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61화
27시즌 들어 오타니가 피홈런을 허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상대가 메이저리그를 지배하고 있는 슈퍼스타들도 아니고 루키에게 허용한 것도 충격받을 요소였다.
하지만 오타니는 흔들리지 않았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구속 100마일의 공이 꽂히면서 4회,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는 오타니 쇼헤이! 1실점과 함께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오타니는 오타니네요. 실점을 통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멘탈을 빠르게 잡으며 더 이상의 실점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공수가 교대됐다.
필리스의 마운드에는 여전히 잭이 올랐고 그의 파트너인 수호 역시 마스크를 썼다.
-잭 휠러가 5회 초에도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현재까지 투구 수는 모두 61개를 던지면서 효율적인 투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아직까지 안타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4이닝을 던지면서 잭은 퍼펙트게임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제 막 경기 중반으로 넘어가는 타이밍이었기에 이 기록을 중점적으로 보는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딱!!
-높게 떠오른 타구! 좌익수 앞으로 달려 나오며 잡아냅니다! 5회 역시 세 타자를 깔끔하게 돌려세우는 잭 휠러!
5회가 지나가고.
퍽!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6회 마지막 타자를 스탠딩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이닝을 마감하는 잭 휠러!
6회가 지나갈 때까지 여전히 1루 베이스를 허락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사람들이 기록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6회까지 퍼펙트 실화냐?
-잭 휠러가 사고 치나?
-얘 나이가 30대 후반인데. 가능하려나?
-솔직히 무리일 듯.
-투구 수도 이미 90개를 넘어서 불가능하겠지.
-이제 힘 빠질 때 됐다.
사람들의 기대는 크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잭 휠러의 나이였다.
30대 후반.
메이저리거로서는 황혼기에 접어든 나이다.
과거 수많은 명경기를 만들어내고 팀의 중심을 지킨 선수지만, 이제는 은퇴를 생각할 때였다.
그런 그가 퍼펙트게임을 달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수호의 생각은 달랐다.
‘앞으로 남은 아웃 카운트는 9개. 잭의 현재 투구 수는 모두 94개. 구위는 이미 떨어진 상태다.’
[확실히 많이 떨어졌더라.]
[타자들이 슬슬 중심에 맞추고 있음.]
[5회부터 외야로 날아가는 타구도 많아졌고.]
[운 좋게도 수비 정면으로 가서 아직 퍼펙트 유지 중이지.]
레전드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수비 정면으로 간다는 건 여전히 그의 공을 정확히는 공략하지 못한다는 소리죠.’
[정답.]
[1회에는 모르겠는데. 2회부터는 확실히 공의 질이 달라졌음.]
[아마 오타니와의 승부에서 자신감을 얻었겠지.]
수호의 허슬플레이로 오타니를 잡아낸 뒤, 잭의 구질이 달라졌다.
던지는 것에 자신감이 넘쳤고 특유의 제구 역시 잘 이루어졌다.
‘잭이라면 할 수 있다.’
수호는 잭을 믿고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 사고 칠 거라는 걸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네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퍼펙트게임, 노히터 같은 기록은 투수 혼자서 하는 게 아님.]
[너도 정신 똑바로 차려라.]
레전드들의 조언에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7회.
잭이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스코어는 여전히 1 대 0! 잭 휠러는 다시 다저스의 상위타선을 상대하게 됩니다!
-아마 오늘 경기의 마지막 고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세 번째 타석을 맞이하는 다저스 타자들이다.
충분히 공을 본 상태에서 타석에 서는 것이기 때문에 공략에도 적극적이었다.
딱!!
-초구에 배트 돌립니다! 하지만 3루쪽 파울라인 밖에 떨어지며 파울이 됩니다!
-비록 파울이 됐지만, 상당히 위험했습니다. 한수호 선수가 요구했던 공은 몸쪽이었는데. 바깥쪽 다소 높은 곳에 제구되면서 타자의 배트에 걸렸습니다.
잭의 가장 큰 강점은 안정적인 제구력에 있었다.
어떤 공을 요구해도 정확한 제구로 미트에 꽂아 넣는다.
하지만 투구 수가 90개에 이르면서 제구가 흔들렸다.
공을 돌려받은 잭은 마운드에서 벗어나 로진을 손에 묻혔다.
‘예전이었다면 이 정도는 별게 아니었을 텐데.’
과거에는 100개가 넘는 공도 심심치 않게 던졌다.
그렇게 던져도 지금처럼 지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몸이 무겁다.
마치 젖은 휴지처럼 축 늘어지는 기분이다.
“후우…….”
깊게 심호흡을 뱉으며 마운드에 올랐다.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 포기한다면 마운드를 떠날 때였으니까.
‘우는 소리는 그만해라.’
스스로를 독려한 그가 마운드에 다시 섰다.
-사인을 교환한 잭 휠러, 2구 던집니다!
퍽!
“볼.”
-슬라이더를 택했지만, 너무 크게 꺾이면서 타자의 배트를 유인해 내지 못합니다.
딱!!
“파울!”
-3구 91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을 때립니다! 다행히 파울라인을 벗어나며 외야 쪽 관중석에 떨어지네요!
-이제 타구가 외야로 나가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외야로 가는 타구에 공의 위력이 떨어졌다 보고 있었다.
하지만 수호의 생각은 달랐다.
‘여전히 무브먼트가 좋다. 오늘 공은 확실히 달라.’
분명 외야로 타구를 날려 보내고 있지만,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고 있다.
수호는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끝내야 한다. 투구 수를 더 늘리는 건 잭의 어깨를 무겁게 할 뿐이야.’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 잭의 어깨를 가볍게 해줄 필요가 있었다.
수호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인 잭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원볼 투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잭이 4구를 던집니다!
“흡!!”
쐐애애액-!
수호가 요구했던 코스는 인코스였다.
하지만 너무 힘을 줘서인지 제구가 다시 흔들렸다.
‘아차!’
공에서 손이 떠나는 순간.
잭은 실투라는 걸 간파했다.
예상대로 공은 바깥쪽으로 날아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볼카운트가 몰린 타자가 성급하게 배트를 내밀었다는 거다.
후웅!
타자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공은 더욱 바깥쪽으로 휘었다.
거기에 원바운드까지 되면서 포수가 미처 반응하기 어려운 코스로 튀었다.
폭투에 가까운 실책.
그걸 확인한 타자가 배트를 던지고 1루로 달렸다.
그 순간.
촤아아앗-!!
수호가 왼쪽으로 몸을 날리며 왼쪽 무릎을 굽혀 슬라이딩하듯 튕겨 나가는 공을 몸으로 막았다.
퍽!!
그의 프로텍터에 충돌한 공이 바로 앞에 떨어졌다.
수호는 지체 없이 공을 잡아 그대로 1루로 뿌렸다.
쐐애애액-!
퍽!
“아웃!!”
-아웃입니다! 잭의 실투가 나왔지만, 한수호 선수가 완벽한 블로킹으로 막아내면서 아웃 카운트를 올립니다!
-아~ 한수호 선수의 블로킹이 정말 멋졌습니다!
-폴 프리먼의 주력을 생각했을 때 이 공이 빠졌다면 1루까지 무난하게 도착했을 겁니다.
-그리됐으면 대기록이 무산되었겠죠.
-아, 그런데 코치가 나와 한수호 선수의 상태를 점검하네요. 설마 부상인가요?
카메라가 수호를 클로즈업했다.
“이야…… 이거 예술적으로 찢어졌는데?”
“그러게요.”
카메라에는 찢어진 하의를 보면서 어색하게 웃는 두 사람이 찍혔다.
-부상은 아니고 한수호 선수의 바지가 찢어져서 그런 거 같네요.
-슬라이딩 과정에서 아무래도 바지가 찢어진 거 같군요.
-약간의 출혈이 있는 거 같지만, 경기에는 큰 문제가 없는 거 같습니다.
바지가 찢어질 정도로 격렬한 움직임이었다.
그 정도로 움직여야 할 정도로 자신의 기록을 지켜주려는 루키의 모습에 잭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신 차려라, 잭!’
자신의 기록을 위해 저렇게 힘내는 녀석이 있었다.
힘들다고 우는소리를 할 때가 아니었다.
“잭.”
그때 수호가 잭을 불렀다.
“어디로 던지든 잡아줄 테니. 걱정 마세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말이라니.
저게 진짜 19살짜리 루키가 할 수 있는 행동인가?
“너만 믿겠다.”
“예. 저만 믿으세요.”
수호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잭이 마음을 다잡았다.
* * *
뻐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5회 이후 사라졌던 탈삼진을 다시 추가하는 잭 휠러!!
-구위와 제구 모두 완벽한 공이었습니다!
-타자의 몸쪽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반응하지 못하게 만들었어요!
수호는 미트를 뚫고 전해지는 공의 위력에 미소를 지었다.
‘구위가 돌아왔다.’
[망설임이 사라진 거지.]
[포수가 몸을 날리는 허슬플레이를 해주는데. 투수가 다시 힘을 내야지.]
수호의 허슬플레이가 잭을 자극한 것이다.
그 자극은 공의 구위가 살아나는 결과를 낳았다.
-다저스의 상위타선을 모두 눌러버린 잭 휠러! 대기록까지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6개입니다!
7회를 끝내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수호는 그제야 바지를 갈아입었다.
“어우…… 제대로 찢어졌네.”
“상처가 꽤 쓰라릴 텐데. 괜찮아?”
트레이너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대충 처치만 해주세요.”
상처는 그저 살갗이 까진 것에 불과했다.
더그아웃 한편에서 치료하는 그의 모습은 타자들에게 또 다른 자극제가 되었다.
‘루키가 몸을 날리고 있는데…….’
‘우린 뭐 하고 있는 거냐?’
그들 역시 엘리트 운동선수였다.
승부욕만큼은 누구보다 강하다.
그런 그들인 만큼 수호의 허슬플레이에 자극을 받는 건 당연했다.
딱!!
-로버트 오타니의 4구를 강타! 삼유간을 가릅니다! 안타를 때려내는 조니 로버트!!
-필리스가 오타니의 공을 공략하기 시작합니다!
7회 말.
오타니 구위가 전반적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리드오프인 조니 로버트가 공략하기엔 충분할 정도로 말이다.
조니의 출루는 오타니에게 다른 숙제를 안겼다.
-원아웃 주자 있는 상황에서 오타니가 공을 던집니다!
타닥!!
-오타니의 발이 홈플레이트로 향하는 순간, 조니가 스타트! 포수 2루로 공을 뿌리지만, 여유롭게 베이스를 훔칩니다!!
-출루에 성공하자마자 바로 도루에 성공하는 조니의 공격적인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아~ 여기에서 다저스의 감독 고든이 마운드에 오릅니다!
조니를 상대하면서 오타니의 투구 수는 딱 100개를 채웠다.
사실 이 이상 던지는 것도 가능했지만, 고든은 오타니를 무리시키지 않았다.
-여기에서 오타니가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아무래도 이도류인 오타니 선수를 무리시키는 것보단 체력도 보존시키고 안정적인 선택을 하겠다는 걸로 보입니다.
-다저스는 불펜 역시 막강하니까요. 좋은 선택입니다.
1점 차.
언제든지 역전이 가능하다.
거기에 필리스는 기록이 깨지기 전까지 투수를 교체할 수 없다.
그 사실은 다저스에게 역전의 기회가 남았다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딱!!
-때렸습니다!!
그 기회는 7회가 끝나기 전, 타석에 들어선 수호에 의해서 더 멀리 날아갔다.
-주자 2, 3루의 찬스에서 들어선 한수호 선수가 날린 타구가 원바운드로 펜스를 때리면서 주자를 모두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한수호 선수는 2루까지 출루에 성공하면서 스코어는 3 대 0으로 벌어집니다!!
주자를 모두 불러들이는 2루타는 잭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 * *
8회.
마운드에 오른 잭이 오타니를 상대했다.
-초구 패스트볼에 이어 2구는 슬라이더, 빠지는 공을 오타니가 참아내며 볼카운트는 원볼 원스트라이크가 됩니다.
-비록 마운드는 내려갔지만, 여전히 지명타자로 경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한 시즌 3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오타니는 타자로서도 무서운 선수였다.
그리고 3구에서 그 진가를 드러냈다.
딱!!
-때렸습니다!!
바깥쪽으로 제구가 된 패스트볼을 오타니의 배트가 낚아챘다.
타구가 삼유간을 가르려는 순간.
퍽!
“아웃!”
-유격수 메이튼이 몸을 날려 타구를 낚아챕니다!!
-엄청난 슈퍼플레이가 나왔습니다! 타구 속도가 무려 107마일에 달할 정도로 제대로 맞은 타구를 잡아내는 동물적인 반사신경!!
-이게 바로 메이저리그 레벨의 수비입니다!!
그림 같은 호수비를 만들어낸 메이튼이 오타니의 안타를 지워버렸다.
가장 큰 고비를 넘긴 잭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남은 아웃 카운트는 5개!! 대기록을 향한 잭의 도전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