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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86화 (186/197)

제186화

크르르르르.

붉은 갈기를 가진 사자의 흉포한 울음소리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생물에게 전율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모든 생물을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울음소리였다.

파르르.

변종 오우거들은 모리스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그로바의 기세에 밀려 몸을 떨고 있었다.

[칼리언트의 애완동물인가?]

모리스는 냉철한 말투로 바그로바를 살피다 일제히 변종 오우거들을 움직였다.

콰아아앙!

오우거 등에 결합 된 드레이크의 머리들이 일제히 크림슨 게일, 기사단을 정신없이 몰아붙인다.

챙! 챙! 챙!

“우와아아아!”

방금 전까지 그 기세에 바싹 겁을 집어먹은 병사들이 일제히 대항하기 시작했다.

쿠직! 쿠직!

콰앙!

바그로바는 성난 표정으로 앞발을 휘둘러 드레이크의 머리 자체를 터뜨리거나. 할퀴어서 몸통을 찢어놓았다.

그 와중에 변종 오우거들이 검을 휘둘러 바그로바를 베려고 했으나…….

콰칭!

오러가 실린 검격도 바그로바의 가죽을 뚫지 못하고 검 자체가 부서지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그 모습 평소 기사단의 심볼로 사용하는 문양과도 유사해 보였다.

심볼의 의미는 용기와 자애로 바그로바의 모습에 기사단 전체가 전의를 끌어올리며 용기를 가지고 변종 오우거들에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체력이 고갈돼 잠시 호흡을 고르던 헤이젤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알테어를 정복한 데, 마틴 다음으로 공헌한 녀석 답네.”

“실없이 웃을 때냐? 그 모리스란 녀석 어디 있는지 알아내야지?”

“기다려. 조급해하지 마.”

사실 초조한 것은 헤이젤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의 시간은 넋 놓고 쉬는 게 아니라, 모리스를 찾아내 처단하기 위한 전략을 짜는 시간이었다.

상식적으로 괴츠와 헤이젤 두 사람도 벅차게 상대했던 변종 오우거 수십 마리를 병사들이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나마 전황이 호전세로 돌아간 것은 어디까지나 바그로바의 출현 때문이었다.

‘사령관님의 힘이 강해진 만큼, 바그로바도 디바인 전역에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킬 수 있어.’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서킷을 통해 모리스의 사념과 힘을 공급받는 변종 오우거들은 서킷이 깨지는 즉시 움직임이 멈출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야.’

하지만 헤이젤은 곧장 수용하지 않았다.

이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데제스의 수족이라고 하는 모리스를 단단히 처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서킷을 해킹해서 녀석의 힘을 역추적한다.’

결단이 선 헤이젤은 즉각 손을 땅에 짚어 서킷을 생성한 뒤, 지면에 있는 서킷에 이어 붙였다.

파직! 파직!

외부에서 침입을 눈치챈 건지, 모리스의 전신이 크게 들썩였다.

“야, 야 너 괜찮아?”

괴츠의 눈에 헤이젤의 몸이 전격에 휘말리는 것마냥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추적, 추적, 추적.’

헤이젤은 아랑곳하지 않고 디반인 전역에 깔린 서킷을 통해 힘의 발원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서킷의 파훼법으로 에클라 세트 중 한 명인 델피나가 찾아낸 방법.

그러나 해킹을 하는 것은 마나에 대해 극히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자들만이 가능했다. 섣불리 해킹을 했다가는 도리어 상대에게 감지당한다.

그렇게 되면 서킷을 타고 온 마법이 몸이 휘감을 것이다.

이 점을 익히 알았기에, 칼은 괴츠에게 의수를 기동할 수 있는 서킷을 익힐 때까지 패면서 가르쳤다.

여기서 헤이젤은 그 단계를 훨씬 초월해 해킹까지 배워야 했다.

안 좋은 추억이 떠올랐는지, 헤이젤은 미간을 꿈틀거리며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장소는 칼의 집무실.

방 전역에는 칼의 마나로 이루어진 서킷이 깔려 있었다.

방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그 마나 서킷을 해킹해 자신의 것으로 통제해야 했다.

그러나 미미하지만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칼의 서킷을 해킹하는 것은 범인에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는 것만큼 실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헤이젤은 푸념했다.

-이런 건 그냥 마틴 시키시면 안 됩니까?

-마틴이라면 금방 하겠지만, 너만큼 다루지는 못 할 거야.

의외의 칭찬.

히죽, 히죽.

기분이 좋아진 헤이젤은 안면근육을 꿈틀거리며 반박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제아무리 제가 잘나고 뛰어나도 에클라 세트에는 당연히 못 미치지…….

-영악하니까.

-에이 그렇죠. 제가 영악하니까 잘할 수밖에…… 사령관님?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은 헤이젤은 원망스런 표정으로 칼을 쳐다봤다.

상처를 받든 말든 칼은 답을 내놓았다.

-너만큼 타인의 의도를 간파하고 의표를 찌르는 건, 마틴은 절대 못 해.

-쩝, 비유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까?

-좋잖아.

칼은 심홍색의 눈빛을 번뜩이며 처음으로 교활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는 신마저 속일 수 있는 잔꾀를 갖춘 놈이라는 거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이 칼리언트 슈타크가 보증해주지.

빠직! 빠직!

‘영악이나 꾀나 이런 듣기 거북한 칭찬보다 지혜나 현명하다는 좋다는 말 같은 게 얼마나 많이 있는데!’

스스스스.

분노를 계기 삼아 각성한 헤이젤은 분주하게 모리스의 서킷을 해킹하기 시작했다.

‘속임수야. 이쪽에 구태여 신성력을 공급할 필요 없어.’

거미줄처럼 산더미처럼 깔린 서킷 중 오직 모리스에게 연결된 것만을 제외하고 남은 서킷은 포기한다.

‘……여기야!’

서킷을 통해 모리스의 위치를 간파한 헤이젤이 눈을 부릅뜬 순간.

-발각됐어도 네놈만 죽이면, 모든 게 부질없어지지!

그워어어어어!

진작 헤이젤의 의도를 알아챈 모리스가 변종 오우거에 사념을 보내 모리스를 대검을 찍어 내리려고 했다.

“헤이젤!”

이때, 괴츠는 수많은 변종 오우거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

이 상황만큼은 예상치 못했는지, 눈을 부릅떴던 헤이젤이 이내 피식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너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 한 거야. 멍청한 도련님.”

어느새 지표면에 해킹한 서킷 중 하나가 바그로바의 발치에 연결돼 있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쿠구구구구.

바그로바는 전신에 있는 붉은 마력을 끌어올린 뒤, 양발을 들어 올렸다가 지면을 찍었다.

쨍그랑!

콰쾅!

붉은 원형의 파문이 일제히 확장되며 성역, 디바인에 있는 서킷을 산산조각내버렸다.

서킷을 통해 신성력과 사념을 공급받던 변종 오우거는 움직임을 멈췄고.

“우아아아아악!”

크림슨 게일 기사단은 의기투합하여 오우거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 * *

성역 디바인에 위치한 에메랄드 크리스탈로 이루어진 관에서 눈을 감고 누워있던 모리스는…….

콰아아앙!

출렁!

크리스탈 관을 통해 물밀 듯이 밀려오는 붉은 마력의 폭풍에 눈을 떴다.

아니,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관에 있던 약물은 파도처럼 출렁이고 산산이 깨지는데, 눈을 안 뜨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다.

“쿨럭, 쿨럭, 우욱!”

이후 그는 코끝에 진동하는 역겨운 피비린내를 참지 못하고 토혈을 했다.

“그 개자식!”

모리스는 흥분한 듯 눈을 부릅떴다.

마지막 머릿속으로 떠오른 헤이젤의 모습은 무척이나 얄밉기 짝이 없었다.

-너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 한 거야. 멍청한 도련님.

마지막에 남긴 그 한마디는 지금의 타격을 예고한 것이다.

통상적으로 바그로바의 마나 브레이크가 서킷을 깨뜨린다고 해도 모리스에게 이런 타격을 입힐 수 없다.

헤이젤은 자신이 해킹한 서킷으로 바그로바의 마나 브레이크를 전송했다.

그것은 깨지기 직전의 얼음길을 내딛는 것과 같았다.

마나 브레이크의 기운이 서킷을 통과하면, 기운이 지나간 서킷은 지체없이 깨진다.

만약 헤이젤에게 서킷이 해킹당하지 않았다면, 모리스는 진작 서킷을 끊어내 충격을 방비했을 것이다.

울컥!

하지만 결국 모리스는 끝내 헤이젤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고, 그 결과 지금처럼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얼른 데제스님에게…… 가야 돼.”

미끄덩!

쿵!

억지를 부려봤지만, 몸은 그 의지를 따라주지 못하고 연신 바닥을 굴렀다.

꽈악!

다시 한번 아랫입술을 깨물며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괜찮냐?”

“…….”

불현듯 등 뒤에서 들려온 한마디에 동공을 파르르 떨었다.

그가 천천히 등을 돌렸을 때, 그 뒤에는 헤이젤과 괴츠가 몸에 잔뜩 부상을 입은 채로 교활하게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어, 어떻게?!”

“네가 통제했던 변종 오우거가 제멋대로 발광하기 시작하면서 자멸하더라고.”

“그 몸부림 때문에 뒤질 뻔했지만.”

까드드득!

괴츠는 아직까지 분이 풀리지 않는지, 의수의 손가락을 주먹으로 말며 살기를 발산했다.

“2대 1인가?”

헤이젤은 살짝 주먹을 쥐며 말했다.

“네가 할 말은 아니지. 뒤질 준비는 됐냐?”

“크크크크. 재밌어. 하찮은 것들이 이 정도로 날 궁지로 몰고 가다니.”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직감한 모리스는 벽에 걸려있는 검을 들어 올렸다.

“키메라를 사용한 시점에서 너희는 명분을 잃었어. 떨거지들아.”

“무슨 소리지?”

“뭐긴 뭐야? 우리가 이겼다는 거지.”

“데제스 싱클레어는 무릎 꿇지 않는다.”

“그 이름은 칼리언트 슈타크의 이름 아래 역사에 패배자로 낙인찍힐 거다.”

헤이젤은 지지 않고 곧장 반박했고.

찌릿!

세 남자는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곧장 거리를 좁혔다.

* * *

성역 디바인에 로가하 연맹의 맹주, 칼리언트 슈타크가 돌격한 지, 어언 반나절이 흘러갔다.

막상막하였던 양 진영의 기세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로가하 연맹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모두가 사력을 다해 전쟁에 임한 게 가장 큰 몫이지만.

데제스 싱클레어의 최측근이라고 하는 마르첼과 모리스의 패배가 알려지면서 전세가 로가하 연맹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졌나?”

점차 자신을 향해 진격해온 로가하 연맹군의 기세를 지켜보던 데제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이한 일이었다.

전력으로 보면, 압도적으로 자신이 우위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로도 이 성역 내에서도 어째서 자신이 지고 있는지 그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마르첼과 모리스의 패배에 크게 동요하기까지 했다.

“……역시 인간 따위는 믿을 게 못 됐어.”

어차피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만든 체스판의 말이었다.

저벅저벅.

그때 그의 등 뒤로 칼이 걸어와 느긋하게 말을 건넸다.

“그건 네가 인간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지. 난 내 기사단을 믿었을 뿐이고.”

왈칵!

칼의 답변이 마음에 안 드는지 데제스는 인상을 험악하게 찌푸렸다.

그러든지 말든지. 칼은 주변의 풍경을 살피며 말했다.

“인류를 전멸시키고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 이 땅에 발을 내딛게 한다. 그게 너의 계획이지? 이건 세피로트와 유사하지만 세피로트는 아니니 유사 세피로트라고 해둘까?”

생명이 탄생할 조짐을 보이는 건지 열매는 더욱 빛을 내뿜었다.

그리고 열매를 맺은 나무, 유사 세피로트에는 칼은 같잖다는 듯 그것을 비웃고 있었다.

데제스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신이 인류를 창조했다면, 너도 역시 그 조건을 성립해 신으로 승화하려는 거겠지.”

“……처음이군. 인간이 내 근본을 완전히 파헤친 적은…….”

“참으로 얕고 조잡하기 짝이 없는 근본이야.”

칼의 도발조에 데제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 칼과 대치했다.

“그리고 이토록 죽이고 싶은 적도 처음이야.”

살기 어린 데제스의 눈빛에 칼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해봐. 애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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