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37화
* * *
스프링캠프 3일차.
묘한 일이 벌어졌다.
“헤이! 수호, 오늘 내 공 좀 받아줘.”
“안 돼. 오늘은 내 턴이라고.”
“무슨 소리야? 어제부터 내가 예약했어.”
“얼씨구? 룸메를 무시하면 안 되지! 수호, 오늘도 내 공 받아줄 거지?”
수호를 놓고 투수들의 쟁탈전이 벌어졌다.
자신을 두고 남자들이 경쟁하는 모습을 보는 수호의 마음은 착잡했다.
‘여자한테도 이렇게 인기 있어본 적이 없었는데...’
[ㅋㅋㅋㅋ 남자들한테 인기 폭발이네.]
[행복하겠다?]
[아주 수호 몸 조각조각내서 가져갈 기세네.]
레전드들의 농담을 듣고 있을 때 배터리 코치가 나타났다.
“뭐하는 거야?”
“코치! 마침 잘 왔어요! 오늘 수호 누구랑 같이 호흡 맞춥니까?”
“저죠?”
“당연히 저 아닙니까?”
“룸메를 무시하지 말라니까?!”
“그만! 그만!! 그러니까, 이 난리를 피우는게 수호와 파트너를 맺으려고 이러는 거야?”
“예.”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투수들을 보며 배터리코치 하워드는 이마를 짚었다.
“아이구 두야...오늘 수호는 톰슨이랑 호흡을 맞출 거야.”
“아싸!”
“아~!”
“왜 제가 아니고요?!”
“앤서니 너는 어제도 했잖아!”
“그래봐야 몇개나 던졌다고요! 아놔! 룸메를 이렇게 무시해도 됩니까?! 이건 아니죠!!”
“그렇게 불만이면 감독님에게 가서 따지던가!”
“자, 내 파트너가 어디에 있더라.”
빠른 태세전환을 보이는 앤서니를 보며 하워드가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다들 왜 이렇게 수호를 원하는 거야?’
나이에 비해 확실히 공을 잘 받았다.
하지만 그런 포수는 캠프에 많았다.
그런데 유독 수호의 인기가 높았다.
‘오늘 좀 자세히 봐야겠어.’
그 이유를 알기 위해 하워드는 수호를 주시해야겠다고 판단했다.
* * *
불펜피칭을 진행하면서 하워드는 이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소리가 다르다.’
수호가 포구할 때의 소리가 다른 포수들과 달랐다.
뻐어억!!
불펜 전체를 울릴 정도로 굉장한 소리가 포구할 때마다 들렸다.
이 소리를 들은 톰슨이 미소를 지으며 투구에 임했다.
‘투수는 예민하다. 그렇기에 작은 부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포수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특히 불펜피칭에서 포구의 소리가 이상하면 자신의 컨디션에 문제가 있는지 생각하게 되지.’
모두에게 통용되는 이야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수의 투수들이 이런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연스레 포수도 이런 부분을 알고 있어야 한다.
촤르륵!
그때 옆에서 이상한 포구소리가 들려왔다.
공을 던진 건 앤서니였고 받는 건 더블A 소속의 제이미였다.
“헤이! 제이미! 오늘 내 공 어때?”
“나쁘지 않은데?”
“그래? 난 왜 이렇게 느낌이 이상하지?”
“지금 이대로 던지면 돼.”
“분명 이상한데...”
이상하다고 중얼거리는 앤서니를 보며 톰슨은 제이미를 바라봤다.
‘실전에서야 저렇게 웹으로 받아도 되지만, 불펜피칭에선 볼집으로 받는 게 정석이야. 그래야 캐칭할 때 소리가 제대로 난다.’
볼집으로 공을 받는 건 기본중의 기본이다.
그리고 마이너리그 포수들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음에도 하지 않는 건 연습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투수가 그런 걸로 민감하게 반응할 거라 생각하지 못해.’
기본을 지키는 건 상당히 어렵다.
그런데 저 어린 포수는 그걸 해내고 있었다.
뻐어어억-!!
“나이스! 나이스!!”
그렇기에 투수들이 그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기본이 상당히 잘 잡혀 있는 녀석이군. 실전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한데?’
하워드는 수호를 눈에 담아두며 몸을 돌렸다.
그런 하워드의 눈앞에 한 선수가 서있었다.
“휠러, 자네가 여기에 왜 왔어?”
“지나가다 소리가 좋아서 잠깐 들렸습니다.”
그는 필리스의 베테랑 투수 잭 휠러였다.
2013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그는 어느덧 14년차 투수가 되어 있었다.
2020년 필리스와 FA계약을 맺은 그는 2025년 계약만료와 함께 필리스와 다시 2년 연장계약을 맺었다.
메이저리그 통산 97승을 달성하기도 한 명실상부 필리스의 원투펀치였다.
하지만 그 역시 세월을 피할 수 없어 25년부터는 3선발로 주로 나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 그가 이곳에 올 이유는 없었다.
여기는 주로 마이너리거와 초청선수들이 공을 던지는 장소였다.
메이저리거라 불릴 수 있는 로스터 선수들이 이용하는 불펜장은 따로 있었고 휠러 역시 그곳을 이용했다.
“그런데 저 포수는 누구입니까?”
“아, 한국에서 온 루키야.”
“루키라면 아직 마이너리그에도 데뷔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응. 올해부터 싱글A에서 뛴다고 하더군.”
“루키인데. 바로 싱글A라...기대주라는 소리군요.”
“그렇지. 상당히 실력도 좋은 거 같아.”
하워드의 말에 휠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시뮬레이션 게임은 언제 시작하죠?”
“삼사일 뒤에 진행할 거야.”
“그때 저 친구를 제 파트너로 세워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토가 아니라?”
“그 친구와는 오래 해서 따로 호흡을 맞춰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음, 일단 알았네. 감독님의 허가가 나와야겠지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야.”
“예.”
대답을 들은 휠러가 몸을 돌렸다.
멀어지는 그를 보며 하워드는 수호의 이름에 체크를 하고 선수들을 관찰했다.
* * *
야수조가 캠프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스프링 캠프가 시작됐다.
‘정말 도떼기 시장이네요.’
수호는 왜 레전드들이 스프링 캠프를 도떼기 시장이라고 표현했는지 야수조들이 합류하면서 알 수 있었다.
“이야~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내 근육 좀 봐바. 이번 시즌에야말로 빅리그에 올라가려고 준비를 단단히 해왔지!”
“누가 내 라커에 저지를 걸었어?!”
“마이너는 라커를 못 쓰는 거 몰라?!”
40명이 쓰는 클럽하우스에 60명이 넘게 있다보니 정말 시끄러웠다.
[ㅋㅋㅋ 여긴 변하는 게 없구나.]
[그래도 예전보다는 좋아졌네.]
[우린 마이너가 저지 라커에 걸면 바로 주먹부터 날렸지.]
[그때 맞은 게 나잖아. 아직도 턱이 아프다니까.]
과거를 떠올리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레전드들을 보며 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 * *
야수조들이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타격훈련이 진행됐다.
수호 역시 배트를 쥘 기회를 얻었다.
배팅장 역시 초청선수와 메이저리거는 분리되어 연습을 진행했다.
‘메이저 스프링캠프라고 해도 메이저리거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운영되네요.’
[차별화를 둬야 선수들이 승부욕을 가지니까.]
[이런 차별이 마음에 안들면 빅리그에 올라오라는 거임.]
확실히 승부욕이 나긴 했다.
당장이라도 저쪽으로 넘어가서 연습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기 위해선 여기에서 확실히 너의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예.’
그때 타격코치가 선수들 앞에 섰다.
“한 사람당 10개의 공을 때릴 겁니다. 구속은 88마일에 맞춰져 있고 공을 놓치더라도 추가되는 건 없으니 참고바랍니다.”
사무적인 말투로 안내를 끝낸 코치가 호명을 시작했다.
타자가 타석에 서자 마운드에 설치된 배팅머신에서 공이 쏘아졌다.
딱!!
딱!!
뒤이어 경쾌한 소리가 들리며 타격훈련이 시작됐다.
간혹 공을 놓치는 선수들이 기회를 더 달라고 했지만, 코치는 단호하게 다음 순서를 불렀다.
[아주 칼같네.]
[스케줄대로 진행하려면 어쩔 수 없지.]
[너도 정신 바짝차리고 해야겠다.]
‘예.’
긴장되기도 했지만, 그보다 설레는 게 더 컸다.
‘다음이 내 차례다.’
[설레냐?]
‘솔직히 설렙니다. 빨리 나가서 공을 때리고 싶네요.’
[ㅋㅋㅋ 강심장이네.]
[얘 우리 과거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긴장을 안한다.]
[루키다운 신선함이 없네.]
수호는 문득 자신이 이렇게 강심장이었나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니었다.
과거 처음 직장에 들어갈 때나, 처음 영업을 나간 날에도 긴장해서 실수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긴장하지 않고 오히려 기대했다.
이런 변화가 낯설기는 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다음, 한수호.”
“예!”
코치의 호명에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된 배트를 쥐었다.
그리고 타석에 서서 자세를 취했다.
“스타트.”
무미건조한 코치의 사인과 함께 배팅머신이 돌았다.
푸슉!!
이내 하나의 공이 사출구에서 발사되었다.
동시에 수호가 왼발을 내디뎠다.
츠즉-!!
스파이크가 흙에 박히며 왼발이 단단하게 고정됐다.
뒤이어 하체를 돌려 회전력을 만들었다.
회전은 골반, 상체에 이어 이내 팔로 전해졌다.
후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돌아간 배트가 날아드는 공을 그대로 낚아챘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저 멀리 날아가 그대로 펜스와 충돌했다.
퍽!
“나이스 배팅.”
무미건조한 코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배팅을 하는 타자에게 처음으로 하는 칭찬이었다.
하지만 수호는 그런 칭찬을 한귀로 흘리고 다음 공을 기다렸다.
푸슉!!
또 하나의 공이 날아왔다.
수호의 배트는 이번에도 매섭게 돌았다.
딱!!
이번에도 경쾌한 소리를 낸 타구가 총알처럼 날아갔다.
다른 점은 수비들이 타구를 보고 쫓지 않았다는 거다.
“오! 넘어갔다!”
“엄청난데?”
타구는 그대로 좌익 담장을 넘어갔다.
보고 있던 타자들이 감탄할 정도로 대단히 큰 타구였다.
타격코치 우드워드 역시 좋은 평가를 내렸다.
‘초구에 히팅포인트가 조금 앞에 잡혀 있었는데. 두 번째 타석에 그걸 바로 고쳤다. 대단한데?’
하지만 감탄은 일렀다.
첫 번째 홈런을 시작으로 수호의 맹타가 펼쳐졌다.
딱!
딱!!
딱!!!
연달아 세 개의 공을 때려냈고 그때마다 타구는 담장 밖으로 사라지기 일쑤였다.
큰 포물선을 그리는 타구가 있는 방면 때로는 라인드라이브성으로 넘겨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9개의 공을 때려낸 수호가 담장 밖으로 날려보낸 타구는 무려 7개에 달했다.
“와...저게 말이 돼?”
“무슨 타구가 매번 담장밖으로 사라지는 거야?”
“도대체 파워가 얼마나 좋으면 저게 되냐?”
보는 타자들조차 기가 차는 상황이었다.
우드워드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선수들과 달리 정확하게 이유를 체크하고 있었다.
‘일단 집중력이 좋다. 모든 스윙에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어. 그리고 하체부터 시작한 회전력을 팔까지 잘 전달하고 있다. 거기에 가지고 있는 파워 역시 대단하고.’
수호가 루키인 건 그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부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이곳에 있다는 건 그만한 재능과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소리기 때문이다.
그때 마지막 공이 사출구를 통해 발사됐다.
푸슉!!
츠즉!!
수호의 발이 배터박스의 끝을 밟고 빠르게 하체가 회전했다.
후웅!!
이전과 동일하게 묵직한 소리와 함께 돌아간 배트가 그대로 공을 낚아챘다.
딱!!
타구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포물선을 그리며 그대로 전광판을 넘어 경기장 밖으로 사라졌다.
“헐...”
“장외홈런이라고?”
“말도 안 돼...”
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타구.
“왓더...”
이번에는 냉정하던 우드워드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 * *
수호는 단숨에 캠프의 인기인이 되었다.
“그럼 작년까지 고등학교에 다닌 거야?”
“응. 그랬지.”
“그런데 그런 타구를 날린다고?”
“아니, 이런 근육을 가진 녀석이 작년까지 고등학생이었던 게 말이 돼?”
“내가 아는 동양인들은 대부분 호리호리한데. 넌 어떻게 이런 근육을 가지고 있는 거냐?”
“헤이~앤서니. 그거 인종차별 발언이야.”
“응? 아...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푸하하! 이 새끼 당황하는 거 봐!”
앤서니가 당황하는 모습에 클럽하우스는 단번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양손을 모으는 앤서니를 보며 수호도 미소를 지었다.
[넌 그래도 캠프에 적응 잘한다?]
‘이 정도야 회사생활에 비하면 천국이죠.’
여기에는 위아래가 없었다.
모두 평등했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이들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좋은 건 아니었다.
“여기 너희들만 써?! 좀 조용히 해!”
간혹 저 녀석처럼 시비를 걸어오는 녀석도 있었다.
단번에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하지만 앤서니는 입을 놀리는 걸 멈추지 못하고 수호에게 조용히 말했다.
“레이먼 저 녀석 작년까지 메이저리거에서 뛰다가 올해는 미아가 되서 그런지 신경이 날카롭네.”
“야 이 자식아! 너 방금 뭐라 그랬어?!”
문제는 앤서니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레이먼이 걸어오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때였다.
“무슨 일이야?!”
클럽하우스로 타격코치인 우드워드가 들어오면서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레이먼은 혀를 차면서 앤서니를 노려보고는 물러났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상황이 마무리되자 우드워드는 본래의 목적을 위해 수호를 바라봤다.
“수호, 감독님이 부르신다.”
감독의 호출에 수호가 클럽하우스를 나와 감독실로 향했다.
문이 열려 있었지만, 수호는 노크를 했다.
똑똑!
“왔나? 들어와.”
안으로 들어가자 매디슨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캠프는 잘 적응하고 있는 거 같던데. 몸상태는 어떤가?”
“아주 좋습니다.”
“그래. 그럼 본격적으로 실전으로 치뤄도 되겠군.”
[오?]
[설마?]
[벌써?]
“내일 있을 두 번째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자네가 마스크를 쓰게.”
[헐~]
[대박!]
“잭 휠러와 호흡을 맞출 거야.”
수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