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8화
디펜딩 챔피언 미국을 무너트린 한국대표팀의 기세는 무서웠다.
딱!!
“때렸다!!”
“돌아! 돌아!!”
8강.
vs 이탈리아 상대에서도 수호는 4번 타자이자 포수로서 경기에 나섰다.
첫 타석에서부터 좌익선상에 떨어지는 장타를 때려낸 그는 1루를 돌아 순식간에 2루에 도달했다.
좌익수가 공을 송구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에 경기를 보는 선수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와~저 녀석이 저렇게 빨랐나?”
“예전보다 더 빨라진 거 같은데?”
“수호 최고다!!”
동료들의 함성에 가볍게 손을 들어보인 수호의 모습에 황우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 녀석의 타격감이 물이 올랐군.”
“미국전에서도 홈런을 때리더니 오늘도 장타로 신고를 하네요. 거기에 주루플레이가 일품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타구의 위치를 확인하고 인으로 제대로 돌았어. 거기에 아웃풋으로 베이스를 밟으면서 시간을 단축하고 말이야.”
“미국전에서 조금 발이 느린 게 아닌가 싶었는데. 오늘 주루플레이는 합격점을 주기에 충분하네요.”
한국대표팀은 수호의 출루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딱!!
“잘 맞았다!!”
후속타자의 좌중간을 가르는 안타에 수호가 공격적인 주루플레이로 3루를 돌아 곧장 홈을 노렸다.
중계플레이를 위해 공을 잡은 유격수가 홈으로 던지는 걸 포기할 정도로 여유롭게 수호의 발이 홈을 터치했다.
“득점이다!!”
“나이스 수호!!”
“개빠르다 진짜!!”
선취점을 올린 한국대표팀의 기세가 무섭게 올라갔다.
그 모습을 관중석에서 바라보는 한선예의 눈이 빛났다.
“한수호가 어느덧 대표팀의 분위기메이커가 됐네.”
“확실히 한국대표팀 타선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선수에요. 유일한 홈런을 때려낸 건 물론이고 타율, 장타율, OPS 등. 모든 수치에서 1위를 달리고 있어요.”
“그런 성적이니 쟤들이 오늘도 찾아왔지.”
박경수의 시선이 관중석의 한곳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16강전에서 보았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대부분 앉아 있었다.
“오늘 미국전도 같이 열리지 않아요?”
“일본도 경기를 하고 있지.”
“그런데도 여기에 대부분 다 와있다니.”
“다른 직원들이 같이 왔다고는 해도 저들이 각 구단의 헤드급 스카우트라는 걸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지.”
한국에서는 팀장급에 해당하는 헤드 스카우트들은 스카우트 팀에서도 영향력이 큰 이들이다.
그들이 직접 찾았다는 건 그만큼 한국대표팀에 관심있는 선수가 있다는 소리였다.
‘정승우나 다른 선수들은 이미 데이터가 쌓였을 거야. 첫날이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으니 왔을 테지만...오늘까지 왔다는 건 역시 한수호를 보러 왔다는 건가?’
아직까지는 가정에 불과했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한수호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선수였다.
무엇보다 매 경기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 입장에서도 호기심이 갈 수밖에 없는 선수란 소리였다.
‘과연 저 어린 선수가 이번 대회에서 어디까지 보여줄까?’
기대가 되는 대목이었다.
* * *
U18야구월드컵은 야구의 골수팬이 아닌 이상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마추어 위주로 출전을 하기에 아무래도 대중의 관심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예 관심이 없는 건 아니기에 야구 커뮤니티에서 언급이 되고 있었다.
- U18야구월드컵 8강 통과했네.
- 오~상대가 누구였는데?
- 이탈리아.
- 거기도 야구하냐?
- 저번에 미국대표팀 잡더니 잘 올라가네.
- 정승우 등판함?
- 오늘 경기에는 안나옴.
- 그런데 어떻게 이겼대?
- 11 대 1로 완승이던데. 한수호 얘가 캐리한 듯.
- 한수호가 누군데?
- 미국대표팀 상대로 홈런 때린 애 있음.
- 그런 것보다 오늘 프로야구 어떻게 될 거 같음?
큰 관심이 가지 않는 듯 곧장 커뮤니티의 주제는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야구관계자들에게는 달랐다.
“한수호가 누구였지?”
두성 알바트로스의 스카우트 팀장, 김명운은 커뮤니티 사이트를 체크하며 거론된 한수호의 이름을 곱씹었다.
그때 옆에 있던 부하직원이 이야기했다.
“U18야구월드컵에서 뛰고 있는 한수호요?”
“어, 생각보다 잘하는 거 같은데. 누군지 기억이 안나네.”
“그 왜 황우성이가 마지막에 뽑은 애 있잖아요. 황우성 조카다 숨겨둔 자식이다 말 많았던 애.”
“아~그 청룡기에서 5경기 연속 홈런 때린 녀석 말이지?”
“예. 그 녀석인데, 왜요? 국대에서도 잘 하고 있어요?”
“미국전에서는 하워드 존슨을 상대로 홈런, 3루타에 이어 안타까지 뽑아냈는데. 이탈리아 전에서는 2타수 2안타를 때렸는데. 모두 2루타였네.”
“죄다 장타네요?”
“청룡기에서 나왔던 5경기 연속 홈런이 우연이 아니었나 본데?”
“아니,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타났대요?”
한국 고교야구에서 홈런은 자주 나오는 기록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성장기의 선수들이다보니 파워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매 경기 장타를 터트린다니?
“아무래도 자세히 살펴봐야겠는데. 우리 팀에서 성일고 출신이 누가 있지?”
“대수가 성일고 출신일 겁니다.”
“그쪽이랑 연결해서 알아보도록 해. 이 녀석의 포텐셜이 터지기 시작한거면 한시라도 빨리 데이터를 모아야 해.”
“아, 예. 알겠습니다.”
부하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명운은 한수호의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수호에게 관심을 가지는 건 두성 알바트로스만이 아니었다.
“한수호가 누구야?”
“청룡기 5경기 연속홈런?”
“아아! 그 녀석? 그런데 왜 정보가 이렇게 없어?”
“청룡기부터 두각을 드러냈다고?”
“하워드 존슨을 상대로 홈런을 때려냈어?!”
“당장 정보를 모아! 모든 인맥을 동원해!”
국내의 모든 프로구단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 * *
U18야구월드컵 첫 대진표가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탈락이 유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디펜딩챔피언인 미국대표팀의 전력이 너무나 막강했기 때문이다.
그런 미국을 본선 첫 경기에 만났으니 탈락이 유력해보이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그들을 무너트린 한국은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의 수준이 많이 높아지긴 했지만, 한국대표팀의 상대는 안 되네요.”
“프로들의 출전이 제한되어 있으니까. 아마추어는 확실히 우리 대표팀의 수준이 높지.”
네덜란드의 성인 대표팀은 수준이 높았다.
다수의 메이저리거들도 포진되어 있어서 국제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아마추어 위주로 꾸려야 하는 이번 야구월드컵에선 그리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다.
“덕분에 우리 대표팀이 1.5군으로도 충분히 상대하면서 체력을 아낄 수 있겠어요.”
“일본이나 대만을 상대로 결승을 치러야 하는데. 다행인 셈이지.”
어느덧 야구월드컵은 4강에 이르렀다.
한국은 네덜란드를 상대로 비교적 쉬운 4강전을 치렀지만, 반대쪽 사이드에서는 일본과 대만이라는 야구강국들이 맞붙게 되었다.
“차라리 대만이 올라오면 마음이 편하겠네요.”
“그러게 말이야. 일본하고 결승에서 붙게 되면 중압감이 장난 아닐 거야.”
그때 그라운드에서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딱!!
“오~저건 빠졌다.”
“한수호가 오늘은 벤치를 지키지만, 그래도 다른 타자들도 잘해주네요.”
이날, 한국은 네덜란드를 잡고 결승에 안착했다.
* * *
다음 날.
한국대표팀이 경기장을 찾았다.
경기가 없는 날인데도 그들이 경기장을 찾은 건 결승상대를 눈에 익히기 위함이었다.
플레이를 눈으로 보고 아니고는 차이가 크다.
그렇기에 황우성은 일부러 선수단 전원을 데리고 왔다.
수호 역시 자리를 잡고 앉아 그라운드를 내려다봤다.
‘일본이랑 대만이라...’
[누가 이김?]
[넌 알지 않냐?]
‘저도 이때는 이런 대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요. 성일고에서 대회에 나갔던 선수도 없었고요.’
[모른다는 거네?]
‘예. 다만 일본대표팀의 실력이 장난아닌 건 알고 있습니다.’
[그건 우리도 알고 있거든?]
저승에서도 인터넷이 되니 기사를 통해 일본대표팀의 수준을 알아본 레전드플레이어들이었다.
괜히 한소리를 들은 수호는 말없이 경기장을 바라봤다.
그때 정승우가 수호에게 말했다.
“오늘 하야토 녀석은 안 나오나 보네.”
“하야토라면 일본의 에이스 말씀이시죠? 구속이 160km는 그냥 넘는다는.”
“아마 최고구속이 163km까지 나왔을 걸? 일본에서는 제 2의 오타니라는 평가를 받는다더라.”
“163km라니...”
“나는 작년에 아시아청소년대회에서 한 번 붙었는데. 와...진짜 공 하나는 지리더라. 그때 선배들이 죄다 선풍기가 됐다니까?”
“그 정도였어요?”
“어? 너 모르냐? 그때 우리나라 대표팀 노히트노런 당해서 언론에서 조리돌림 당했잖아.”
“아...”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보지 않아도 보이는 듯 했다.
일본에게 진 것도 문제인데, 노히트노런이라는 치욕을 당하다니.
야구에 관심없던 사람들도 댓글 하나씩은 달만한 사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승 상대는 일본이 될까요?”
“글쎄. 대만도 만만치 않으니까.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
승우는 반반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고 그 생각은 바뀌었다.
에이스 하야토 대신에 마운드에 오른 랜은 4회까지 퍼펙트피칭으로 대만 타선을 틀어막았다.
[대단하네.]
[투구하는게 딱 각이 잡혔는데?]
[패스트볼이랑 브레이킹볼의 수준이 높네. 특히 눈에 띄는 건 제구력이고.]
[저런 공을 이 또래 애들이 때리는 건 쉽지 않지.]
레전드 플레이어들도 감탄할만한 피칭이었다.
투수만 돋보이는 게 아니었다.
퍽!
“아웃!!”
“와~저걸 잡네.”
“아니, 유격수가 어떻게 저걸 잡지?”
“역모션이지 않았어? 저기에서 1루까지 노바운드로 던지네.”
“난 아까 우익수가 앞에 떨어지는 공을 잡아서 1루수를 잡아내는 게 신기하던데.”
일본대표팀의 수비는 철벽과 같았다.
실수는 나오지 않았고 수준높은 수비를 연달아 보여주었다.
랜이 퍼펙트피칭을 이어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단단한 수비에 있었다.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은데?]
[타석쪽에서는 스몰야구를 해서 한점씩 차근차근 쌓아가고 마운드와 수비에서는 상대 타선을 아예 틀어막아버리네.]
[너희랑은 아예 결이 다른데?]
수호도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말에 동의했다.
‘확실히 우리 대표팀은 자유분방한 야구를 하는데. 일본 대표팀은 마치 퍼즐처럼 하나하나가 잘 짜맞쳐진 느낌이네요.’
[냉정하게 말해서 수비력만 놓고보면 일본대표팀이 한수 위다.]
[마운드야 승우가 있으니 비슷하겠지만, 수비는 일본이 더 잘하네.]
[타격쪽은 비등하려나?]
[스타일이 달라서 단순비교하긴 어려운데?]
[일본은 작전야구를 많이 하는 편이라면, 한국은 알아서 하게끔 냅두는 편이잖아.]
[그래도 전반적인 수준만 놓고보면 일본이 앞서는 느낌이네.]
레전드 플레이어들이 냉정한 평가를 내놓았다.
그리고 그건 다른 대표팀 선수들도 느끼는 듯, 경직된 얼굴로 경기를 바라봤다.
* * *
일본이 대만을 4 대 0이라는 스코어로 잡아내면서 결승에 안착했다.
경기 관람을 끝낸 수호는 승우와 함께 밖에서 대기하며 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일본애들 잘하긴 하네.”
“확실히 수준이 높은 거 같더라고요.”
“결승에는 하야토 녀석도 나올 텐데. 정말 어려운 경기가 될 거다.”
“그렇게 잘 던져요?”
대답은 승우가 아닌 뒤에서 들려왔다.
“하야토는 강속구가 주무기지만, 변화구의 수준도 매우 높아요.”
고개를 돌리자 한선예와 박경태가 서있었다.
“아, 한 기자님.”
“너 기자님이랑도 아는 사이야?”
“예. 제 기사를 처음 써주신 분이거든요.”
“아하!”
고개를 끄덕이는 승우를 뒤로 하고 한선예가 물었다.
“하야토에 대한 자료가 있는데. 보내드릴까요? 대표팀에서 준비한 자료와 중복되는 게 많겠지만요.”
“자료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보내주시면 감사하죠!”
“그럼 메일로 보내드릴...”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또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거구의 백인이 말을 걸어오자 승우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영어울렁증이 있는 그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반면 그를 본 한선예와 박경태의 눈이 커졌다.
‘저 사람은 분명...’
‘뉴욕 양키스 스카우트, 제이미 톰슨.’
그 사람은 다름아닌 톰슨이었다.
자신이 말을 걸었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톰슨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정신을 차린 한선예가 나서려는 순간.
“무슨 일이시죠?”
수호가 유창한 영어로 톰슨에게 대답했다.
“오~영어를 할 수 있군요.”
“회화 정도는 무리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고...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톰슨이 명함을 내밀었다.
거기에 적힌 직함과 이름을 본 수호의 눈이 커졌다.
[뭐야? 양키스 스카우트였어?]
[오~뭐냐?]
[스카우트냐?!]
[드디어 메이저리그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거냐?!]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수호는 냉정을 찾으며 톰슨을 바라봤다.
“이번 대회에서 당신의 활약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호는 톰슨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야구를 언제부터 했느냐?
현재 어디에서 뛰고 있느냐?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있느냐 등.
시시콜콜한 정보등을 묻고 있었다.
대화가 이어지자 주위로 한국선수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걸 인식했는지, 톰슨이 슬슬 대화를 마무리했다.
“오늘 대화 즐거웠습니다.”
“저도 즐거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고 싶습니다. 한수호 선수, 당신은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있습니까?”
옆에서 듣던 한선예의 눈이 빛났다.
메이저리그.
모든 야구선수가 꿈꾸는 무대였다.
관심이 있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양키스 스카우트인 톰슨이 단순한 의미로 물어보는 게 아닐 거야.’
그가 묻는 의도는 분명했다.
‘고교 졸업 이후의 진로를 묻는 거야.’
그렇게밖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과연 수호가 어떤 대답을 할까?
한선예를 비롯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수호에게 집중됐다.
수호가 막 입을 열려는 찰나.
“미스터, 여기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차후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습니다.”
황우성이 나타나 톰슨을 제지했다.
한국과 일본은 협약을 맺어져 있었다.
그건 프로만이 아니라 아마추어 선수들에게도 해당되기에 황우성의 말대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톰슨은 두 팔을 들며 오버스런 제스처를 취하며 물러났다.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저 지나가다 잠깐 대화를 나누었을 뿐입니다. 그럼 한수호 선수, 다음에 또 뵙도록 하죠.”
“언젠가 또 뵙죠.”
멀어지는 톰슨을 보며 수호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메이저리그 관계자가 날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