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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94화 (194/197)

제194화

화악!

오랜만에 본 릴리의 모습은 무척이나 단아하고 아름다웠다.

흑요석처럼 빛나는 눈빛, 그리고 차분한 푸른 눈동자.

전에는 보이지 않던 성숙미까지…….

그런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동공에 비춰진 것은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자그마한 해츨링이었다.

[끼익, 끼익.]

이제 막 부화한 해츨링은 릴리를 엄마로 인식하고 있는 듯 그녀의 손가락에 얼굴을 부비부비 비비고 있었다.

칼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목에 걸려있는 리바이어에게 말했다.

“……야. 저거 좀 더 있다가 태어난다며?”

[이제 곧 태어날 때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부화할 줄은…….]

드래곤 로드의 지식이 담겨있는 리바이어에게도 이번 일이 생소한 경우인 것 같았다.

“꺄악! 귀여워. 칼 얘네는 뭘 먹어?”

릴리는 얼굴에 보조개를 피우며 무심코 칼을 쳐다봤다.

“…….”

그러다 뒤늦게 표정을 굳히며 홱 고개를 젖혔다.

칼 역시 불편한 표정을 짓다 헛기침을 하며 답했다.

“너의 도움이 필요해. 릴리.”

“늘 그런 식으로 이용만 하죠. 사령관님은.”

“너밖에 할 수 없어.”

“…….”

칼의 말에 릴리는 조금 얼굴을 붉히며 수긍했다.

늘 듣고 싶었던 말, 누군가에게 갈구하고 싶은 말을 칼이 해주니 불편했던 마음이 가셨다.

“이와타르에 있었던 일 말하는 거지? 말하고 싶은 게 뭔데?”

화가 풀렸다.

그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는지, 릴리는 머리칼을 어깨 뒤로 넘기며 도도한 표정을 지었다.

[끼윳!]

하지만 남은 손은 해츨링의 뺨을 꼬옥 꼬집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때 리바이어가 아주 조용히 칼에게 조언을 남겼다.

[쓸데없이 한 마디 덧붙이지 말고. 일 얘기만 해! 일 얘기만!]

“……건방진.”

칼은 눈살을 찌푸리며 리바이어를 으스러뜨릴 뻔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는 릴리를 보니 가까스로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나를 대신해서 일을 처리해줘야 될 게 있어. 맥캘리의 도움도 받아야 할 거야.”

“……뭐, 뭔데?”

불안한 느낌이 들었던 그녀는 긴장하며 이어지는 칼의 말을 경청하다…….

파르르르르.

곧 실신한 것처럼 동공을 떨며 소리쳤다.

“그걸 나 혼자서 어떻게 처리하라는 거야! 이 바보야!”

결국 그녀는 화를 못 참고 해츨링을 내려놓고 칼의 가슴에 주먹을 날렸다.

덥석!

물론 얌전히 맞아줄 리 없었던 칼은 그녀의 주먹을 잡으며 활짝 웃어 보였다.

“할 수 있어.”

“…….”

릴리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꼭 다물었고 칼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발그레 얼굴을 붉힌 그녀는 힘겹게 입을 뗐다.

“.……그것 외에는 나한테 할 말 없어?”

“나중에.”

무뚝뚝한 그 한 마디에 릴리는 대답 없이 이마를 칼의 가슴에 푹 박았다.

* * *

황금과 예언자의 소문은 급격히 라흐만 대륙 전체에 확산했다.

오랜 세월 핍박을 받아온 소국은 그 기적이 자신들에게 실현되길 기원했다.

어중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국가는 곧 칼을 빼들고 황금을 강탈하기 위해 대의명분을 세우기 시작했다.

황금비가 쏟아진 이와타르의 한 소국.

타닥, 타닥.

산산이 불타오르고 있는 그곳에서 검은 갑주 같은 피부를 지닌 악마가 무참하게 인육을 뜯어먹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악!”

누군가는 절망하며 두려움 없이 돌팔매질을 가했다.

푸욱!

하지만 그에게 달려 있는 전갈 같은 꼬리는 울면서 저항하고 있는 이의 복부를 꿰뚫었다.

“취향 한 번 참 독특하군요.”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마미안트 후작 부인은 입가에 곰방대를 물면서 후훗 웃음을 터뜨렸다.

온몸이 검게 칠해진 칠흑의 악마. 그것은 보번이 마몬과 계약하고 얻은 몸이었다.

그는 흉흉한 붉은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절망과 공포는 마족의 힘의 근원이 되지. 이와타르는 점점 궁지에 몰릴 거고 사기가 깃든 이 땅에서 우리는 칼리언트를 몰아낸다.]

‘가장 합리적인 계획이야.’

마미안트 후작 부인은 입가에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그의 작전에 수긍했다.

어마어마한 재화를 풀어서 한 국가를 타락시키는 것은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보번의 철저한 계획이었다.

황금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농민은 더욱 강한 봉기를 일으킨다.

이렇게 되면, 약자들이 적이 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여기서 칼이 응전을 하게 된다면, 스스로 세운 기사도 정신을 위반하게 된다.

또한 이와타르를 공격하는 산적과 주민들을 몰살시켜 사기와 증오를 일으켜 힘을 키우고, 마몬을 강림시키기 위한 의식의 땅으로 삼는다.

보번은 지금까지 난색을 표했던 삼중고를 한 번에 해결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그것도 칼리언트의 정신력과 군력을 갉아먹으면서 말이다.

“정말 무시무시하군요. 당신은.”

슬링거 역시 그의 계획에 경의를 표했다.

모든 계획은 순조롭게 풀리고 있고 제아무리 날뛰는 칼리언트라고 해도 막을 방법을 찾을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잔머릴 굴린 게 고작 이거냐?”

지붕 너머에서 들려오는 한 남자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

깜짝 놀란 보번, 마미안트, 슬링거는 동시에 지붕 위를 쳐다봤다.

그곳에는 칼리언트가 차가운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카, 칼리언트. 어, 어떻게…….”

마미안트 후작 부인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손에 들고 있던 곰방대를 떨어뜨렸다.

삼 대 일의 구도.

더군다나 이 세 명은 무려 마왕의 계약자로 합심한다면, 능히 데제스를 격파하고도 남을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근데 어째서일까?

마미안트와 슬링거는 벌써부터 칼의 심홍빛의 눈과 마주치고는 자신들의 미래를 예감한 것 같았다.

보번은 흉악한 몸체로 발을 디디며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허허허허,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칼리언트 경. 내가 마련한 무대는 어땠는지요?”

기세 좋은 질문에 칼은 같잖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일개 삼류 버러지가 꾸민 무대지.”

“하하하 무슨 의미인지요?”

“시시하고 하찮다는 거다. 버러지.”

그가 일으킨 학살의 풍경에 진심으로 분노했는지, 칼은 희번득 눈을 부릅떴다.

“죽어!”

더 이상 방치하면 죽고 만다.

슬링거의 몸이 부풀어 오르면서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이어서 그의 전신이 꿈틀거리더니 수많은 촉수가 칼을 덮쳤다.

“마왕의 계약자라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칼은 즉각 응전해 주먹을 꽉 쥐었다.

콰앙!

그러자 세 마족 계약자들 사이에서 거대한 마나 브레이크가 일어났다.

칼을 향해 거세게 날아오던 촉수들은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체액을 흩날리며 터져 나갔다.

울컥!

“크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근본을 무너뜨리는 그 강력한 힘에 누구 한 명 버티지 못하고 끔찍하게 절규했다.

콰콰콰콰쾅!

보번은 그 와중에도 유일하게 정신을 붙잡고 반격을 가했다. 그는 전신에서 쏟아진 어두운 구체가 칼에게 날아들었다.

칼의 마나 브레이크마저 파훼하고 날아오는 혼돈의 파편.

서걱! 서걱!

칼은 스스로 시엘로와 인페르노를 뽑아 들어 그것들을 가볍게 썰어냈다.

[……이상하군요. 일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기운이거늘.]

“일개 인간이 아닌 거지.”

[크크크크 당신 혼자서 저희 세 명을 이길 수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왜 스스로 힘에 자신감을 가진 거지? 영혼 팔아먹고 쓴 힘이 겨우 이 정도인 것에 개탄해야 하는 거 아닌가?”

[건방지군요. 인간. 지금 당장의 혼란을 무시한 채, 우리를 쓰러뜨리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난다고 착각부터 한 게 당신의 실수입니다.]

찌릿!

투지가 서린 눈빛으로 보번이 경고를 남길 때.

피식.

칼은 입가에 가벼운 웃음을 띠며 말했다.

“네가 말한 건 내가 가장 신용하고 있는 녀석에게 맡기고 왔어. 난 신경 쓰지 않고 너희들만 두들겨 패면 그만이야.”

‘……이 자식.’

칼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깨달은 보번이 다시 전략을 구사하는 순간.

스스스스스.

순식간에 세 마족 계약자와 칼을 중심으로 지면에 수백 획의 서킷이 그려졌다.

“이, 이건?!”

서킷을 분석한 마미안트 후작부인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졌다.

반면 칼은 평안한 표정으로 계약자들 사이에서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내가 만든 무대에서 놀아보자고.”

파앗!

칼과 마왕 계약자 세 명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 * *

칼이 사라진 자리.

그곳에서는 맥캘리와 델피나가 겸연쩍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와타르 내에서 저런 초월자들이 격전을 벌인다면 분명 민가의 피해가 엄청나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전송마법을 사용했다.

“진짜 무시무시한 녀석이라니까. 마왕 계약자들이랑 붙는 깡다구라니…….”

맥캘리는 한숨을 쉬며 제자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반면, 델피나는 씁쓸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주변은 이미 시체와 피로 사지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선배. 엄청 화내고 계셨죠.”

“의로운 분노야. 아마 내 제자는 무모함을 감수하고 이 작전을 벌인 거지.”

맥캘리는 대체적으로 무뚝뚝한 표정으로 주변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현재 그녀는 대지에 그려진 방대한 서킷을 통해 호흡을 하고 있는 자를 색출 중이었다.

“아직 있어?!”

수심이 깊었던 그녀는 눈을 부릅뜨다 곧 시체 더미 사이를 파헤쳤다.

파르르르르.

파헤친 그곳에는 어린아이가 가녀리게 떨며 가까스로 호흡을 하고 있었다.

코와 입으로 뱉는 그 숨결을 확인한 맥캘리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델피나 의사를 불러! 아직 생존자들이 있어! 빨리!”

응급처치는 신속했다.

먼저 기도를 확보한 뒤.

재빨리 소녀의 몸에 서킷을 형성해 몸에 축적된 독소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우웅!

서킷은 속속이 생존자들을 색출해냈고 맥캘리의 의지에 따라 그들의 생명이 꺼지지 않게 지켰다.

‘빨라?!’

델피나는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가 곧 입을 열었다.

“의무병은 진작 불렀어요. 이제 곧 도착할 테니 그동안 저도 도울게요.”

“……그게 낫겠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던 맥캘리는 안도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 연구는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거였어.”

“그것뿐만 아니라 난세의 영웅을 배출했어요.”

델피나는 피식 웃으며 곧장 맥캘리를 따라 서킷을 구현했다.

* * *

탐욕과 공기로 물든 이와타르에서 다시금 수많은 황금의 비가 쏟아졌다.

시간은 무려 석 달 가량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었고, 나태해진 인간들은 거리에서 약에 빠져있거나, 흥얼흥얼 술에 취해있었다.

또 어떤 이는 황금을 갈취하려는 적들을 가르기 위해 병장기를 잔뜩 두르고 있었다.

“흐하하하하하.”

다크써클이 진 농민들은 그 황금을 받아들며 나빌레라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변화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간으로는 약 일주일.

도시에는 사람들이 범람할 것처럼 넘쳐났고, 식량도 물도 바닥이 나고 있었다.

환락의 도시로 변해가는 이와타르를 향해 로가하 연맹의 군사들이 일제히 집결해 포위하면서 진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타르의 농민들이 고용한 용병들은 속수무책 당하며 점차 좁혀오는 포위망의 압박으로 인해 도시에 갇혀버린 것이다.

“어, 어떡하죠?!”

당황한 농민은 봉기를 일으킨 두목, 한스에게 의견을 물었고 한스는 강하게 도끼를 콰앙 내리찍으며 말했다.

“절대 황금을 뺏길 수는 없지! 다시 그 더러운 땅이나 갈굴 참이냐!”

“…….”

농민들은 그의 말에 섣불리 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끼욧!]

도시 한 가운데를 어린 용과 함께 가로지른 여인이 그의 앞에 섰다.

우아하게 날리는 흑발, 청명한 푸른 눈동자, 그리고 크림슨 게일의 기사단 상징인 기사단복을 입은 여인이었다.

기품과 기백이 넘치는 그 모습에 한스는 바들바들 떨며 그녀에게 일갈을 내질렀다.

“또 우리의 것을 가로챌 속셈이냐!”

흥분한 그와 다르게 여인은 정숙하게 예를 갖춘 뒤, 자신의 소개를 했다.

“슈타크 제국의 릴리아나 아베티스트 백작이에요. 저는 당신들과 정당한 거래를 하기 위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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