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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메이저리거-63화 (62/340)
  • 회귀 후 메이저리거 63화

    다음 날.

    클럽하우스를 나서는 수호에게 한 남자가 찾아왔다.

    “스캇 보라스입니다.”

    악마의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

    남들은 은퇴할 시기가 된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을 직접 이끄는 그의 옆에는 윌도 동행했다.

    “어제 경기 정말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시간이 괜찮으시면 잠시 이야기를 나누시면…….”

    “훈련이 잡혀 있어서요. 다음에 이야기하시죠.”

    “아…… 그러셨군요.”

    “그리고 어제도 그랬지만, 사전에 약속도 없이 찾아오시는 건 좀 그렇습니다. 다음에는 미리 약속을 잡고 찾아와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수호의 태도에 스캇 보라스가 순순히 물러섰다.

    자존심이 상한 듯 이를 악무는 그의 모습이 보였지만, 수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ㅋㅋㅋ 제대로 한 방 먹였네.]

    [처음부터 직접 왔어야지.]

    [ㅇㅈ 그리고 왜 지 맘대로 오는 건데?]

    [아직도 자기가 위에 있다 생각하는 거지.]

    [솔직히 쟤 정도면 원하는 애들하고 계약하는 것도 가능하니까.]

    메이저리그 최고의 에이전트가 스캇 보라스다.

    당연히 그와 계약을 맺고 싶은 선수들이 줄을 섰다.

    하지만 선수들이 착각하는 게 한 가지 있었다.

    ‘전생에 영업을 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습니다.’

    [뭔데?]

    ‘바로 모든 계약에는 갑과 을이 있다는 사실이죠. 나이나 직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계약에서 누가 갑에 있고 을에 있느냐가 중요하더군요.’

    [그건 그렇지.]

    [우리도 현역 끝나고 나니까 다들 안면 싹 바꾸더라.]

    [현역 때는 우리가 철저하게 갑이었지 ㅋㅋ]

    레전드들 역시 동의했다.

    그들 역시 최고의 위치에 있다가 은퇴했던 인물들이다.

    그렇기에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분명하게 느꼈고 수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위치를 이용할 뿐입니다.’

    [정답.]

    [괜히 숙이고 들어갈 이유는 없지.]

    [처음부터 확실히 보여주자고.]

    [어차피 에이전트 계약이야 언제든지 바꿀 수 있으니까.]

    [네가 꿀릴 게 없지.]

    레전드들 역시 수호의 의견에 동의했다.

    * * *

    다저스와의 2차전.

    전날 퍼펙트게임에 팀이 패배하며 이번 시즌 첫 패전투수가 된 오타니의 타격이 폭발했다.

    딱-!!

    -때렸습니다!! 우측 담장! 우측 담장!!을 넘기는 쓰리런!! 이번 시즌 7호 홈런을 터뜨리는 오타니 쇼헤이!!

    -정말 경이로운 파워입니다! 전날 100구에 가까운 투구를 한 뒤에도 이 정도의 파워를 보여주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전날 퍼펙트게임의 제물이 되어서일까?

    딱!!

    -때렸습니다! 연속 안타로 다시 주자가 출루하는 다저스!

    -전날의 분풀이라도 하는 듯, 다저스 타선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다저스 타선은 필리스의 5선발, 브라이언 릴을 압도적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3회가 되었을 때 이미 7실점을 기록하며 브라이언은 다저스 타선을 막아내질 못했다.

    ‘공의 구위가 평소보다 너무 좋지 않은데.’

    [제구도 심하게 흔들린다.]

    [이미 기세에서 눌린 듯.]

    [경험이 부족한 게 크다.]

    레전드들의 평가도 동일했다.

    예상대로 매디슨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했다.

    -필리스의 선발투수 브라이언 릴이 4회를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전날 퍼펙트게임으로 불펜을 아꼈던 필리스가 일찌감치 불펜을 소모하게 되었네요.

    마운드의 주인이 바뀌었다.

    * * *

    스코어 11 대 3.

    2차전에서 선발투수의 차이를 보여주면서 다저스는 필리스를 압살했다.

    전날의 승리가 신기루처럼 느껴질 정도의 패배였다.

    -대체 어제 어떻게 이긴 거냐 ㅋㅋ

    -오늘 수준 차이 봐서는 기적이었던 거 같은데.

    -그래도 내일은 앤드류가 등판하니 이길 수 있지 않을까?

    -1선발과 3선발의 승부니 가능성은 높지.

    └다저스 3선발은 다른 팀에선 1선발급임.

    └└비등하게 싸울 듯.

    -그래도 수호가 2타점 올려줘서 다행인 듯.

    -수호 활약에 야구 볼 맛 난다.

    수호는 이번 경기에서 4타수 1안타 2타점을 기록하면서 한 번 찾아왔던 기회를 살렸다.

    리얼무토의 타격감이 돌아오고 있는 것도 필리스 입장에선 좋은 징조였다.

    하지만 필리스에게는 여러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경기가 되었다.

    [필리스가 가장 고민해야 하는 건 역시 5선발이겠네.]

    [3선발까지는 괜찮은데. 4, 5선발이 다른 팀보다 약한 게 문제임.]

    [트레이드를 통해서 데려오는 것도 애매한 시점이고.]

    메이저리그에선 트레이드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제 4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벌써부터 트레이드를 통해 4, 5선발을 바꿀 타이밍이 아니긴 했다.

    그때 클럽하우스를 나서는 브라이언이 보였다.

    척 보기에도 어깨가 축 늘어진 것이 꽤나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뭐라 이야기를 해줄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브라이언!”

    어느새 수호의 옆에 다가온 잭이 브라이언을 불렀다.

    동시에 수호의 어깨에 손을 두르며 말했다.

    “고기나 먹으러 가자. 수호, 어제 못 먹은 스테이크. 오늘 먹어도 괜찮지?”

    “아, 예. 상관없습니다.”

    수호의 대답에 잭이 미소를 지었다.

    * * *

    잭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스테이크 48.

    스테이크와 해산물을 파는 식당으로 현지인은 물론 관광객도 자주 찾았다.

    “여기 티본 스테이크가 아주 맛이 좋아. 특히 디저트인 초코아이스크림이 정말 맛있지. 식사 끝나고 시켜줄 테니까, 한번 먹어봐.”

    잭의 강력한 추천으로 티본 스테이크를 시켰다.

    사이드로 랍스터까지 시키면서 잭의 한턱은 예상보다 규모가 커졌다.

    덕분에 음식이 나오는 시간이 제법 걸렸고 잭은 음료로 목을 축이며 브라이언에게 물었다.

    “브라이언, 왜 이렇게 풀이 죽어 있어? 오늘 경기 때문에 그래?”

    “예…… 분명 연습 때는 괜찮았는데. 실전에 들어가니까 너무 얻어맞더라고요.”

    “음, 확실히 내가 봤을 때도 불펜에서 좋았지.”

    “잭도 그렇게 느꼈죠? 지난번 경기도 그렇고 오늘 경기까지 이런 식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수호는 브라이언의 지난 경기를 떠올렸다.

    ‘아마 4이닝 3실점이었지. 초반에는 좋았지만, 타자가 한 바퀴 돌면서 본격적으로 맞기 시작했었어.’

    [그때도 인상적이지 않았지.]

    [작년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단 올 시즌은 타자들에게 연구가 충분히 된 느낌임.]

    [너도 잘 봐둬야 해. 지금은 네가 날고 기지만,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면 투수들이 널 공략할 거다.]

    레전드들의 조언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일 때.

    스테이크가 나왔다.

    뒤이어 음식들이 계속해서 나오며 큰 원형 식탁을 가득 채울 정도로 푸짐한 한 상이 완성됐다.

    “자! 오늘은 내가 한턱 쏘는 거니까! 마음껏 먹자고!”

    “잘 먹겠습니다.”

    잭이 쏘는 스테이크의 맛은 일품이었다.

    [먹방 찍어도 되겠네.]

    [ㅇㅈ]

    [그냥 유튜브 전향하자.]

    레전드들은 그런 세 사람의 먹방을 지켜보며 군침을 흘려야 했다.

    * * *

    세 사람이 먹방을 찍고 있을 때.

    단장인 마크 레이어와 매디슨 감독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을 난감하게 만든 건 필리스의 에이스이자 24시즌 올해의 신인을 타냈던 앤드류 페인터였다.

    “미안하지만, 다시 한번 확인하지. 그러니까 자네의 말은 내일 있을 경기에서 한수호와 호흡을 맞추기 싫다는 건가?”

    “예. J.T를 파트너로 올려주십시오.”

    앤드류 페인터가 찾아온 이유는 포수를 교체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요청에 매디슨이 물었다.

    “수호와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

    “아니요. 그저 J.T와의 호흡이 더 좋았습니다.”

    “아니, 하지만 지난 두 번의 등판에서 성적도 괜찮지 않았나?”

    리얼무토가 자리를 비운 이후 앤드류는 두 번 수호와 호흡을 맞췄다.

    첫 번째는 6이닝 1실점 3피안타를 허용했고 두 번째는 7이닝 무실점 2피안타를 허용했다.

    두 번 모두 매우 좋은 피칭을 선보였기에 그의 이런 요청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수호도 좋은 포수입니다. 하지만 저는 J.T와 호흡을 맞추는 게 더 편합니다.”

    앤드류의 요청은 사실 이상한 게 아니다.

    메이저리그의 레전드 중 한 명인 R.A디키가 등판할 때면 전담포수가 같이 올라왔다.

    심지어 그가 트레이드될 당시에 전담포수였던 조시 톨리가 같이 트레이드된 일화는 유명하다.

    R.A디키와 같은 너클볼러였던 팀 웨이크필드 역시 전담포수를 두었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전담포수로 가장 유명한 투수는 제구의 마술사 그렉 매덕스다.

    그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뛸 당시 당대 최고의 공격형 포수였던 하비 로페즈를 거부하고 다른 포수들과 호흡을 맞췄다.

    “제 부탁이 그리 어려운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음……. 앞으로도 계속 J.T와 호흡을 맞추겠다는 건가?”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장은 J.T와 호흡을 맞추겠습니다.”

    앤드류 페인터는 신중한 성격이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확언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단지 지금 자신이 요구해야 할 부분만을 다시 이야기할 뿐이었다.

    “일단 알았네. 자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단장 마크의 대답을 들은 뒤에야 앤드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만 남게 되자 매디슨이 마크에게 물었다.

    “정말 J.T에게 마스크를 쓰게 할 생각입니까?”

    “어쩌겠습니까? 에이스인 앤드류가 원하는 건데. 2년 뒤에 그와 진행할 FA 협상까지 생각하면 부탁을 거절하는 건 상당히 어렵습니다.”

    “으음…….”

    “무엇보다 J.T를 올려도 수호를 지명타자로 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수호의 공격력을 계속 써먹을 수 있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수호에게 더 많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습니다. 그가 있었기에 J.T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았던 겁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고작 19살짜리가 20년 가까운 경력을 쌓은 J.T의 공백을 메웠습니다. 물론 시즌이 진행될수록 차이는 벌어지겠죠.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 그를 대체할 수 있을 겁니다.”

    필리스는 몇 년 전부터 리얼무토의 후계자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실패했고 필리스는 트레이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게 수호였다.

    그것도 단순히 유망주가 아니라 완성이 된 형태의 포수였다.

    그리고 리얼무토의 공백마저 메웠다.

    퍼펙트게임이란 메이저리그 역사상 24번밖에 없는 기록을 함께 만들었다.

    물론 당장 리얼무토를 완벽하게 대체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경험을 쌓는다면 충분히 그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 번이라면 모를까 앞으로도 에이스인 앤드류와 호흡을 맞추지 못한다면 팀 내에서 입지가 흔들릴 겁니다.”

    “앤드류의 팀 내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다른 투수들에게도 영향이 갈 가능성이 있겠지.”

    “예. 그렇지 않아도 J.T가 투수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니까요.”

    필리스에서만 9년을 뛴 리얼무토다.

    그 세월 동안 팀 내에서 갖춘 영향력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방법이 없습니다. 앤드류의 요청이라면 당분간 그에게 전담 형태로 J.T를 붙여줄 수밖에요.”

    “후우…….”

    미래를 위해 수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은 매디슨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마크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반대를 할 수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 * *

    다음 날.

    차에서 내린 잭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클럽하우스에 들어갔다.

    ‘이걸 받으면 녀석이 좋아하겠지.’

    그의 가방 안에는 로렉스 시계가 담긴 케이스가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전통 중 하나인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투수가 포수에게 로렉스 시계를 선물하는 것이다.

    잭 역시 그 전통을 위해 직접 시계를 장만했다.

    ‘그래도 빨리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원래는 어제 전해주고 싶었지만, 인기상품이었기에 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에이전트가 빠르게 구해줘 오늘 가져올 수 있었다.

    그때 저 멀리 복도에 서서 매디슨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는 수호의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그를 부르려는 순간.

    “오늘 경기에서는 1루수로 출전할 거야.”

    “1루수로요? 그럼 포수는 리얼무토가 들어가는 겁니까?”

    “맞아. 그가 들어갈걸세. 이제 슬슬 감각을 찾아야 할 테니 말이야.”

    매디슨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필리스의 포수는 아직 주인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

    ‘당연한 사실이지. J.T가 보여준 걸 생각하면 고작 며칠 만에 그를 포수에서 내릴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이른데?’

    많은 경험을 했던 잭이기에 이상함을 느꼈다.

    ‘조금 알아봐야겠어.’

    원래라면 다른 선수의 일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준 수호였기에 직접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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