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27화
* * *
수호가 연락한 것은 한선예였다.
그녀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건 아니다.
단지 한 가지를 물어봤을 뿐이다.
“혹시 저번에 제가 인터뷰했던 기사가 언제 나오나 해서요.”
[아~그 기사라면 이미 나갔어요. 혹시 확인 못하셨나요?]
“아~그래요?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해 멘트한 걸로 검색했는데. 나오지 않아서요.”
[그 부분은 제가 제외했어요. 괜히 먼저 올렸다가 한수호 선수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서요.]
“아~그러셨구나!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한수호 선수는 앞으로 더 클 선수인데. 괜히 쓸데없는 곳에서 구설수가 오르면 신경쓸거 같았는데. 필요없는 배려였나 보네요.]
“아닙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도록 할게요!”
수호가 전화를 끊자 레전드들이 물었다.
[응? 그거면 된 거냐?]
[따로 부탁 안함?]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한선예 기자 같이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제 의도는 쉽게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겁나 피곤하게 말하네.]
[그냥 다이렉트로 꽂으면 되는 거 아님?]
‘그럼 청탁이 되잖아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괜히 꼬투리를 잡히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응? 너 한선예도 의심하는 거임?]
[꽤 사이 좋아 보이던데.]
‘고작 몇 번 봤다고 사람을 온전히 믿을 정도로 순진한 인간은 아니라서요.’
수호는 한 번의 삶을 살았다.
그 삶에서 일반 회사원으로 지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좋은 사람도 있었지만, 아닌 사람도 있었다.
그런 경험을 한 수호가 사람을 온전히 믿는 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으흠~나쁜 사람으로는 안 보이던데.]
‘처음부터 나쁜 마음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의외로 적습니다. 상황이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 거죠.’
[하긴, 맞는 말이네.]
[내 에이전트도 그랬었지.]
[ㅋㅋㅋ 나도 당했었음.]
[하도 오래전 일이라 잊어버리고 있었네.]
[야야,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분명 월급이 3천달러씩 나온다고 했었거든? 그런데 알고 봤더니 에이전트가...]
레전드들의 라떼 에피소드를 들으며 수호는 하루를 마무리했다.
* * *
이틀 뒤.
포털사이트에 하나의 기사가 떴다.
[고교 최고 타자인 한수호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내용은 간단했다.
[한수호 선수는 국내구단만이 아니라 메이저리그 구단들 역시 적극적으로 노리고 있다.
주말리그까지 체크하지 않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그의 모든 경기를 관람하는 게 그 증거다.]
기사는 메이저리그 구단이 수호를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만약 한수호 선수가 KBO를 택한다면 그의 행선지는 대전 팔콘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수호 선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가 목표입니다.”라고 밝혀 그의 쉽지 않은 목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초고교급으로 평가받는 한수호 선수가 내년 한국에서 뛰게 될 지, 아니면 메이저리그로 향할지 그 행선지가 궁금해진다.]
기사를 모두 본 수호는 맨 마지막에 나오는 기자의 사진과 이름을 확인했다.
‘역시 한선예 기자. 내 생각대로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어.’
[이열~쩌는데?]
[몇 번 보지도 않고 사람 성향도 파악하네.]
‘영업이란 게 결국 사람을 만나보고 파는 거니까요. 사람 상대하는 일이라면 제법 오래 해서 익숙합니다.’
수호는 만족스런 기사에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입장을 정확히 밝혔으니 더 이상 제안을 해올 일은 없을 거다.
‘국내에서 뛰다가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수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때 레전드들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너 그랬다간 아주 끝이야 끝!]
[이 방송도 영원히 끝임.]
[우리랑은 빠염이지.]
[국내에서 뛰다 넘어가서 언제 우리 기록 갱신할래?]
[바로 넘어가서 첫 해에 메이저리그 입성해야 해야 가능성 있는 거 모름?]
‘예예~알고 있습니다.’
레전드들의 잔소리를 들으며 수호가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까지 지었던 가라앉은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채로.
* * *
수호가 메이저리그행을 선언했다.
이는 야구팬들에게 큰 화제가 됐다.
- 이 정도면 메이저리그에 가겠다는 거 아니냐?
- 팔콘스 불쌍하게 올해도 1지명 놓치겠네.
- 어차피 다른 애 뽑으면 됨.
- 일찍 말해주는 게 오히려 낫지.
- ㅇㅈ 지명한뒤에 나 너희랑 계약 안함 ㅅㄱ 하면 뒤통수 쎄게 때리는 거고.
- 일찍 말해줬으니 전략 알아서 짜겠지.
- ㅋㅋ 팔콘스가 전략? 그런게 있긴 했음?
- 꼴찌해서 1지명권 얻으면 뭐하냐...써먹질 못하는데.
- 그런데 얘 메이저리그 가면 어디 갈까?
- 뭐, 갈 곳은 많지. 양키스, 보스턴 LA등.
- 슬러거형 타자니까. 가면 재밌겠다.
- 메이저리그 스타일에 잘 어울릴 듯.
야구팬들은 수호의 행선지를 예측하기 시작했다.
호의적인 반응도 많았다.
그만큼 최근 수호의 활약이 인상적이었다는 소리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호의적인 건 아니었다.
- 고교야구에서 홈런 몇 개 때렸다고 슬러거 ㅇㅈㄹ
- 메쟈 수준이 그렇게 낮아보임?
- 국내에서 50개 때려도 메쟈에서는 10개 때릴까 말까임.
- 어차피 국내는 더블A수준이지.
ㄴ 트리플A는 될 듯.
ㄴㄴ 개소리 ㄴㄴ 더블A도 후하게 처준거임.
- 한수호는 메이저리그 가면 안 됨.
ㄴ 왜?
ㄴㄴ 포지션이 포수잖아. 언어도 통하지 않을 텐데. 가서 뭐할 거임?
ㄴㄴㄴ 그건 그렇네.
ㄴㄴㄴㄴ 포지션이야 바꾸면 되고.
- 요즘은 국내 찍고 가는 게 대세인데. 얘는 왜 이러냐?
ㄴ 자만심에 쩔어버린 듯.
ㄴㄴ 프로가서 성공할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벌써 메쟈뽕에 취했네.
수호의 메이저리그행에 부정적이 의견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팔콘스의 오 팀장은 이런 분위기를 부각시키려 했다.
“오랜만입니다. 이 기자님.”
“하하! 오랜만이야. 팀장되더니 아주 인물이 훤해졌는데?”
“감사합니다. 이게 다 이 기자님이 저희쪽 기사를 잘 써주셔서 제가 마음이 편안해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런데 최근에는 마음고생 좀 할 거 같던데. 한수호가 메이저리그로 가겠다고 했다면서?”
“저희쪽은 딱히 접촉을 하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실제로 메이저리그 팀 다수가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죠.”
오 팀장은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기자와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술자리의 주제는 자연스레 최근 핫한 한수호에게 향했다.
“그거 참 문제라니까. 국내에서 좀 컸다 싶으면 죄다 메이저리그로 가고 말이야.”
“정말 죽겠습니다. 안 그래도 국내 고교는 다 죽어가는데. 그중에 괜찮은 보석들이 외국에 다 납치되고 있다니까요.”
“한수호까지 뺏기면 2년 연속인가?”
“예...이번에도 그렇게 되면 정말 난리날 겁니다.”
“이거 참, 우리 야구의 미래가 큰일이야.”
둘의 대화는 미래를 걱정하는 거 같으면서도 묘하게 겉을 돌고 있었다.
그걸 느꼈는지 오 팀장이 가지고 왔던 카드를 꺼냈다.
“그런데 이 기자님, 혹시 그 소식 들었습니까?”
“응? 무슨 소식?”
“최근에 불륜으로 시끌시끌하잖습니까.”
“그런 일이 있었어?”
“아~우리 이 기자님 모르셨구나. 그게 말입니다.”
오 팀장은 자신이 가지고 싶은 걸 얻기 위해 누군가의 비밀스런 사생활을 넘기기 시작했다.
* * *
수호의 4월은 한 마디로 완벽했다.
8경기에 출전해 25타수 17안타라는 엄청난 타격을 기록했다.
타율만 6할 8푼이라는 수준이 다른 타격능력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17개의 안타 중 9개가 홈런일 정도로 그의 장타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이런 수호의 활약 덕분에 성일고는 경기A구역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는 중이었다.
그의 앞날이 창창해보일 때, 하나의 기사가 떴다.
[메이저리그의 유망주 하이재킹, 이대로 좋은가?]
기사의 내용은 간단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또 한국의 유망주 한 명을 납치해갈 분위기다.
그 유망주는 다름아닌 한수호, 최근 고교야구 랭킹 1위에 오르며 차세대 슈퍼스타가 될 재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사에선 수호의 이름을 콕 집어 이야기했다.
[A구단의 모 스카우터는 한수호를 높게 평가했다. 잘 성장하면 제 2의 양현민이 될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미국에 간다면 그럴 수 있을까?
통하지 않는 언어, 완전히 다른 환경, 무엇보다 한국과 다른 피지컬과 재능 사이에서 그가 꽃 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호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이 전망을 쏟아냈다.
대부분 메이저리그로 직행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마이너스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기사를 본 수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완전히 저 보라고 만든 기사 같은데요?’
[ㅇㅇ 그런 듯.]
[이 정도면 대놓고 저격인 듯.]
[이야~이런 기사를 막 쏟아내도 되는 거야?]
[이거 본 유망주 애들 멘탈 제대로 털리겠다.]
맞는 말이었다.
어린 나이에는 주위 의견에 휘둘릴 가능성이 컸다.
기자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가 나락으로 떨어졌다지만, 아무래도 본인이 해당되는 일이라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관련 의견들도 문제였다.
- 수호 메쟈 직행은 아닌 듯.
- 국내에서 좀 성장하고 가는 게 낫지 않나?
- 마이너리그 생활도 3-4년 해야 할 텐데.
- 3-4년이 뭐냐? 이영민상 타고 했던 애들도 넘어갔다가 10년 동안 구르고 결국 돌아온 게 수두룩임.
- 제대로 기회 못받으면 성장할 타이밍 놓쳐서 또 빌빌대면서 돌아오겠지.
- 거기다 포수면 사실상 힘듦.
- ㅇㅈ. 내야면 그래도 해볼만하겠지만, 포수로 나가서 성공한 애들이 누가 있냐?
- 나가도 포지션 바꿀 듯 ㅋㅋ
야구 커뮤니티에선 기사와 관련된 내용들이 쏟아졌다.
대부분 수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이는 단순히 수호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수많은 선수가 해외로 진출했다.
그들 중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고교선수들도 있었다.
문제는 그들 대다수가 실패하고 빅리그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채 국내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팬들은 아마추어 선수의 메이저리그 직행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확실히 이 정도면 평범한 애들이 봤을 때 충격이 심하겠네요.’
[ㅇㅇ]
[심하긴 하네.]
[응원은 하나도 없고 비난만 즐비하네.]
[멘탈 갈리기 좋을 듯.]
‘그나저나 저런 기사가 떴다는 건 팔콘스가 꽤 애가 타고 있다는 소리로밖에 보이지 않네요.’
[그러게.]
[아무리 그래도 저런 언론플레이는 좀 아닌듯 ㅋ]
[치사하긴 하지.]
수호는 이번 기사에 팔콘스의 영향력이 가있다 보고 있었다.
그가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면 이런 생각까지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회귀를 해봤기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수호는 마음을 다잡으며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베스트를 선택한 것이다.
* * *
수호는 팬들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5월에도 좋은 성적으로 스타트를했다.
딱!!
“또 때렸다!!”
“와~이걸로 3안타째야!”
“수호야 달려!!”
5월 첫 경기에서 3안타를 몰아치면서 단숨에 타율을 끌어올린 그의 활약에 성일고는 승리를 가져오며 기분좋은 스타트를 할 수 있었다.
오늘 경기의 MVP가 된 수호가 라커룸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라커룸 앞에서 한 사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수호 선수.”
“아, 예. 안녕하세요.”
“저는 뉴욕 양키스의 아시아지부장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킴입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 사내는 데이비드였다.
“지금 당장은 좀 어렵겠는데요.”
“예? 아...혹시 이유가...?”
“시합도 방금 끝났고 무엇보다 갑자기 찾아오시면 제가 대화를 나눌 준비를 할 수 없어서요. 죄송하지만, 내일 학교 근처에서 뵐 수 있을까요?”
“아, 물론입니다. 제가 너무 갑자기 찾아온 거 같군요. 여기 제 명함입니다. 장소와 시간을 정해주시면 내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데이비드는 정중하게 물러났다.
[바로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았냐?]
[ㅇㅇ 굳이 따로 시간 잡을 필요 있음?]
‘장소가 좀 그렇잖아요. 보는 눈도 많고, 무엇보다 협상에서 중요한 건 제가 리드하는 겁니다.’
[그래?]
‘무엇보다 저에게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리라니?]
[메이저리그로 정한 거 아니었음?]
‘그건 이미 결정했습니다. 제게 필요한 건 가야 할 팀이죠.’
[그건 중요하긴 하지.]
[이왕이면 양키스 가자.]
[양키스보단 레드삭스지!]
[에헤이~이 친구들 카디널스 가야 한다니까?]
레전드들이 각자 자기들이 속했던 팀들을 이야기했다.
그때 윌리엄스가 수호에게 물었다.
[넌 어디로 갈 생각이냐?]
‘지금부터 알아볼 생각입니다.’
[어떻게?]
‘회귀한 걸 좀 이용해야죠.'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수호가 라커룸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