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6화
선수 시절.
재능이 있단 생각은 해본적이 없었다.
그저 남들이 하는만큼 했고 그만큼 실력이 나왔었다.
[그게 재능충이지.]
‘예?’
[연습한만큼 실력이 나오는 게 말이 되냐?]
‘그...그래요?’
[당연하지.]
[연습이 10이라면 실전에선 1이 나오는 게 당연한 거야.]
[재능이 좀 있는 애들이 3-4가 나오는 거고.]
[그런데 연습한만큼 나온다?]
[재능충의 기만이네.]
[ㅇㅈ]
레전드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당황하고 있을 때.
요기 베라의 질문이 이어졌다.
[앉은 채로 던진 건 어케 한 거냐?]
‘어...TV에서 어떤 선수가 했던 걸 보고 그대로 따라해봤습니다.’
[그냥 했다고?]
‘정확히는 타이밍이 늦었다고 판단했거든요. 투수가 너무 시간을 끌기도 했고 제가 일어나서 던지면 팝타임이 너무 길어질 거라 봤습니다.’
[정확한 판단이네.]
[일어나서 던지면 확실히 늦었겠지.]
[앉아쏴도 충격이지만, 더 놀라운 건 어깨인데?]
[너 구속 얼마나 나오냐?]
‘정확히 재보진 않았지만, 선수시절에는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수비형 포수.
그것이 선수시절 자신을 따라다녔다.
당시에는 그게 싫었다.
어린나이여서 그런지 몰라도 수비형이란 말은 조연처럼 느껴졌으니까.
[수비형이란 게 절대 나쁜 게 아니야.]
[오히려 좋은 거지.]
[그런 색깔도 없는 애들이 수두룩하니까.]
듣고보니 그런 듯 했다.
확실히 프로들중에서도 공격형이니 수비형이니 말은 항상 따라다닌다.
그런데 이때는 왜 이런게 싫었을까?
[어린 마음에 나오는 치기지.]
정답인 듯 했다.
[어쨌든 재능은 확실하네.]
[키우는 맛이 있겠어.]
[오늘 재밌는 거 봤다.]
레전드들이 만족한 듯 했다.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다.
‘의외로 나쁘지 않았어.’
회귀하고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경기를 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 * *
경기가 끝나고 코칭 스태프가 모였다.
회의의 주제는 수호였다.
“다들 어떻게 봤어?”
“딴 사람을 보는 거 같았습니다.”
“며칠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아요.”
“안정적인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포구는 물론이고 블로킹이나 송구까지 모든 게 완벽했습니다.”
“고교레벨이 아니었어요.”
“원래 수비형이긴 했지만, 오늘 보여준 모습에서 장점들이 전반적으로 잘 살아났습니다.”
“특히 앉아쏴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칭찬이 쏟아졌다.
그만큼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박규현 감독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럼 며칠전에는 왜 그랬던 걸까?”
의구심이 들었다.
며칠 전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로스터에서 제외할 것을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완전 딴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단순히 컨디션이 나빴던 게 아닐까요?”
“그런가?”
“예. 감독님도 아시잖습니까? 컨디션이 나쁘면 아예 딴 사람이 된 것처럼 실력이 나오지 않는 거.”
아마를 거쳐 프로까지 뛰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컨디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듣고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수호도 데려가야 합니다.”
“저희 학교의 약점이랄 수 있는 안방을 안정화시키는데 좋은 자원이 될 겁니다.”
결론이 나왔다.
“이번 청룡기에 수호도 데려가도록 하지.”
“예.”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서...”
수호의 청룡기 출전이 결정됐다.
* * *
2011년을 기점으로 고교야구는 큰 변화를 겪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전국대회의 폐지였다.
선수들의 학업을 위해 대한야구협회는 평일에 존재하는 대회들을 폐지, 주말리그로 통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전국대회 중 대부분이 사라지고 황금사자기, 청룡기 그리고 대통령배만이 남게 되고 나머지 전국대회는 사라졌다.
그중 청룡기는 후반기 왕중왕전이란 이름과 함께 1차 신인 드래프트 이전에 열리는 중요한 대회가 되었다.
그런 대회에 수호가 포함됐다는 건 이례적이었다.
[코칭 스태프가 네 포수로서 능력을 높게 산 거 같네.]
[고교수준의 송구가 아니긴 했지.]
[무엇보다 요기 베라와 빙의해서 얻은 능력이기도 하고.]
[요기 베라 정도면 한국의 고교야구는 그냥 씹어먹어야지.]
메이저리그의 올타임 레전드 중 한 명인 요기 베라다.
그에게 빙의하여 능력의 극히 일부를 흡수했다.
그것만으로도 수호는 고교야구에서 뛰어난 포수가 될 수 있었다.
만약 그의 능력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쩔겠네요.’
[쩌는 수준이겠냐?]
[현대야구가 발칵 뒤집히지 ㅋㅋ]
[일단 이번 전국대회부터 네 대회로 만들어보자.]
회귀하고 실전은 처음이다.
연습경기를 통해 과거와 달라졌다는 건 명백하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전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러기 전에 해야 할 게 있습니다.’
[응?]
[뭔데?]
‘수비형에서 공격형으로 거듭나야겠죠.’
[공격형으로?]
[무슨 소리야?]
회귀하기 전.
수호는 인생에 후회를 남겼다는 걸 아쉬워했다.
그래서 다시 살 수 있게 된다면 그러한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이왕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거라면 역대급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도 그러길 원하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에 특화된 선수가 아니라 올라운더 선수가 되어야 해요.’
[그렇긴 하지.]
[메이저리그에는 괴물들이 즐비하니까.]
‘그러니 저도 수비 스탯만 높은 선수가 아니라 공격 스탯도 높은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아~]
레전드 플레이어들이 이해했다는 듯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좋네.]
[확실히 그게 좋지.]
[지금부터 스카우트들한테 눈도장을 찍는 게 좋겠지.]
[그러기 위해선 수비 스탯만이 아니라 공격 스탯도 높이는 게 좋을 테고.]
[확실히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이제보니 야망이 큰 녀석이었네.]
수호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마치 자신에게 다짐하듯 대답한 수호는 자신의 방송에 접속한 선수들을 확인했다.
그중 한 명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테드 윌리엄스]
마지막 4할 타자.
그의 재능을 받을 차례였다.
* * *
테드 윌리엄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오늘 같은 날은 좀 쉬지 그래?”
포수의 말에 윌리엄스가 물었다.
“무슨 뜻이지?”
“오늘 안타를 기록하지 못하면 4할은 물 건너가는 거잖아? 턱걸이 하고 있을 때 그냥 쉬는 게 낫지 않아?”
1941년.
오늘 더블헤더 경기를 끝으로 시즌은 마감된다.
이날 이전까지 테드 윌리엄스의 타율은 0.39955였다.
딱 턱걸이로 4할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고 있는 셈이었다.
만약 마지막 경기에서 안타를 추가하지 못한다면 대기록은 그대로 물 건너가는 셈이었다.
“우리 감독과 똑같은 소리를 하는군.”
“당연한 거 아니야? 4할을 때려내면 11년만의 기록이야. 욕심나지 않아?”
“물론 욕심이야 난다. 하지만 그렇게 달성하는 기록이 의미가 있을까?”
“응?”
“여기에서 내가 안타를 때려내지 못하면 나는 4할을 때리지 못하는 타자일 뿐이다. 꼼수를 써서 대기록을 남기고 싶은 생각은 없어.”
윌리엄스는 그 말과 함께 타석에 섰다.
수호는 마치 윌리엄스가 된 것처럼 그의 타격을 경험할 수 있었다.
[종료까지 10초]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딱!!
그래도 그가 안타를 때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빙의를 끝낼 수 있었다.
* * *
로스터에 들었다지만, 2학년인 수호에게 기회는 바로 찾아오지 않았다.
“파이팅!!”
“한방 날려버려!!”
“수호야, 저기 음료수 좀 챙겨둬라.”
“예!”
경기에 나서는 건 대부분 3학년이다.
청룡기는 1차 드래프트를 앞두고 열리는 마지막 전국대회이니만큼 3학년들에겐 중요했다.
프로 스카우트들의 눈에 띌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2학년인 수호는 대부분의 시간을 벤치에서 보냈다.
[지루하네.]
[언제 경기에 나가냐?]
[경기를 보는 것도 재밌지만, 네가 직접 하는 게 더 재밌는데.]
[이거 완전 방관자 아니냐?]
수호는 딱히 지루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기회가 찾아올 건 분명했고 그 순간을 위해 기다리면 되니 말이다.
반면 레전드 플레이어들은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 입장에선 수호가 경기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 방송을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벤치만 지키고 있으니 지루함이 커지는 건 당연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될 거에요.’
[응? 왜?]
‘한국의 여름은 제법 덥거든요. 이런 시기에 풀타임으로 경기에 뛰게 하진 않아요. 특히 포수는 말이죠.’
1, 2차전이 끝난 현재 성일고는 주전포수가 계속 마스크를 썼다.
하지만 여름에 포수가 계속 경기에 나선다는 건 꽤 지치는 일이었다.
3차전인 오늘쯤 교체할 타이밍이 나올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 경기는 4점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
주전들을 쉬게 해주기에 좋았다.
그리고 이런 수호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수호야! 다음 이닝부터 네가 마스크 좀 쓰자.”
“예!”
청룡기 첫 출전이 결정됐다.
* * *
프로텍터와 레그 가드를 착용하고 미트와 마스크를 가지고 그라운드로 나갔다.
[오오-!]
[드디어 첫 출전이다!]
[그런데 경기장이 왜 이 모양이냐?]
[이런데서 야구하다간 골병나겠는데?]
한국 고교야구의 인프라는 좋지 않았다.
미국의 일반인이 쓰는 야구장보다 컨디션이 안 좋은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게 한국 야구의 현실입니다.’
[쩝, 부상 조심해야겠네.]
[ㅇㅈ]
[슬라이딩 같은 거 함부로 했다가는 바로 도가니 나가겠다.]
[조심하자.]
레전드 플레이어들의 우려를 뒤로 하고 캐처박스에 앉았다.
그리고 마운드에 있는 투수를 바라봤다.
‘3학년 정강우 선배, 좌완 사이드암에 최고구속은 130km초중반. 던질 수 있는 변화구는 슬라이더와 커브 정도.’
수호는 데이터를 다시 한 번 곱씹으며 전국대회 첫 경기를 준비했다.
* * *
전국대회이니만큼 야구관계자들이 다수 경기장을 찾는다.
특히 1차 드래프트를 앞둔 마지막 전국대회인 청룡기에는 스카우트를 비록 언론인들도 경기장을 찾았다.
그들중에는 기자 한선예도 있었다.
“예상대로 성일고는 정강우를 내세우는군.”
선배기자인 박경태의 말에 한선예가 첨언을 붙였다.
“구속은 느리지만 좌완 그것도 사이드암이란 희귀성이 있는 정강우이니까요. 무엇보다 제구력이 고교수준이 아니에요.”
“대부분 그렇게 평가하더군. 당장 프로에 입단해도 통할 수준이라고 말이야.”
“고쳐야 할 부분이 꽤 있지만, 2차 7라운드 이내에는 뽑을 가치가 있는 선수에요.”
“자네 평가가 그렇다면 맞겠지.”
박경태는 한선예를 높게 평가했다.
실제 그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거기에서 정확한 답을 도출해냈다.
물론 그게 전부 정답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기사의 정확성과 신뢰도를 높여주기엔 충분했다.
“그럼 저기 마스크를 쓴 선수는 어떻게 보나?”
“...처음 보는 선수네요. 이름이...한수호? 데이터가 없어요.”
“그럼 땜빵인가?”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전국대회다.
아무 선수나 땜빵으로 내놓지는 않았을 거다.
그때였다.
파앙-!!
“오~소리 좋은데.”
정강우가 던진 공이 미트에 꽂히면서 좋은 소리가 그라운드를 울렸다.
박경태가 바로 감탄할 정도로 소리가 좋았다.
“오늘 강우의 컨디션이 좋은가 보네. 공이 꽂히는 소리가 묵직하게 들려.”
한선예는 의견이 조금 달랐다.
“포수가 공을 잘 받았어요.”
“응?”
“미트의 웹으로 정확히 받으면서도 타이밍이 좋게 포구했어요. 그래서 평소보다 더 좋은 소리가 들린 거에요.”
“그래?”
“네. 아무래도 보통 땜빵은 아닌거 같아요.”
한선예가 이 정도로 평가한다면 무언가 숨겨져 있을 수 있었다.
박경태가 수호를 주시하는 사이.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경기가 재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