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10화
퍽!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세 번째 아웃카운트가 올라갔다.
“오호, 투수의 제구력이 좋아졌네요.”
김민기의 말에 황우성도 동의했다.
“포수의 포구가 좋아.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주니까, 투수 입장에선 자신의 공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지.”
“확실히 제가 마운드에 있을 때도 선배가 미트를 잡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적이긴 했죠.”
“무엇보다 교체되고 나오자마자 주자를 잡아준 게 컸어.”
“와...그건 정말 충격적이던데요? 고교생이 앉아쏴라니...게다가 정확도 봤어요? 2루수가 아무것도 안해도 자동태그가 될 정도였다니까요?”
“기사에선 타격이 괴물이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캐처박스에서 더 괴물이었어.”
포수로서의 능력은 기사에 없었다.
하지만 황우성이 보기에 수호가 가진 포수로서의 재능은 이미 고교수준이 아니었다.
‘진짜 뭐야? 저 괴물은.’
기사의 제목에 동의하게 된 황우성이었다.
* * *
더그아웃에 들어간 수호에게 투수 세훈이 다가왔다.
“나이스 한수호!”
“감사합니다!”
“이야~네가 받아주니까 안정감이 장난아니네. 무엇보다 앉아쏴 뭐냐? 주자 없어지니까 마음이 진짜 편해지더라.”
“워낙 잘 달리는 선수라서 초반부터 달릴 거라 생각했습니다.”
“주력에 자신감이 넘치는 녀석이니까. 그런 놈을 잡았다는 게 대단한 거지.”
세훈의 칭찬에 수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반면 한쪽에 앉아 있던 박현식의 얼굴은 구겨질대로 구겨졌다.
수호도 그것을 봤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실력없는 놈이 빽으로 나오는 것도 모자라서 속도 좁네.]
[그러게 말이야.]
레전드들의 말에 동의하는 수호였다.
“오늘 경기 꼭 이기자.”
“예, 선배님.”
세훈이 멀어지자 수호는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스코어는 4 대 1. 점수가 더 벌어지지 않아서 따라잡을만한 점수네요.’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지.]
[문제는 네 앞에 주자가 쌓이느냐지.]
[ㅇㅈ]
[수비에서 흐름을 가져왔으니, 공격도 물꼬가 트일 가능성이 크다.]
레전드들의 말은 정답이었다.
딱-!!
“때렸다!!”
“오케이! 안타!!”
선두타자가 안타를 만들고 나갔다.
퍽!!
“볼! 베이스 온 볼!!”
“두 타자 연속 출루!!”
“주자가 쌓이는구나~!”
두 번째 타자 역시 출루에 성공했다.
순식간에 두 명의 주자가 쌓였다.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나까지 온다.’
수호가 대기타석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너랑 승부하겠냐?]
[요즘 타격감 좋아서 웬만하면 고의사구 나올 각인데.]
[투수도 바꾸네.]
[연속으로 우타자 나오니까. 좌투로 바꾸는 거네.]
[거기에 사이드암이야?]
투수가 바뀌었다.
우타자가 연속으로 이어지니 나온 대책이었다.
‘승부를 피할까요?’
[베이스가 비어있으면 그렇게 하겠지.]
[가장 좋은 건 만루가 만들어지는 건데.]
만루가 되면 고의사구는 나오기 힘들다.
물론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고교야구에서 그렇게까지 할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확률이 제로는 아니었기에 그런 상황 자체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게 최고였다.
딱-!!
그때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날아갔다.
내야에서 원바운드 된 공을 유격수가 잡으려는 순간, 글러브를 맞고 굴절되었다.
다행이 중견수가 바로 백업을 와서 잡으면서 주자는 홈을 파고들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베이스가 채워졌다.
그 모습을 보며 레전드들의 채팅이 올라갔다.
[와~누가보면 밥상 차려준줄.]
[완벽한 시나리오네.]
[야야, 이런 순간에 해결 못하면 때려쳐라.]
[이제 거르고 싶어서 못 거른다.]
[야구의 신이 돕네.]
그들의 말대로였다.
무사에 만루상황이다.
아무리 수호의 타격감이 좋다지만, 여기에서 고의사구를 택하긴 어렵다.
‘밥상이 차려졌으니...’
배트를 쥔 수호가 타석으로 걸어갔다.
‘맛있게 먹어야겠죠.’
* * *
김민기가 수호를 보며 말했다.
“완벽한 기회가 찾아왔네요.”
“흐름을 완벽하게 잡아냈으니까. 이 기회를 어떻게 살리느냐가 중요하겠지.”
“무사만루라는 상황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겠네요.”
“부담감 때문에?”
“예.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기회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 부담감을 느껴 제대로 타격 못하는 애들이 수두룩한 거, 선배도 아시잖아요.”
“잘 알지. 무사만루라는 최고의 찬스를 놓치면 안 된다는 부담감.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이걸 해결하지 못했을 때 나올 비난들에 대한 부담감.”
부담감은 선수의 본래 실력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쟤는 그런 타입이 아니야.”
“예?”
“저 얼굴이 부담감에 짓눌린 얼굴 같냐?”
김민기의 시선이 수호에게 고정됐다.
타석에 선 수호는 차분하게 자신의 루틴을 밟으며 자세를 취했다.
“차분하네요. 표정변화도 하나 없고.”
“마인드 컨트롤이 대단해. 아니면 그냥 타고난 녀석이던가. 무엇보다...”
한우성이 몸을 일으켰다.
“기대를 가지게 만드는 놈이야.”
무슨 짓을 벌일까?
벌써부터 기대됐다.
[집중력을 끌어올려라.]
테드 윌리엄스의 말에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집중...집중...’
[한 번의 기회를 놓치는 순간 흐름은 다시 넘어간다.]
[베이스볼은 원래 그런 놈이야.]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수호의 집중력은 이전보다 더 높아졌다.
퍽-!!
“볼!”
초구는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였다.
포수의 자세가 무너지면서 잡은 것으로 보아 본래 사인보다 더 바깥쪽으로 나간 듯 했다.
[투수도 긴장했다.]
[만루상황은 타자에게도 압박감이 심하지만, 투수에게는 더 강할 수밖에 없어.]
[제구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실투가 올 거다.]
레전드들의 채팅을 보며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 대략적이나마 그릴 수 있었다.
“흡!!”
기합소리와 함께 투수가 2구를 뿌렸다.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구속은 130km중반정도.
좌완 사이드암치고는 느리지 않은 속도였다.
하지만 코스가 나빴다.
‘바깥쪽에서 존으로 들어오는 코스.’
본래 제구력이었다면 백도어성으로 마지막 순간 존에 들어오는 공이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 그의 제구력은 제대로 된 공의 궤적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가운데로 온다.’
존의 바깥쪽에서 가운데로 들어오는 공의 궤적을 확인한 수호의 왼발이 배터박스를 내디뎠다.
콰직!
스파이크가 바닥에 박히고.
휘릭!!
하체가 회전했다.
하체에서 시작된 회전이 허리를 타고 상체까지 올라오는 다이나믹한 동작에도 불구하고 수호의 시선은 공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후웅-!!
회전력을 실은 배트가 그대로 홈플레이트 위를 지났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쭉쭉 뻗어갔다.
그것을 본 황우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꼰대들한테 전해.”
“예?”
“국대 한 명 더 뽑는다고.”
“그게 무슨...?”
“와아아아아-!!”
갑자기 터져나온 함성소리에 김민기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의 시야에 외야 관중석에 떨어진 야구공이 보였다.
그걸 본 김민기가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전할게요...”
5경기 연속홈런을 그랜드슬램으로 달성한 수호가 유유히 베이스를 돌았다.
* * *
[청룡기 최우수선수, 성일고등학교 2학년. 한수호.]
청룡기가 끝났다.
최우수선수는 당연하게도 수호에게 돌아갔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상패를 받아든 수호는 감회가 새로웠다.
[뭐야? 우냐?]
[야야, 우냐?]
[얘 운다.]
[감동 받았나 본데?]
울지는 않았다.
‘그냥 감동했을 뿐입니다.’
[고작 이런거에?]
‘고작일 수도 있지만...제가 하고 싶은 일로 인정받은 거니까요.’
이전 삶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야구를 포기하고 사회에 뛰어들었지만, 거기에선 그저 톱니바퀴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곳에선 아니다.
자신은 성공했고 남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런거라면 뭐.]
[그래도 여기에서 만족하지마라.]
[우리와 약속을 잊지마.]
[네가 가야 할 곳은 메이저리그다.]
‘예. 저도 여기에서 만족할 생각은 없습니다.’
한계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이 어디까지인지 말이다.
* * *
박규현은 난감했다.
“규현이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는 거냐?”
그의 앞에 있는 남자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님, 그런게 아니라. 상황이 어쩔 수 없지 않았습니까?”
“어쩔 수 없긴 뭐가 어쩔 수 없어?! 너 내가 프로팀에 있을 때 얼마나 도와줬는데! 이런 식으로 내 뒤통수를 쳐?!”
남자의 이름은 박대성.
40대가 넘었음에도 여전히 프로에서 뛰는 현역이었다.
그리고 박규현이 프로생활을 할 당시 직속선배기도 했다.
“뒤통수라니요. 꼭 그렇게 받아들이지 마시고...”
“오늘 청룡기라서 내 스케줄도 빼고 직접 관람하러 왔어! 부모님이랑 일가친척도 다 데리고 말이야! 그런데 현식이를 교체시키는 게 말이 돼?!”
“그 상황에서 현식이를 계속 쓰기엔...”
“쓰기엔 뭐?!”
“실력이 개판이어서 계속 쓸 수 없었습니다라고 해야죠.”
그때 뒤에서 제 3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새끼...!”
박대성이 욕설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눈에 황우성과 김민기가 보였다.
“여기에서 다 뵙네요. 선배님.”
“황우성...네가 여긴 웬일이냐?”
“U-18국대 감독이니 당연히 선수들 보러 왔죠. 그나저나 선배는 아직도 현역에 계십니까?”
“뭐?”
“슬슬 은퇴하실 때 됐잖아요. 언제까지 자리 꿰차고 계실 겁니까? 후배들한테 자리도 내주셔야죠.”
“너 이 새끼...뚫린 입이라고...!”
“왜요? 그 잘난 인맥으로 나까지 어떻게 해보려고요?”
황우성의 빈정거림에 박대성이 입을 다물었다.
연차는 자신이 위라지만 야구계에서의 위상은 황우성이 더 높았다.
“언제까지 네 세상인 것처럼 날뛰지마라.”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박 감독님.”
“아, 예.”
박규현은 당황했다.
‘이 거물이 왜 날 찾아온 거지?’
황우성은 한국야구계의 거물 중의 거물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 득이 될지 아닐지 계산이 서지 않았다.
그때 그가 자신이 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한수호, 국대에 보내주십시오.”
“수호를요?”
“예. 뭐, 조만간 정식공문이 가겠지만. 일단 감독님은 알고 계셔야 할 거 같아서 사전에 알려드리러 온 겁니다.”
“하...하지만 U-18 국가대표는 이미 선발이 끝나지 않았습니까?”
“감독 특별권한 뭐 그런 거라고 해두죠. 어쨌든 그렇게 아시고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끝낸 황우성이 들어왔던 문으로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본 박규현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망할...’
그리고 박대성은 깨달았다.
자신의 조카가 주전으로 뛰기 힘들 거란 사실을 말이다.
* * *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었다.
한수호가 딱 그 케이스였다.
[청룡기를 제패한 신성 한수호!]
[성일고의 괴물 가락고를 잠재우다!]
[5경기 연속 홈런을 그랜드슬램으로 장식한 한수호!]
고교야구 기사가 하나도 아니고 십여개가 포털사이트를 장식했다.
그만큼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다는 소리다.
야구 커뮤니티 역시 발칵 뒤집혔다.
- 청룡기에서 5경기 연속 홈런 나온 거 알고 있음?
ㄴ 진짜?
ㄴ 누가 그렇게 터트림?
ㄴ 김태수인가?
ㄴ 걔 U-18국대 뽑혀서 청룡기 불참했을 걸?
ㄴ 성일고 한수호라는 애임.
- 한수호가 누군데?
ㄴ 이번 청룡기에 데뷔한 루키임
ㄴ 루키가 5경기 연속 홈런을 때렸다고?
ㄴ ㅇㅇ.
- 너튜브 영상 보니까, 앉아쏴도 하더라.
ㄴ 포지션이 포수야?
ㄴ 앉아쏴라니? 조인수의 앉아쏴?
ㄴ ㅇㅇ. 링크 확인해보셈.
한수호의 동영상은 엄청난 파급력을 낳았다.
그런 반응을 보며 수호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좋냐?]
‘좋죠.’
[여기에서 만족하면 곤란함.]
[ㅇㅈ]
[다음 스텝으로 가야지.]
레전드들의 말대로였다.
고교야구에서의 화제성에서 만족해선 안 된다.
‘뭘 하면 될까요?’
[당연히 훈련이지.]
[지옥훈련 가즈아-!]
청룡기 우승이란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에게 지옥훈련이 찾아왔다.
그때 한통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아, 한수호 선수?]
“예. 누구시죠?”
[U-18 국가대표팀의 김민기 수석코치입니다. 이번에 국가대표에 소집됐으니...]
상대의 말을 듣던 수호가 전화를 끊었다.
[왜 끊어?]
[야야, 국대라잖아.]
[갑자기 미친거임?]
“에이, 선배님들. 당연히 스팸이죠. 갑자기 국대에서 저한테 전화를 왜 합니까?”
[아, 그런가?]
[하긴 요즘 스팸 심하지.]
[저승에서도 스팸메시지 많이 오니까.]
“훈련이나 하시죠.”
[오케이 가즈아~]
수호의 오해가 풀린 건 몇 시간 뒤, 박규현 감독의 호출을 받은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