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44화
* * *
포수는 야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맡고 있는 중책에 비해 화려함은 덜한 포지션이었다.
그러나 오늘 수호의 플레이는 그가 정말 포수인지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장면들을 연출했다.
퍽!!
(원바운드 된 공을 몸으로 막아내는 한수호 선수! 2루로 뛰려던 주자가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번 공은 완벽하게 빠지는 공이었는데. 한수호 선수가 몸으로 잘 막았습니다!)
수호의 블로킹은 투수들과 팬들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블로킹에 실패하거나 공이 뒤로 빠지면 투수들은 자신의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한다.
하지만 수호는 매번 블로킹에 성공하니 투수들이 온전히 자신의 공을 던질 수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투아웃 상황에서 올라온 필리스의 세 번째 투수, 앨런이 투스트라이크를 잘 잡아냅니다.)
(작년 시즌 필리스 불펜의 한축을 이루어주었던 앨런 선수가 올 시즌에도 준비를 잘해왔네요.)
(사인을 교환한 앨런이 4구를 던집니다.)
앨런이 던진 슬라이더가 타자의 바깥쪽으로 흘러나갔다.
배트를 내밀던 타자가 볼이라 판단하고 배트를 멈췄다.
그의 예상대로 공은 존을 벗어나 수호의 미트에 꽂혔다.
그 순간, 수호의 미트가 미세하게 움직이며 존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동작이었지만, 결과를 바꾸기엔 충분했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구심의 손이 올라가면서 세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앨런!)
(아~이번에는 앨런 선수보다 한수호 선수를 칭찬하고 싶네요.)
(마지막 순간에 프레이밍으로 스트라이크를 만들어냈죠?)
(정확합니다. 뒤에 있는 구심이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고 재빠른 동작이었습니다.)
(억울함을 느낀 타자가 구심에게 항의하지만, 판정은 바뀌지 않습니다! 한수호 선수가 아웃카운트를 만들어내면서 팀의 무실점을 이끕니다!)
한 경기 안에서 수호는 포수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주었다.
그런 수호의 모습에 필리스 팬들은 매료됐다.
“한! 네가 최고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루키가 찾아왔네!”
“저 녀석은 두고두고 잘 키워야 해!”
“타격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포수도 제대로 볼 줄 아는구나?!”
“네가 리얼무토의 후계자다!”
성급한 성격의 몇몇 팬들은 벌써 리얼무토의 후계자로 수호를 언급할 정도였다.
그만큼 오늘 경기에서 수호가 보여준 포수로서의 능력은 대단했다.
또한 타격에서도 좋은 모습을 이어나갔다.
(첫 번째 타석에서 안타, 두 번째 타석에서 볼넷을 얻어내며 멀티출루에 성공한 한수호 선수, 주자 2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섭니다.)
(예상밖으로 한수호 선수가 공수에서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놀라움을 주고 있습니다.)
공격과 수비가 모두 좋은 포수는 찾기 어렵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리얼무토가 최고의 포수로 인정받는 이유도 공수에서 모두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호가 공수에서 모두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면서 확실한 눈도장을 찍고 있었다.
* * *
수호의 첫 번째 시범경기 선발출전이 마무리됐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한수호 선수가 첫 선발출전에서 3타수 2안타 1득점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대타로 출전했던 이전 경기와 달리 마스크를 쓰고 직접 캐처박스에 앉은 그는 9이닝동안 투수들의 공을 받으며 단 1실점만을 기록하게 만들며 포수로서도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수호의 소식을 접한 팬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 수호가 타격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 오늘 경기 한수호 하이라이트 없냐?
ㄴ 루키라서 아직 없는 듯.
- 타격도 잘하고 수비도 잘하네.
- 진짜 필리스 리얼무토 후계자로 수호 키우려는 건가?
ㄴ 가능성 높을 듯.
ㄴㄴ 벌써 선발기회 얻은 거 보면 충분하지.
- 메이저리그 직행 각 섰냐?!
팬들은 하나 둘 수호의 메이저리그 직행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가장 큰 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의 필리스 페이지에도 수호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됐다.
- 한은 무조건 메이저리그로 보내야 함.
ㄴ 그래도 마이너리그에서 천천히 키우는 게 낫지 않을까?
ㄴㄴ 나도 전에는 너처럼 생각했는데. 오늘 경기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음.
- 솔직히 필리스 백업포수들은 지금의 한보다 기대치가 낮긴 하지.
- 풀시즌을 치를 체력이 될지 미지수지만, 메이저리그 스타트도 나쁘지 않을 듯.
필리스 팬들도 수호를 메이저리그에서 시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대중의 여론은 마크 레이어 역시 체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이렇자할 입장표명을 하지 않은 채, 시범경기를 지켜봤다.
* * *
첫 선발출전을 얻어낸 수호는 다섯 번째 경기에서도 대타로 경기에 출전했다.
(주자 2루 원아웃 찬스에서 한수호 선수가 대타로 타석에 들어섭니다.)
(매디슨 감독이 찬스기회에서 한수호 선수에게 기회를 많이 주고 있네요.)
(찬스에 강하다고 판단을 한 걸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한수호 선수의 장타력에 더 주목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수호가 타격자세를 잡았다.
‘이 녀석의 장타력은 주의할 필요가 있어.’
시범경기이기에 아직 전력분석이 이루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수호의 장타력은 이미 메이저리거들이라면 대다수 알고 있었다.
예고홈런 사건 때문이었다.
야구의 신인 베이브 루스를 연상케하는 그 사건을 메이저리거들이 모를리 없었다.
‘하지만 아직 신인이다. 브레이킹볼에 대응하기 힘들 거야.’
결정을 내린 포수의 사인이 나왔다.
투수 역시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세트포지션에서 공을 뿌렸다.
(1구 던졌습니다!)
퍽!
“볼.”
(밖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 하지만 한수호 선수의 배트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수호는 배터리의 노림수를 읽었다.
‘내가 브레이킹볼이 약하다고 판단했구나.’
[ㅋㅋ 그게 정석이긴 하지.]
[이제 막 데뷔한 루키가 브레이킹볼에까지 강할리가 없다고 생각하겠지.]
[상대가 저런 생각이면 굳이 브레이킹볼에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지.]
[ㅇㅇ 너의 약점을 건드는 건 정면승부를 하기 싫다는 거니까.]
‘하지만 언제까지고 브레이킹볼만 던질 수는 없죠.’
[정답.]
선발투수가 한 경기에 던지는 구종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건 패스트볼이다.
어떤 투수라도 이건 변함이 없었다.
수호는 집중력을 더 끌어올려 때를 기다렸다.
퍽!
“볼, 투!”
(이번에도 변화구를 던졌지만, 한수호 선수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한수호 선수의 선구안이 생각보다 좋네요. 무엇보다 타석에서 침착한 게 인상적입니다.)
수호에게 유리한 볼카운트가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승부가 들어올 거라 생각하겠지?’
포수는 나름대로 수호의 노림수를 읽어내려 했다.
그래서 허를 찌르기 위해 다시 한 번 브레이킹볼을 요구했다.
하지만.
휘릭!!
퍽!
“볼, 쓰리!”
이번에도 수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볼입니다! 공 3개가 연속해서 볼이 되면서 한수호 선수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합니다.)
(오늘 제구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데. 여기에서 한 방을 노려봐도 좋을 거 같습니다.)
머리를 너무 굴리다 궁지에 몰렸다.
‘젠장...설마 단 한 번도 배트를 내밀지 않다니.’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몸쪽 패스트볼.’
그리고 그런 볼배합은 수호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몸쪽으로 오겠지.’
[그 가능성이 제일 크지.]
[전력분석이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닐 테니까.]
[코스도 알고 있는데 못 때리면 쪽팔린 거 알지?]
‘물론...’
스트라이드를 내딛는 투수를 보고 수호 역시 박자를 맞춰 발을 내디뎠다.
“흡!!”
기합소리와 함께 뿌린 공이 몸쪽으로 파고들었다.
‘알고 있습니다!’
예상과 동일한 코스에 수호의 배트가 매섭게 돌았다.
딱!!
(때렸습니다!! 잘 맞은 타구를 쫓아 중견수 뒤로! 뒤로!! 뒤로!!)
타구를 따라가던 중견수의 걸음이 느려지더니 이내 그 자리에 멈췄다.
(넘어갔습니다!! 시범경기 두 번째 홈런을 터트리는 한수호 선수!!)
수호의 홈런이 터졌다.
* * *
단장 마크 레이어의 지원을 얻기 시작하면서 수호의 출전빈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수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최근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 등장한 루키 한수호 선수가 대단한 활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내 스포츠 전문 채널들은 앞다투어 수호의 활약을 방영하기 바빴다.
신선한 얼굴인 수호의 활약은 침체되어 가던 야구팬들에겐 단비와도 같은 존재였다.
- 한수호 오늘도 선발로 나온다더라.
- 크으-! 직전 경기에서 대타홈런 때리더니 선발 기회 자주 얻네.
- 리얼무토 후계자 각 제대로 섰네.
- 솔직히 최근 활약은 리얼무토보다 한수호인 듯.
- 설레발 ㄴㄴ 아직은 리얼무토임.
한국팬들 사이에선 리얼무토보다 한수호를 높게 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 10년 이상을 뛴 베테랑 중의 베테랑 리얼무토와 비교하는 건 무리였다.
그만큼 한국팬들이 한수호에게 거는 기대감이 크다는 게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이런 기대감은 한국한정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소식입니다. 페넌트레이스를 앞두고 시범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그레이프 프루트리그를 폭격중인 루키가 등장해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그 루키의 이름은 수호 한, 멀리 한국에서 날아온 올해 19살인 선수입니다.)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 역시 수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대타로 주로 출전했지만 한의 올 시즌 시범경기 성적은 0.538 0.785 1.384를 기록할 정도로 인상적입니다.)
(특히 홈런은 3개를 때려내면서 현재 팀내 단독 선두에 올라 있습니다.)
(루키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성적이네요.)
경이로운 성적이었다.
물론 이 성적에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았다.
- 이제 17타석인데. 타율이나 출루율이 의미가 있나?
- 그건 그렇지.
- 하지만 17번 중에 장타가 5개라는 건 의미가 있지.
- 그건 맞는 말이네.
ㄴ 넌 도대체 누구 말이 맞다는 거임?
- 둘 다 맞는 소리지. 장타력은 인정, 다만 타율이나 출루율은 좀 더 경기가 진행되어야 알 수 있다는 거잖아.
전문가들도 같은 의견이었다.
외부에서 이런 반응들이 나오자 내부에서도 하나 둘 비슷한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수호 선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구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벌써부터 그를 메이저리그에 데뷔해야 한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실질적인 지표도 압도적으로 좋습니다. 아직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해서 타율이나 출루율에는 큰 의미를 두긴 어렵습니다만, 장타율만큼은 확실히 최근 3년 이내 데뷔한 어떤 타자보다 뛰어납니다.”
필리스 내부 평가도 좋았다.
그만큼 수호의 최근 페이스는 무서웠다.
“화제성도 루키들 중에선 가장 높습니다. 기존 선수들과 비교해도 메이저리그 전체로 보면 30위권, 팀내로 한정하면 10위권 내에 위치해 있습니다.”
화제성은 SNS와 검색빈도 그리고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언급되는 수준을 종합해서 내리는 순위였다.
하지만 모두 긍정적인 이야기만 내놓는 게 아니었다.
“문제는 서비스타임입니다. 당장 메이저리그에 데뷔시키면 그가 준수한 활약을 펼쳤을 때 서비스타임을 온전히 활용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서비스타임에 따라 선수의 권리가 확보된다.
연봉조정신청이나 마이너리그 거부권, FA등.
서비스타임이 늘어날수록 이와 같은 권리를 손에 쥘 수 있게 된다.
구단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자신들이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3년차까지 최대한 활용하려 한다.
그래서 유망주들의 데뷔가 개막이 시작되는 4월이 아닌 5월에 주로 이루어지는 이유였다.
어떻게든 서비스타임을 채우지 못하게 해서 1년을 더 활용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불합리한 규정을 막강한 선수노조가 지켜볼리 없었다.
“한수호 선수가 올해의 신인에 뽑힌다면 어차피 언제 콜업을 하던 서비스타임 1년을 보장받게 되지 않습니까?”
2022년 노사협정을 통해 올해의 신인 투표에서 1, 2위를 받은 선수에게는 메이저리그에 뛴 기간이 얼마가 되었건 서비스타임 1년을 확정해주는 조항이 추가됐다.
즉, 올해의 신인급 활약을 펼칠 유망주라면 시즌 초반부터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하지만 단기간의 활약으로 한수호를 그 정도로까지 평가하는 건 위험부담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찬성과 반대가 격렬하게 충돌했다.
데뷔 첫 해에 메이저리그 직행이라는 카드를 꺼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선택은 단장인 마크 레이어의 몫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회의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한수호를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포함시키도록 하지.”
“하지만...!”
“만약 그가 10게임 안에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다시 마이너리그로 보내면 돼. 그리고 그가 다시 빅리그에 콜업이 될 때 날짜를 더 조정하면 되지 않겠나?”
“음...”
불안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단장의 결정을 꺾을 순 없었다.
“그럼 그렇게 결정하는 걸로 하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지.”
수호의 메이저리그 데뷔가 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