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70화
필리스 대 카디널스.
한국에서는 두 팀의 대결을 한국의 슈퍼스타와 슈퍼루키의 대결로 관심이 높았다.
반면 미국에서는 두 팀의 대결을 각 지구의 2위 팀들끼리의 대결로 보고 있었다.
-카디널스가 오늘 경기에서 이긴다면 중부지구 1위로 오르게 됩니다.
-카디널스 입장에서는 이번 시즌 처음으로 1위를 노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무엇보다 이성훈 선수는 오늘 경기에서 안타를 기록하면 7경기 안타를 이어나가게 됩니다.
-필리스 입장에서도 오늘 경기를 잡아야 지구 1위인 뉴욕 메츠와의 경기를 6경기 차이로 따라잡게 됩니다.
-과연 오늘 경기에서 두 팀 중 누가 앞서 나갈 수 있을지! 필리스의 공격으로 경기 시작됩니다!
필리스의 1번 타자 조니 로버트가 타석에 섰다.
카디널스의 선발투수는 4선발, 헤리우드였다.
큰 신장을 가진 그는 오버핸드로 공을 던져 자신의 신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투수였다.
구속 자체는 평범했지만, 2m가 넘는 신장 덕에 타자들이 히팅 포인트를 잡기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었다.
“흡!!”
딱!!
-때렸습니다! 하지만 빗맞은 타구! 2루수 잡아 1루로!
퍽!
“아웃!”
-아웃입니다! 첫 타자를 5구 만에 2루수 땅볼로 처리하는 헤리우드!
-역시 헤리우드의 저 릴리스 포인트는 적응하기 어렵네요.
-신장 204㎝도 높은데, 거기에서 팔까지 오버핸드로 들어서 던지니 타자들 입장에서는 저 위에서 공이 떨어지는 느낌일 겁니다.
-맞습니다. 특히 결정구였던 포크볼의 위력이 크게 상승하는 효과를 볼 수 있죠!
해설진들이 감탄하고 있을 때, 수호 역시 그의 투구를 보면서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릴리스 포인트가 높은데요?’
[ㅇㅇ 장난 아니네.]
[패스트볼의 체감 구속이 실제보다 훨씬 빠르겠는데?]
[거기에 포크볼과 커브를 섞어 던지니 타자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겠네.]
헤리우드는 자신의 강점인 신장을 최대한 활용하는 피칭을 이어나갔다.
포심을 주로 던지면서 포크볼을 섞으니 타자들 입장에서는 무얼 노려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분명 쉬운 상대는 아니네요.’
[그런데 전력 분석팀에서는 약점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예.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심하다고 했어요.’
[1루에 주자가 생기면 패스트볼과 포크볼을 구별할 수 있다고 했던가?]
‘예. 아무래도 주자를 너무 신경 쓰는 거 같더라고요.’
그때 2번 타자 메이튼을 상대로 헤리우드가 3구를 뿌렸다.
“흡!!”
쐐애애액-!!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공을 메이튼이 간결하게 배트를 돌려 정확히 타격했다.
딱!!
-때렸습니다! 삼유간을 가르는 안타! 메이튼이 필리스의 포문을 엽니다!
메이튼의 안타로 주자가 나갔다.
그리고 타석에는 브라이스 하퍼가 들어섰다.
-원아웃 1루 상황에서 브라이스 하퍼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복귀전에서 홈런을 터뜨렸던 하퍼가 여기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헤리우드의 사인 교환이 길어졌다.
전력분석팀의 이야기대로 주자가 생기자 평소대로의 모습을 가져가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고개를 두어 번 저은 뒤에야 구종을 결정한 헤리우드가 투구 준비에 들어갑니다.
세트포지션에서 슬라이드 스텝을 밟은 헤리우드가 1구를 뿌렸다.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하퍼의 바깥쪽 낮은 코스를 찔러왔다.
그러나 로버트를 상대로 던졌던 공과는 달리 각도가 날카롭지 못했다.
그리고 하퍼는 그런 공을 놓치지 않았다.
후웅-!!
딱!!
-때렸습니다!!
-아~ 이건 큽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타구는 단숨에 좌익 담장을 넘어 관중석에 떨어졌다.
-넘어갔습니다!! 선제 투런포를 작렬시키며 자신의 복귀를 확실히 알리는 브라이스 하퍼!!
-실투에 가까운 패스트볼을 놓치지 않고 풀파워로 후려친 하퍼! 그가 왜 슈퍼스타인지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하퍼의 홈런으로 분위기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브라이스 하퍼에게 홈런을 허용한 헤리우드, 하지만 그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타석에 리얼무토가 들어섭니다!
-오늘 경기에선 한수호 선수가 4번으로 출전할 거라 생각했는데. 매디슨 감독이 리얼무토를 4번에 기용했네요.
-매디슨 감독은 한수호 선수의 결정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여러 테스트를 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타순을 자주 변경하는 걸까요?
-그렇게 봐야겠죠.
한수호의 등장은 매디슨 감독에게도 여러 숙제를 안겼다.
그중 하나가 가장 효율적인 타순을 정하는 것이었다.
원래라면 진즉 이 작업이 끝났어야 하지만, 하퍼와 리얼무토가 징계에서 갓 풀렸기에 이제야 본격적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투런 홈런을 허용한 헤리우드는 여기에서 리얼무토를 잡아내야 합니다.
-다음 타자가 한수호 선수이기에 다시 실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와인드업에 들어간 헤리우드! 리얼무토를 상대로 1구 던집니다!
헤리우드의 손을 떠난 공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구속은 나쁘지 않았지만, 제구가 흔들리면서 스트라이크존의 정중앙을 파고들었다.
명백한 실투.
그리고 리얼무토가 그 공을 놓칠 리 없었다.
후웅-!!
딱!!
-때렸습니다!! 이번 타구도 큽니다!! 중견수 뒤로! 뒤로!! 뒤로!!! 그대로 담장을 넘어갑니다!! 백투백 홈런을 작렬시키는 리얼무토!!
-아~ 정말 대단합니다! 흔들리는 헤리우드를 상대로 백투백 홈런을 작렬시키는 리얼무토!
-이번 시즌 벌써 두 번째 백투백 홈런을 만들어내는 필라델피아 필리스!
백투백 홈런은 그리 대단한 기록은 아니었다.
한 팀이 한 시즌에 여러 번 반복해서 달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백투백 홈런을 달성하며 3 대 0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하는 필리스! 카디널스의 토미 감독이 직접 마운드를 방문합니다.
-교체하긴 이른 시점이니 아마도 헤리우드 선수를 다독여 주기 위해 방문하는 거 같습니다.
해설자의 예상대로 교체는 아니었다.
단지 헤리우드를 안정시켜 주기 위해 마운드를 방문했다.
그 모습을 관중석에서 바라보는 두 명의 한국인이 있었다.
“1회부터 헤리우드는 수난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성훈이가 타석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가는 느낌이네요.”
두 사람은 이성훈을 잘 아는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왼쪽에 있는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자는 이성훈의 아버지인 이두성이었다.
한국 프로야구의 레전드 플레이어이자 현재는 야인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는 올해부터 WBC부터 대표팀에 합류할 계획이었기에 바빠지기 전에 아들인 이성훈의 경기를 챙겨볼 목적으로 미국에 건너왔다.
이두성은 아들 이성훈을 바라보다 대기 타석으로 시선을 옮겼다.
“한수호라는 저 친구, 몸이 참 좋은데?”
“키가 190이 넘으니까요. 몸무게도 얼추 100키로에 육박하는 거 같은데요?”
“축복받은 피지컬이군. 하긴, 저런 몸을 가지고 있으니 19살의 나이에 메이저리그에서 그런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거겠지.”
“대표팀에 합류시키자는 이야기도 많던데. 형님 생각은 어떠세요?”
친한 동생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이두성이 입을 열었다.
“저 정도 실력이면 넣는 게 좋지. 문제는 전례가 생기기 때문에 노인네들이 과연 그걸 인정하느냐겠지.”
“하긴…… 원로들이 또 태클을 걸겠네요.”
“당장 리그가 위험한데, 그놈의 절차가 뭐 중요하다고…….”
최근 한국 프로야구의 인기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었다.
특히 도쿄 올림픽과 2023년 WBC의 부진은 하락하는 인기에 가속도를 붙였다.
거기에 선수들의 사건·사고가 여럿 터지면서 팬들의 민심이 크게 떠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절차보단 실력 우선으로 뽑아야 하는 게 맞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젊은 스타가 나와야 하는데. 그걸 막아버리는 걸 이해할 수 없단 말이지.”
“쩝, 그게 가장 답답하죠. 그리고 필리스 구단에서 한수호를 보내줄지도 미지수고요.”
“그것도 그렇지.”
WBC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최하는 경기다.
메인 로스터에 들어간 선수들 역시 차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구단에서 거부한다면 이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여러 걸림돌로 머리가 아파오고 있을 때, 감독이 마운드를 내려가고 경기가 재개됐다.
“다시 시작하는군.”
“과연 한수호가 어떤 장면을 보여줄지 기대되네요.”
이두성 역시 동생과 같은 생각이었다.
한수호는 4월 메이저리그와 전 세계 야구팬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런 그의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이두성은 집중해서 수호를 주시했다.
-경기 재개됩니다. 백투백 홈런이 나오면서 누상에 주자는 없는 상황. 과연 한수호 선수는 여기에서 공격의 기회를 이어갈 수 있을까요?
헤리우드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세트포지션이 아닌 와인드업, 그것도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한 직후였기에 그가 실투를 던질 확률은 적었다.
“흡!!”
쐐애애액-!!
예상대로 그의 손을 떠난 공은 날카로웠다.
수호의 몸쪽으로 날아오다 급격하게 휘어지며 존을 파고드는 멋진 슬라이더의 궤적을 그렸다.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며 막 통과하려는 순간.
부앙!!
수호의 배트가 매섭게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 존에 들어오려는 공을 낚아챘다.
딱!!
-때렸습니다! 이번 타구도 큽니다!! 좌측 담장을 향해 날아가는 큼지막한 타구!! 좌익수가 따라가는 걸 포기하고 멍하니 타구를 바라봅니다!! 타구 넘어갔습니다!! 백투백투백이 작렬합니다!!!
백투백투백.
세 타자가 연속해서 홈런을 때려내는 기록에 유종의 미를 장식한 수호가 천천히 베이스를 돌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두성은 전율을 느꼈다.
“봐…… 봤어요, 형님?”
“그래.”
“아니, 무슨 반응이 그래요? 방금 그 스윙을 보고도 그런 반응이 나와요?”
“너무 놀라서 그런다.”
“확실히…… 놀라운 스윙이었죠. 어떻게 저런 풀스윙을 할 수 있는 거죠? 그것도 초구에 저런 반응이라니…….”
명백하게 노렸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스윙이었다.
백투백 홈런이 터졌으니 투수도 조심스럽게 접근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이다.
카디널스는 허를 찌르는 선택을 한 건데, 수호가 거기에 반응해서 홈런을 만들어냈다.
이 홈런으로 필리스는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브라이스 하퍼, 리얼무토 그리고 한수호 선수로 이어지는 백투백투백 홈런! 이 기록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백투백투백 홈런이어서 역사에 남은 게 아니었다.
-세 타자 모두 헤리우드 선수의 초구를 노려 홈런을 때려냈고 이는 역사상 첫 번째 기록입니다!
-한수호 선수가 이 역사상 최초의 기록에 화룡점정을 찍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올 시즌이 시작되고 고작 2개월! 도대체 몇 개의 기록을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역사를 쓰는 선수예요! 한수호 선수는!!
그동안 필리스가 원했던 하퍼-J.T-수호로 이어지는 막강타선의 힘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지켜보던 이두성은 마음속으로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한수호, 어떻게든 대표팀에 합류시켜야겠다.”
“예? 어떻게요?”
“어떻게든 노친네들을 설득시켜야지. 그전에 한수호보다 설득시켜야겠지만.”
만약 그가 거부한다면 모든 게 의미 없는 일이 된다.
“경기 끝나고 한수호를 만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