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7화
버넷을 삼진으로 잡아낸 승우는 안정적으로 자신의 공을 뿌려댔다.
퍼엉-!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와아! 또 삼진이다!!”
“나이스 볼!!”
한국팀 더그아웃이 들썩였다.
강적이라 생각했던 미국대표팀과 박빙의 대결을 펼치고 있으니 선수들의 기세가 오른 것이다.
“초반에는 좀 고전하나 싶었지만, 금세 자신의 페이스를 찾네요.”
“그렇군.”
황우성은 건성으로 대답하고 전광판을 확인했다.
‘분명 마운드는 박빙이지만, 문제는 점수다.’
여전히 스코어는 1 대 1인 상황.
무엇보다 승우를 공략할 뻔 했던 미국대표팀과 달리 한국은 아직 미국의 마운드를 공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동점이 될 수 있었던 건 수호 녀석의 홈런 덕분이다. 그외에는 제대로 된 안타도 나오지 못했어.’
안타는커녕 존슨의 강력한 패스트볼에 번번이 배트를 헛돌리기 일쑤였다.
‘후반으로 갈수록 우리가 불리해진다.’
한국과 미국의 전력을 비교했을 때 문제는 뎁스에 있었다.
미국은 후보선수들조차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주전과 후보의 실력차이가 극명했다.
특히 타격쪽에서는 명백하게 차이가 나는 실정이었다.
‘결국 승우가 잘 던져준다 하더라도 타격에서 풀리지 않으면 안 돼.’
야구는 투수놀음이다.
맞는 말이다.
마운드가 무너지면 경기는 일찌감치 기우니까 말이다.
하지만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선 점수를 내주지 않는 게 아닌 점수를 내야 한다.
‘이번 이닝이 중요하다.’
황우성의 시선이 그라운드로 향했다.
정확히는 대기타석, 거기에 서있는 선수에게 말이다.
대기타석에는 수호가 배트를 가볍게 돌리며 다음 타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이라면 기대를 걸 수 있다.’
어느덧 수호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황우성 감독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명단을 확인하고 있었다.
감독으로서 선수 한 명에게만 기대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만약 수호가 점수를 내지 못한다면 다음 플랜을 준비해야 했다.
* * *
수호는 존슨의 피칭에 맞춰 배트를 돌리며 타이밍을 맞추고 있었다.
‘1회보다 공이 더 빨라졌네요.’
[ㅇㅇ]
[몸이 풀렸다는 소리지.]
[거기에 브레이킹볼까지 섞어 던지니 체감상 더 빨라지게 느껴지는 거지.]
‘90마일 중후반의 공에 브레이킹볼까지 섞어버리면 공략하기 힘들겠네요.’
[1회에 맞은 홈런이 컸어.]
[ㅇㅈ]
[투수에게는 꽤 큰 충격이었을 거임.]
[두 번째 타석에선 쉽지 않을 거다.]
첫 번째 타석에서 홈런은 노리고 있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존슨이 정면승부를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빠른 공이라도 들어오는 코스를 어느 정도 예측하면 때릴 수 있었다.
문제는 브레이킹볼까지 섞은 저 공을 어떻게 때리느냐는 거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있냐?]
‘예?’
[브레이킹볼을 던진다는 건 결국 타자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함임.]
‘그렇...죠?’
[그럼 브레이킹볼에 현혹되지 말고 패스트볼만 노리면 되잖아.]
얼핏 들어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수호는 반론했다.
‘아니, 그래도 브레이킹볼이 모두 유인구로만 들어오는 건 아니잖아요.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던지는 것도 있는데. 그걸 모두 보내버리면 제가 볼카운트에서 불리해지잖아요.’
[존에 들어오는 건 때리면 되지.]
‘그게 말처럼 되나요?’
[난 되던데?]
테드 윌리엄스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만이 아니었다.
[나도.]
[넌 안 됨?]
[쉬운 거 아니었냐?]
[ㅇㅈ]
수호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맞는 말이다.
이들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전설로 남은 플레이어들이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볼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때 불현듯 떠올렸다.
‘나도 이들의 능력을 받았잖아?’
자신도 그 괴물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 * *
퍽!!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아웃카운트가 올라갔다.
그리고 타석으로 수호가 들어섰다.
[배드볼은 버려라. 모든 공을 때릴 필요는 없어.]
‘예.’
테드 윌리엄스의 조언을 곱씹으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타석에서 중요한 건 관찰력과 집중력이다. 공이 어디로 날아오는 집중하고 관찰해라.]
테드 윌리엄스의 조언은 계속 됐다.
그때 포수가 슬쩍 수호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듣자하니 너 영어 할 줄 안다며?”
“...”
“여우처럼 그걸 숨기면서 플레이를 했다니. 너무 영악한 거 아니야?”
포수의 계속된 시도에도 수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쳇...무시하기냐?’
포수는 자신을 무시하는 수호에게 이내 신경을 꺼버렸다.
하지만 무시가 아니었다.
단지 그의 말이 수호의 귀에 들리지 않았을 뿐이다.
[확실히 이 녀석 집중력은 넘사벽이네.]
[다른 애들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음.]
[집중력만 놓고 보면 메이저급이지.]
레전드들도 인정할 정도로 수호의 집중력은 매우 뛰어났다.
타고난 집중력이 뛰어난 편이었는데, 레전드들을 만나면서 체력의 증진 그리고 마인드의 변화로 더욱 강화되고 있었다.
퍽!!
“볼!!”
그런 집중력의 강화는 존슨의 브레이킹볼을 걸러낼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관찰해라...집중해라...’
수호의 집중력이 점점 높아졌다.
* * *
퍽!!
“볼!”
두 번째 공 역시 볼이 되었다.
존슨은 좀처럼 배트를 내밀지 않는 수호의 선구안에 짜증이 났다.
‘이번 공은 완벽했는데. 이거에도 배트를 내밀지 않는다고?’
존에서 떨어지는 커브를 던져 배트를 유인했다.
하지만 수호는 이번에도 참아내며 자신의 뛰어난 선구안을 뽐냈다.
투볼로 카운트가 몰리자 존슨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냥 승부를 보게 해주라고.’
그 짜증은 곧장 포수에게 향했다.
자신은 승부를 보고 싶었다.
첫 타석에서야 자신이 방심해서 졌다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상대를 인정했다.
그럼에도 이길 자신이 충만했다.
그런 존슨의 사인에 포수가 벤치를 바라봤다.
“어떻게 할까요?”
수석코치의 질문에 미국 대표팀 감독 올리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여기서 더 볼카운트가 몰리면 그것도 문제가 되겠지.”
올리버의 허락이 떨어지자 수석코치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포수의 사인을 확인한 존슨이 마음에 든다는 듯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킥킹에 이어 스트라이드를 내딛은 그가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존슨의 손을 떠난 공이 수호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공의 궤적을 확인한 수호가 발을 내디디며 하체를 회전시켰다.
[팔꿈치는 배에 붙이고.]
[골반이 돌 때까지 배트가 회전하면 안 돼.]
[모든 힘은 임팩트 순간에 나와야 한다.]
레전드들의 조언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 수호의 배트가 홈플레이트 위를 지났다.
후웅-!!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동시에 수호가 1루를 향해 전력질주를 했다.
[정타는 아니다.]
[코스가 좋다! 3루까지 내달려!]
레전드들의 말대로였다.
공은 마지막 순간 변화가 일어나면서 공의 스윗스팟보다 안쪽에 맞았다.
땅에 떨어진 배트가 둘로 쪼개진 게 그 증거였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스윙을 가져갔기에 타구는 우익방면까지 날아갔다.
[저건 못 잡는다.]
타구를 따라가던 우익수가 몸을 날렸다.
하지만 타구에 회전이 걸리면서 낙구지점이 더욱 멀어졌다.
툭!!
“인!!”
1루심이 안타라는 사인을 보냈다.
회전이 걸린 공은 1루 선상 밖으로 튕겨져 나가 그대로 굴러갔다.
“제길!”
자신의 눈앞에 떨어진 타구를 본 우익수 터너가 다급히 일어나 공을 쫓았다.
그 사이 2루 베이스 앞에 도착한 수호에게 후원이 날아들었다.
[루 브록님이 1000노잣돈을 후원하셨습니다.]
[빠졌다! 달려!!]
속도를 늦추려던 수호는 후원이 도착함과 동시에 다시 속도를 높였다.
그가 2루 베이스를 통과한 순간, 공을 잡은 터너가 있는 힘껏 공을 뿌렸다.
외야까지 나온 2루수가 중간에서 공을 낚아채 다시 3루로 던졌다.
쐐애애액-!!
[몸을 날려!!]
[슬라이딩!!]
채팅이 올라옴과 동시에 몸을 날린 수호가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3루 베이스를 터치했다.
뒤이어 그의 어깨로 글러브가 닿았다.
퍽!!
“세이프!!”
3루심의 판정은 세이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수호가 한국대표팀 더그아웃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나이스!!”
“수호 네가 최고다!!”
모든 이들이 열광했다.
수호 역시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하고 있었다.
[이욜~좀 때린다?]
[나쁘지 않은 스윙이었다.]
[마지막까지 팔로스윙을 가져간 게 좋았음.]
[ㅇㅈ]
[반드시 나와야 할 때 나온 안타였다.]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칭찬도 이어졌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나였으면 홈까지 훔쳤다.]
[나도.]
[당연히 들어와야지.]
세 사람의 채팅이 연달아 올라갔다.
수호는 무언가 반론을 이야기하려다 그들의 이름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빌리 해밀턴 : 주루 좀 자주 배워야 할 듯]
[타이 콥 : 경기 끝나고 훈련 드가자]
[루 브록 : 주루가 기본이 안 됐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대도들이었으니 말이다.
* * *
[U18 한국대표팀 16강에서 디펜딩챔피언 미국을 무너트리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승리였다.
이전 대회 우승국이었던 미국을 무너트리다니 말이다.
당연히 인터넷에서는 큰 화제를 낳았다.
- 올~미국 이겼네.
- 어떻게 이겼냐?
- 내용 보니까 정승우가 다했네.
- 7이닝 1실점 3피안타 10탈삼진 잡으면서 캐리했네.
- 역시 미래 국대 에이스다!
- 지금도 국대 에이스 아님?
- U18이면 아마추어나 다름없는데 뭐.
- 그나저나 한수호가 누구냐?
- 왜?
- 2타수 2안타 1볼넷으로 타석에서 캐리했는데?
- 그것도 1홈런 포함임.
- 성적 좋네.
- 국대의 새로운 신성인가?
- 그래서 일본이랑은 언제 하는데?
- 결승에서나 만날 듯.
- 다 좋은데 일본한테만 지지 마라.
야구팬들은 정승우의 활약에 집중했다.
내년부터 프로에서 뛰게 될 선수이기에 그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했다.
한수호 역시 정승우만큼은 아니었지만, 많은 관심을 받았다.
대표팀 첫 홈런과 타점 그리고 득점까지 올리면서 빼어난 활약을 한 덕분이었다.
그렇게 좋은 활약을 펼친 수호였지만, 그는 지금 숙소에서 혼나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딱 치는 순간 이걸로 내가 몇루까지 가야겠다. 이런 각이 안 서냐?]
‘아니...그게 어떻게 딱 옵니까?’
[난 오는데?]
[나도.]
[왜 넌 못해?]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세 사람이었다.
하지만 수호는 아무런 반론도 펼치지 못했다.
셋이 합쳐 메이저리그 통산 도루가 무려 2744개나 달하는 괴물들이다.
그들에 비하면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자신이 반론한다고 해서 먹힐리가 없었다.
[내 기록이야 핸더슨이나 브록이 깼으니 별 미련이 없는데. 네 주루 보니 정말 엉망이더라.]
빌리 해밀턴.
메이저리그 초창기를 평정했던 대도다.
테드 윌리엄스와 마찬가지로 4할을 때려냈던 대타자인 그는 루 브룩이 기록을 경신하기 이전까지 최다도루 기록을 보유한 선수기도 했다.
한시즌 100개의 도루를 달성하기도 했던 그의 말에 수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너 노잣돈 좀 쌓였지?]
‘예? 아, 예.’
[내가 주루의 정석을 보여줄게.]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억울해서 보고 싶었다.
얼마나 주루를 잘했기에 이런 말을 하는지 말이다.
[에이, 선배님. 그래도 시대가 있으니 먼저 제것부터 보게 하죠?]
그때 루 브룩이 끼어들었다.
그는 깨질 거 같지 않던 빌리 해밀턴의 기록을 갱신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통산도루 938개는 리키 핸더슨이 깨기 전까지 메이저리그 1위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한시즌 113개의 도루 기록은 여전히 내셔널리그 최다도루로 기록되어 있었다.
[에헤이~찬물도 위 아래가 있지!]
[우리가 언제 그런 거 따졌습니까?]
[내거부터 봐야 한다니까?]
[제가 먼저입니다!]
두 사람의 다툼에 채팅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수호가 입을 열었다.
‘두 분 모두 보면 안 됩니까?’
[어?]
[응?]
잠시 침묵을 지키던 둘이 동시에 채팅을 쳤다.
[안 될 건 없지.]
[까짓 그러자!]
결정이 나자 수호는 이내 두 사람과의 동기화를 택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
현실로 돌아온 그는 감탄한 듯 입을 벌렸다.
[어때?]
‘제가 한 건 주루가 아니었네요.’
두 사람이 왜 메이저리그 최고의 대도로 불렸는지 알 수 있게 된 수호였다.
그런 수호의 시야에 두 사람과의 동기화 수치가 나타났다.
[빌리 해밀턴 : 0.1퍼센트]
[루 브록 : 0.1퍼센트]
또 하나의 무기를 장착한 수호가 8강을 벼르고 있을 때.
[근데 왜 내껀 안 보냐?]
[너는 도루가 아니라 이단 옆차기 하잖아.]
[ㅇㅈ 선배님처럼 핏 퍼스트 슬라이딩하면 요즘은 퇴장입니다.]
[출전정지 당할 듯.]
[차라리 타격이나 다른 걸 배우게 하시죠.]
[젠장...]
왜인지 채팅에서도 주눅이 든게 보일 정도로 시무룩해진 타이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