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후 메이저리거-46화 (45/340)
  • 회귀 후 메이저리거 46화

    * * *

    개막전이 끝났다.

    리얼무토가 9이닝을 모두 소화하면서 수호가 나설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한수호 선수가 결국 개막전에 나오지 못한 채, 게임이 마무리됩니다.)

    (아무래도 강한 경쟁자가 있으니 기회를 얻는 게 쉽진 않을 겁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은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고졸 선수의 메이저리그 직행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리얼무토라는 산은 너무 거대했다.

    [J.T리얼무토 개막전 MVP에 선정.]

    [3타수 3안타, 1홈런을 기록한 리얼무토, 필리스의 개막전 승리를 이끌다.]

    필리스의 기사가 한국에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동안 한국과는 큰 연관이 없던 팀이 필라델피아 필리스였다.

    간혹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뛰긴 했지만, 인상적인 활약은 펼치지 못했다.

    짧으면 몇 개월에서 길어야 2년을 뛰고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팀을 떠났다.

    인기가 생기려면 팀을 떠나니 애정을 두는 사람은 찐팬들밖에 없었다.

    - 필리스 또 한국인 무덤 되냐?

    - 이제 시작인데 왜 그러냐?

    - 아무리 그래도 상대가 너무 강하잖아.

    - 붙박이 안방마님인 리얼무토를 어떻게 제끼고 마스크 쓰냐?

    - 아무리 백업이라도 무슨 빈틈이 보여야지.

    - 쟤는 뭐 30대 중반에 개막전 MVP를 먹냐?

    - 그러니 꾸준함의 대명사지.

    포수는 부상이 심한 포지션이다.

    앉았다 일어서는 자세를 경기 내내 해야 한다.

    아무리 튼튼한 선수라도 무릎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거기에 어깨의 소모도 다른 포지션에 비해 심했다.

    물론 투수만큼은 아니었지만, 거의 매일 출전해야 하는 포수의 어깨소모는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도 리얼무토는 큰 부상 없이 30대 중반까지 리그 최정상급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거기에 공격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그를 뚫는 건 쉽진 않았다.

    ‘역시 리얼무토야.’

    [확실히 잘하긴 하네.]

    [오늘 경기 직접 보니까 안정감이 다르긴 하더라.]

    [2루 송구도 깔끔했지.]

    [홈블로킹도 상당히 안정적이었고.]

    [거기에 타격도 좋았음.]

    레전드들도 인정할 정도로 리얼무토의 오늘 활약은 훌륭했다.

    [오늘 경기 소감이 어떰?]

    요기 베라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수호가 대답했다.

    “리얼무토를 이기고 마스크를 쓰는 게 쉽지 않다는 걸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렇지?]

    “예. 그리고 시범경기가 메이저리그의 전부가 아닌 것도 알게 됐어요.”

    [거기까지 봤음?]

    [시범경기도 어차피 선수들에게는 컨디션 끌어올리기에 불과하지.]

    [진정한 실력은 페넌트레이스가 시작된 뒤야.]

    [오늘 경기가 그들의 전력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7-80퍼센트는 될 거다.]

    시범경기와 페넌트레이스.

    날짜로만 따지면 며칠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선수들의 실력만 놓고보면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그것만 보더라도 선수들이 시범경기의 성적에 얼마나 큰 의미를 두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 기회는 올 거다.]

    [네가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결정력이라면 감독도 너라는 카드를 잊어버리지 않고 있을 거야.]

    [그 기회를 잡지 못하면 한 달 내내 벤치만 달구다가 내려갈 수도 있어.]

    “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수호는 가만히 앉아서 기회를 기다리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나라는 카드를 더 각인시켜야 해.’

    * * *

    다음 날.

    2차전을 앞두고 선수들이 훈련에 나섰다.

    경기가 기다리고 있기에 선수들의 훈련은 그리 강도가 심하진 않았다.

    선수들 역시 그러한 부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볍게 훈련에 임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딱-!!

    딱-!!

    수호만은 훈련에서도 진심으로 움직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수호 녀석의 타구가 계속 담장을 넘기는군.”

    “아무리 연습배팅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의 타구를 계속 넘기는거면 확실히 타격감이 괜찮은 거 같은데요?”

    “거기에 무력시위를 겸하고 있는 거 같군.”

    “무력시위라 하시면...?”

    “자기를 실전에 내보내달라고 말이야.”

    “아...”

    아무리 배팅볼이라 하더라도 저렇게 담장밖으로 타구를 날려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실전과 달리 배팅볼의 구속은 80마일 초반에 형성되어 반발력이 약하게 나온다.

    가지고 있는 파워가 약하면 타구를 담장 밖으로 날려보내기 힘들었다.

    ‘거기에 컨택능력도 중요하지.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배팅들이다.’

    저런 무력시위를 보고 있으니 그가 배터박스에 서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됐다.

    ‘그럼 기회를 줘볼까?’

    단장인 마크 레이어도 기회가 되면 수호를 출전시키라는 언질을 줬었다.

    딱!!

    “오오-! 이번에도 큼직막하네.”

    “저 녀석 컨디션 정말 좋은데?”

    동료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수호란 카드를 쓸 시간을 기다렸다.

    * * *

    개막시리즈 2차전.

    뉴욕 메츠의 선발투수는 크리스 월튼이 마운드에 올랐다.

    (작년 시즌 크리스 월튼의 활약이 대단했죠?)

    (그렇습니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래 최다승인 21승을 거두면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2위에 오르는 등,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습니다.)

    (과연 올해도 그런 활약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많은 기대를 안고 마운드에 오른 크리스의 피칭은 매서웠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1회 삼구삼진을 포함한 탈삼진 2개를 잡아내면서 좋은 컨디션을 예고하더니 5회까지 노히트로 필리스 타선을 봉쇄했다.

    [잘 던지네.]

    [공도 빠르고 제구도 나쁘지 않은데?]

    [요즘 애들 구속이 하나 같이 90마일 후반은 그냥 나오네.]

    레전드들과 함께 경기를 보고 있는 수호도 크리스의 공이 좋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볼의 회전력이 좋아서 공이 생각보다 덜 떨어져서 타자들이 애를 먹고 있네요.’

    [정답.]

    [라이징 성으로 공이 들어오네.]

    [거기에 변화구도 하나하나 수준이 높다.]

    자신이라면 어떻게 상대할까?

    수호는 생각에 잠겨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포수라면 루키를 상대로 크리스에게 어렵지 않은 리드를 할 거야.’

    머릿속에 그라운드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졌다.

    현재의 모습이 아닌 자신이 타석에 선 상황이었다.

    더 놀라운 건 거기에서 끝난 게 아니고 머릿속에 그려진 그라운드에서 경기가 진행된다는 거였다.

    ‘알바레즈의 사인은 패스트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코스는 몸쪽보다 바깥쪽으로 정하겠지.’

    메츠의 알바레즈가 되었다 생각하고 수호는 생각을 이어나갔다.

    ‘크리스의 오늘 제구력은 좋다. 1구가 날카롭게 바깥쪽 낮은 코스를 찌를 거야. 이걸 때린다고 해도 좋은 타구를 만드는 건 어렵다.’

    생각을 이어나가자 시뮬레이션 크리스가 와인드업에 이어 공을 뿌렸다.

    공은 예상대로 바깥쪽 낮은 코스를 정확히 찔렀다.

    보더라인에 살짝 걸치는 공이었고 가상속의 자신이 배트를 돌렸다.

    예상대로 타구는 좌익수 정면으로 날아가 그대로 글러브에 들어갔다.

    ‘초구에 내가 배트를 돌리지 않았다면...’

    시뮬레이션 공간이 마치 비디오처럼 되감기가 되었다.

    이번에는 배트를 휘두르지 않고 스트라이크 카운트가 하나 올라간 상황.

    크리스가 와인드업에서 공을 뿌렸다.

    ‘커브로 내 배트를 유인할 가능성이...’

    그때였다.

    [테드 윌리엄스님이 1000노잣돈을 후원하셨습니다.]

    [인마, 뭐하냐?]

    갑작스런 소음에 집중력이 깨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경기는 어느덧 6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뭘 그렇게 넋을 놓고 있어?]

    [경기에 집중 안하냐?]

    ‘뭐지...?’

    [뭐가?]

    [얘 왜 이래?]

    [너 상태 좀 메롱이다?]

    레전드들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하지만 그게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방금 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그런 수호의 바램과 달리 타격코치인 우드워드가 다가왔다.

    “한, 준비해.”

    “예?”

    “대타야.”

    * * *

    대기타석에 선 수호는 현재 상황을 파악했다.

    ‘스코어는 1 대 3으로 메츠가 앞서고 있는 상황.’

    5회까지 크리스에게 노히트로 끌려가던 필리스였다.

    하지만 6회 접어들어 크리스 하퍼의 솔로홈런이 터지면서 추격의 의지를 불태웠다.

    거기에 리얼무토가 볼넷을 얻어내며 1루에 주자로 나가있는 상황.

    하지만 후속타가 터지지 않으면서 아웃카운트가 하나 올라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대타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 집중 안하냐?]

    [뭔 이제 와서 경기상황을 판단하고 있어?]

    [정신을 어디에 팔고 있냐?]

    레전드들의 질책이 이어졌다.

    맞는 말이다.

    어쩌자고 이상한 곳에 정신을 팔고 있었던 걸까?

    그때 하나의 후원이 도착했다.

    [조시 깁슨님이 1000노잣돈을 후원하셨습니다.]

    [지금은 게임에 집중해라.]

    조시 깁슨의 후원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후우...”

    그가 타석에 들어서자 알바레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첫 타석이라 그렇게 긴장한 거야? 긴장 좀 풀어, 어차피 기록 만들기에 불과한데 뭐.”

    긴장한 듯한 수호에게 부담을 주기 위한 도발이었다.

    비록 집중력이 떨어졌다지만, 이런 수준낮은 도발에 넘어갈 정도로 흔들리고 있진 않았다.

    자신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알바레즈는 수호의 상태를 체크했다.

    ‘무시할 정도로 정신은 있다는 거네. 하지만 데뷔 첫 타석이니만큼 시야가 좁을 수밖에 없겠지.’

    알바레즈가 사인을 보냈다.

    ‘루키를 상대할 때는 괜히 복잡하게 갈 필요 없어. 어차피 정신없어서 배트를 돌릴 테니까. 바깥쪽 낮은 코스로 가자.’

    ‘오케이. 꽁으로 아웃카운트 하나 잡아내자고.’

    사인을 교환한 크리스가 세트포지션에 들어갔다.

    좌투인 그의 시선이 1루에 있는 리얼무토를 견제하고 슬라이드 스텝을 밟았다.

    콰직!

    그리고 회전과 함께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바깥쪽 낮은 코스를 정확히 찔러왔다.

    ‘뭐지?’

    수호는 그걸 보며 기시감을 느꼈다.

    ‘분명 상상속에서 일어났던 일인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배트를 돌리지 않았다.

    공은 그대로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 미트에 꽂혔다.

    동시에 구심의 손이 올라갔다.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입니다! 보더라인에 절묘하게 꽂히는 좋은 공에 한수호 선수가 움직이지 못합니다!)

    (데뷔 첫 타석을 맞이한 한수호 선수가 긴장한 모습이 눈에 보이네요.)

    타석에서 물러난 수호가 가볍게 배트를 돌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뭐지? 상상으로 경험했던 게 현실에서 그대로 펼쳐지다니...?’

    회귀 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너 왜 그러냐?]

    [상태 너무 메롱이네.]

    [긴장했냐?]

    ‘그게 아니라...’

    레전드들의 채팅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때 조시 깁슨이 다시 채팅을 쳤다.

    [다음 공이 뭐가 올지에만 집중해라.]

    ‘그게...’

    수호는 말을 삼켰다.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할 현상을 이야기해봐야 이해시키기 힘들 거 같았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몸이 말하고 있었다.

    크리스가 던질 다음 공이 무엇인지를.

    타격자세를 잡자 알바레즈가 사인을 보냈다.

    ‘이번에는 허를 찌르자고.’

    ‘오케이.’

    고개를 끄덕인 크리스가 세트포지션에서 공을 뿌렸다.

    빠르게 날아오는 공에 맞춰 수호가 발을 내디뎠다.

    타닥!

    그리고 하체를 돌리자 알바레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바로 낚일 거라고 생각했다.’

    수호의 스윙 타이밍은 완벽하게 패스트볼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공은 그런 수호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갑자기 밑으로 뚝 떨어졌다.

    알바레즈는 수호가 패스트볼을 노릴 걸 예상하고 브레이킹볼 사인을 보냈던 것이다.

    속도와 궤적 모든 게 어긋난 수호의 배트가 허공을 가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왜 안 돌아?’

    수호의 배트가 여전히 눈앞으로 지나가지 않았다.

    거기에 그의 자세가 낮아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설마...!’

    그때 공의 궤적이 밑으로 뚝 떨어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수호의 배트가 매섭게 돌아갔다.

    후웅!!

    딱!!

    배트가 그대로 공을 낚아챘다.

    깜짝 놀란 알바레즈가 마스크를 벗고 자리에서 일어나 타구를 눈으로 쫓았다.

    “말도 안 돼...”

    그의 두 눈에 잡힌 타구는 삽시간에 좌측 담장을 넘겨버렸다.

    “와아아아아-!!”

    “한! 한! 한! 한!!”

    (한수호 선수!!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기록합니다!!)

    (엄청난 파워를 보여주는 한수호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보는 이들을 모두 놀라게 만드는 타구였다.

    그리고 때린 수호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진짜 커브로 들어왔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머리가 복잡할 때 조시 깁슨의 채팅이 올라갔다.

    [너 이 장면 봤었지?]

    그는 무언가 알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