중점을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배님들의 스윙이 내 몸속에 잠들어 있다.’
테드 윌리엄스 이후 베이브 루스, 루 게릭, 행크 애런 등.
다수의 선수들과 동기화를 이루며 스윙 메커니즘에도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그게 잘 드러나지 않은 건 수호 스스로가 테드 윌리엄스의 스윙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선배님들의 스윙 메커니즘을 더해서 조화시킬 수 있다면…….’
수호는 한 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건 바로 레전드들의 스윙 메커니즘을 하나로 만드는 거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모든 전설적인 기록을 깨기 위해서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필요했다.
‘일단 지금과 같은 견제를 이겨내야지.’
집중력을 끌어 올린 수호의 시선에 와인드업에 들어간 투수의 움직임이 보였다.
전력을 모은 투수가 있는 힘껏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공은 백도어성으로 바깥쪽 존을 찔러왔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좋은 공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수호는 예상했다는 듯 클로즈드 스탠스를 밟으며 히팅 포인트를 바깥으로 옮겼다.
그리고.
후웅!!
딱!!
-때렸습니다!! 잘 맞은 타구!! 한수호 선수는 배트를 던졌습니다!!
배트에 맞은 타구가 순식간에 뻗어 우측 펜스를 넘겼다.
-넘어갔습니다!! 시즌 36번째 홈런을 기록하는 한수호 선수!!
-상대팀의 견제를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밀어쳐서 홈런을 만들어내는 한수호 선수! 정말 엄청난 파워입니다!!
-유유히 마운드를 도는 한수호 선수가 2위 애런 저지를 다시 3개 차이로 따돌립니다!!
수호가 전반기 40홈런을 위해 다시 질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