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93화 (193/197)

제193화

작은 나라, 이와타르에 황금의 비가 쏟아진 날.

예언자의 한마디 역시 빛을 보였다.

-갈취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징벌의 검을 들어라, 황금을 시기한 무리가 뺏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목숨일지니.

황금이 떨어진 날, 농부들은 쟁기를 버렸다.

배를 곯던 나날을 잊기 위해 닥치는 대로 식량을 사들였고, 너도나도 용병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탐욕에 물든 것은 농부들만이 아니었다.

이와타르의 영주들은 눈을 빛내며 영지민들의 황금을 수탈하려고 했다.

하나, 영주들은 한 가지를 간과했다.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반발심에 농민들이 일제히 봉기를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결사항쟁의 결과.

농민들의 피와 땀을 괄시했던 영주들은 목이 단두대의 날에 잔뜩 썰려 나갔다.

이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지 고작 열흘.

열흘 만에 이와타르라는 나라는 완전히 쑥대밭이 돼버렸다.

약에 취하고 술에 취하며 넘쳐나는 황금으로 식량과 무기 등을 대거 사들이며 주변국에까지 큰 혼란을 주었다.

로가하 연맹의 맹주국, 슈타크 제국.

그곳에는 농민 봉기로 크게 해를 입어 피신한 이와타르의 국왕과 그의 아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겪었던 참사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혼란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슈타크 제국의 초대 황제, 루드거 슈타크는 눈살을 찌푸렸다.

체면만 중요시 하고 이런 봉기 하나조차 수습하지 못한 자를 과연 왕족이라며 대우를 해줘야 되는 것인가?

아니 더 이상 그 핏줄에는 의미가 있는가?

여러 감정이 얽히고설킨 가운데, 그는 가까스로 입을 뗐다.

“안정을 찾은 뒤, 다시 뵙겠소.”

“가, 감사합니다. 폐하.”

국왕은 눈물을 흘리며 루드거에게 납작 엎드린 뒤, 가신들의 안내를 받아 처소로 물러났다.

잠시 후.

관료들이 모인 가운데, 회담이 진행됐다.

회담의 논제는 역시 이와타르에 일어난 농민봉기였다.

“이와타르는 현재 엄청난 양의 황금을 통해 교역국가의 물품을 대거 사들이고 있습니다. 평소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지금은 곡물값이 극도로 올라 민심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산적 등의 범죄자들이 이와타르 내부에 마약을 유통시키고 무력을 정비하고 있어 하나의 거대한 범죄 국가로 돌변하고 있습니다. 지금 진압하지 않으면 반드시 주변국에 큰 혼란을 끼칠 겁니다.”

신하의 말을 곱씹던 루드거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황금의 출처는?”

“알아보고 있습니다. 진짜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예언자의 정체는?”

“예언자를 잡아서 심문해본 결과, 세뇌에 걸린 부랑자였습니다. 누군가 조직 단위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만, 조직의 정체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황금을 가로채는 자는 전부 죽이려고 든다 했는가?”

“그렇습니다.”

‘골치 아프군.’

루드거는 얕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정치적으로도 강력한 군주임이 틀림없지만, 그 근본은 무인이기 때문에 이런 난제는 골치 아프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방치했다가는 누가 봐도 대형참사가 일어날 게 뻔했다.

이때, 같이 회담에 참석하고 있던 라마스 슈타크가 입을 열었다.

“간단한 해결방법이 있습니다.”

“뭐지?”

루드거는 귀를 기울이며 라마스의 대답을 기다렸다.

피식.

이때, 라마스는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이와타르를 정복해 슈타크 제국의 영토로 편입시키면 됩니다.”

“안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로가하 연맹 전체에 불신을 키우게 됩니다.”

그러자 키이라 슈타크가 곧장 반박했다.

라마스는 키이라에게 눈총을 쏘았다.

“빨리 진압하지 않으면, 이와타르 같은 타락한 국가가 늘어나게 될 되겠지.”

“진압해서 거기서 흘리는 피의 양은 생각해 보셨나요?”

어느덧 회담은 두 사람의 의견이 충돌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이 둘이 차후 황권을 두고 다투는 유력한 후보자라는 것을 알고 있던 대신들은 일제히 둘 중 한 명의 편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오합지졸 범죄자들만 빠르게 제압하면 그만이야. 어차피 이 대륙은 피로 물든 역사다. 기껏해야 몇만 밖에…….”

격앙된 라마스타 말 매듭을 짓기 전.

“그럼 너부터 먼저 뒈지시든가.”

어디선가 흘러나온 굵고 낮은 차가운 음성에 라마스의 표정이 경직됐다.

뚜벅뚜벅.

목소리가 흘러나온 진원지에서는 칼이 단신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화, 황자 마마. 언행에 주의를…….”

같이 따라나서고 있던 제이크가 다급하게 만류했지만, 이미 주변의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칼의 기세는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피식.

이번에는 또 어떤 흥미를 줄까?

루드거는 말려 올라갈 것 같은 입꼬리를 가까스로 경직시키며 입을 뗐다.

“예의를 지키거라. 칼리언트.”

척.

그의 경고에 칼은 고개를 조아렸다.

빠직! 빠직!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에 라마스는 깊은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엄연히 황위 계승권에서 우선순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칼에게 대하는 것이 온도차가 달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저 녀석은 황위 계승권마저 포기했잖아. 근데도 아직까지 아버지는 저 자식을…….’

“칼리언트. 너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 참이지?”

루드거는 자연스레 칼에게 이번 사건의 해결방안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은…….

“평소대로 하겠습니다.”

라는 어이없는 한마디였다.

“…….”

이에 관료들은 크게 당황해 무어라고 하지도 못하고 입을 뻐금뻐금거렸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평소대로 한다.

저 말만큼은 믿음직한 것도 없었다.

그는 최악의 땅, 알테어 전선을 완전히 정복하고 요새화하는데 성공한 남자. 또한 산크투아리움이라는 거대한 신성 제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거기다 라흐만 대륙에서 제일 명성을 떨친 소드 마스터이기까지.

역사상 이 정도 공훈을 이룬 이는 아무도 없었고, 칼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그것을 여겨왔다.

지금이 표정 역시 그때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의 능력만 믿고 정책을 이끄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반년의 시간을 주지. 만약 여기서 수습하지 못하면, 라마스 말대로 연맹의 항변에 개의치 않고 이와타르를 정복할 거다.”

“반년까지 갈 일은 없을 겁니다.”

이날, 루드거는 작전에 대한 모든 권한을 칼에게 위임했다.

* * *

회담 종료 후.

라마스는 궁 밖으로 나가는 칼의 멱살을 쥐며 소리쳤다.

“황위를 포기했으면 고분고분 빠지면 그만이지. 왜 계속 설치는 거지?”

그의 눈빛은 매우 어둡고 흉포했다.

뒤를 지키고 있던 기사단은 주체할 수 없는 라마스의 분노를 느끼고는 고인 침을 삼켜 넘겼다.

과거에 비해서 형편이 많이 나아졌지만, 슈타크가만의 질서는 아직 무너지지 않은 것을 간접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은 같잖다는 표정으로 라마스에게 반박했다.

“그 자리는 너의 자리가 아니야. 라마스.”

“키이라를 지지하는 거냐?! 그래서 나에게 모욕을…….”

“지랄하지 마. 버러지.”

칼은 라마스의 우락부락한 힘을 무시하고 거칠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

쿠구구구구.

단지 기세를 드러내는 것만으로 라마스의 기사단은 크게 동요했다.

‘뭐, 뭐야?! 이 힘은?’

‘진짜 사람 맞아?’

그저 느껴지는 기감대로 보자면, 칼의 기세는 라마스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농도가 짙고 흉포했다.

그 힘에 제일 동요하고 있는 건, 물론 라마스였다.

칼은 슬쩍 힘을 내비친 상태로 입을 열었다.

“여자와 애는 건드리지 않는다. 힘이 없는 자를 수호하는 게 내 기사도다. 라마스. 너는 단순히 죽이는 것만으로 끝낼 수 있지만, 그 손에 죽어 나가는 것은 한없이 약한 약자다.”

“그 약자들이 미쳐 날뛰는 광기를 제압하려면, 강자의 위엄을 보여야 되는 법이야!”

“그 방법이 잘못됐다는 거야.”

빠직!

“어디가?!”

단단히 역린을 건드렸는지, 라마스는 언제든지 칼과 대치하기 위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칼은 머리칼을 이마 뒤로 넘기며 서슬 퍼런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권좌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건 내 알 바 아니야. 하지만 내 가치에 반하는 짓을 하면, 난 얼마든지 네놈의 숨통을 끊을 수 있어. 라마스.”

“…….”

오싹!

거짓이 없는 한 마디에 라마스의 표정이 경직됐다.

그 상태로 칼이 물었다.

“무엇을 위해서 앉으려는 권좌지?”

“그, 그건”

“후손들 낳고 오순도순 나눠 먹고 평생 권위를 누리기 위해서?”

“…….”

결단코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반박도 반문도 하지 못했다.

“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걸 보니, 넌 평생 누군가에게 휘둘리면서 살았나 보군.”

“건방진?!”

라마스가 이를 드러내며 분개하는 순간.

콰앙!

칼이 그의 어깨를 짚고 거칠게 짓눌렀다.

털썩!

그 힘을 이기지 못한 라마스는 무릎을 꿇는 치욕을 겪었다.

스릉!

“라마스님!”

그 행위를 도발로 간주한 기사단이 일제히 검을 빼 들었을 때는…….

저벅저벅.

칼은 순식간에 그들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어, 언제?!’

모두가 동요하는 사이, 칼은 마지막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한마디를 남겼다.

“썩어빠져도 너희는 기사다. 그 칼은 누구에게 겨눠야 되는지, 되새겨보도록.”

“…….”

검을 겨눴던 이들은 그 말에 민망함을 느꼈는지, 일제히 검을 내려놓았다.

* * *

“가까스로 전쟁은 막았네요. 다행이에요.”

“서두르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지.”

칼이 이실리아에서 마족을 토벌한 후 곧장 슈타크 제국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은 델피나가 만든 포탈 마법진의 효과 때문이었다.

대륙 각지에서 퍼진 황금과 예언자 소문의 여파를 잠재우기 위해서 루드거를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또 서툴게 이와타르를 치기 위해 병력을 꾸리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다시 칼은 포탈 마법진으로 이실리아에 도착했다.

‘또 한 시대에 도약한 느낌이군.’

이실리아에 세워진 포탈 마법진 위에 서 있던 칼은 점점 라흐만 대륙의 마법이 발달되고 있는 것을 현실적으로 체감했다.

“맥캘리 교수님과 저의 합동작품이죠. 아직 제약이 많지만, 개선해나가면 이 시대의 유통체계 자체를 뜯어고칠 수 있어요.”

“앞으로 수백 년 뒤야.”

“그럴 수도 있죠.”

델피나는 피식 웃으며 칼의 대답에 수긍했다.

“그나저나 이와타르에서 벌어진 것도 역시 프리메이슨의 음모일까요?”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내가 추구하는 기사도를 알고 행하는 짓이야.”

“몹쓸 짓을 해버렸네요.”

델피나는 입가에 절로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이와타르의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들의 적의는 로가하 연맹에 꽂히고 있다.

하지만 상대는 턱없이 약한 약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분노하는 데 분명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이 때문에 칼은 그들을 표적으로 삼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방침이지?]

칼의 목에 걸려있던 리바이어는 마냥 관망하기가 답답했는지, 앞으로의 방침을 물었다.

“그 녀석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

“아 백작 부인말인가요? 그러고 보니 화해는 했나요?”

델피나는 응큼한 웃음을 지으며 칼을 쳐다봤고, 칼은 쭈뼛쭈뼛하게 움직이며 입을 뗐다.

“……아니.”

* * *

새벽녘.

아이들의 교육을 끝마친 릴리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칼이 가져온 드래곤의 알을 닦고 있었다.

“둔탱이, 그냥 평생 혼자 살다 죽어라.”

손은 정성껏 알을 보살피면서 입으로는 험하게 칼을 꾸짖으며…….

“일부러 들리게 험담하지 마.”

문밖에 있던 칼은 곤란한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들어오지 마세요. 사령관님. 저 아직 휴직 중이에요.”

‘문 확 걷어 차버릴까.’

인내심에 한계가 온 칼이 이마에 핏대를 세울 때.

“꺄아아아아악!”

문 안쪽으로 릴리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야!”

깜짝 놀란 칼은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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