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54화
경기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경기 초반 역대급 벤치클리어링으로 시작한 필리스와 내셔널스의 경기도 어느덧 8회로 접어들었습니다!
현재 스코어는 7 대 3으로 필리스가 앞서고 있는 상황! 내셔널스의 네 번째 투수가 올라섭니다!
-내셔널스는 아직까지 경기를 포기하고 있지 않은 듯 투수를 교체하네요.
내셔널스는 오늘 경기를 일찌감치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평범한 경기가 아니라 필리스와의 경기였기 때문이다.
‘지면 팬들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어떻게든 따라잡아야 해.’
벤클까지 일어났던 경기다.
이대로 무기력하게 패배할 순 없다는 압박감이 내셔널스팀을 지배했다.
그리고 그건 필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루키가 저렇게 활약하는데. 우리라고 그냥 업혀 갈 순 없지.’
‘역전 같은 건 노릴 수 없을 정도로 점수를 벌려야 한다.’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이대로 놓칠 순 없지!’
주전들이 빠지면서 경기에 참여한 후보선수들.
거기에 기존의 선수들의 집중력까지 높아지면서 경기 후반임에도 수준 높은 경기가 펼쳐졌다.
* * *
한국의 평범한 직장인인 오성훈은 출근길에 몸을 실은 지하철에서 야구커뮤니티인 베이스볼 코리아에 접속했다.
‘오늘 메이저리그 경기들은 어떻게 됐으려나?’
메이저리그 경기는 한국 시간으로 새벽부터 이어진다.
광팬인 그는 라이브를 보고 싶었지만, 직장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출근길에 경기 내용을 확인하고 디테일한 반응을 챙겨보는 게 낙이었다.
사이트에 들어가자 다양한 게시글이 보였다.
그런데 최신 게시글들이 모두 한 선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수호 개쩌네
-오늘 한수호는 진짜 미친 듯
-한수호의 팝 타임이 얼마나 대단하냐에 대한 분석
-2루에서 홈까지 파고든 한수호의 주루플레이가 개쩌는 이유
한수호.
누군지 알고 있었다.
한국인 역대 최연소 마이너리그를 패스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
또한 가장 어린 나이에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때린 한국인 메이저리거.
메이저리그가 시작되고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다양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 선수였다.
엄청난 성적이었고 반응 또한 뜨거웠다.
하지만 몇 개의 페이지가 도배될 정도의 반응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은 5페이지가 모두 한수호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오성훈은 다급히 실시간 중계를 클릭했다.
실시간 중계는 문자로 상황을 전달해 주고 이용자들끼리 실시간 댓글을 통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서비스였다.
‘왜 이렇게 렉이 걸려?’
그런데 평소와 달리 렉이 제법 걸렸다.
딜레이가 있고 문자로 중계하는 곳이기에 이용자가 많지 않기에 평소에는 렉이 없었다.
그렇기에 느린 반응에 답답했다.
‘아, 접속됐다.’
접속이 되는 순간.
밀렸던 댓글이 한 번에 주르륵 올라갔다.
깜짝 놀란 오성훈이 사이트의 접속자를 확인했다.
-동시접속자 560,879명
“오…… 오십육만?!”
너무 놀라 입을 소리를 질렀다.
출근길 지하철이었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오성훈은 연신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스마트폰에 집중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댓글을 확인했다.
-오늘 한수호는 GOAT다.
-벤클 일어난 뒤로 주인공은 한수호다.
-플레이 하나하나가 하이라이트네.
-오늘 플레이만 모아도 하이라이트 한 편은 뚝딱이다.
-이 정도면 장례식장에서 살아생전 고인의 가장 쩌는 순간으로 틀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
-타격에 재능이 있는 건 알았는데. 오늘 포수 한수호의 재능이 더 빛나네.
└이건 재능 수준이 아님.
└└이미 메이저리그 정상급 포수 수준이지.
하나같이 수호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다.
‘요즘 한국에서 이 정도로 칭찬하는 선수가 있나?’
아무리 메이저리거라지만 한국인 팬들 중 일부는 인터넷에선 여포였다.
그들은 상대가 누구건 비판부터 하는 게 일상이었다.
상대가 한국인이든 아니면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선수든 말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었다.
도대체 오늘 수호가 어떤 활약을 했는지 궁금했다.
그때 하나의 댓글이 올라왔다.
-이제 홈런 하나면 사이클링 히트임.
그 말로 모든 게 이해됐다.
‘오늘 개쩔었구나.’
수호의 활약이 어땠는지.
* * *
수호가 첫 사이클링 히트를 터뜨린 건 고등학생 때였다.
레전드들과 만나고 그들의 능력을 얻게 되면서 히트 포 더 사이클을 기록했다.
그러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그런데 이제는 무대를 옮겨 프로 그것도 최고들이 모인 메이저리그에서 그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만약 9회 초에 타자가 한 명이라도 출루에 성공한다면 한수호 선수에게 기록에 도전할 기회가 생깁니다.
9회 초.
스코어는 다시 9 대 7까지 따라잡혔다.
필리스 입장에선 달아나는 점수가 꼭 필요한 상황.
선두타자부터 시작되기에 타순이 무척 좋았다.
그리고 이번 이닝에는 수호의 기록도 달려 있었다.
-1번 타자부터 필리스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수호는 벤치에 앉아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힘들다.’
거의 모든 이닝에 포수로 나오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도루까지 감행한 데다가 1회에 벤클까지 경험했었다.
체력적인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집중력이 서서히 떨어지는 게 느껴져.’
8회 수비 때부터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그래서 움직임이 조금 둔화되었다.
그런 걸 느끼면서 수호는 자신의 부족함에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훈련했는데. 고작 한 경기에 9이닝 동안 포수를 봤다고 이 지경이야?’
자신의 한심함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때 레전드들의 채팅이 눈에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됨.]
[지금 너는 평소의 상태가 아니다.]
‘예? 평소의 상태가 아니라뇨?’
[너의 한계보다 집중력이 높게 유지되면서 그만큼 체력적인 소모가 일어난 거야.]
[거기다가 우리의 능력에도 동기화 수치가 높아지면서 육체적으로 부담을 느낀 거고.]
[간단히 말해서 오늘 너는 120퍼센트의 힘으로 9이닝을 뛰고 있는 거임.]
[만약 평소대로 경기에 임했으면 9회까지 무난하게 버텼을걸?]
차사가 걱정했던 부작용이 바로 체력적인 부담이었다.
집중력은 레전드들과의 동기화를 강제로 상승시켰다.
그로 인해 그의 육체에 가해지는 부담이 평소보다 컸다.
당연히 체력 소모가 평소보다 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레전드들과 체력 훈련을 했다지만, 체력만큼은 단시간에 늘어나지 않는다.
매년 조금씩 성장시켜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나름 스케줄대로 너에게 체력 훈련을 시켰음.]
[ㅇㅇ 그런데 예상보다 빠르게 메이저리그로 올라온 거고.]
[거기에 네 능력이 우리의 예상보다 뛰어나서 체력의 한계를 넘은 거지.]
‘그 말씀은…….’
[9이닝을 뛰어서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네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준비시킨 우리 잘못이란 거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레전드들의 말에 수호는 위안을 느꼈다.
덕분에 냉정을 찾은 수호가 호흡을 골랐다.
‘선배님들이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는데…….’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든 체력을 조금이나마 회복시킬 생각이었다.
‘힘들다고 뻗을 순 없죠.’
그의 집중력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 * *
퍽!
“볼, 베이스 온 볼!”
-볼넷입니다!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 출루에 성공하는 대타, 게릿 선수!
대타로 타석에 들어선 게릿이 출루에 성공했다.
그리고 타석으로 수호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 타석에는 한수호 선수가 들어섭니다!
“와아아아아!!”
-한수호 선수가 타석에 서자 원정까지 온 필리스 팬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릅니다!
-이곳이 워싱턴인지, 필라델피아인지 헷갈릴 정도로 뜨거운 응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팬들의 엄청난 응원을 업고 타석에 선 수호가 가볍게 배트를 돌렸다.
-현재까지 4타수 3안타를 때려낸 한수호 선수, 그 3안타는 1루타, 2루타 그리고 3루타입니다!
수호의 오늘 경기 성적이 자막으로 나갔다.
모든 종류의 안타를 때려낸 수호, 뒤이어 화면 상단에 하나의 문구가 떴다.
-한수호 사이클링 히트 도전
-만약 이번 타석에서 홈런을 때려내면 한수호 선수는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에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는 최초의 한국인이 됩니다!
-단순히 최초의 한국인만이 아니라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연소의 기록을 얻게 됩니다.
메이저리그 최연소 기록.
종전에 이 기록을 가진 선수는 멜 오트였다.
그리고 그는 저승튜브를 통해 수호의 플레이를 보고 있었다.
[내가 1929년에 이걸 달성했는데. 설마 98년 동안 이 기록이 깨지지 않을지는 몰랐다.]
멜 오트.
뉴욕 자이언츠에서 17살에 데뷔한 그는 메이저리그 최연소 선수이자, 최연소 100홈런 달성자, 그리고 내셔널리그 최초로 500홈런을 달성한 선수였다.
또 하나의 최초의 기록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최연소 히트 포 더 사이클 달성자라는 점이었다.
[나는 20살에 이걸 달성했지만, 넌 아직 생일이 안 지났으니.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달성하게 되는 거다.]
멜 오트의 말대로였다.
수호의 생일은 10월 14일.
아직 19살의 나이로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즉, 멜 오트의 기록을 경신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는 거다.
“후우…….”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수호가 심호흡을 뱉고 자세를 잡았다.
-과연 한수호 선수가 기록 경신에 성공할 것인지! 사인을 교환한 투수가 공을 던집니다!
* * *
9회에 들어오기 전.
수호는 걱정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석에 서자 거짓말처럼 집중력이 다시 올라왔다.
‘신기하다.’
집중력이 높아지자 주위의 소음이 없어졌다.
뒤이어 야수들의 모습이 하나둘 사라졌다.
이내 투수와 자신만이 남아 일대일의 승부를 펼칠 수 있게 됐다.
슬라이드 스텝을 밟은 투수가 1구를 던졌다.
공이 날아오는 궤적이 보이고 그것이 어디를 통과할 것인지 그려졌다.
‘체인지업, 빠진다.’
예상대로 공은 바깥쪽으로 날아오다 뚝 떨어지면서 보더라인 밖으로 지나갔다.
퍽!
“볼.”
구심의 목소리가 늘어지듯 들려왔다.
이 현상은 깨지지 않고 2구와 3구에도 연달아 이어졌다.
퍽!
“스트라이크!”
바깥쪽 낮은 코스에 제구가 잘 된 공이었다.
때려도 홈런을 만들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일부러 흘려보냈다.
덕분에 볼카운트는 원볼 원스트라이크가 됐다.
삼구는 스트라이크존 중앙으로 날아드는 실투로 보였다.
하지만 예상 궤적은 마지막 순간에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수호는 배트를 돌리지 않고 이번에도 지켜봤다.
예상했던 궤적처럼 공은 존의 중앙으로 날아들다 밑으로 떨어지며 원바운드되었다.
퍽!
“볼.”
포수가 안정적으로 잡아내며 두 번째 볼이 올라갔다.
‘이번에는 승부를 할 거다.’
몸속에 내재되어 있는 기억들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수호는 그걸 믿었다.
사인을 교환한 투수가 슬라이드 스텝과 함께 4구를 뿌렸다.
쐐애애액-!!
맹렬하게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공의 궤적을 따라 수호가 스윙을 시작했다.
‘하체의 힘을 제대로 실어서…….’
휘릭!
하체를 시작으로 회전이 골반, 상체로 이어졌다.
수호는 회전력이 끊기지 않게 몸을 회전시키며 모든 힘을 극대화시켰다.
그렇게 충전된 힘은 손에 들린 배트를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회전시켰다.
후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돌아간 배트가 날아드는 공을 그대로 낚아챘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주위의 풍경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순간 수호의 눈에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타구가 보였다.
-한수호의 이 타구! 깊습니다!! 한수호 선수는 배트를 던졌고! 타구는 좌익수 뒤로! 좌측 담장!! 좌측 담장!!! 을 넘어갑니다!
허공을 수놓는 배트 플립과 동시에 수호의 사이클링 히트가 완성됐다.
-무려 98년 전!! 레전드 멜 오트가 세웠던 메이저리그 최연소 사이클링 히트 기록을 경신하는 한수호 선수!! 그가 1루를 통과해 다이아몬드를 돌기 시작합니다!!
1회에 이어 또 한 번의 배트 플립이 나왔다.
그라운드를 도는 수호를 향해 내셔널스 선수단의 눈빛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호는 그들의 눈빛을 피하지 않은 채, 그라운드를 돌았다.
-정말 대단합니다! 엄청납니다!! 이 어린 선수가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상황.
필리스 선수단은 만약을 위해 언제든지 뛰어나올 준비를 했다.
하지만 수호가 3루를 돌 때까지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고 수호는 무사히 홈플레이트를 밟을 수 있었다.
[야야, 멜 오트 승천하겠다.]
[와…… 얘가 이렇게 웃을 수 있구나.]
[우리 중에 가장 먼저 한을 푸는 게 이 녀석일 줄이야…….]
레전드들의 채팅을 보며 세리머니를 하려는 그때 구심이 수호를 향해 홈인 수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퇴장!!”
수호를 퇴장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