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68화
-한수호 선수의 사인에 브라이언이 투구 자세에 들어갑니다.
-초구에 그의 컨디션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브라이언 와인드업! 초구 던집니다!!
“흡!!”
쐐애애액-!!
브라이언의 손을 떠난 공이 몸쪽을 파고들었다.
그걸 예상했다는 듯 조니가 배트를 돌렸다.
딱!!
-때렸습니다!
“파울!”
-하지만 1루 쪽 파울라인을 벗어나면서 파울이 됩니다.
-조니의 반응이 좋았습니다만, 브라이언의 구속에 초구부터 따라가질 못했습니다.
-초구 구속은 95마일, 구종은 포심 패스트볼이었네요.
-좌완이면서 파이어볼러인 브라이언, 제구의 약점만 고친다면 분명 매력적인 투수가 될 겁니다.
1구를 받아본 수호는 브라이언의 컨디션이 좋다고 판단했다.
‘평소보다 더 회전이 좋다. 첫 타자를 잡아서 자신감을 실어줄 수 있으면 오늘 경기를 쉽게 풀어갈 수 있을 거야.’
판단을 내린 수호는 2구와 3구를 연달아 패스트볼로 유도했다.
뻑!!
“스트라이크!!”
-2구 바깥쪽 낮은 코스를 정확히 찌릅니다! 투스트라이크!
-한수호 선수의 공격적인 리드에 브라이언이 응하면서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습니다.
퍽!
“볼.”
-4구는 바깥쪽으로 들어오다 빠져나가는 슬라이더, 하지만 조니의 배트를 끌어낼 순 없었습니다!
-좋은 유인구였는데. 상당히 아쉽네요.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다.
남은 건 결정구다.
‘인코스.’
‘괜찮을까? 두 번 연속 아웃코스를 던졌으니 타자도 인코스를 예상하고 있을 텐데.’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의심을 떨쳐냈다.
‘오늘은 수호를 믿기로 했다. 그의 리드에 따르자.’
궁지에 몰린 브라이언이 택한 건 수호를 믿는다는 선택지였다.
자신이 존경하는 베테랑 투수 잭이 신뢰하는 수호였기에 분명 자신보다 더 좋은 선택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브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이고 투구 자세에 들어갔다.
-원볼 투스트라이크에서 브라이언 와인드업! 5구 던집니다!!
쐐애애액-!!
브라이언의 손을 떠난 공이 조니의 몸쪽을 찔러왔다.
‘이 정도는 예상했다!’
인코스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조니는 망설이지 않고 배트를 돌렸다.
그의 배트가 공을 낚아채려는 순간.
휘릭!!
공이 밑으로 뚝 떨어지면서 스윙 궤적을 벗어났다.
‘스플리터?!’
포심 패스트볼에 초점을 맞춘 스윙이었기에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웠다.
하지만 여기서 놓친다면 헛스윙으로 아웃이 되는 상황.
‘어떻게든 컨택만……!’
조니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떨어지는 공에 궤적을 어떻게든 맞추었다.
그 결과.
딱!!
-때렸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내야 땅볼!
공을 건들기는 했으나 3루수 정면으로 굴러가는 평범한 그라운드볼이 나왔다.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상황.
3루수 브룩스가 달려 나오며 공을 잡아 그대로 1루로 뿌렸다.
-러닝스로우로 1루로 송구!
타이밍상 누가 봐도 아웃인 상황.
그런데 여기에서 변수가 생겼다.
-아앗!! 도널드가 송구를 놓칩니다!
“세이프! 세이프!!”
-공을 다시 잡는 사이 조니의 발이 베이스를 밟으면서 실책으로 첫 타자를 내보냅니다!
-송구가 원바운드되긴 했지만, 충분히 처리했어야 하는 공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필리스의 약점이 드러나네요.
메이저리그라고 해서 완벽할 순 없었다.
실책은 언제든지 나왔다.
문제는 그 실책이 어느 타이밍에 나오느냐였다.
‘가장 나쁜 타이밍에 나와버렸군.’
[최악이지.]
[안 그래도 투수가 불안한 순간에 나오는 실책이라니.]
완벽한 아웃 타이밍이었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이 결과로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전 경기에서 보여준 브라이언의 상태라면 흔들려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하지만 마운드를 오르거나 하지 않았다.
아직 1회였기 때문이다.
먼저 브라이언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다음에 대처하면 될 일이었다.
‘1루에 주자가 나갔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야.’
2번 타자가 타석으로 들어섰다.
수호는 볼 배합을 크게 바꿀 생각이 없었다.
‘인코스.’
문제는 이 사인을 브라이언이 바로 받아들이냐였다.
과거에 그는 주자가 나간 뒤에는 자신의 사인에 고개를 젓는 일이 많았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의외로 브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흡!!”
쐐애애액-!!
-두 번째 타자를 상대로 초구 던졌습니다!
딱!!
“파울!!”
-뒤 그물을 때리는 파울! 이번에도 몸쪽을 공략했군요.
-상당히 공격적인 투구를 이어나가는 브라이언입니다.
브라이언이 평소와 달랐다.
하지만 깊게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내 리드를 따라준다면…….’
수호의 집중력이 높아졌다.
‘널 이기게 나도 최선을 다하겠어.’
* * *
첫 타자를 실책으로 내보낼 때까지만 하더라도 브라이언이 오늘 경기에서도 고전할 거라 생각했다.
매디슨 감독을 비롯해 경기를 보는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변이 일어났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오늘 경기 4번째 탈삼진을 잡아내며 2회를 마감하는 브라이언 릴!
-1회 위기를 맞이했었지만, 후속 타자를 잘 잡아내면서 위기를 스스로 극복했던 브라이언 선수. 이후 안정적인 피칭을 하면서 타자들을 요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공격적인 피칭이 인상적이네요.
-그렇습니다. 투구 템포도 빨라서 수비들의 집중력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습니다.
수비력은 투수에게 달려 있다는 말이 있다.
이는 투수의 투구 템포와 연관이 있었다.
투수가 투구 템포를 길게 가져가면 자연스레 수비 시간이 길어진다.
수비 시간이 길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실책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투수를 지도하는 이들은 템포를 빨리 가져가라는 주문을 자주 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투수의 투구 메커니즘은 일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메커니즘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포수와의 호흡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호흡이 잘 맞지 않는 포수와 짝을 이루면 사인을 교환하면서 시간이 길어지는 일이 발생하죠.
-하지만 오늘 브라이언과 한수호 선수의 사인 교환은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템포 역시 평소보다 빠릅니다.
이는 전적으로 브라이언의 영향이었다.
그가 수호의 사인에 고개를 젓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투구 템포를 빠르게 가져갈 수 있었다.
“나이스 볼.”
“나이스 리드였어.”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이 가볍게 글러브를 터치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모습이었다.
브라이언은 언제나 먼저 더그아웃에 들어갔고 딱히 수호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마운드를 내려가더라도 수호를 기다리다가 같이 들어갔다.
‘뭔가 달라졌다.’
수호는 그런 브라이언의 행동에서 달라진 게 느껴졌다.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의 리드를 따라주는 것 자체가 큰 변화였다.
[아마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잭의 영향이 클 거라고 생각하지만.]
레전드들의 말에 동의했다.
투수들 사이에서 잭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가 자신을 신뢰하니 브라이언 역시 바뀐 걸 수도 있었다.
‘뭐가 됐건 브라이언이 절 믿어주니 리드하는 게 편하네요.’
[ㅇㅇ 투수의 신뢰를 얻는 게 포수로서 가장 힘든 법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앤드류가 제가 아닌 리얼무토와 호흡을 맞추는 이유도 얼핏 이해가 됩니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지.]
[리얼무토가 필리스에서 뛴 기간을 생각하면 단기간에 파고들긴 힘들지.]
[그래도 한 명, 한 명 이렇게 변해가면 결국 투수들에게 인정받게 되어 있다.]
선수들의 유대감은 누군가가 강제할 수 없다.
개성이 넘치는 이들이고 그들 스스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특히 투수의 프라이드는 무척이나 강하다.
그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포수가 제대로 된 이가 아니라면 무시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렇기에 실력을 통해 그들을 납득시켜야 했다.
수호는 이제 그 단계에 있었다.
‘타격에 있어서 증명할 건 없다. 하지만 포수로서는 아직이다.’
사실 포수라는 포지션에 그렇게 집착할 이유는 없었다.
1루로 경기에 출전해도 되고 다른 포지션을 택해도 충분히 잘해나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걸 택하고 싶진 않았다.
‘마치 도망치는 꼴이잖아.’
리얼무토와의 승부를 피하는 느낌이었다.
그를 제칠 자신이 없으니 다른 포지션을 택하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승부욕 발동!]
[ㅋㅋㅋ 너 원래 이런 캐릭터였냐?]
[우리 영향을 받은 걸 수도?]
[뭐가 됐건 승부욕을 가지는 건 나쁜 건 아니지.]
[오히려 좋은 거지.]
프로 선수들이 발전할 수 있는 건 여러 이유가 있다.
누군가는 돈이었고 누군가는 명예였다.
하지만 그런 모든 욕망의 베이스에 있는 건 바로 승부욕이었다.
긴 직장 생활을 경험했던 수호에게 가장 부족했던 부분이 리얼무토라는 경쟁자를 만나면서 깨어나고 있었다.
* * *
매디슨은 놀라워하고 있었다.
‘브라이언이 이렇게 호투할 줄이야.’
직전 경기에서의 성적으로 그의 거취를 고민했던 매디슨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퍽!!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와아아아아!!”
“브라이언! 오늘 장난 아닌데?!”
“그래! 우리가 원했던 게 바로 그런 모습이야!!”
공격적인 피칭을 이어나가면서 로키스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해 냈다.
물론 모든 결과가 좋을 순 없었다.
딱!!
“빠졌다!!”
“달려!!”
로키스가 득점을 올리면서 위기에 빠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딱!!
“마이! 마이!!”
퍽!
“아웃!!”
“와아아아아!!”
점수를 내준 이후에도 공격적으로 타자를 공략해 내야 뜬공으로 돌려세웠다.
그 결과 6이닝 2실점 10탈삼진을 잡아내며 이번 시즌 가장 좋은 피칭을 해냈다.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건 한수호 덕분이다.’
물론 브라이언이 잘 던졌다는 게 전제로 깔려야 한다.
하지만 원래 브라이언은 이 정도는 해줄 포텐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던 건 너무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아지면서 투구 템포가 길어졌다. 그로 인해 밸런스가 깨지는 일이 많았지.’
오늘은 달랐다.
수호의 리드에 따르면서 브라이언은 평소보다 빠른 템포로 투구를 이어나갔다.
그 결과 잡념이 줄어들었고 오직 투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왜 수호를 믿은 건지 모르겠지만, 브라이언도 이제 느꼈을 거야. 포수를 왜 믿어야 하는지 말이야.’
수호의 능력이 새삼스레 눈에 띄는 오늘 경기였다.
그리고 이건 매디슨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좋은데?’
필리스의 에이스 앤드류 페인터 역시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브라이언이 오늘 호투를 할 수 있었던 건 수호의 리드에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야. 그리고 수호는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 리드를 해냈고.’
안정적이었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리드였다.
거기에 블로킹과 프레이밍 능력이 빛을 발했다.
‘이렇게 잘하는 녀석이었나?’
잭과 호흡을 맞출 때는 그러려니 했다.
워낙 베테랑이기도 한 투수이기에 수호에게 맞춰서 던지더라도 충분히 타자들을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 역시 마찬가지다.
에이스인 자신의 공을 타자들이 쉽게 때리지 못한다.
그렇기에 수호의 리드에도 성적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달랐다.
그의 공이 위력적이지만, 지금까지는 성적을 내지 못했다.
리얼무토가 복귀하자마자 그와 호흡을 맞추겠다고 나선 이유였다.
‘내 생각보다 한수호가 더 뛰어난 포수일 수도 있겠어.’
조금씩 포수 한수호에 대한 인식이 필리스 투수진에게서 바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