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81화
베이브 루스가 건 미션의 보상은 역대 최고였다.
그만큼 루스는 이번 기록을 깨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만큼 배리 본즈가 선배님의 기록을 깬 것이 싫으신가 보네요.”
[정말 싫다. 너라면 네가 평생을 바친 일의 기록을 누군가가 부정적인 방법으로 깼다면 좋겠냐?]
“싫죠.”
바로 이해됐다.
그렇기에 루스의 미션을 어떻게든 이뤄주고 싶었다.
“문제는 제가 그 기록을 깨기 위해서는 투수가 승부를 걸어줘야 한다는 거네요.”
[그렇지.]
[쉬운 일은 아닐 거다.]
[기회도 단 한 경기밖에 없고.]
내일 있을 경기가 이번 시즌 57번째 경기다.
두 개의 홈런을 추가하지 못한다면 기록 달성은 내년으로 미루어진다.
내년에도 개막 이후 이런 페이스로 홈런을 수집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게 최우선이었다.
[너 지금 동기화 얼마나 됐냐?]
“동기화.”
루스의 질문에 동기화 목록을 소환했다.
[동기화]
[요기 베라 : 11퍼센트]
[테드 윌리엄스 : 12퍼센트]
[빌리 해밀턴 : 9퍼센트]
[루 브록 : 9퍼센트]
[베이브루스 : 12퍼센트]
[루 게릭 : 7퍼센트]
그동안 동기화 목록은 꾸준히 상승시키고 있었다.
올 시즌 그의 활약은 레전드들의 과거를 보고 그들의 기술을 배울 수 있었기에 이룰 수 있었다.
“매리스 선배님.”
[응?]
“선배님은 61홈런을 넘으실 때 어떠셨나요?”
[왜 갑자기 매리스에게 묻냐?]
[그러게. 차라리 루스한테 물어보지.]
“루스 선배님은 전인미답의 고지를 밟으신 거잖아요. 지금 제 상황은 이미 있는 기록을 넘는 것이기 때문에 로저 매리스 선배님의 경우가 더 맞는 거 같습니다.”
[듣고 보니 그렇네.]
[ㅇㅇ 매리스가 더 맞는 듯.]
[너 그때 진짜 죽을 맛 아니었냐?]
[어우…… 말도 마십시오. 진짜 팬들이 얼마나 욕을 해댔는지. 심지어 커미셔너는 제 기록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잖습니까?]
[ㅋㅋㅋ 그거 진짜 웃겼지.]
당시 커미셔너였던 포드 크리스토퍼 프릭은 매리스를 깎아내리기 위해 베이브 루스가 뛰었던 당시 경기 수인 154경기 이내에 기록을 경신해야 인정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실제로 기네스북을 비롯한 여러 기록 책에 그의 기록 옆에 별표가 붙는 일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러한 표식은 모두 사라졌고 애런 저지가 기록을 경신하기 이전까지는 약물 복용을 하지 않은 선수들 중 최다 홈런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매리스의 기록을 보려고?]
“예.”
[그럼 매리스랑 얘 것도 봐야지.]
“물론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행크 애런 선배님.”
[응? 내 것도 보려고?]
“물론이죠. 레코드 브레이커의 원조 격 아니십니까?”
[챙겨주니 고맙네. 그런데 충격이 좀 심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
[애런의 과거는 좀 심하긴 했지.]
[요즘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시대였으니까.]
“예, 각오는 했습니다.”
[그럼 확인해 봐.]
허락이 떨어지자 수호는 먼저 로저 매리스와 빙의를 택했다.
* * *
잔디가 깔리지 않은 양키 스타디움.
그곳에 한 선수가 들어섰다.
양키스의 상징과 같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은 푸른 눈의 선수가 타석에 서자 예상치 못한 반응이 일어났다.
“우우우우우-!!”
홈팀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더 놀라운 건 야유하는 관중들이 양키스를 응원하는 이들이란 점이었다.
“네가 감히 베이브의 기록을 깨려고?!”
“너가 기록 경신하고 싶어서 맨틀을 부상 입힌 거지?!”
“캔자스 촌놈 주제에 어디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베이브의 기록을 깨려는 거야?!”
“캔자스로 꺼져 버려!!”
팬들의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그들에게 베이브 루스는 신이었고 그의 기록을 깰 수 있는 건 양키스 소속의 선수였다.
그래서 순혈이라 할 수 있는 미키 맨틀이 기록을 깨기를 바랐다.
하지만 미키 맨틀이 부상으로 중간에 이탈하고 트레이드로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매리스가 기록에 도전하자 엄청난 야유를 쏟아냈다.
‘이 정도의 분위기라니…….’
현대야구에서 야유가 심하다고 알려진 필라델피아조차 지금의 야유에 비하면 어린아이들 싸움에 불과했다.
그만큼 팬들의 야유는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놀라운 건 이런 상황에서도 타석에 선 매리스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베이브의 기록을 넘어서고 싶다.’
그의 생각이 자연스레 흘러들어 왔다.
161 게임.
올 시즌 마지막 경기의 두 번째 타석에 선 매리스의 집중력이 점점 높아졌다.
주위의 야유는 더 이상 그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고 시선은 오직 투수의 손에 들린 공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흡!!”
사인을 교환한 투수가 트레이스 스탈라드가 공을 뿌렸다.
그리고 매리스는 그 공을 놓치지 않고 배트를 돌렸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빠르게 날아가 그대로 펜스를 넘겼다.
역사적인 61번째 홈런이자 단일시즌 최다 홈런이 갱신되는 순간이었다.
엄청난 환호가 쏟아져야 했지만, 매리스에게 쏟아지는 건 팬들의 야유였다.
“우우우우우-!!”
“우리는 인정하지 못해!!”
“꺼져라!!”
팬들의 야유를 받으면서 묵묵하게 그라운드를 도는 매리스의 모습이 쓸쓸하게 보였다.
* * *
행크 애런의 기록까지 본 수호는 처음으로 구토감이 몰려왔다.
결국 참지 못하고 그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우웨에엑!!”
시원하게 구토를 한 뒤에야 지금의 기분을 떨쳐낼 수 있었다.
[충격이 심했나 보네.]
[매리스까지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애런의 경험은 충격받을 만하지 ㅋㅋ]
[기록 하나 깨려고 하니까 살해 협박까지 받았으니.]
[거기에 인종차별이 좀 심했나.]
[그때 우리가 좀 심하긴 했지.]
레전드들이 뛰던 시대는 인종차별이 심했었다.
지금이야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비일비재했었고 행크 애런은 살해 협박까지 받았을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었다.
그럼에도 대기록을 작성했다는 건 행크 애런의 정신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간접적으로나마 그걸 경험했다.
직접 경험했다고 표현하지 않은 건 단시간밖에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크 애런은 선수 커리어의 대부분을 그런 차별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일부를 경험했다고 직접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괜찮냐?]
[충격이 심한 거 같은데?]
[좀 어떰?]
“사실 제 예상보다 심했기에 충격은 큽니다. 하지만 경기력에 영향이 갈 거 같지는 않아요.”
[그럼 다행이네.]
[중요한 경기 앞두고 괜히 충격받았을까 봐 걱정했네.]
[내가 기록을 달성했던 경기는 당시 내게도 많은 충격이었다. 그걸 견뎌낼 수 있었던 건 클레어 씨가 내게 응원을 보내준 게 결정적이었지.]
[너 그때 인터뷰에선 아무렇지 않다고 했잖아?]
[립서비스지. 나도 사람인데.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어?]
행크 애런이 웃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지금이야 과거의 일이니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정신병이 올 정도로 심각했었다.
가족과 동료들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지, 혼자였다면 그러지 못했을 거다.
“선배님들의 과거를 봐서 그런지 마음이 좀 편안해지네요.”
[ㅋㅋ 그러냐?]
[그럼 다행이지.]
기록 달성은 작은 이벤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레전드들을 위해, 그리고 베이브 루스를 위해 반드시 이루고 싶었다.
* * *
다음 날.
필리스의 홈구장 시티즌스 뱅크 파크는 만원 관중으로 가득 찼다.
심지어 경기장 밖에도 사람이 넘쳐흘렀다.
거기에 필라델피아 시내의 펍과 식당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 찼다.
TV에는 일찌감치 필리스의 중계가 틀어져 있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홈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맞이합니다!
2020년대에 들어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전력을 상승시킨 파드리스는 단숨에 인기 구단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2025년 이후 잠시 휴식기를 가지면서 선수 영입보다는 유망주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치세를 비롯해 여러 요인이 맞물린 결과였다.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등장했다.
오늘 경기 선발로 나올 투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오늘 경기 파드리스의 선발투수는 작년 돌풍을 일으켰던 100마일의 사나이죠? 조시 듀란입니다.
-작년 정규 이닝을 채운 투수들 중 가장 빠른 평균 구속인 100마일을 기록한 조시 듀란은 앞으로가 기대되는 투수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100마일을 던지는 투수는 많아졌다.
하지만 평균 구속이 100마일인 선발투수는 조시 듀란이 유일했다.
그의 최고 구속은 105마일로 과거 마무리투수로 메이저리그를 폭격했던 쿠바산 미사일 아롤디스 채프먼과 같았다.
더 무서운 건 조시 듀란이 이런 공을 던지면서도 BB/9이 2.6개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가 작년 시즌 29게임에 출전한 걸 감안하면 제구력을 증명했다는 소리다.
-올 시즌은 작년보다 더 빨라져 평균 구속 100.3마일을 기록하고 있는 조시 듀란, 과연 이 광속구 투수를 필리스 타선이 어떻게 상대할 건지 기대됩니다.
필리스 타선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과연 수호가 조시 듀란을 공략할 수 있느냐였다.
-오늘 경기에서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 건 역시 한수호 선수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애런 저지는 오늘 경기에서 4타수 1안타를 기록했지만, 홈런을 추가하지 못하면서 배리 본즈의 최단 경기 30홈런 기록 도전에 실패했습니다.
-만약 한수호 선수가 오늘 경기에서 2개의 홈런을 때려내면 배리 본즈와 동률이 되면서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몰아치기에 능한 한수호 선수니 3개의 홈런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올 시즌 벌써 3연타석 홈런과 4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한수호 선수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 시즌 30개 팀에서 3연타석, 4연타석 홈런을 때린 선수는 수호가 유일했다.
그래서 수호에게 거는 기대가 더 컸다.
그라면 충분히 배리 본즈를 넘어설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 경기에서 3연타석 홈런을 달성한다면 이번 시즌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홈런 선두에 올라서게 됩니다.
3개의 홈런을 기록하게 되면 수호는 31개를 달성하게 되면서 메이저리그 홈런 선두에 올라서게 된다.
-한수호 선수 개인에게는 많은 것이 걸린 경기입니다! 과연 그가 어떤 기록을 남길지! 경기 시작합니다!!
* * *
경기가 시작됐다.
첫 타자인 조니 로버트를 상대로 조시 듀란은 자신의 특기인 광속구를 뿌려댔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조시 듀란의 공이 불을 뿜습니다!! 100마일의 광속구가 몸쪽에 꽂히면서 구심의 손이 올라갑니다!
-조시 듀란의 공은 구속도 구속이지만, 무브먼트가 정말 환상적입니다. 우타자 기준 몸쪽으로 파고드는 무브먼트를 보여주니 중심에 맞추는 게 어렵습니다.
조시 듀란의 패스트볼 무브먼트를 직접 본 수호는 인상을 찡그렸다.
‘생각보다 무브먼트가 심한데요.’
[ㅇㅇ 단순히 수평 무브먼트가 심한 게 아니네.]
[미세하게나마 수직으로도 움직인다.]
[내추럴 무브먼트라서 노리고 던지는 건 아닌 듯?]
[투수도 어떤 무브먼트가 일어날지 모르니 타자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겠네.]
[저건 같은 패스트볼이어도 매번 다른 공이라고 생각해야겠네.]
‘제 생각도 같습니다. 저 변화에 대응하려면 손목의 힘이 가장 중요할 거 같네요.’
[애런과 동기화했던 게 정답이네.]
[손목 힘이 늘어난 건 아니겠지만, 손목을 컨트롤하는 감각은 익혔을 테니까.]
[내가 손목 하나만큼은 쩔지.]
행크 애런은 홈런을 양산하던 선수가 아니다.
30~40개의 홈런을 꾸준히 때려내며 커리어 내내 그러한 기록을 유지했다.
그 결과 메이저리그 최다 홈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그가 그런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손목의 강인함에 있었다.
그리고 그 손목을 컨트롤하는 방법이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인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수호는 바로 그런 애런의 컨트롤을 배웠다.
뻐어어억-!!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삼구삼진입니다!! 마지막 결정구는 102마일의 빠른 패스트볼! 한수호 선수에 이어 가장 높은 타율과 출루율을 유지하고 있는 조니 로버트가 허무하게 물러납니다!
로버트가 삼진으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