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84화
“어떻게 할까요?”
파드리스의 더그아웃.
수석코치가 감독에게 물었다.
“뭘 어떻게 해? 만루니까 녀석을 고의사구로 내보내기라도 해?”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에서 녀석에게 장타라도 맞으면 점수 차는 더 벌어집니다. 홈런이라도 나오면 걷잡을 수 없고요.”
2점 차는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점수 차가 더 벌어지면 어려워진다.
수석코치는 그걸 말하고 있었다.
“그럼 잡으면 되겠네.”
“하지만…….”
“아직 루키다. 이런 순간에는 녀석도 긴장할 수밖에 없어. 무엇보다 이 많은 관중이 응원을 보내고 있는데. 제대로 스윙이 되겠어?”
“그건…….”
코치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선수에게 얼마나 부담되는지 말이다.
차라리 월드시리즈 9회 말 투아웃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서는 게 나을 것이다.
‘아닌가? 그게 더 빡셀 수도 있겠네.’
문득 어떤 게 더 힘들 것인지 고민하는 코치에게 감독이 이야기했다.
“아직 시즌 중반이고 수호 녀석이랑은 계속 붙어야 해. 지금 피하면 그 기회가 사라지는 거다. 그냥 붙여.”
“알겠습니다.”
감독의 결정이었다.
이 이상 이야기하는 건 무의미했다.
‘기록의 희생양이 되기 싫어서 도망치는 것도 말이 안 되지.’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걸 신경 쓰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파드리스의 감독 마크였다.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쓰면 제대로 경기를 할 수 있겠어?’
상남자다운 성향이 있는 마크의 결정을 파드리스의 두 번째 투수 모레노는 반겼다.
‘녀석을 잡아내면 내 이름값도 올라간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인 수호를 잡아내면 그만큼 자신의 가치는 상승한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데런은 그와의 승부가 욕심났다.
그런 점이 아니더라도 선수로서 수호와 한 번쯤 붙어보고 싶었다.
‘네가 대단한 선수라 해도 그건 아직 나와 승부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메이저리그라는 최고의 무대에서 뛰기에 선수들 대부분이 프라이드가 강한 편이었다.
상대가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그런 거에 일일이 겁먹어서는 메이저리그에서 뛰지 못할 테니 말이다.
“후우……!”
깊게 호흡을 뱉은 데런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어차피 주자 만루인 상황.
거기에 타석에는 수호가 있으니 홈스틸 같은 걸 노릴 선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전력을 다해야 수호와 상대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런 그의 판단은 옳았다.
“흡!!”
-1구 던집니다!
데런의 손을 떠난 공이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듀란의 파워커브와는 달리 느린 12/6 커브였다.
낙차가 크기에 정확한 타점을 잡기에 어려운 공.
그리고 그건 수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딱!!
-때렸습니다! 하지만 높게 떠오른 타구가 3루 쪽 관중석에 떨어집니다!
“파울!”
수호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듀란과 구속이 너무 차이나서 타이밍이 어긋났어.’
[ㅋㅋㅋ 거의 40㎞는 차이 나니까.]
[체감 속도로 따지면 더 되겠네.]
[어우…… 저런 걸 용케 때렸다.]
듀란의 패스트볼을 상대하다가 느린 커브를 때리려니 정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상태라면 패스트볼이 들어와도 타이밍을 맞추기 어렵다.’
커브의 타이밍도 그렇고 패스트볼 역시 어긋날 게 분명했다.
[천천히 해라.]
[ㅇㅇ 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음.]
[이번 타석 이후에도 또 한 번의 기회가 있다.]
[공격적인 건 좋지만, 일단 공을 많이 보는 게 중요할 듯.]
레전드들의 조언에 수호는 자신이 너무 급하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도 모르게 기록을 의식하면서 급해진 듯싶었다.
[너의 가장 큰 장점은 통찰력과 노림수다. 그런데 조급해지면 이런 장점들이 사라지게 되는 거야.]
로저 매리스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인 수호가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내 장점을 잊어버리지 말자.’
[그렇지.]
[언제든지 너의 타격을 해야 한다.]
레전드들의 응원을 받으며 다시 타석에 섰다.
더 이상 그에게서 조급함을 느낄 수 없었다.
퍽!
“볼.”
-2구 아웃코스에서 휘어서 밖으로 나가는 체인지업을 잘 참아내는 한수호 선수!
딱!
“파울!”
-3구는 파울입니다! 볼카운트가 몰리기 시작합니다!
퍽!
“볼.”
-폭포수 커브를 참아내는 한수호 선수!! 볼카운트는 투볼 투스트라이크가 됩니다!
-한수호 선수의 선구안이 정말 일품이네요. 볼카운트가 몰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게 인상적입니다.
-한수호 선수는 정말 장점이 많은 선수입니다.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어요!
단 하나의 홈런이면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된다.
누구라도 흥분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수호는 침착하게 자신의 스윙을 가져가고 있었다.
-파드리스가 볼넷을 택할 가능성도 있을까요?
-가능성이 제로는 아닐 겁니다. 2점 차는 분명 역전이 가능한 점수지만, 그 이상 벌어지면 어려울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파드리스의 마크 감독 성향상 고의사구보다는 승부를 가져갈 가능성이 큽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공격적인 감독으로 유명하죠.
-맞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투구를 봤을 때도 고의사구보다는 승부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여기에서 승부를 보자.’
데런이 직접 사인을 보냈다.
승부를 보겠다는 그의 사인에 포수의 시선이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중요한 시점이었기에 더그아웃의 허락이 필요했다.
마크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화끈하게 붙어봐!’
시즌 후반도 아니었기에 1패는 큰 의미가 없었다.
여기에서는 선수들의 자신감을 위해서라도 승부라는 카드를 선택하는 게 우선이었다.
최소한 마크는 그렇게 판단했다.
마크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볼 수 없었다.
야구는 선택의 연속이었으니까.
‘반드시 잡는다.’
그의 선택은 데런의 의욕을 불태웠다.
반드시 잡겠다는 일념으로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후우……!”
깊게 숨을 몰아쉰 데런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모든 힘을 집중시켜 결정적인 5구를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던졌습니다!!
데런의 손을 떠난 공이 수호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몸쪽이 강한 수호였기에 오히려 허를 찌른 것이다.
데런은 자신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오늘 최고의 공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칠 테면 쳐봐!!’
몸쪽을 찔러오는 공에 수호 역시 반응했다.
타닥!
오픈 스탠스를 밟으며 히팅 포인트를 만들어낸 수호가 하체를 회전시켰다.
‘기회가 왔을 때……!’
레전드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으라고.
그리고 지금 기회가 찾아왔다.
수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집중력을 동원했다.
‘잡아라!’
휘릭!!
그의 몸이 빠르게 회전하며 모든 힘을 배트에 집중시켰다.
그때 공의 궤적이 바뀌며 배트의 스윙 궤적에서 벗어났다.
예전이었다면 이 변화를 따라가질 못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행크 애런의 손목 컨트롤을 알고 있는 상황.
수호는 그의 과거를 봤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손목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미세하게 스윙의 궤적을 바꾸어 공의 변화를 따라갔다.
그 결과.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날아갔다.
-때렸습니다! 그리고 한수호 선수는……!
날아가는 타구를 잡던 카메라가 수호를 비추었다.
그는 배트를 던지지도 그렇다고 1루로 달리지도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 서서 날아가는 타구를 보고 있었다.
그의 두 눈동자에 담긴 타구가 중앙 펜스를 넘어가는 순간, 배트를 던지며 1루 베이스를 향해 뛰었다.
-넘어갔습니다!!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신기록을 세우는 한수호 선수!!
-배리 본즈의 57경기 30홈런을 넘어 31홈런을 달성하는 순간입니다!!
-야구의 신 베이브 루스의 63경기 30홈런 기록을 깬 배리 본즈의 57경기 30홈런을 넘어서 31홈런을 달성합니다!!
-이로써 메이저리그의 최단 경기 홈런 신기록에 홀로 이름을 올리게 된 한수호 선수입니다!!
배리 본즈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수호가 이제 홀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고맙다.]
[미션에 성공했습니다.]
루스의 감사를 받으며 1루 베이스를 돌던 수호가 주먹을 불끈 쥐어 하늘 높이 들었다.
“와아아아아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중들이 일제히 함성을 쏟아냈다.
* * *
3연타석 홈런.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단 경기 30홈런 돌파와 31홈런 달성.
배리 본즈를 넘어선 선수.
야구의 신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깬 또 한 명의 선수.
온갖 수식어가 달린 기사들이 속보로 전달됐다.
[한수호 선수의 활약으로 필리스는 파드리스를 잡아내고 1차전 승리를 가져갔다.]
경기는 당연하게도 필리스의 승리가 되었다.
이번 경기를 통해 뉴욕 메츠와 2경기 차이로 좁혀졌지만, 수호의 홈런 소식에 묻혔다.
그만큼 수호의 홈런은 엄청난 충격을 준 대사건이 되었다.
대중의 반응은 대단했다.
-얘는 무슨 연타석 홈런을 밥 먹듯이 때리냐?
-얼마 전에는 4연타석 때리더니 이번에는 또 3연타석.
-진짜 몰아치기 장난 아니네.
-4연타석 때리고 홈런 추가 못해서 슬럼프 왔나 싶었는데. 바로 3연타석으로 신기록 달성.
└그때도 도루 추가해서 20-20 달성함.
-진짜 얘는 역대급 재능이다.
-이제 19살인데. 앞으로 어떻게 클지 궁금하다.
수호의 홈런 기록에 팬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찬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얘 좀 수상하네.
-19살이 이렇게 홈런을 때린다고?
-약물 본즈를 깼다? 그럼 뭐다?
-이건 조사가 필요하다고 본다.
수호가 집중적으로 조명되자 본격적으로 그를 음해하는 의견들도 올라왔다.
대부분의 여론이 말도 안 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을 때.
하나의 소식이 전달됐다.
[메이저리그 사무관, 한수호 선수를 대상으로 긴급 약물 검사!]
[한수호 선수의 소변 샘플을 채취해 간 메이저리그 사무관!]
[경기 직후 대기하고 있던 메이저리그 사무관들이 한수호 선수의 소변 샘플을 받아가다.]
* * *
메이저리그는 도핑에 엄격했다.
과거 2000년대 미첼 리포트, 2010년대 바이오 제네시스 스캔들 등.
대형 사건들이 터지면서 도핑을 잡아내기 위해 불시에 검사가 이루어졌다.
시즌 도중에도 랜덤하게 선수를 결정하여 소변을 채취해 도핑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 과정은 선수와 구단 등, 어디에도 사전에 알려지지 않고 세 명의 검사관이 방문했다.
경기 전일 수도 있었고 후일 수도 있었다.
경기 후에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수호는 사무관들이 방문하는 모습을 그대로 언론에 노출해야 했다.
기자들은 당연히 이 모습을 그대로 기사화시켰다.
[도핑 검사를 위한 사무관들의 불시 검문에 당황한 한수호?]
[한수호는 과연 도핑 검사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
[한수호는 왜 당황했나?!]
이름이 없는 언론들에서는 미끼형 기사를 내놓았다.
어떻게든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문제는 언론에서만 이런 기사가 나오는 게 아니란 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세상의 모든 핫한 소식을 전해드리는 핫한 뉴스의 양기자입니다. 오늘 전해드릴 소식!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수호 선수가 약물 검사를 받았다는 겁니다!]
일명 렉카라고 불리는 유튜버들 역시 그의 소식을 전했다.
문제는 그들은 언론처럼 절제된 기사를 내놓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2000년대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홈런왕 배리 본즈의 단일시즌 최단 경기 홈런 기록을 넘어선 한수호 선수, 과연 그가 약물 검사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도핑에 엄격한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과연 아무런 이유없이 그를 검사했을까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라는 말이 떠오르는 기사네요! 이 소식 앞으로 저 양기자가 빠르게 업데이트 해드리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알림 설정까지! 잊지 마세요~]
마치 수호가 도핑을 했다는 듯이 여론을 몰고 가는 그들이었다.
그들의 유튜브에는 이런 의견에 동조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양기자가 대박 하나 물어왔구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가 없지.
-메이저리그가 어떤 곳인데. 괜히 약물 검사 했겠어?
-어쩐지 수상하더라.
-19살에 배리 본즈를 넘어선다? 내추럴이 가능할 거라 보냐?
-동양인은 타고났을 때부터 서양인을 이길 수 없다. 그게 팩트임.
-조만간 확정 기사 나올 듯.
-이미 확정이나 다를 바 없지.
그러나 이런 내용들을 모두 잠재울 기사가 곧 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 이례적으로 한수호 선수에 대한 검사에서 아무런 약물이 검출되지 않았음을 발표.]
워낙 뜨거운 관심을 받는 수호였기에 사무국이 직접 결과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