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38화
* * *
한선예와 박경태가 플로리다에 도착했다.
“후우...캠프 다 끝날 때까지 오지 못할 줄 알았어요.”
“지금이라도 온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고졸 루키 한 명 취재한다고 출장보내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야.”
“그럼 선배는 남아 있었으면 되잖아요.”
“크흠...! 이번 기회에 코에 바람도 쐬고 하는 거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은 한선예가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필리스의 스프링캠프가 열리고 있는 브라이트 하우스 필드였다.
그런 두 사람의 앞을 구단 관계자가 가로막았다.
“오늘은 경기를 관람할 수 없습니다.”
“아, 기자입니다. 사전에 필리스 구단에 공문을 보냈는데요.”
신분증을 확인한 관계자는 이내 무전기를 통해 신원을 파악하고는 길을 비켜주었다.
그런 그에게 한선예가 물었다.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을 예정입니다. 이미 첫 게임은 끝났고 두 번째 게임이 곧 진행될 겁니다.”
“아...”
“시뮬레이션 게임이면 스케줄이 꽤 진행된 거 아니야?”
“그렇죠. 이미 불펜피칭이나 라이브 피칭이 끝난 뒤에 시뮬레이션 게임이 진행되니까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관계자가 물었다.
“수호를 보러 왔나요?”
아마 두 사람이 한국인인걸 눈치채고 묻는 듯 했다.
한선예가 고개를 끄덕이자 관계자가 미소를 지었다.
“수호는 두 번째 게임에 출전할 겁니다. 아직 안 늦었으니 걱정마세요.”
한선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한수호 선수가 경기에 출전한다고요?”
“네. 잭 휠러와 함께 호흡을 맞춘다고 하더군요.”
“헐...”
두 사람의 걸음이 바빠졌다.
* * *
시뮬레이션 첫 번째 게임이 마무리됐다.
팀의 1선발인 앤드류 페인터가 마운드에 올라 6이닝동안 1실점 피칭을 선보이며 훌륭하게 경기를 끝냈다.
이후 2선발인 믹 에이블이 경기를 끝내면서 원투펀치에 대한 점검이 마무리됐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3선발 역할을 할 걸로 보이는 베테랑 잭 휠러가 선발을 맡았다.
그런데 그와 호흡을 맞출 선수가 예상 밖이었다.
“한수호? 누구야 이게?”
필리스 전담 기자들은 구단에서 나눠준 선발명단을 보고 의아해했다.
“작년에 한국에서 데려온 포수 루키 아니야?”
“루키를 벌써 시뮬레이션에 세운다고?”
“이건 다소 의외인데?”
시뮬레이션 게임은 연습경기다.
큰 의미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루키에게나 기회를 줄 정도의 경기는 아니었다.
그것도 대타가 아닌 선발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자연스레 기자들의 기대가 올라갔다.
“매디슨 감독이 괜히 올렸을 리는 없고 무언가 있겠지.”
“무토의 후계자로 점 찍어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겠군.”
“하긴 한국에서 데려온는데 200만 달러나 쓴 걸 보면 뭔가 있지 않을까?”
기자들이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는 동안 수호는 잭 휠러의 연습투구를 받아주었다.
퍽!
퍽!
잭 휠러의 공이 미트에 박힐 때마다 손등이 아플 지경이었다.
‘가볍게 던지는데도 회전이 좋아서 손등이 아프네요.’
[공을 던지는 방법을 안다는 거지.]
[젊을 때는 힘으로 던지고 나이가 들어서는 스킬로 던지는 법이니까.]
[저 나이에 저 정도의 피지컬이면 자기관리도 충분히 잘 한다는 소리다.]
잭 휠러는 사이영상을 받은적도 없었고 리그를 씹어먹었던 적도 없다.
하지만 20년 가까운 세월을 빅리그에서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준비는 끝났지?”
“예.”
구심을 맡은 코치, 하파엘의 물음에 잭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자 자리로.”
타자가 타석으로 들어오자 하파엘의 손이 정면으로 향했다.
“플레이볼!”
경기가 시작됐다.
* * *
수호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패스트볼.’
초구는 이미 결정했다.
중요한 건 코스였다.
벤치에서 요구한 건 바깥쪽 코스.
수호는 그 요구를 사인으로 보냈다.
잭 휠러가 고개를 끄덕이고 투구자세에 들어갔다.
뒤이어 수호가 미트를 내밀자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흡!!”
부드러운 투구폼에서 뿌린 공이 바깥쪽 중앙을 향해 날아왔다.
퍽!
“스트라이크!”
90마일의 빠른 공이 미트에 박히며 첫 번째 스트라이크에 불이 들어왔다.
“이제 막 시작했네요.”
때마침 경기장에 들어온 한선예가 자리를 잡으며 말했다.
“정말 한수호가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네.”
뒤이어 박경태가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으며 카메라를 세팅했다.
“동영상 촬영은 금지입니다. 사진 촬영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구단직원의 제지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메이저리그의 자체 연습경기는 동영상 촬영이 불가한 경우가 자주 있었다.
딱!!
“파울!!”
“휠러의 공이 나쁘지 않네요.”
“노장인데도 90마일의 공을 가볍게 뿌리네.”
“원래 100마일까지 뿌리는 선수였으니까요. 비록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구속이 다소 저하됐지만, 여전히 좋은 투수죠.”
“그런 투수와 호흡을 맞추는 루키 포수라...어떻게 된 걸까?”
“글쎄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수호 선수가 눈도장을 찍기에 충분히 좋은 상황이에요.”
한선예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정리해둔 파일을 열었다.
퍽!
“볼.”
“이야~아깝다. 저 커브에 배트가 나오질 않네. 그런데 좋은 상황이라니?”
“현재 필리스의 주전포수는 당연히 리얼무토에요. 하지만 그 역시 노장이라 풀타임을 포수로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죠.”
“하긴, 작년에도 1루수로 병행해서 나오긴 했었지.”
“네. 그래서 필리스에선 포수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2명의 후보군 중...”
딱!!
“맞았다!”
타자가 때린 공이 유격수 정면으로 날아갔다.
가볍게 공을 캐치한 유격수가 그대로 1루로 던져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올렸다.
“깔끔하네. 그런데 2명의 후보 뭐라고?”
“2명의 후보선수 중 한 명을 언제나 유망주로 넣고 있죠. 실전경험을 쌓게 해주려고요.”
“음, 하지만 내가 찾아본 바로는 이렇다할 성과는 없었던 거 같은데?”
“맞아요. 그게 문제죠. 그래서 매년 트레이드를 통해 포수를 영입하기도 하고 FA로 저렴하게 데려오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리얼무토가 주전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건 실패했다는 소리네.”
“네. 만약에 한수호가 빠르게 빅리그에 올라갈 수 있다면 그만큼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소리죠.”
“오호...여긴 그걸 테스트하는 자리란 소리인가?”
“아직 거기까지 생각하긴 일러요. 어디까지나 연습경기니까요. 무엇보다 서비스타임도 생각해야 하고요.”
수호의 메이저리그 직행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였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한수호 선수가 캠프가 열린 직후 무언가를 보여줬다는 게 중요하죠.”
그때였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중견수 앞에 떨어졌다.
* * *
원아웃을 잘 잡아내고 2번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했다.
매디슨 감독은 명단을 확인하고 우드워드에게 말했다.
“지금 나간 주자의 발이 빠르다고 했었지?”
우드워드는 빠르게 선수의 상세한 정보가 적힌 종이를 넘겨 확인하고는 대답했다.
“예. 작년에 트리플A에서 33개의 도루를 성공시켰습니다.”
“성공률은?”
“73.2퍼센트입니다.”
“나쁘지 않군. 바로 도루 시켜봐.”
“알겠습니다.”
우드워드가 사인을 보내자 1루 주루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잭 휠러는 세 번째 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에 들어갔다.
‘몸쪽 패스트볼.’
수호의 사인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인 휠러가 세트포지션에 들어갔다.
그리고 눈짓으로 1루 주자를 견제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견제할 순 없었다.
2023시즌부터 도입된 피치클락에 의해 투구를 해야 했다.
이내 주자에게서 신경을 끈 휠러가 스트라이드를 디디는 순간.
타닥-!!
“뛰었다!”
1루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미 투구에 들어간 상황.
휠러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퍽!!
공이 미트에 꽂히는 순간 그의 무게중심이 뒤로 쏠렸다.
후웅!
뒤늦게 타자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공을 치려는 목적이 아닌 포수의 시야를 방해하기 위한 스윙이었다.
하지만 수호는 주저하지 않고 무게중심을 앞으로 옮기며 그대로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낮게 그리고 빠르게 날아왔다.
휠러는 생각보다 낮게 날아오는 송구에 깜짝 놀라 허리를 숙여 피했다.
그의 머리 위를 지나간 공은 그대로 베이스 커버를 들어온 유격수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동시에 슬라이딩을 한 주자의 손이 베이스를 터치했다.
촤아아아앗-!
퍽!
수호가 마스크를 벗고 일어나 2루심을 바라봤다.
“세이프! 세이프!!”
2루심의 손이 좌우로 펼쳐지며 세이프 판정을 내렸다.
[이게 세이프라고?]
[분명 먼저 베이스를 터치하긴 했네.]
[와~타이밍 하나는 죽였는데.]
[송구도 이상한 건 없지 않았나?]
‘예. 분명 좋은 송구를 한 거 같은데...’
레전드들의 말에 수호도 동의했다.
송구에 잘못된 건 없었다.
주자가 뛰는 걸 확인하고 송구할 준비를 끝냈다.
공이 미트에 도착하기도 전이다.
무엇보다 휠러가 던진 공이 변화구도 아니었고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휠러의 딜리버리가 느린 것도 아니었다.
‘내 예상보다 주자의 발이 빠르긴 했지만,,,잡지 못할 정도였나?’
그런 의심이 들게 만드는 결과였다.
그때 요기 베라의 채팅이 올라갔다.
[한국이었으면 잡혔을 거다.]
‘예?’
[한국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요기 베라의 말에 수호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떠올렸다.
‘아...베이스!’
* * *
2023시즌.
CBA에서 메이저리그의 룰을 몇 가지 바꾸었다.
그중에 하나가 피치클락이다.
경기속도를 올리기 위해 투수에게 투구제한시간을 부여했다.
주자가 없을 때는 15초, 있을 때는 20초 안에 투구동작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변화는 바로 베이스의 크기였다.
[메이저리그의 베이스 크기는 기존의 15인치에서 18인치로 확대했지. 하지만 네가 뛰던 고교야구에는 여전히 15인치의 베이스가 활용되고 있었다.]
단 3인치의 크기지만, 주자에게는 매우 큰 이점이었다.
분명 한국과 같은 타이밍에 공을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수호가 주자를 잡지 못한 이유기도 했다.
[네가 만약 한국과 같은 상태로 공을 던진다면 여기에서 발이 빠른 주자를 잡지 못할 거다.]
요기 베라의 말은 정곡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듣자 수호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올릴 수 있었다.
‘팝 타임을 더 줄여야겠군요.’
[정답.]
쉬운 일은 아니었다.
팝 타임은 0.01초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포수의 가치가 바뀔 정도다.
그만큼 중요한 걸 갑자기 바꾸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일단 경기에 집중해라.]
‘예.’
고개를 끄덕인 수호가 다시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1회.
잭 휠러는 1실점을 기록하고 이닝을 마감했다.
도루에 성공한 주자가 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만약 도루가 성공하지 않았다면 실점은 없었을 거다.
하지만 매디슨은 그걸로 수호의 가치에 감점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수호에게 플러스를 주었다.
‘트리플A라고는 하지만 도루 성공률 73퍼센트대의 주자를 거의 잡을 뻔 하다니. 대단한 어깨다.’
이제 갓 데뷔한 루키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건 매우 좋은 모습이었다.
‘더 보고 싶군.’
매디슨은 우드워드를 불러 상대팀이 주자를 내보냈을 때 공격적으로 도루를 하라는 주문을 전달했다.
수호의 송구가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회.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퍽!
“볼! 베이스 온 볼!!”
첫 타자가 볼넷을 얻어내며 1루 베이스를 밟았다.
매디슨은 곧장 우드워드에게 말했다.
“B팀에서 가장 발이 빠른 녀석이 누구지?”
“조니가 벤치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니 로버트.
필리스의 주전 중견수로 타격능력은 떨어지지만 매우 빠른 발을 가진 선수였다.
전성기 빌리 해밀턴에 근접할 정도로 빠른 발을 가진 선수로 넓은 수비범위와 작전수행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교체해서 도루를 시켜.”
“알겠습니다.”
실전이었다면 이런 교체는 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 게임이었기에 매디슨은 빠르게 교체를 지시했다.
B팀의 더그아웃에서 조니가 나와 1루 베이스에 섰다.
‘자, 이번 상대는 진정한 메이저리거다. 어떤 모습을 보여줄 거지? 루키.’
매디슨이 흥미진진한 눈으로 수호를 바라봤다.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에 이어 경기가 재개되고 수호의 사인이 나왔다.
휠러가 고개를 끄덕이고 세트포지션을 잡았다.
눈짓으로 주자를 견제한 그가 이내 스트라이드를 내디뎠다.
그 순간.
조니 로버트가 스타트를 걸었다.
타닥!
이전 주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였다.
만약 이전과 같은 송구를 한다면 또 하나의 도루를 헌납할 것이다.
그때였다.
‘어?’
수호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공이 도착하기도 전에 오른발을 뒤로 뺐다.
자연스레 그의 몸이 비스듬하게 앉게 되었다.
퍽!!
공이 미트에 도착한 순간.
무게중심이 뒤로 옮겨졌다가 빠르게 앞으로 이동했다.
동시에 왼쪽 무릎을 꿇으며 상체를 앞으로 던졌다.
“흡!!”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총알처럼 날아가 2루 베이스 앞에 도착했다.
촤아아앗-!!
거의 동시에 조니가 몸을 날려 슬라이딩했다.
퍽!!
이번에도 거의 동시에 베이스 태그와 글러브 터치가 이루어졌다.
뒤늦게 상체를 일으킨 수호가 마스크를 벗어 2루심을 바라봤다.
이전에는 양쪽으로 펼쳤던 2루심의 두 손이 이번에는 가슴 앞으로 모였다.
“아웃!!”
판정과 함께 수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수호를 보며 매디슨의 눈이 커졌다.
“저걸...잡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