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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95화 (195/197)

제195화

‘거래를 한다고. 귀족이?’

형국은 이와타르에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가하 연맹 측에서 협상을 제시했다는 것에 한스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협상이라도 하자는 겁니까?”

“협상이 아니라 거래에요.”

“거래라니?”

릴리는 활짝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로가하 연맹이 이곳을 포위하는 것은 깨달았을 거예요. 그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순순히 황금을 포기하실 생각이 있나요?”

그녀의 말에 한스는 기가 찬 표정으로 말했다.

“백작님. 세상 물정 모르는 농민이라 너무 무시하는 것 같은데,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쯤은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포기를 못 하죠. 이 황금은 우리를 구제하기 위해 예언자께서…….”

“저주입니다.”

“네?”

자신의 말을 끊고 내뱉은 릴리의 답변에 한스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릴리는 여느 때보다 진지한 눈초리로 말했다.

“그건 저주가 될 것입니다. 저희는 결단코 당신들에게 검을 겨누지 않을 겁니다. 또한 그 황금을 포기할 때까지 군대를 물리지도 않을 겁니다.”

“그게 가능한 소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가능해요.”

릴리는 미리 들고 있던 물통을 찰랑찰랑 흔들며 말했다.

“연맹군이 이렇게 단시간에 밀어붙일 줄은 꿈에도 몰랐겠죠? 식량과 물을 한곳에 모으는 것은 실패했으니, 이곳에 있는 양은 분명 한정돼 있겠죠.”

“……?!”

릴리의 말에 한스는 눈을 부릅떴다.

격렬하게 저항하는 군을 제압하기는 했어도 연맹군은 최소한의 피밖에 묻히지 않았다.

포로가 된 자들은 곧장 무장을 해제시키고 다시 돌려보냈다.

그렇게 해서 이곳에는 봉기를 일으킨 대다수의 농민들로 꽉 들어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식량과 물이 한정돼 있다는 것은 실로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릴리는 차가운 표정으로 한스에게 현실을 읊어주었다.

“물이야 비만 간간이 내린다면 버틸 수 있겠지만, 식량은 차원이 다른 문제에요. 어느 나라에서는 기나긴 기근을 이기지 못하고 인육을 뜯어먹은 사례도 있고요.”

“…….”

꿀꺽!

한스는 미처 반박하지 못하고 고인 침을 삼켜 넘겼다.

어쩐지 목에는 갈증이 일어났는데, 릴리가 찰랑찰랑 흔들고 있는 저 물통을 보니 갈증이 더욱 심해졌다.

“이 물의 가격은 금화 열 닢. 식량 한 끼는 스무 닢입니다.”

“말도 안 돼!”

터무니없는 횡포에 한스는 경악하며 소리쳤지만, 릴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항을 하더라도 저희는 결단코 당신들을 죽이지 않을 겁니다. 빼앗은 검은 금화 이백 닢, 갑주는 삼백 닢에 되돌려 드릴 수 있어요.”

“지금 뭐하는 짓이야!!!”

터무니없는 횡포에 한스는 씨익씨익 숨을 내뱉으며 릴리를 노려보았다.

릴리는 그런 그를 애처롭다는 표정으로 보며 말했다.

“황금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가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연맹의 요구는 그것 하나뿐이에요.”

“너희에게 농락당할성싶으냐!”

“이건 합리적인 요구에요. 모두를 살리고 싶다면 빨리 결정해주실 거예요.”

“꺼져!!”

신분의 차이를 무시할 정도로 크게 흥분한 한스는 부하들과 함께 씩씩거리며 걸어갔다.

“……나도 참 못됐네.”

[끼욧!]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릴리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해츨링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바로 그때, 그녀와 함께 이와타르로 온 슈타크가의 일원들이 다가왔다.

일찌감치 무력으로 이와타르를 정복하자고 제안했던 라마스 슈타크는 이해가 되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째서 하찮은 녀석들을 위해서 대규모의 군력을 낭비해야 하는 거지?”

그 기세에 릴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답했다.

“그런 하찮은 심보로 권좌에 앉고 싶으신 건가요?”

꽈악!

그녀의 반박에 라마스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강렬하게 응시했다.

“막내가 지극히 아끼는 년이라고 한다지만, 네년의 신분이 서민이라는 것이 변하지 않아. 한 번만 더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면…….”

“죽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아마 죽을 거예요. 당신.”

릴리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라마스를 노려보았다.

[뀨웃!]

해츨링도 그런 라마스를 향해 적의를 표시했다.

하지만 적의를 표시하는 것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가장 강렬하게 살의를 표하는 마틴, 헤이젤, 괴츠.

크림슨 게일에서 가장 강력한 기사들이 검을 뽑을 기세를 취하고 있었다.

“네년!”

괘씸함과 분한 마음에 라마스가 이를 갈자…….

릴리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가문의 후광을 입고 검을 갈고 닦아 강해졌죠? 반면 저 사람들은 한 끼, 한 끼를 걱정하면서 살아야 되는 분들이에요.”

“그래서?”

“강자라면 그들에게 베풀고 보호하고 자립할 수 있는 힘을 줘야 되요.”

“왜 그렇게까지 해야 되는 거지?”

“그것이 왕이 걸어야 할 왕도니까요.”

“……그건 누구의 가치관이지?”

“뻔하지 않겠어요?”

“…….”

릴리의 반박에 라마스는 더 이상 대꾸하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 * *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마나가 풀리자, 눈앞의 풍경은 초목이 우거진 거대한 신전이 있었다.

“……여기는?”

마미안트 부인은 눈앞에 있는 거대한 초목이 세피로트와 유사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눈매를 좁혔다.

와본 적이 없는 장소지만, 그녀는 이 장소를 알고 있다.

“여, 여긴?!”

“……데제스가 신이 되기 위해 남겨놓았던 자취군요.”

“성역, 디반인.”

프리메이슨의 간부답게 보번과 슬링거 역시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간파한 듯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있던 칼은 피식 웃었다.

“때려 부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라서 말이야.”

“당신 한 명이서 우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마미안트는 혀를 차며 마몬의 힘을 개방했다.

우득우득.

사아아악!

기괴하게 부풀린 몸은 우아한 여성의 굴곡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거대한 나방 모습의 흉포한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왕의 힘을 완전히 개방한 세 계약자는 칼리언트에게 경고했다.

[우리는 마몬의 족속. 더 이상 우리를 방해하지 말거라.]

[우리에게 넘어와라. 마왕의 힘이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거대한 부와 명예,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당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어요. 인간에게 가장 탐낼 수 있는 것들을 우리의 마왕은 줄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말을 곱씹던 칼은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필요 없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답변에 계약자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인간이라면 당연 자신들의 기세에 압박당해 실신이라도 하는 게 마땅하건만.

이 인간은 오히려 강한 투지를 발휘하며 적의를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칼은 그런 그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한때, 마계를 파괴했던 마왕, 칠대 마왕은 멸망한 마계에서 세피로트가 다시 맺은 열매에서 튀어나온 족속에 불과하지.”

[그게 무슨?!]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에 계약자들은 의아함 반, 두려움 반이 섞인 눈으로 칼을 노려봤다.

“너희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내 근본에는 근접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힘의 차이를 알아라. 버러지들아.”

화악!

발설 직후.

칼의 등에서 여섯 장의 날개가 튀어나왔다.

콰아아아앙!

단지 그 기세를 드러내는 것만으로 성역, 디바인을 휘감은 바다가 크게 출렁거렸고, 유사 세피로트는 생기를 잃고 썩어가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돼.]

스릉!

칼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손에 들린 인페르노의 검신에 붉은 오러를 두른 다음…….

콰아아아앙!

섬 전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참격을 그들에게 날렸다.

[크아아아아악!]

그 한 방으로 슬링거는 괴성을 지르며 소멸했다.

파앗!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수 없다.

불길함을 감지한 마미안트와 보번이 단숨에 칼을 향해 돌격했지만.

콰앙! 콰앙!

칼은 양 주먹으로 그들의 얼굴을 박살내며 섬 전체에 지진을 일으켰다.

“쿨럭! 이, 이건 말도 안 돼! 너, 넌 대체!”

보번은 입가에 검은 피를 흘리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현재 그의 눈에 비친 칼의 전신에는 거대한 붉은 기류에 휘감긴 채, 어마무시한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런 자를 쓰러뜨리고 마몬을 강림시키겠다고?’

보번은 그제야 뒤늦게 자신이 칼에 대해 오판을 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예상을 훨씬 웃돈 그 힘에 보번은 곧장 이를 드러내며 일갈을 내뱉었다.

“어째서 너 같은 괴물이 난입한 거야?!”

빛살에 가까운 어둠이 세피로트의 파편, 그리고 지면을 지우며 단숨에 칼을 집어삼킬 것처럼 덮쳐왔다.

그 속도가 워낙 빨라 여러 갈래로 동시에 나뉘는 것처럼 보였는데.

콰앙! 콰앙! 콰앙!

칼은 주눅이 들기는커녕, 정확히 주먹으로 보번의 안면을 주먹으로 박살 내버렸다.

동시에 주먹에 닿은 어둠이 칼을 집어삼키려고 했지만.

쨍그랑!

칼의 몸에 두른 붉은 오러는 그 어둠을 깨뜨리며 보번에게 엄청난 타격을 안겨주었다.

파괴, 재생, 파괴, 재생.

[크아아아아악!]

보번은 맹수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끊임없이 공격을 가했다.

움찔!

그 초월적인 기세에 칼의 팔이 일순간 멈췄다.

깜짝 놀란 칼이 옆을 돌아볼 때 그곳에는 나방의 형체를 한 마미안트가 넌지시 한마디를 남겼다.

-호호호호, 얕보고 있었군요. 제 인분은 마나 같은 게 아니라 체내에서 만들어진 극성의 독. 제아무리 당신이더라도 사지가 마비되어서 천천히 숨통이 끊어질 수밖에 없어요.

말이 끝난 직후.

보번의 날카로운 꼬리가 칼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카앙!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칼의 복부와 보번의 꼬리 사이로 시엘로가 파고들며 인해 보번의 공격은 가뿐하게 무산됐다.

-설마 그사이에 독을 해독…….

“애초에 걸려줬던 척한 거지.”

콰앙!

칼은 같잖다는 웃음을 지은 뒤, 다시 한번 보번의 얼굴을 박살 내버렸다.

‘더, 더 이상은 안 돼.’

설마하니 마왕의 계약자인 자신들이 상대조차 되지도 않을 거란 사실은 상상조차 못 했다.

쇄애애애액!

그 사실을 마미안트 역시 직감했는지, 그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도주를 꾀했다.

찰캉!

칼은 시엘로와 인페르노를 결합한 쌍날검을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하게 돌아가던 회전날은 어느 순간…….

위이이이잉!

붉은 마나와 함께 무엇이든 썰어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렬하게 회전했다.

“전성기의 힘에 반도 되지 않지만. 모처럼의 유흥이다. 처절하게 반항하다 죽어라.”

그들을 향한 마지막 한 마디와 함께…….

서걱!

마검들을 결합한 쌍날검의 써클이 두 마족을 단숨에 반으로 쪼개버렸다.

[어, 어째서?!]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순…….]

전신에 치명상을 입은 그들은 한사코 자신들의 죽음을 부정했지만.

콰아아아앙!

[꺄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악!]

곧 칼의 마력이 폭주하자 전신이 증발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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