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7화
포수로서 경기에 나서는 게 얼마만일까?
‘제대로 되겠지?’
실전은 30년만이다.
긴장이 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의문과 긴장감은 1구를 받는 순간 사라졌다.
퍽!
“볼!!”
공이 잘 보였다.
마스크 사이 틈새로 보이는 시야로도 받는데 무리가 없었다.
몸이 움직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미트를 움직여 가볍게 공을 포구했다.
‘제대로 된다.’
[당연히 되지.]
[원래 몸이 기억한 건 시간이 지나도 기억하게 되어 있어.]
[데뷔 10년차 댄스가수가 10년 뒤에 데뷔곡 노래만 듣고 안무를 추는 것과 비슷하지.]
[거기에 너는 요기 녀석의 능력까지 얻었잖아.]
[고작 그런 걸로 좋아하면 곤란하지.]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타박을 들으며 수호는 정신을 차렸다.
‘언제까지 감탄만 하고 있을 순 없어. 저들의 말대로 이번 기회를 잘 살려야 해.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능력을 얻을 수 있고 조언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을 활용하지 못한다면 난 정말 구제불능밖에 되지 않아.’
놀라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회귀하고 어느덧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적응하는 걸 넘어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잘 생각해야 했다.
[오~마인드 마음에 드는데?]
[그래, 그렇게 해라.]
‘첫 번째 목표는 오늘 경기에서 내가 달라진 걸 보여주는 거다.’
스텝 바이 스텝.
수호는 다음 스텝을 밟기 위해 준비했다.
그때 채팅 하나가 올라갔다.
[스텝 바이 스텝도 좋지만, 때로는 자이언트 스텝도 밟아줘야지.]
* * *
긴장을 풀어서일까?
‘시야가 넓어졌어.’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운드에 있는 정강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하지만 지금은 정강우만이 아니라 내야와 외야까지 모두 시야에 들어왔다.
“잘 부탁드립니다!”
때마침 타석에 서는 타자의 움직임도 눈에 들어왔다.
고교야구는 어디까지나 교육의 일환으로 취급된다.
그래서인지 타자가 타석에 설 때 심판에게 인사를 하는 게 기본이 되어 있었다.
‘이번 이닝부터 교체된 타자지.’
좌완 사이드암인 정강우를 상대하기 위해 상대팀도 교체카드를 꺼냈다.
‘좌타자에 덩치로 보아 파워형보다는 정확도가 높은 타자인가?’
[그럴 거 같네.]
[호리호리하지만 하체만큼은 잘 발달되어 있네.]
[거기에 배트도 짧게 쥐는 걸 봐서는 정확도에 더 초점을 맞춘 거 같고.]
관찰하는 수호에게 레전드들의 채팅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직접 관찰한 것과 레전드들의 훈수를 합쳐 수호는 타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정확도가 높은 타자이니만큼 정면승부를 하면 위험하겠는데.’
그러한 정보가 있지만, 구종을 정하는 건 그가 아니었다.
수호의 시선이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바깥쪽 코스를 공략해. 패스트볼에 약하니까, 참고하고.’
코치의 사인이 보였다.
프로야구도 그렇지만, 고교야구에서도 포수가 직접 구종을 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코칭 스태프가 사인을 보냈고 포수는 그걸 따랐다.
[이러면 포수가 리드하는 건 거의 없네.]
포수의 리드는 허상이다.
현대야구에서 이런 말이 유행한 이유기도 했다.
그만큼 최근 야구에서 포수의 리드가 차지하는 부분은 줄어들었다.
대부분 공의 코스와 구종이 벤치에서 나오는 것도 큰 이유였다.
[하지만 포수의 리드는 실제한다.]
요기 베라의 말이었다.
[내가 마스크를 쓸 때와 아닐 때 투수들의 성적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을 거야.]
요기 베라의 포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가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포수라는 평가를 받는 건 투수의 숨은 능력을 끌어낸다는 점이다.
‘그리고 타자에 대한 정보를 끄집어내는 능력도 있었죠.’
[정답이다. 타자의 기존 데이터는 분명 벤치도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 데이터는 알지 못하지.]
[특히 이 나이 때 애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니까. 매일이 다르지.]
[그런 변화를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건 너야.]
레전드들의 조언을 들으며 수호의 시선은 자연스레 타자에게 향했다.
동시에 손은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초구는 낮게 그리고 패스트볼로 던져주세요.’
‘오케이.’
강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코스를 정확히 정할 필요는 없었다.
정확히 정해도 그곳에 던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으니 말이다.
그저 이곳에 던져달라는 사인이면 충분했다.
미트를 내밀자 강우가 킥킹과 함께 1구를 뿌렸다.
“흡!!”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수호의 미트를 향해 날아왔다.
후웅-!!
타자 역시 배트를 돌렸다.
하지만 배트는 공의 위를 지나갔고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퍽!!
“스윙! 스트라이크!!”
“나이스! 선배님 최고입니다!!”
수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치며 공을 던져주었다.
그러는 사이 타자는 타석에서 물러나 가볍게 배트를 돌리고는 다시 타석에 섰다.
‘응?’
수호는 그런 타자를 보며 이질감을 느꼈다.
‘뭔가 변했는데...’
변한 부분을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배터박스의 앞에 섰다.’
왜일까?
[왜긴 투수가 던지는 공의 변화에 빨리 대응하기 위해서지.]
[좌투수와 좌타자의 대결에서 투수가 유리한 건 맞지만, 사이드암이라서 타이밍이 어긋났어.]
[거의 크로스파이어 형식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박스의 앞에서 때리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아...’
레전드들의 의견을 들으며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렇다면 여기에선 뭐해야 할까?
답은 간단했다.
‘변화를 주면 된다.’
수호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코스는 그대로 가고 구종만 슬라이더로 가죠.’
‘슬라이더?’
‘예.’
고개를 끄덕인 한강우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있는 힘껏 공을 뿌렸다.
예상대로 타자는 이전보다 박자가 빠르게 배트를 돌렸다.
하지만 공은 그의 예상과 달리 더 빨리 그리고 크게 휘어졌다.
“큭!”
엉덩이를 빼고 배트를 내밀었지만, 공의 궤적을 따라가긴 힘들었다.
퍽!!
“스윙! 스트라이크 투!!”
[오오~나이스.]
[생각보다 투수의 제구력이 좋네.]
[사이드암의 장점을 잘 살렸어.]
[포구도 나쁘지 않았다.]
나쁜 수준이 아니었다.
“방금 슬라이더를 포구하는데도 크게 움직이지 않는군.”
“그러게요. 태성이도 강우의 슬라이더면 몸을 움직여야 할 정돈데 말이죠.”
김태성은 성일고의 3학년 주전포수다.
수비보다는 공격쪽에 특화되어 있지만, 수비도 그리 나쁜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한강우와 더 많은 호흡을 맞춘 게 그였기에 대응을 잘하는게 당연했다.
그런데 방금 전 포구하는 장면은 수호가 더욱 안정적이었다.
“실전에서도 잘하는데요?”
“아직 더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합격점이군.”
한수호라는 이름이 코칭 스태프들에게 확실히 각인되고 있었다.
* * *
수호의 수비는 안정적이었다.
덕분에 강우는 평소보다 편하게 공을 던질 수 있었다.
그 결과.
“고생했다.”
“잘했어.”
1이닝을 무사히 막고 공수교대에 들어갔다.
장비를 벗는 수호를 보던 코치가 박규현에게 물었다.
“이번 이닝에 중심타선으로 이어지는데. 수호를 바로 교체할까요?”
수호의 타순은 4번이었다.
본래 포수마스크를 썼던 태성의 펀치력이 좋았기에 중심타선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 태성과 교체되었으니 수호 역시 중심타순이 되었다.
현재 성일고는 4점 차이로 뒤지고 있었다.
역전을 위해서는 중심타선이 돌아오는 이번 이닝에 공격에 성공해야 했다.
“일단 상황 좀 보도록 하지. 이제 막 교체된 수호를 바로 교체하는 것도 애매하고 말이야.”
“하긴, 녀석을 바꾸면 다음 포수는 현식인데. 수비가 조금 불안정하긴 하죠.”
“그것도 그렇지만, 수호 녀석에게 묘한 기대감이 간단 말이지.”
“기대감이요?”
“그래. 요 근래 갑자기 수비를 잘하기 시작했잖아.”
“그렇죠.”
“그러니까, 타격쪽에서도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으흠, 하지만 타격은 하루아침에 변하기 힘들잖아요?”
“그건 수비도 마찬가지지.”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설마 공격쪽에서도 뭔가 변했겠어?’
그 설마는 곧 현실이 되었다.
* * *
딱-!!
경쾌한 소리가 그라운드를 울렸다.
“달려! 달려!!”
타구는 중견수 키를 넘겼고 타자는 1루를 지나 2루까지 도달했다.
“나이스!!”
“2루타다!!”
“한수야 잘했다!!”
2번 타자 이한수가 2루타를 때려내면서 주자가 들어갔다.
“확실히 한수 녀석은 장타력과 정확도 거기에 발까지 빨라.”
“괜히 1라운드 지명 이야기가 나오는게 아니죠.”
선예의 말에 경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심타선이 돌아오는 성일고가 제대로 기회를 잡았어. 다음 타자는 김동권이고.”
“괴물이 등장하네요.”
큰 덩치의 선수가 타석으로 들어섰다.
“고3에 190cm, 거기에 몸무게는 90kg이나 나간다지?”
“피지컬로만 보면 국내 수준이 아니에요. 메이저리그에서 탐을 낸단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니까요.”
“빠따도 좋잖아?”
“좋죠. 올해에만 벌써 홈런 7개를 때려냈어요. 전국대회에서만 3개를 때려냈고요.”
“조만간 프로에서 볼 재목이네.”
“문제는 상대도 그런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는 거죠.”
“피하려나?”
“그러지 않을까요?”
두 사람의 예상은 곧 현실이 되었다.
퍽!
“볼!”
상대팀에서 고의적으로 김동권을 피했다.
연속해서 볼을 던지며 김동권과 굳이 승부를 보지 않은 것이다.
“영리하네.”
“4점차라고는 해도 김동권에게 홈런을 맞으면 오늘 승리를 예상하기 힘들어지니까요.”
“거기에 1루까지 비어있고 말이야.”
“이한수가 2루타를 때린 게 오히려 독이었어요.”
“안타였다면 이런 식으로 고의사구로 내보내기도 쉽지 않았겠지.”
“게다가 대기타석에는 아직 햇병아리가 있고요.”
선예의 시선을 따라 경태도 성일고의 대기타석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아직 솜털도 벗지 않은 수호가 배트를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저 친구에 대한 타격 데이터는 가지고 있어?”
“주말리그에서 2할 5푼 7리를 기록중이에요.”
“타격형은 아니란 소리네.”
“예. 수비는 분명 뛰어났는데. 타격에선 데이터만 봤을 땐 영 아니에요.”
선예는 데이터를 신봉하는 기자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타격 데이터가 낮은 수호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럼 교체하지 않을까?”
“기회를 잡았으니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죠.”
하지만 이번에는 두 사람의 예상이 틀렸다.
퍽!
“볼! 베이스 온 볼!!”
김동권이 고의사구로 1루 베이스를 밟았지만, 수호는 교체되지 않고 타석으로 걸어왔다.
“그냥 내보내네.”
“흠, 그러게요.”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그럴 수도 있지만...단기간에 타격쪽에서 크게 변하긴 힘들다는 거 선배님도 잘 아시잖아요.”
“그렇긴 하지.”
“아마도 경험을 쌓게 해주려는 의도 아닐까요?”
“벌써 포기할 단계는 아니잖아?”
“그렇지만 코칭 스태프는 내년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3학년들은 올해를 끝으로 진로가 결정된다.
하지만 코칭스태프는 내년에도 학교에 남아 다음을 또 준비해야 했다.
그들의 입장에선 2학년들의 경험을 살려주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였다.
“어쨌건 이번 이닝은 큰 기대할 수 없겠네요.”
선예는 벌써부터 수호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수비에서는 확실히 인상적인 모습이었지만, 타격에선 수치가 너무 나빠.’
그녀는 스마트폰을 켜서 다시 한 번 수치를 확인했다.
‘타율은 낮은 건 둘째치고 SLG, OBP가 전반적으로 낮아. 거기에 삼진 갯수가 타수에 비해 높아.’
SLG는 장타율이었고 OBP는 출루율이었다.
두 개의 수치를 합친 것이 OPS로 현대야구에서 중요한 야구지표 중 하나였다.
이 두 지표가 낮은데 삼진의 갯수가 많다는 건 타자의 능력이 전반적으로 낮다는 걸 의미했다.
‘다음 타자는...’
선예가 다음 타자의 데이터를 확인하려는 그때.
딱-!!
경쾌한 소리에 그녀의 고개가 들렸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타석에서 아름답게 포물선을 그리고 있는 수호의 스윙을 말이다.
“저...저...!”
뒤이어 경태 선배의 놀라움에 가득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예는 그의 시선을 따라 외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외야 담장을 넘어가는 타구가 있었다.
“와아아아아-!!”
뒤이어 터진 성일고 학생들의 함성과 함께 수호가 1루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넘어갔...어?”
수호의 고교야구 첫 번째 홈런이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