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메이저리거 5화
성일고에는 야구부를 위한 간이 야구장이 따로 설치되어 있었다.
야구부의 연습이 없는 날에는 테니스나 배드민턴 등.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게끔 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최근 야구부의 훈련이 연일 이어지고 있어 당연하게도 야구장으로 주로 이용되고 있었다.
“마이! 마이!!”
“백업 들어가야지! 뭐해?!”
“더 큰 소리로 콜사인을 외쳐!!”
성일고 야구부는 오후부터 본격적인 연습경기에 들어갔다.
[더그아웃에서 앉아만 있는 거 지겹누.]
[빨리 경기에 좀 내보내달라고 해라.]
[이래가지고 언제 메쟈 가냐?]
레전드들의 닦달이 이어졌다.
사실 답답한 건 수호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빨리 경기에 나가고 싶네요.’
고개를 돌려 B팀의 감독을 맡은 박규현을 바라봤다.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어떻게든 눈에 보여야 한다.’
[정답!]
[경쟁자가 많은데. 기회가 찾아오길 바라고 있는 건 멍청한 짓이지.]
[이럴 때는 빠따라도 휘둘러야 쟤가 한 번이라도 볼 거야.]
과연 박규현이 자신에게 바라는 게 뭘까?
사실 쉽게 알 수 있는 문제다.
‘봉황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타격적인 부분을 나한테 기대하고 기회를 줄 가능성은 적다.’
기본적으로 고교야구에서 타격은 재능이 좋아야 한다.
피지컬도 재능의 하나이고 한 살이라도 더 많은 3학년들이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타격적인 부분에서는 3학년에게 더 많은 기회가 갔다.
‘내가 코치진에게 어필해야 하는 건 수비에 있다.’
비인기포지션 중 하나인 포수는 성일고에도 가장 경쟁자가 적은 포지션이었다.
그래서 2학년임에도 대회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포지션이었다.
실제 수호는 2학년 때부터 전국대회에 출전했다.
당시 쌓았던 경험이 3학년이 되었을 때, 큰 도움이 됐었다.
[사실 고교야구에서 쌓는 경험은 무의미한데.]
[그건 그렇지.]
[우리의 기억만 흡수해도 충분히 프로급으로 성장할 걸?]
‘후원을 많이 해주시면 저도 이런 고민을 안할 겁니다.’
[ㅋㅋ 딱히 할 맘이 안 생기는데?]
[ㅇㅈ]
[벤치나 달구고 있는데. 누가 후원하고 싶겠냐?]
[그래도 당근이 있어야 좀 더 열심히 하겠지.]
눈앞에 하나의 창이 나타났다.
[조시 깁슨님이 미션을 설정했습니다.]
[내용 : 오늘 경기에서 출전하라.]
[보상 : 1000노잣돈]
새로운 미션이 설정되었다.
그나저나 조시 깁슨이라니.
일각에선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포수이자 타자로까지 평가받는 선수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조시 깁슨이 메이저리그가 아닌 니그로리그에서 뛰었다는 점이다.
전설적인 투수인 사첼 페이지와 마찬가지로 그는 니그로리그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얼마나 대단한 활약이었는지 그에게 붙은 별명이 ‘블랙 베이브루스’였을 정도다.
‘평생의 염원이던 메이저리그 데뷔는 실패했지만, 그에 대한 명성은 구전으로 계속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
그런 전설적인 선수가 자신을 위해 후원을 걸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감격에 언제까지 젖어 있을 순 없었다.
수호는 곧장 미트를 챙겨 그라운드 한쪽에서 연습투구를 하고 있는 배터리에게 이동했다.
공을 던지는 건 3학년 백상현이었고 받아주는 건 1학년 한연우였다.
“선배님! 제가 공 받아드려도 될까요?”
“어? 원래 이런건 1학년이 하는 거잖아.”
“너무 앉아 있었더니 몸이 찌뿌둥해서요. 선배님만 괜찮으시면 제가 받아드리겠습니다!”
“뭐, 나야 상관없지. 편한대로 해.”
수호는 선배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이런 일을 할 때는 후배보다 선배에게 먼저 양해를 구해야 한다는 사회의 기본이 몸에 배긴 탓이다.
선배의 허락이 떨어지자 연우에게 말했다.
“연우야, 잠깐 쉬고 있어라.”
“제가 해도 괜찮습니다, 선배님.”
“내가 조금 하고 싶어서 그래. 여름이라 더울 텐데. 들어가서 물이라도 마셔.”
“...감사합니다, 선배님!”
연우 녀석의 눈빛이 바뀌었다.
[마치 자신을 위해서 한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푸하하! 사람이 저렇게까지 착각할 수 있구나.]
[야야, 지금 널 위해서가 아니라 날 위해서 하는 거다 라고 말해봐.]
레전드들의 채팅대로였다.
연우는 무언가 단단히 착각하는 듯 했다.
땡뼟 더위에 자신을 위해서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걸 바로 잡아줄 생각은 없었다.
‘착각하는 것도 자유니까요.’
수호는 관심을 끌고 장비를 착용했다.
장비라고는 해도 풀 세트가 아니라 바디 프로텍터 정도였다.
“마스크랑 다른 건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이 정도면 괜찮습니다! 자 마음 편하게 던지십쇼!”
“으흠~다쳐도 모른다?”
백상현은 제구력이 썩 좋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구속은 또 빠르다.
거기에 공의 회전력은 좋아서 맞으면 상당히 아프다.
실제 연습경기에서 백상현의 공을 맞아 바닥을 구르는 선수가 수도없이 많았다.
[한 마디로 개똥이란 소리네.]
[제구도 못하는 놈이 무슨 공을 던져?]
[살인병기나 다름없지.]
[이 나이 때 애들이 제구를 못하긴 하지만, 그 정도면 타자들이 무서워서 타석에 서기 싫을 텐데?]
‘그 정도까진 아닌데. 어쨌든 제구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건 사실이죠.’
그래서일까?
백상현의 연습투구에는 포수들이 항상 풀 장비를 착용했다.
방금 전까지 공을 받았던 한연우도 프로텍터는 물론 페이스 마스크까지 착용한 상태였다.
이 무더위에 곤욕도 그런 곤욕이 없었다.
“간다!”
백상현의 외침에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지 오십쇼!”
대답을 들은 백상현이 와인드업을 했다.
뒤이어 킥킹, 스트라이드를 거쳐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코스는 수호가 원했던 가운데가 아닌 우타자 몸쪽 높은 코스였다.
구속은 140 초반.
고교선수치고는 나쁘지 않았으나 제구가 꽝이었다.
하지만 수호는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부드럽게 몸의 균형을 옮기면서 글러브를 가져갔다.
뻐어억-!!
“오~”
공이 제대로 볼집에 꽂히면서 경쾌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들은 백상현의 텐션이 올라갔다.
‘내 공이 원래 이렇게 강했나?’
평소보다 소리가 더 좋은 느낌이었다.
나쁠 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 이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계속 던져도 되지?”
“예! 언제든지 오십쇼!!”
수호가 미트를 내밀었다.
* * *
퍼엉-!!
뻐어억!!
대부분의 고등학교 야구장에는 불펜장이 없었다.
더그아웃에 마련된 간이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게 전부였다.
그렇기에 방금 전부터 나는 경쾌한 소리를 박규현 감독의 귀에도 들려왔다.
“누구 공이 이렇게 소리가 좋아?”
“승현이입니다.”
“승현이?”
박규현의 시선이 간이마운드로 향했다.
때마침 와인드업에 들어간 백승현이 보였다.
녀석이 던진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가 투수의 미트에 꽂혔다.
뻐어억-!!
이번에도 좋은 소리가 났다.
하지만 박규현은 투수가 아닌 포수를 바라봤다.
“나이스 볼!!”
힘차게 외치며 공을 던져주는 포수를 보던 박규현이 물었다.
“지금 공 받아주는 애가 누구야?”
“예? 아, 수호입니다.”
“저 녀석이 저렇게 공을 잘 받았었나?”
“그냥 상현이의 컨디션이 좋은 거 아닌가요?”
“상현이가 공을 잘 던지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녀석의 공을 잘 받아주기 때문에 저런 소리가 나는 거야. 어디 상현이 공을 애들이 제대로 잡을 수 있던가?”
“하긴...”
다른 투수도 아니고 상현이다.
제대로 공을 잡는 것만 해도 난이도가 높았다.
그런데 볼집으로 제대로 잡는다?
상당한 포구능력이 없는 이상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상현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잡아내고 있어. 저건 몸의 균형을 잘 이용한다는 소리야.”
“듣고보니 그렇네요. 대부분 애들이 상현이 공을 잡으려면 마치 뛰어다니듯 움직이는데. 수호 저 녀석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조금씩 움직이네요.”
“저건 큰 장점이야. 구심이 판정을 내릴 때도 영향을 끼칠 수 있지. 무엇보다 투수의 멘탈에 큰 도움이 돼.”
“하긴, 저도 공 던질 때 포수가 너무 움직이면 오늘 제구력이 좋지 않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장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공 하나하나를 받을 때마다 투수에게 큰소리로 나이스볼이라고 외쳐준다. 그것만으로도 투수는 자신의 공이 괜찮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지.’
포수란 직업은 피곤하다.
여러 부분을 신경써야 하기 때문이다.
포구하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경기를 전반적으로 보고 지휘할 줄 알아야 했다.
괜히 그라운드의 사령관이란 별명이 붙은 게 아니었다.
‘분명 이전 경기에서는 엉망이었는데. 단 며칠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수호를 로스터에서 제외시키려 했던 박 감독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에게 주기로 했던 마지막 기회를 줄 때가 된 듯 했다.
“중간쯤에 한 번 투입해보지.”
“알겠습니다, 준비시키겠습니다.”
* * *
6회.
공수교대 때 수호가 포수 마스크를 착용했다.
[미션을 성공했습니다.]
[1000노잣돈을 획득했습니다.]
뒤이어 미션에 성공했다는 알림창이 떴다.
[역시 사람은 뭐가 걸려야 잘 한다니까.]
[ㅇㅈㅋㅋ]
[그나저나 감독도 보는 눈이 있네. 공 받아줄 때 바로 네 장점을 캐치하다니 말이야.]
박규현은 프로까지 갔던 사람이다.
특히 그의 포지션이 포수였다는 게 수호에게는 이득이었다.
짧게 보더라도 수호의 장점을 바로 캐치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요기 베라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 많이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한 번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잡지 못하면 그 기회가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른다.’
각오를 다진 수호는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내 전생을 조금은 엿봤으니 그걸 잘 활용하면 좋을 거다.]
요기 베라의 조언을 떠올리며 수호가 미트를 내밀었다.
‘어떤 공이라도 받아주겠어.’
* * *
박규현은 놀라고 있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그를 놀라게 한 건 3이닝동안 무실점 피칭을 한 투수가 아니라, 바로 포수인 수호였다.
“오늘 성일이 녀석의 컨디션이 좋은데요? 3이닝 무실점이라니.”
“성일이의 컨디션이 좋은 게 아니라. 포수가 안정적이라서야.”
“예?”
“포구를 하는데 쓸데없는 움직임이 없어. 안정적으로 공을 받아주니 투수가 믿고 던질 수 있는 거지.”
“하지만 수호가 그렇게 뛰어난 포수는 아닐 텐데요?”
“그걸 아니까. 내가 놀라고 있는 거지.”
놀라운 건 포구만이 아니었다.
탁-!!
변화구로 던진 공이 원바운드 되자.
촤앗-!
수호가 재빨리 움직이며 몸으로 공의 경로를 막아섰다.
탁-!!
프로텍터에 맞은 공이 앞으로 떨어지자 재빠른 움직임으로 공을 잡아 1루 주자가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후속동작도 좋군.”
“확실히 움직임이 평소와 다르네요. 잽싸고 무엇보다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알고 있어요.”
“마지막 경기에서 보여주던 모습하고는 아예 다르군.”
“컨디션이 나빴던 걸까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차이가 너무 심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거 같아.”
이상함이 가시지 않는 박규현이었다.
“원래 수비적인 부분에선 좋았던 녀석이니. 계획대로 데려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
그때였다.
타닷-!!
투수가 스트라이드에 들어간 순간.
주자가 2루로 달렸다.
뒤이어 투수의 공이 손에서 떠났고 주자의 속도가 빨라졌다.
그 모습을 본 박규현의 시선이 수호에게로 향했다.
‘타이밍은 늦었다.’
투수의 투구시간이 길었다.
포수의 어깨가 좋더라도 잡는 건 어려울 수 있다.
파앙-!!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이 미트에 꽂혔다.
거의 동시에 수호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무게중심을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대로 공을 뿌렸다.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낮게 깔리며 2루수의 글러브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퍼퍽-!!
연달아 둔탁한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2루심의 손이 올라갔다.
“아웃!!”
“우와아아아!!”
“앉아쏴다!!”
“저걸 어떻게 한 거야?!!”
선수들이 깜짝 놀라며 탄성을 터트렸다.
박규현 역시 놀라고 있었다.
앉아쏴를 고교야구에서 볼 줄이야.
하지만 놀란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
[뭐임?]
[어케 한 거야?]
[요기 너 저런 것도 했냐?]
레전드 플레이어들 역시 물음표를 치며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요기 베라에게 빙의하여 배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기 베라에게선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나도 못하는데?]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조차 할 수 없었던 앉아쏴.
그걸 해낸 수호에게 레전드 플레이들이 물었다.
[어케 했누?!]
‘그냥...했는데요?’
수호의 대답에 요기의 채팅이 올라왔다.
[재능충이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