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49화
* * *
수호의 호수비로 시작된 경기는 박빙으로 이어졌다.
딱-!!
(잘 맞은 타구! 2루수 잡아 유격수에게 글러브 플립!)
“아웃!!”
(유격수 곧장 1루로 송구!! 원바운드 된 공을 다리를 찢으며 걷어올리는 한수호 선수!! 더블플레이가 완성됩니다!!)
(이야~정말 메이저리그다운 수비가 나왔습니다. 2루 베이스 위를 지나는 타구를 2루수가 다이빙캐치로 잡고 글러브로 토스, 선행주자를 잡은 뒤 바로 1루로 송구해서 더블플레이를 완성시켰어요!)
(한수호 선수의 캐치도 정말 일품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맞습니다. 한수호 선수가 이 더블플레이를 완성시켰어요. 190이 넘는 신장으로 저런 유연함을 보여주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1루수로서 처음 출전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인 수비를 연속해서 보여주고 있어요!)
수호의 1루 데뷔는 인상적인 장면을 여럿 남기면서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 1루수를 맡아보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안정적인 수비가 나오고 있었다.
‘이거 너무 예상밖인데?’
경기를 보는 마크 단장은 예상밖에 안정적인 수호를 보며 놀라고 있었다.
‘아무리 운동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이 정도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다니. 이러면 차라리 그를 1루수로 쓰는 게 낫지 않을까?’
그동안 리얼무토와 수호를 함께 쓸 방법을 강구했던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매디슨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수호의 포지션이 원래 포수였다고 그걸 고정적으로 생각했던 게 멍청한 짓이었어. 녀석의 재능은 하나의 포지션에 국한될 정도의 레벨이 아니었던 거야.’
처음 수호를 1루수로 출전시킬 때만 하더라도 기본만 해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이게 웬걸?
수호의 수비는 예상밖으로 더 뛰어났다.
이걸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재능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재능은 수비한정이 아니었다.
(첫 타석에선 아쉽게 유격수 정면으로 가는 타구로 물러섰던 한수호 선수, 두 번째 타석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첫 타석에서 수호는 2구만에 배트를 돌렸다.
잘 맞은 타구를 만들었지만, 유격수의 환상적인 점핑캐치에 그대로 돌아서야 했다.
그리고 돌아온 두 번째 타석.
첫 번째 타석보다 장타가 간절한 상황이었다.
(리얼무토가 2루타를 치고 나가있는 상황, 과연 한수호 선수가 그를 불어들일 수 있을지! 밀워키의 선발투수 앨런이 사인을 교환합니다.)
2사에 주자 2루 상황.
매디슨 감독은 수호가 여기에서 장타를 때려주길 바랬다.
‘최근 가장 페이스가 좋은 녀석이 해결을 해주는 게 가장 베스트다.’
데이터가 부족하지만, 수호의 타격감은 팀내에서도 수위권에 꼽혔다.
특히 득점권 찬스를 놓치지 않는 결정력을 보여주었다.
과연 그 모습을 이번에도 보여줄 것인지 기대됐다.
그 사실은 밀워키 배터리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루키지만, 개막전 이후 타격감이 뜨거운 녀석이지. 조심할 필요가 있어.’
밀워키의 주전포수인 윌리엄이 사인을 보냈다.
‘바깥쪽 낮은 코스로 반응을 보자.’
‘오케이.’
고개를 끄덕인 앨런이 세트포지션에 들어갔다.
(앨런 투수가 리얼무토를 눈으로 견제합니다. 리얼무토는 뛸 가능성이 거의 없죠?)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주력도 나쁘지 않아 간간이 뛰는 모습도 보여주었지만, 30대에 접어든 이후에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공 던집니다!)
쐐애애액-!
퍽!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입니다. 바깥쪽 낮은 코스의 보더라인에 정확히 걸치는 좋은 공입니다.)
(95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의 제구가 훌륭하네요.)
타석에서 물러난 수호가 장비를 점검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첫 타석보다 공이 더 좋아졌네.’
[몸이 풀렸단 거지.]
[원래 투수들은 1회보다 중반이 더 빡셈.]
[공의 회전력이나 구속이 좋아졌네.]
‘이제 좀 칠만해졌네요.’
[ㅇㅇ 그런듯]
[첫 타석때는 너무 공이 밋밋했지.]
[오히려 그래서 빗맞혔고 ㅋㅋ]
첫 타석에서 수호는 좋은 타구를 만들었다.
하지만 정타는 아니었다.
공이 예상보다 더 떨어졌고 그로 인해 중심이 아닌 배트의 약간 위에 맞으면서 라인드라이브성 타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공은 초구와 달랐다.
자신의 예상 궤적과 정확히 일치했고 수호는 다시 그걸 기다렸다.
퍽!
“볼.”
(떨어지는 커브를 잘 지켜보는 한수호 선수, 볼카운트는 원볼 원스트라이크가 됩니다.)
수호가 2구를 그냥 흘려보낸 걸 보고 윌리엄이 생각을 바꾸었다.
‘확실히 선구안이 좋은 편이야. 거기에 루키치고는 상당히 침착한 편이고.’
캐처박스에 앉아 있으면 많은 게 보인다.
그렇게 모인 정보를 가지고 투수를 리드하는 게 바로 포수의 역할이었다.
괜히 그라운드의 사령관이란 별명이 붙은 게 아니다.
새로운 정보를 모은 윌리엄이 사인을 보냈다.
‘한 번 더 바깥쪽으로 가자.’
‘오케이.’
초구에 반응하지 못했던 걸 떠올리며 윌리엄이 사인을 보냈다.
앨런 역시 오늘 패스트볼의 컨디션이 좋았기에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브레이킹볼에 내가 반응을 하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볼카운트를 잡으려 하겠지.’
타격자세를 취한 수호가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하지만 몸쪽이 강하다는 건 이 두 사람도 알고 있다. 그래서 첫 번째 타석이나 두 번째 타석의 초구가 모두 바깥쪽으로 형성된 것도 같은 이유겠지.’
수호의 집중력이 높아졌다.
‘이번에도 바깥으로 올 가능성이 크다.’
그의 분석은 정확했다.
세트포지션에서 슬라이드 스텝을 밟은 앨런이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바깥쪽을 날카롭게 찔러왔다.
하지만 초구보다는 더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수호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후웅!!
클로즈드 스탠스로 발을 내디딘 수호의 배트가 매섭게 돌아갔다.
딱!!
(때렸습니다!! 밀어 때린 타구 우익수 키를 넘어 노바운드로 담장을 때립니다! 리얼무토는 전력으로 달려 3루를 통과! 이제야 공을 잡은 우익수가 홈을 선택!!)
밀워키의 우익수 개럿의 어깨는 강견으로 소문이 나있었다.
그렇기에 홈으로 던지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그건 판단미스였다.
(리얼무토의 발이 더 빠릅니다! 홈 앞에서 슬라이딩! 윌리엄은 홈을 포기하고 앞으로 달려나가 공을 캐치! 곧장 2루로 뿌립니다!)
윌리엄이 홈으로 송구하는 걸 확인한 수호가 곧장 2루로 내달렸다.
그걸 본 윌리엄은 홈을 포기하는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
실제 그가 달려나가 포구했을 때는 이미 리얼무토의 손이 홈플레이트를 쓸고 지나간 뒤였다.
쐐애애액-!!
윌리엄의 손을 떠난 공이 정확히 2루수의 글러브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의 글러브가 수호를 태그했을 때는 이미 수호의 손이 2루 베이스 위에 올라간 상태였다.
수호가 반대쪽 손을 들어 2루심에게 달릴 의사가 없다고 알리자 2루심의 손이 좌우로 펼쳐졌다.
“세이프!”
(리얼무토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2루타를 작렬시키는 한수호 선수!! 필리스가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수호를 선발로 기용한 효과를 보기 시작한 필리스였다.
* * *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한수호 선수가 시즌 처음으로 1루수로 선발출전해 4타석 3타수 2안타 1홈런 1볼넷 2타점 1득점을 기록, 팀의 7 대 3 승리를 이끌었다.]
[한수호 선수는 이날 경기 MVP에 뽑히며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했다.]
한국에서 수호의 활약은 대서특필됐다.
당연히 팬들의 반응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 크으~역시 한수호다.
- 타격감 지릴 때 선발로 내야지.
- 필리스 애들이 확실히 한수호 밀어주는 듯.
- 대타로 나올 때마다 아쉬웠는데. 결국 포지션 바꾸는 선택을 하는구나.
- 오늘 수비 보니까 1루 수비도 개쩔던데?
ㄴ 그 정도임?
ㄴㄴ ㅇㅇ 운동센스가 장난 아님.
- 수비로도 하이라이트 영상 제법 뽑았는데. 타격이 그걸 넘어버리네.
- 얘는 뭐 나갔다 하면 홈런을 밥 먹듯이 치냐?
- 개막하고 7타수 5안타 2홈런임.
ㄴ 실화냐?
ㄴㄴ 현재 메이저리그 루키는 물론이고 전체 타자로 보더라도 얘보다 잘 치는 애 없음.
- 루키 시즌에 MVP 받냐?!
ㄴ 설레발 ㄴㄴ
ㄴㄴ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설레발 지리네.
- 일단 보통 놈은 아닌 듯.
개막 후 홈 8연전에서 수호는 압도적인 스탯을 쌓으며 필리스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매디슨 감독, 원정경기에서도 수호를 선발출전 시키도록 하죠.”
“물론입니다. 오늘 경기에서 봤듯이 그가 5번 타자로 출전하면서 타격의 연계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마크와 매디슨은 수호의 활약에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사이 수호는 필리스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첫 원정이네요.’
[그러고보니 원정경기는 처음이네.]
[이번에 어디로 가지?]
‘워싱턴이요.’
[어우...하필 첫 원정이 워싱턴이네.]
[ㅋㅋㅋ 야유 지리겠다.]
레전드들의 말대로 워싱턴에서의 야유는 어느 정도 각오해야 했다.
그 이유는.
“우리 슈퍼 루키, 뭘 그리 멍 때리고 있어?”
뒤에서 나타나 어깨에 손을 두르는 이 남자 때문이었다.
브라이스 하퍼.
그는 본래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뛰던 선수였다.
하지만 FA를 선언하면서 워싱턴과 조건이 맞지 않아 헤어지고 하필이면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필리스로 이적했다.
워싱턴 팬들 입장에선 배신을 맞은 기분이었고 당연히 야유를 쏟아냈다.
문제는 하퍼가 거기에 대고 배트플립을 날려버리는 광역도발을 시전했다는 점이다.
이후 두 팀의 라이벌리가 완성되었고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는 사이가 되었다.
“내셔널스랑 경기한다고 긴장하고 있는 거야?”
“설마요. 그냥 처음으로 전용기 타는구나 싶어서요.”
“푸하하! 그런 거에 감동이라도 받은 거야?”
“그거보다는 전용기가 메이저리그의 상징과도 같은 거 아닙니까?”
“하긴,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는 그 좁아터진 버스에서 고생 좀 했었지. 아, 너는 그런 고생을 한 적이 없겠구나?”
마이너리그의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은 수호를 보며 하퍼가 헤드락을 걸었다.
“생각해보니 열받네. 인마, 너는 그냥 버스 타고 와.”
“기브업! 기브업!”
“장난도 적당히 쳐라.”
그때 두 사람을 지나가던 리얼무토가 무심한 말투로 툭 던졌다.
“그런 장난치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무슨 쪽팔림이냐?”
“예이예이.”
실제 메이저리그에서는 장난을 치다가 부상을 당하는 사례도 많았다.
개에게 물리거나 욕실에서 미끄러져 부상을 입기도 했고 심지어 홈런 세리머니를 하다가 탈골이 되는 사례도 있었다.
“그나저나 J.T. 넌 작년에 아팠던 무릎은 좀 어떠냐?”
자연스레 두 사람과 이동하던 수호는 하퍼의 질문에 리얼무토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리얼무토가 로스터에서 빠지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뭐였지?’
[기억 안남?]
‘예. 기사가 나긴 했는데.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았어요.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선수가 아니었으니까요.’
리얼무토는 물론 필리스 구단도 한국에선 그리 높은 인기를 구가하진 못했다.
그 이유는 한국인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시 리얼무토의 로스터 제외에 대해 자세한 기사를 접하진 못했다.
수호 역시 크게 관심이 없었고 말이다.
덕분에 리얼무토의 부상이 어떤 이유로 발생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때 자신을 바라보는 리얼무토의 시선을 느꼈다.
뒤이어 리얼무토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올 시즌이 끝나고 마크와 미팅을 가질 생각이다.”
“응? 왜?”
“앞으로 10년은 더 뛸 수 있을 테니 연장계약을 해야 할 거 같거든.”
“이야~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거냐?”
“그래. 최고의 몸상태다.”
리얼무토의 대답에 수호는 알 수 있었다.
[이 녀석 아직도 널 견제하네.]
[ㅋㅋㅋ 확실히 타격능력만 놓고 보면 견제할만 하지.]
[1루수로 나가도 잠재적인 경쟁자는 맞으니까.]
[그래도 루키라고 무시하는 것보단 낫지.]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가 자신을 인정하고 있다.
그 사실이 수호의 경쟁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다가오던 클러비가 세 사람을 향해 외쳤다.
“헤이! 이 짐들 다 옮기면 되는 거지?”
“그래. 부탁할게!”
메이저리거들은 원정경기에서 직접 짐을 옮기지 않는다.
클러비라 불리는 구단직원들이 모든 짐을 옮겨주고 선수들은 몸만 버스에 실어서 전용기로 향하면 된다.
그들이 할 일은 경기에서 이길 수 있도록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것에 집중할 수 있게끔 구단의 시스템은 돌아가고 있었다.
‘이게 메이저리그구나.’
새삼스레 메이저리그 시스템의 대단함을 느끼며 수호는 필라델피아를 떠나 워싱턴으로 향했다.
첫 원정경기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