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45화
* * *
시범경기가 끝났다.
수호는 숙소의 짐을 챙기면서 의문을 가졌다.
‘왜 아직까지 별 다른 이야기가 없을까요?’
[그러게.]
[분명 어디로 가라고 이야기를 할 텐데.]
[티켓이라도 끊어주지 않나?]
[아니, 어차피 같은 플로리다니까. 그냥 가라는 건가?]
필리스의 로우 싱글A구단인 클리어워터 쓰레셔스는 플로리다에 위치해 있었다.
비행기를 타야 할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기에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만약 그게 맞다면 서운함이 앞섰다.
‘그래도 시범경기에서 나름 활약 좀 한 거 같은데. 예정대로 싱글A로 가나 보네요.’
[어쩔 수 없지.]
[메이저리그가 좀 보수적임.]
[근데 솔직히 내가 단장이었으면 바로 메이저 데뷔시켰다.]
[ㅇㅈ.]
[팀내 홈런 1위이면 메이저 데뷔각이지.]
레전드들의 반응도 갈렸다.
그런 반응을 보면서도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 채, 짐을 챙기고 있을 때였다.
똑똑.
“저 데니스입니다.”
구단직원인 데니스의 방문에 드디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자 데니스가 곧장 본론을 꺼냈다.
“마침 짐을 싸고 계셨군요. 잘 됐습니다. 짐은 저기 있는 캐리어가 전부인가요?”
“예. 쓰레셔스로 이동하면 되나요? 아, 그리고 집은 어떻게 하죠? 분명 계약사항에 구단에 거주지를 지원해주기로 되어 있는데. 구단에서 클리어워터쪽에 집을 얻어주는 형태인가요?”
너무 오래 기다린 탓일까?
데니스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수호가 폭풍질문을 쏟아냈다.
그의 말을 유심히 듣던 데니스가 웃으며 말했다.
“클리어워터에 방이나 호텔을 잡아드리는 건 상관없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출퇴근 거리가 너무 멀 텐데요.”
“예?”
“플로리다에서 필라델피아까지 출근하시려면 전용기 하나를 구매하셔야 할 텐데. 그건 아직 힘들지 않겠습니까?”
“필라델피아요...?”
“메이저리그에서 시작하실 겁니다. 거주지는 당분간 구장 인근의 호텔로 잡아드리도록...”
“정말입니까? 제가 메이저리그에서 스타트한다고요?”
“예. 그렇게 확정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소식에 잠시 넋이 나간 수호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데니스와 이야기를 나누고 수호는 곧장 가족들에게 메이저리그 데뷔가 확정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미 한국으로 돌아갔기에 확인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시라도 빨리 알리고 싶었다.
할 일을 끝내고 나니 수호는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 얼굴로 창밖을 바라봤다.
“메이저리그에 바로 데뷔라니...”
[와...이건 좀 예상밖인 듯.]
[구단이 서비스타임을 포기한 건가?]
[아니면 수호를 올해의 신인급으로 봤다는 소리겠네.]
[뭔솔임?]
[CBA 룰에 추가됐잖아. 올해의 신인 득표에서 1, 2위 하면 콜업시기에 상관없이 서비스타임 1년 주는 걸로.]
[진짜?]
[CBA 좀 확인해라.]
[아니, 이미 죽었는데. 그거까지 확인해야 함?]
투닥거리는 레전드들의 채팅이 올라갔다.
하지만 모두가 꽃길 전망만을 이야기하진 않았다.
[메이저리그 데뷔 축하한다.]
테드 윌리엄스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기간이 제한되어 있을 거다.]
‘역시 그렇겠죠? 한 달 정도로 생각하면 될 거 같은데, 어떻게 보세요?’
[그 정도로 보면 되겠지.]
[확실히 한 달 안에 올해의 신인급 활약이 나오지 않는데. 계속 데리고 있을 이유는 없지.]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바로 마이너에 보내겠네.]
[다시 올리는 건 더욱 신중해질 거고.]
[거기에 올린다 해도 시즌 후반이나 되어야 가능하겠네.]
[서비스타임 생각하면 그렇겠지.]
한 번 냉정한 의견이 나오자 관련된 이야기가 쏟아졌다.
그 이야기들을 모두 종합한 수호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결국 제가 4월 한 달 간, 올해의 신인급 활약을 펼치면 마이너리그로 보낼 이유는 없겠군요.’
[그렇지.]
[정답이다.]
[ㅋㅋㅋ 대답 한 번 시원시원하네.]
목표는 정해졌다.
이제 필요한 건 그것을 향해 달릴 뿐이었다.
* * *
수호의 메이저리그 데뷔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한수호! 마이너리그가 아니라 메이저리그 데뷔 확정!]
[한국인 역사상 두 번째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아마추어 선수! 고졸 선수로는 최초의 기록을 작성한 한수호!]
[시범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한수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데뷔를 하게 되었다.
필리스 구단의 단장, 마크 레이어는 인터뷰를 통해 한수호 선수를 마이너리그가 아닌 메이저리그에 데뷔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수호의 메이저리그 직행은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 팩트임?
- 진짜냐?
- 아니, 마이너리그를 안 보낸다고?
대부분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야구를 좀 아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을 게시했다.
- 유망주를 손에 넣었으면 마이너리그부터 좀 키우지.
- 너무 성급한 결정 같은데?
- 메이저리그에 바로 데뷔시킨다고 꼭 좋은 건 아닌데.
- 서비스타임은 어쩌려고 필리스가 바로 데뷔를 시키냐?
- 너무 어린 나이에 데뷔시켜서 메이저에 잘 적응할지 모르겠네.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그동안의 상식을 무너트리는 필리스 구단에 의문을 던졌다.
하지만 온전히 이 사실을 반기는 이들이 더 많았다.
- 크으~간만에 메이저리그 볼만하겠네.
- 루키가 바로 메이저 직행이라니!
- 그것도 고졸임.
- 시범경기부터 떡잎부터 다르긴 했지.
- 기회는 줘도 된다고 봄.
- 리얼무토도 좀 쉬게 해줘야지.
여러 토론을 불러 일으키게 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수호의 존재를 한국과 미국 모두 분명히 알렸다는 사실이다.
* * *
최소 1년은 걸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호는 생각보다 일찍 필라델피아에 입성했다.
그리고 데니스의 도움을 통해 인근의 호텔에 짐을 풀었다.
“앞으로 페넌트레이스가 진행될 동안에는 호텔의 비용은 구단에서 지급할 겁니다. 물론 마이너리그로 내려가게 된다면 그쪽에 다시 거주지를 알아봐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월급의 지급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월급이요?”
“예. 첫 로스터 등록이니 최저연봉인 90만 달러가 일수에 맞춰 매월 15일과 말일에 수표 혹은 계좌이체로 받을 수 있습니다.”
“아...그럼 계좌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미국 계좌가 있으신가요?”
“예. 계좌번호는...”
수호는 미국으로 건너오자마자 계좌를 개설했었다.
외국인이기에 다소 복잡하긴 했지만, 어차피 취업비자로 온 것이기에 어려울 거까진 없었다.
[ㅋㅋㅋ 수호 벌써부터 머리 아파하네.]
[메이저 올라오면서 해야 할 게 많긴 하지.]
[이제 슬슬 에이전시를 알아보긴 해야겠다.]
[ㅇㅈ 언제까지 이런 자잘한 것들을 직접 처리할 순 없지.]
[에이전트한테 맡겨야 할 일을 직접 하네.]
수호는 아직 에이전트와 계약을 맺지 않았다.
마이너리그로 갈거라고 예상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빨리 메이저리그로 오게 되면서 에이전트의 필요성이 커졌다.
‘본격적으로 알아보긴 해야겠어요.’
[그래야지.]
“연봉 지급은 메이저리그 일수에 맞춰서 지급될 겁니다. 만약 중간에 마이너리그로 가시게 되면 그 일수만큼 지급됩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통역은 필요 없으시죠?”
“예. 괜찮습니다.”
데니스는 그 외에도 몇 가지 사안을 더 체크하고 나서야 스마트폰을 껐다.
“혹시 문의하실 게 있으시면 저한테 연락주시면 됩니다. 메이저리그에 있는 동안에는 제가 한수호 선수의 담당이 되어 움직일 예정이니까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오랜 시간 한수호 선수의 담당으로 있고 싶네요. 그럼 편히 쉬세요.”
그 말을 끝으로 데니스가 돌아갔다.
‘오랜 시간이라...’
[돌려서 말하긴 했지만, 결국 메이저리그에 오래 남아 있으라는 이야기 아니겠음?]
[그렇겠지.]
[아무래도 한국인 핏줄이라 그런지 신경도 많이 써주는 느낌이다.]
[보통 직업이면 저 정도로 자세히 설명은 안해주지 ㅋ]
레전드들의 말에 동의하면서 수호는 창밖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빨리 이 풍경을 보게 됐네요.’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물론입니다.’
시한부로 받은 메이저리그에서의 도전.
실패하면 독이 될 것이고 성공하면 엄청난 이득으로 돌아오게 된다.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 * *
다음 날.
개막전을 앞두고 수호는 선수노조에 연락을 넣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노조는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노조였다.
메이저리그에 소속된 선수라면 도움을 받을 수 있기에 수호는 레전드들의 조언에 따라 연락을 취했다.
(담당자인 롭입니다.)
“예. 다름이 아니라 제가 에이전시를 알아보고 있어서요.”
(그러시군요. 그럼 선수노조에 등록된 에이전트들과 에이전시에 명단을 올려드릴까요?
그렇게 되면 연락처가 공유되서 미스터 한에게 연락이 갈 겁니다.)
메이저리그 에이전트가 되기 위해서는 선수노조에서 실행하는 시험에 통과하고 등록해야 한다.
즉, 선수노조를 통해 에이전트를 알아보면 최소한 잘못된 이들과 연결된 일은 없다는 소리였다.
“알겠습니다.”
연락을 끊은 수호는 한숨을 돌렸다.
‘역시 메이저리그네요. 이런 시스템도 잘 되어 있고.’
[메이저리그가 잘 돌아가는 이유중에 하나가 리그, 구단 그리고 선수노조의 힘이 비등하기 때문이지.]
[선수노조가 약했으면 오타니가 5억 달러도 못 받았을걸?]
[거기에 CBA에서도 구단들에게 뒷통수를 얻어 맞았을 거고.]
선수노조의 힘을 새삼 깨닫고 있을 때, 잭 휠러가 그에게 다가왔다.
“누구랑 그렇게 오래 통화했어? 애인?”
“아직 싱글입니다.”
“하하! 그래? 이거 좀 미안해지는데.”
“에이전트 좀 알아봐야 해서 노조쪽이랑 연락했어요.”
“너 아직 에이전트가 없었어?”
“네. 마이너리그로 가는 게 거의 확실했으니까. 굳이 급하게 구할 이유가 없었거든요.”
“한국에서는?”
“제가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요.”
“음, 뭐...그건 그렇다만. 그래도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게 되면 상당히 어려울 거야.”
“그러니 구해야죠.”
“방금 누구랑 통화한 거야?”
“노조에 연락하니 담당자인 롭이라는 분과 연결되던데요?”
“롭? 책임자는 아니고 직원 중 한 명인가 보네. 잠깐, 있어봐.”
잭 휠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누군가와 통화를 시작했다.
“예, 그럼 그렇게 부탁하겠습니다.”
이내 전화를 끊은 그가 다가왔다.
“누구와 통화하신 거에요?”
“선수노조 사무장으로 있는 양반. 너한테 연락갈 에이전트들을 일차적으로 노조측에서 걸러주라고 부탁 좀 해뒀어.”
“그게 가능해요?”
“일반직원들 입장에선 번거롭고 의무는 아니니까, 꼭 해줘야 하는 일은 아니지. 하지만 위에서 지시하면 해야 하는 일이야.”
수호는 새삼 잭 휠러의 경력을 떠올렸다.
[짬이 다르긴 하네.]
[하긴 휠러 정도면 노조측 수뇌진들과도 잘 알겠지.]
[그나저나 휠러가 어지간히 널 좋게 봤나 보네.]
[그러게. 귀찮은 일도 먼저 나서서 처리해주고.]
레전드들의 말대로였다.
휠러 덕분에 처음 같이 호흡을 맞췄고 이번에 또 도움을 받았다.
수호는 고마움에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제 같은 팀 동료가 됐으니 선물이라고 생각해. 자, 훈련이나 계속 하자.”
“옙!”
두 사람은 개막전을 앞두고 마지막 몸풀기에 들어갔다.
* * *
메이저리그 개막전.
장장 7개월간의 여정을 시작하는 경기였다.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홈구장에서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최강이라 평가받는 뉴욕 메츠를 맞이했다.
그리고 이 경기는 한국에도 그대로 중계되면서 한국팬들의 기대를 그대로 나타냈다.
(전국에 계신 야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고모! 고모! 시작했어요!!”
캐스터의 멘트와 함께 중계가 시작되자 수빈이 목청을 높였다.
그러자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고모가 고무장갑을 내팽개치고 달려와 수빈의 옆에 앉았다.
“수호는? 우리 수호는 나왔니?”
“아직 안나왔어요. 아마 선발이 아니라서 경기장에 없나 봐요.”
카메라가 경기장 전경을 비추었다.
(오늘 경기에서 선발을 맡은 선수는 필리스의 에이스, 앤드류 페인터입니다.)
(작년 시즌 18승 11패 평균자책점 2.88과 함께 탈삼진 220개를 잡으면서 커리어 하이시즌을 보냈죠.)
(그리고 같이 호흡을 맞출 포수는 필리스의 안방마님, J.T리얼무토입니다.)
“오빠 좀 보여주지...”
마스크를 쓴 선수가 수호가 아닌 걸 알았는지, 아쉬움을 표하는 수빈이었다.
그때 카메라가 더그아웃을 비추었다.
거기에는 난간에 서서 경기를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는 수호가 있었다.
“아! 오빠다!!”
(더그아웃에 한수호 선수가 보이는군요.)
(한국인 선수로는 역대 두 번째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한수호 선수, 오늘 경기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아이고! 우리 수호네! 수호가 맞아!”
TV를 통해 보는 조카의 모습에 고모가 박수를 치며 반가움을 표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함께 있었지만, 벌써부터 그리운 오빠의 모습에 수빈 역시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빠, 파이팅...!’
수빈의 응원과 함께 개막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