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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88화 (188/197)

제188화

팔락!

불그스름한 마나로 빗어진 여섯 장의 날개가 세상에서 현현한 순간.

쿠구구구구.

전쟁으로 그을린 연기가 하늘을 뒤덮던 라흐만 대륙의 지반이 미미하게 떨렸다.

심상치 않은 조짐에 적과 아군 가리지 않고 무기를 내려놓았다.

갑작스럽게 전쟁의 파문을 멈춘 이 현상을 대륙에서는 훗날 원인을 알 수 없는 지진이라고 서술하게 된다.

유일하게 그 진실을 목격한 릴리는 동공을 파르르 떨었다.

“……칼.”

동공에 비친 칼의 모습은 마치 신화에서 나오는 용을 쓰러뜨리는 기사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 * *

‘전성기 힘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해.’

마침내 마나 기관을 발현하는데 성공한 칼은 자신을 증오스럽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는 드래곤, 데제스를 쳐다봤다.

쇄애애액!

콰아앙!

칼에게 어떤 위화감을 느꼈는지, 데제스의 전신에는 마법진이 생성되며 일제히 칼에게 고화력의 마법을 퍼부었다.

난사되는 마법은 성역 전체로 번지며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생명을 지우려고 했지만.

스스스스스.

칼의 붉은 마력은 방파제처럼 벽을 생성해 데제스의 마력을 튕겨냈다.

[죽어! 이 괴물 자식!]

데제스는 질렸다는 눈빛으로 힘껏 포효하며 더 많은 마법진을 생성했다.

물론, 칼에게 동요는 없었다.

해결책 또한 간단했다.

그저 마법진을 응시하며 주먹을 쥐면 될 뿐이다.

콰칭! 콰아아앙!

단지 그것만으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힘의 마나 브레이크가 확산하며 마법진을 붕괴시켰다.

이번에는 그 여파가 데제스의 마력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 하트에까지 금이 가게 만들었다.

[크아아아아악!]

심장을 옥죄는 그 격통에 데제스는 고통과 함께 피를 토해냈다.

콰칭!

칼은 다시 한번 같은 방법으로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크아아아아악!]

이번에는 아까보다 증폭된 마나 브레이크가 일어나며 데제스의 몸을 감싸고 있던 단단한 드래곤의 비늘이 완전히 박살이 났다.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던 드래곤은 피칠갑이 된 채, 힘겹게 눈을 떴다.

[허억, 허억, 넌 대체 정체가…….]

스스스스.

칼은 서서히 몸을 허공에 띄우며 말했다.

“내 이름은 칼리언트 슈타크. 악에게 재앙을 초래하는 마왕이다. 대답으로 충분했나? 데제스 싱클레어.”

기이이이이잉!

죽기 직전에 베푸는 마지막 배려와 함께 결합 된 인페르노와 시엘로에서 붉은 오러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죽는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사로잡혔다.

그것을 직감한 데제스는 오히려 마음속에서 여유를 되찾았다.

죽기 전에 반드시 해내야만 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고의 유희였다. 칼리언트 슈타크. 하지만 네놈도 그리고 네놈의 기사단도 여기서 끝이다. 네놈이 신의 힘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날 가로막을 수는 없어.]

성역 디바인에서 믿을 수 없는 현상이 벌어졌다.

화아아아아악!

작게 발화됐던 하얀 불꽃이 성역 전체를 산산이 불태우는 산불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은 날 키웠던 에고스톤 리바이어를 봉인한 땅. 그리고 이 불길은 리바이어에서 끄집어낸 드래곤 로드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정화의 불길이다. 내 자식들을 제외한 모두와 같이 죽는 거다. 칼리언트.]

이 와중에도 유사 세피로트에 맺힌 열매를 포기할 수 없는지, 데제스는 정화의 불길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결계를 구축했다.

‘이것만큼은 절대 막아낼 수 없어.’

드래곤들 사이에서 드래곤 로드는 이미 신으로 간주 되었다.

그리고 이 10서클 마법, 정화의 불길은 헬파이어와도 비교도 되지 않는 섬멸의 불꽃으로 꺼뜨릴 방법이 없는 절망의 마법이었다.

화아아아악!

“크아아아악!”

“데제스 님!”

실제로 그 불길에 뒤덮인 산크투아리움의 성기사들은 온몸을 구르며 불길을 꺼뜨리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화르르르르륵!

정화의 불길은 더욱 커져 칼을 집어삼킬 정도가 되었다.

시간으로 치면 고작 눈 깜짝할 순간.

칼은 정화의 불길에 곤욕을 겪는 괴츠, 헤이젤, 마틴 등의 기사단과 릴리를 쳐다봤다.

기잉!

화르르륵!

릴리는 어떻게든 불길에 벗어나기 위해 결계를 쳤지만, 정화의 불길은 결계마저 불태우며 그녀를 덮쳤다.

씨익!

그 풍경을 지켜보던 칼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데제스에게 말했다.

“……기껏 생각한 게 이런 어쭙잖은 수작이냐?”

기이이이이잉!

콰치이이잉!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칼을 중심에서 확장된 서킷이 성역, 디바인 곳곳에 깔리며 마나 브레이크가 일어났다.

화륵,

단지 그것만으로 신조차 불사를 수 있는 정화의 불길이 꺼졌다.

[……!]

직접 눈으로 봐놓고도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는지 데제스는 혼란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스스스.

칼은 유유히 비상하며 말했다.

“네놈은 나를 오합지졸 신에게 비교한 것 같지만, 난 이미 한 세계를 멸망시켜버린 마왕이다. 격이 달라.”

서걱!

콰아앙!

한 획의 빗금이 스쳐 지나가자, 데제스의 거대한 날개가 뜯겨 졌다.

[크아아아악!]

겁을 집어먹은 데제스가 급하게 도주하기 위해 비상하려 할 때, 칼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검을 집어던졌다.

붉은 번개처럼 쏘아진 검이 데제스의 드래곤 하트를 꿰뚫으려는 순간.

우웅!

데제스는 인간으로 폴리모프해 아슬아슬하게 그 검을 회피했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리고 투척한 검이 지면에 꽂혔다. 마치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성역의 전체가 흙먼지를 피우며 뒤흔들렸다.

“허억, 허억!”

데제스는 피투성이가 된 팔을 부여잡으며 칼을 쳐다봤다.

피잇! 피잇! 피잇!

힘을 개방한 칼의 육신 역시 자신의 거대한 힘에 상처가 났지만.

스스스스스.

이내 전신의 상처는 말끔히 아물었다.

단숨에 데제스에게 도달한 칼은 지면에 꽂힌 검을 들어 데제스를 겨누며 말했다.

“꼴사나워. 도망치지 마.”

울컥!

절대자의 위엄 어린 말에 데제스는 격분했다.

“지금까지 날 가지고 논 거였나? 네놈 역시 인간이…….”

푸욱!

“쿨럭! 크아아아악!”

항변을 칼은 더 이상 기다려주기 어려웠는지, 단번에 데제스의 복부를 검으로 관통했다.

“죽인다! 네놈!”

입에 피가 치솟은 데제스는 칼의 목을 손으로 움켜쥐려고 했으나.

푸욱!

콰드드드득!

칼의 검신이 늑골을 헤집자 곧 힘을 잃었다.

그와 동시에 칼은 오른손으로 데제스의 심장을 단숨에 움켜쥐었다.

“?!”

“지금까지 나한테 개겨서 살아남은 녀석은 없어. 딱 한 명 빼고. 넌 그 녀석을 처치하기 전에 잡는 애피타이저 같은 부류야.”

오싹!

거짓 없이 내뱉는 한마디에 데제스는 눈을 부릅떴다.

“네 녀석도, 네 놈의 자식들은 이 땅에 발을 내디딜 수 없어. 뒤를 봐.”

“?!”

칼의 말에 화들짝 놀란 데제스는 유사 세피로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이이이잉!

그곳에는 정화의 불길조차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 강력한 결계를 무너뜨린 칼의 서킷이 유사 세피로트와 열매에 문신처럼 생성돼 있었다.

[끼에에에에엑!]

절로 공포를 일으키는 마력에 열매 속의 생물들은 끔찍한 흉성을 내며 데제스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그만둬.”

데제스의 눈빛은 공포와 당황으로 크게 뒤흔들렸다.

자신은 죽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자신이 신이 되기 위해 창조한 생물이 죽는 것만큼은 결단코 막아야 했다.

“그만두라고! 이 개자식아!”

데제스는 입에 피를 문 채, 칼의 멱살을 쥐며 어떻게든 만류하려고 했다.

칼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데제스를 보며 말했다.

“끝까지 머리를 굴리는 방법이 안타깝네. 저 녀석들이 태어나는 게 신이 되기 위한 조건이라면, 지금 나한테 죽어도 넌 부활도 가능하겠지.”

“?!”

훗날을 기약하겠다는 속셈이 이렇게까지 간파당하자, 데제스의 표정은 크게 무너졌다.

“결국 너는 부성애도 모성애도 아닌 도구로써 저 녀석들을 태어나게 하려 한 거지. 근데, 어쩌나? 그 계획 송두리째 무너뜨릴 건데.”

콰아아앙!

그 말을 실현하기 위해 칼은 유사 세피로트에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켰다.

위력은 데제스 싱클레어를 박살낸 두 번째 마나 브레이크보다 훨씬 컸다.

콰직! 콰직! 콰직! 콰직!

그 위력을 버티는 것이 불가능했던 유사 세피로트에 맺힌 열매는 하나도 남김없이 터져나갔고, 강력한 태동을 띠던 유사 세피로트도 죽음을 맞이했다.

“아아아아악! 칼리언트! 네놈을 저주한다!”

분노한 데제스는 눈가에 피눈물을 흘리며 칼의 목을 다시 한번 옥죄려고 했다.

물론 그 손가락이 일절 닿을 리는 없었다.

콰직!

칼의 손에 움켜쥔 그의 심장이 먼저 터졌기 때문이다.

“…….”

데제스는 허망한 표정으로 칼을 쳐다보다 곧 초점이 꺼지며 죽음을 맞이했다.

* * *

라흐만 대륙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산크투아리움의 광기는 결국 로가하 연맹의 저지로 꺾이고 말았다.

성역, 디바인에서 데제스를 상대로 승리한 칼은 가장 먼저 그의 수급을 취해 산크투아리움에게 투항을 권유했다.

산크투아리움의 군사들은 백기를 들고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대륙 곳곳에 퍼져 있는 다른 산크투아리움의 군사들도 전의를 상실해 무기를 버리고 도주했다.

로가하 연맹에서는 크나큰 축제가 벌어졌다.

아주 기적적인 밤이었다.

장차 반년 가까이 벌어진 전쟁으로 대지는 크게 황폐화됐지만.

전쟁으로 고통과 고난을 겪은 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만개했다.

모든 것이 풍비박산 망가졌지만, 내일을 기약하며 춤을 출 수 있었다.

모두가 전쟁의 주범, 데제스 싱클레어를 쓰러뜨린 영웅, 칼리언트 슈타크의 영광을 기렸다. 또한 그를 따라 전쟁의 승리의 주역이 된 에클라 세트도 대륙 곳곳에 명성이 퍼져나갔다.

변화의 조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루콘 제일 무가에서 이제는 슈타크 왕국의 혈족이 된 슈타크 형제, 자매들 사이에서 질투와 시기 대신 칼을 인정하고 차기 왕으로 인정했다.

난생처음 오만하기 짝이 없던 슈타크의 혈족들이 누군가에게 경외를 품었다.

하지만 정작 이런 어마어마한 공로를 쌓은 칼은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휘이잉!

소신을 다했기에 지금은 자신의 요새, 알테어에 복귀해 새하얀 설원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 귀찮은 잡무는 다 나한테 떠맡기고.”

칼과 함께 알테어에 복귀한 릴리는 원망스러운 듯 칼을 쳐다봤다.

“아, 왔냐?”

빠직!

“왔어. 진작 왔다! 이씨!”

기껏 고생한 부하를 두고 수고했다. 고맙다. 격려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릴리가 원망스럽게 눈을 흘기자, 칼은 슬쩍 시선을 회피했다.

‘왜 이리 껄끄럽고 불편하고 무서운지.’

난생처음 느껴본 감정에 칼은 애써 모른 척 외면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곳에 온 이유는 뭐야?”

그 질문에 릴리는 처음으로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디바인에서 데제스를 처치하고 승전보를 알리고 나서 반나절 동안 어디 가 있었던 거야?”

“글쎄.”

“곤란하면 답하지 않아도 돼. 대신 다른 질문을 꺼낼게.”

“뭔데?”

“……칼리언트 슈타크. 너의 정체는 뭐야?”

흑요석처럼 고고하게 빛나는 눈빛으로 조금 당황한 칼의 모습이 비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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