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4화
“내일 출국이니 다들 부모님이나 가족들에게 연락 한 번 드려라.”
“예!”
“그럼 오늘은 괜히 사고치지 말고 푹 쉬도록 해.”
황우성 감독의 간단한 연설을 끝으로 선수들이 흩어졌다.
정승우는 바로 수호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아으~드디어 본선이구나.”
“훈련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흐흐, 고생은 무슨. 그나저나 너희 부모님은 미국에 응원하러 오시냐?”
“예?”
“우리 부모님은 벌써부터 미국에 가 계시거든. 아니, 어떻게 경기에 뛰는 나보다 더 일찍 가있냐? 어제 연락했는데. 둘이 디즈니랜드에 가서 신나게 놀고 있다 하더라고.”
푸념을 토해내는 정승우를 보며 수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 또 전화왔다.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
“예.”
정승우가 멀어지자 수호도 자신의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하지만 번호를 누르거나 하진 않았다.
[뭐해? 부모님한테 연락이라도 드려야지.]
[그러고보니 너 회귀하고 한 번도 집에 안갔지?]
[연락을 하는 것도 못봤는데?]
레전드들과 함께 한지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24시간을 함께 하니 연락을 했다면 모를리가 없었다.
한참 말이 없던 수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어요.’
[응?]
[어?]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1년 전에 사고로 두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동생이 하나 있는데, 지금 고모님 댁에서 지내고 있고요.’
[허...]
[이거 참...]
[그래도 동생이랑은 연락해야지.]
‘아직 폰이 없어요. 메일은 보내놓을 생각입니다.’
요즘 시기에 핸드폰이 없다는 건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초등학생들도 다 가지고 다니니 말이다.
하지만 레전드들은 묻지 않았다.
뭔가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뭐, 흔한 이야기입니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고 더 이상 꿈만을 쫓을 수 없게 되었죠. 그래도 고모부와 고모가 마지막까지 해보라고 하셔서 여기까지 왔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에 입단하지 못하게 되면서 포기해야 했죠.’
고모와 고모부가 눈치를 줬던 건 아니다.
하지만 수호는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꿈을 포기했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꿈을 포기하고 현실을 택한 셈이었다.
[그렇게 회사원이 된 거냐?]
‘예. 덕분에 동생을 대학에도 보내고 결혼도 시켰습니다.’
[장하네.]
[열심히 살았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았다는 말을 듣자 목이 메였다.
그때 요기 베라가 말했다.
[이전의 삶은 너를 버리고 살았구나.]
[이번에는 제대로 널 위해 살아보자.]
[결국 그게 네 동생과 고모, 고모부를 위한 선택이 될 거다.]
메이저리그.
꿈의 무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부와 명성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무대에 간다면 이전의 삶보다 더 동생을 서포트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을 대신한 고모와 고모부에게도 말이다.
‘예.’
다시 한 번 다짐하며 수호는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두 분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 * *
다음 날.
인천공항에 U18한국대표팀이 내렸다.
그들을 취재하기 위해 모인 언론도 제법 있었다.
그들의 스포트라이트는 대부분 정승우에게 집중되었다.
“정승우 선수, 내년부터는 프로에서 뛰는데.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번 야구월드컵에서 정승우군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우승이 가능할 거라 보십니까?”
“야구월드컵에서 어떤 성적을 남기실 생각입니까?”
그들은 선수가 부담될만한 질문도 서슴치 않고 내뱉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레전드들의 불편한 채팅이 올라왔다.
[하여간 언론놈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기네들 기사에만 열을 올린다니까.]
[어린 애한테 저런 질문을 하네.]
[부담으로 죽일 생각인가?]
[내가 이래서 언론을 좋아할 수가 없어.]
타이콥이나 테드 윌리엄스 등.
생전에 언론과 친하지 않았던 선배들의 채팅에 수호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였다.
“한수호 선수, 안녕하세요.”
한 여성이 다가왔다.
그녀의 목에 걸린 신분증을 보고는 그녀가 기자인 걸 알 수 있었다.
[요즘 이렇게 예쁜 여자들도 기자하누.]
[ㅗㅜㅑ 스타일 좋네.]
[우리 수호 눈을 떼지 못하네.]
[전생에서 이런 여자들하고 말은 해봤누?]
물론 해보지 못했다.
미팅이나 선은 몇 번 봤지만, 결혼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덕분에 미혼으로 전생하게 되었다.
[뭐여, 그럼. 너 아다냐?]
“풉!”
“응? 왜 그러세요?”
“아...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마시던 음료수를 내뱉을뻔 했다.
‘아다 아닙니다...’
이를 악물고 대답한 뒤, 여자기자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기자가 자기소개를 했다.
“코리아 베이스볼의 한선예 기자에요.”
“한수호입니다. 보직은...”
“포수를 맡고 있고 우타자 거포죠. 청룡기에서 5경기 연속 홈런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절...아십니까?”
“한수호 선수의 기사를 처음 쓴 게 저에요. 괴물의 등장! 이러면서 말이죠.”
“아~! 그 기자님이셨군요! 반갑습니다. 기사를 좋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수호를 보며 한선예가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을 적은 거 뿐이니까요. 대표팀에는 익숙해지셨나요?”
“선배님들이 잘 해주셔서 빨리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좋나 보네요. 이번 야구월드컵이 첫 국제전으로 알고 있는데. 떨리진 않으세요?”
“아직 실감은 나지 않습니다. 태극마크를 다는 것도 처음이고 해외에 나가서 야구를 하는 것도 처음이라 그냥 얼떨떨합니다.”
수호의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와...얘 뭐 인터뷰할 줄 알았나?]
[누가 보면 대답 준비한 줄.]
[너 야구선수 말고 그냥 영업이나 뛰어라.]
‘저 원래 영업직이었는데요?’
[응? 그랬어?]
‘예. 영업왕도 한 번 했었습니다.’
[이열~그건 또 몰랐네.]
[그래서 말을 잘했구나.]
수호는 한선예의 질문에 청산유수로 대답했다.
덕분에 인터뷰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말을 참 잘하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미국에서 좋은 모습 기대할게요.”
“옙!”
힘있게 대답을 한 수호가 몸을 돌렸을 때였다.
익숙한 얼굴의 중년여성이 공항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그녀를 본 수호의 눈이 커졌다.
“고모?”
“아이고! 수호야. 내가 안 늦었네.”
고모라 불린 여성이 다가와 수호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놈아, 국가대표가 됐으면 이야기를 해야지. 미국가기 하루 전에 연락하는 놈이 어딨어!”
“아니, 여긴 어떻게 오신 거에요? 가게는요?”
“기차 타고 올라왔지. 어떻게 올라와? 그리고 가게는 고모부가 보고 있어. 걱정 안해도 돼.”
어제 저녁에 연락했으니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온 것이다.
“고모부가 안부 전해주라더라. 잘 하고 오라고.”
직접 연락하셔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셨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부담을 느낄 수도 있으니 참은 것이다.
“그리고 이거 가서 용돈이나 해.”
“예? 아니에요. 이런 거 없어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넣어둬! 정 쓸데없으면 간 김에 수빈이 선물이라도 사오던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수빈이 이번주에 스마트폰 사줄 테니까. 연락하고 싶으면 편하게 해. 괜히 우리한테 폐 끼친다 생각하지 말고.”
고모와 고모부.
두 분이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고 위했는지 새삼스레 깨달았다.
[네가 잘못했네.]
[ㅇㅈ]
[생각이 많았던 건 이해하지만, 고모님은 네 걱정 많이 하시는 거 같은데?]
‘제가 너무 어렸나 봅니다.’
[네 입장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지.]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니.]
[뭐, 이래저래 상황이 안 좋았던 거 같네.]
[앞으로라도 잘해라.]
‘예.’
레전드들의 조언을 들으며 수호는 고모와의 짧은 시간을 보냈다.
“모두 집합!!”
그 시간이 끝나는 소리와 함께 수호가 말했다.
“다녀와서 목포 한 번 내려갈게요.”
“그래. 언제든지 네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와.”
“예. 그리고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와야지. 평소에 네 경기에 못가서 오히려 미안하다.”
“아니에요. 그럼 조심히 내려가시고 경기결과는 메시지 드릴게요.”
“그래. 가서 다치지 말고 힘내서 열심히 하고 와!”
“예!”
수호는 고모를 뒤로 하고 선수단과 합류했다.
고모는 선수단이 게이트로 들어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다 발길을 돌렸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 수호는 고모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메시지로 전했다.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고모부의 답장이 도착했다.
[멀리서나마 응원하마.]
짧은 한 마디.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수호는 어느 때보다 마음이 따뜻해진 채, 한국을 떠날 수 있었다.
* * *
이번 야구월드컵은 미국 플로리다에서 개최했다.
한국은 미국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현지적응을 위한 훈련에 들어갔다.
“와...미국 시설 진짜 장난 아니네.”
정승우의 말대로였다.
미국의 훈련시설은 한국과는 비교하기도 힘들었다.
국대훈련을 위해 시설이 좋은 대학교에서 지냈던 대표팀이지만, 이곳과는 비교하기 힘들었다.
“야야, 그라운드 봐바. 예술이다.”
“오~잔디가 아주 그냥 예술로 깔렸는데요?”
“이야~여기에서 슬라이딩해도 하나도 안 아프겠다.”
“쫙쫙 미끄러지는데?”
그라운드 상태도 최상이었다.
베이스볼의 종주국, 미국의 인프라가 이렇게 다르구나 느낄 정도였다.
[크하하! 이게 미국의 힘이다!]
[이거지! 이게 그라운드지!]
[크하~오랜만에 미국 공기 맡으니까, 아주 속이 뻥 뚫리네!]
‘...선배님 돌아가셨습니다.’
[어쭈? 초칠래?]
날카로운 반응에 입을 다문 수호는 훈련에 들어갔다.
기초훈련을 시작으로 수비훈련을 지나 이윽고 타격훈련 순서가 되었다.
“한수호!”
“예!”
타격코치의 부름에 수호가 타석에 섰다.
이틀만에 잡는 배트였는데.
왜 이렇게 반가운지 몰랐다.
“간다!”
“예!”
배팅볼투수를 자처한 코치의 외침과 함께 공이 날아들었다.
수호는 가볍게 발을 내딛으며 있는 힘껏 허리를 회전시켰다.
후웅-!!
배트가 바람을 가르고.
딱!!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초구부터 큼직막한 타구가 나왔다.
빠르게 날아간 타구는 그대로 담장밖으로 사라졌다.
“와...”
“쟤는 뭐 초구부터 담장밖으로 날려버리네.”
“청룡기 최초 5경기 연속 홈런이 우연이 아니었나 본데?”
“그런 기록이 우연으로 나올 수 있냐?”
그걸 지켜보던 선수들이 감탄을 터트렸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공 하나 담장밖으로 날린 거 가지고 이렇게들 난리법석이야.’
강현식은 불편한 시선을 보냈다.
‘연습에서...’
딱!!
‘저 정도 타구는...’
딱!!
‘나도...’
따악-!!
“우와! 또 넘겼어!”
“연속으로 몇 개를 넘기는 거야?”
“4개 연속 아니었어?”
강현식은 이를 악물었다.
타격능력에서 수호는 넘사벽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물러날 수 없어.’
강현식의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현식이도 준비해!”
“예!”
그 어느 때보다 의욕이 넘치는 강현식이 타격훈련에 들어갔다.
* * *
훈련이 끝난 뒤.
코치진이 모여 회의에 들어갔다.
“타격쪽은 어땠어?”
“아무래도 미국에 오고 첫 훈련이다보니 전반적으로 한국보다 컨디션이 떨어진 모습이었습니다.”
“음, 시차도 변했고 환경이 변했으니 어쩔 수 없나?”
타국에서 경기를 치르는 건 성인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그걸 맡기고 있으니 어려움을 겪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수호의 컨디션은 매우 좋아보이더군요.”
“그래?”
“예. 타격훈련에서 홈런성 타구를 계속 만들어냈습니다. 초반에는 5개의 공을 연속으로 담장밖으로 날려보낼 정도였습니다.”
“오호.”
황우성의 눈이 빛났다.
“컨디션이 괜찮나 보군. 수비에서는 어땠어?”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승우와의 호흡이 좋아서 승우 녀석의 컨디션이 올라오는데도 도움이 됐습니다.”
“에이스와 호흡이 잘 맞는다라...”
에이스의 역할이 팀에 미치는 역할은 크다.
특히 이 나이대의 경기는 에이스의 비중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의 컨디션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선수로 넘어가지.”
회의는 계속 진행됐다.
늦은 시간 회의를 끝내고 방에 홀로 남은 황우성은 고민에 잠겼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성대우였다.
그는 테이블 위에 가득 펼쳐져 있는 선수 명단을 보고 물었다.
“엔트리 때문에 머리 아프신가 보군요.”
“아아, 장거리비행에 다들 컨디션이 나빠졌으니까. 거기에 16강 상대가 미국이야. 이것만큼 최악이 있을까?”
“뭐, 그래도 일본이 아닌 게 어딥니까? 처음부터 일본 만났으면 국민들 반응이 엄청났을 거라고요.”
“하아...대회에서 떨어져도 되는데. 일본한테는 지면 안 된다. 이런 말도 있더라.”
“그게 국룰이긴 하죠. 그런데 뭐가 그리 고민되시는 겁니까?”
“1차전 선발이야 뭐 승우로 하면 되니까, 패스. 다른 포지션들도 대부분 결정했는데. 이게 문제란 말이지.”
황우성이 두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수호와 현식의 프로필이 기록되어 있었다.
“역시 이 두 사람이군요.”
“그동안 보여준 성적으로는 현식이가 우선이야. 성실하고 승부욕도 강한데다 실력도 확실하고 말이지.”
“반면에 한쪽은 갑자기 나타난 신성이라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죠.”
“문제는 승우와 합이 잘 맞는 게 수호란 점이지.”
“단순히 실력만으로 고민하시는 겁니까?”
성대우가 정곡을 찔렀다.
“하아...날카로운 자식. 최근 성적도 수호가 좋다. 거기에 컨디션도 그렇고. 그래서이미 마음은 수호에게 기울었다. 그런데 그럼 현식이가 불쌍하잖냐.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는데.”
“프로팀이라면 이미 결정하셨겠군요.”
황우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를 골랐겠지.”
“그럼 평소대로 가시면 됩니다. 어차피 쟤들 대부분이 내년이면 프로입니다. 그걸 먼저 경험한다해서 달라질 건 없습니다.”
성대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수를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이기러 온 겁니다. 평소대로 이기기 위한 선택을 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성대우가 방을 나갔다.
홀로 남은 황우성은 두 장의 서류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짜식...누가보면 감독인 줄 알겠어.”
감독이라 해서 항상 옳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니었다.
감독이란 보직에 앉는 이도 결국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옆에서 조언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황우성에게는 성대우가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게 이기기 위한 선택이다.”
손에 들린 종이를 바라보며 황우성이 결정을 내렸다.
그 종이에는 수호의 프로필이 기록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