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화
‘이 자가 모리스?’
몬스터의 느닷없는 자기소개에 헤이젤은 적잖이 당황했다.
모리스.
그 이름은 데제스 싱클레어의 심복으로 알려진 자의 것이며, 수려한 외모를 갖춘 소드 마스터라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보가 부족해. 이 녀석도 인간이 아닌 건가?’
혼란이 가중돼 판단이 흐릿해지는 순간.
“모리스고 나발이고 내 부하들이 네놈한테 썰린 것에 대한 대가는 받아야지!”
기이이이잉!
오른쪽 의수에 서킷을 발동한 괴츠가 모리스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슈미트 특제 의수에 오러까지 실린 그 위력 앞에서 지금까지 수많은 몬스터들이 주살 당했다.
콰앙!
까드드드득!
큼지막한 모리스의 오른손이 괴츠의 의수를 살짝 으스러뜨리며 붙잡기 전까지는…….
히죽!
[근본이 천박한 것은 어쩔 수 없군.]
“지랄! 네놈 모습은 천박하지 않은 것 같냐!”
빠직!
괴츠가 이마에 올통볼통 핏대를 세우며 전신의 근력을 쥐어 짜내려는 순간.
콰아아앙!
모리스는 같잖다는 듯 괴츠를 멀찍이 지면에 내동댕이쳤다.
그와 동시에 상황의 위급함을 깨달은 헤이젤은 검 끝으로 두부를 내찔렀으나…… 단단한 금강석을 치는 것마냥 둔탁한 소리만 자아냈다.
모리스의 반격은 곧바로 이어졌다.
등에 부착된 드레이크의 머리는 그런 헤이젤의 어깨에 이빨을 들이밀었다.
우드득!
콰앙!
마치 과육을 질겅질겅 씹는 것처럼 입안에는 으깨진 갑주의 조각이 있었다.
“하아, 하아.”
가까스로 일격을 회피한 모리스의 오른팔에는 피가 뚝뚝 고이며 떨어졌다.
“괴, 괴츠 님과 헤이젤 님이 동시에…….”
뒤에서 모리스를 견제하던 병사들의 안색은 새파래졌다.
알테어에서도 몬스터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것이 바로 괴츠와 헤이젤이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로 당하고 있으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원초적인 절망.
이것이 바로 몬스터와 조우한 인간이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었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여기서 생이 마감되었을 것이다.
그래. 보통사람이라면 말이다.
콰앙!
“이 새끼가!”
“쳐돌았냐?”
물론 괴츠와 헤이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단숨에 몸에 활력을 끌어올린 두 사람은 서로 얽히고설키며 모리스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모리스는 덩치에 맞지 않는 스피드로 대검을 들어 이를 응수했다.
카앙! 카앙! 카앙!
셋이서 펼치는 공방은 공기를 요란스럽게 뒤흔들어놓고 찢기를 반복했다.
콰앙!
괴츠는 강철 의수로 자신을 기습하는 또 하나의 드레이크 머리에 정권으로 박살내며 또 한 마리의 드레이크의 머리에는 왼손으로 검을 뽑아 대적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들을 위협하는 것은 모리스의 검술이었다.
지금의 구도는 언뜻 봐서 호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콰직!
콰앙!
이 구도는 정확히 모리스가 검술로 두 사람을 몰아가는 모양새로…….
괴츠와 헤이젤은 모리스의 검격에 체력과 정신력이 조금씩 갉아 먹히고 있었다.
파앗!
그렇다고 유효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모리스가 등 뒤에 결합된 드레이크들을 활용해 거리를 벌리고 격전을 유리하게 이끌고 있지만.
헤이젤의 검속만큼은 따라잡기는 어려웠는지, 때때로 빈틈이 있으면?
콰직! 콰앙!
헤이젤의 검격에 급소가 직격당해, 몸의 살점이 뭉텅이로 잘려나갔다.
흐물흐물.
트롤의 피가 섞였는지, 생채기가 난 부위는 재생의 조짐을 보이려고 했지만.
콰앙!
괴츠는 일말 재생의 기회도 주지 않고 오히려 상처를 격파해나가며 크게 벌리고 있었다.
콰드득.
콰앙!
하지만 무리한 움직임은 두 사람에게도 적잖이 부담을 줄뿐더러 적의 일격에 상처를 입기까지 했다.
치명상만 피해갈 뿐이지.
이 난타전이 지구전으로까지 가게 된다면, 틀림없이 헤이젤과 괴츠는 필패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악!”
그리고 그럴수록 괴츠는 더욱 흥분하며 과격하게 전투에 임했다.
[무식한 놈.]
예상치 못한 그들의 반격에 모리스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조소를 그렸지만, 사실 이것은 겉보기에만 무식한 방법을 택할 뿐.
이 방법은 알테어에서 늘 크나큰 승리를 가져왔다.
승리를 취한 그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고 협업으로 극복하는 것.
일반적으로 맷집과 방어력에 대해서는 발군이라 할 수 있는 괴츠는 방패의 역할을.
헤이젤은 적의 약점을 분석해 적의 심장을 관통하는 창으로써 임무를 수행한다.
‘개개인이 마틴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 방법이라면 마틴이 해내지 못했던 것을 이룰 수 있다.’
콰직!
콰앙!
이 순간, 괴츠의 복부가 모리스의 큼지막한 주먹을 허용했지만.
“커헉!”
우드득!
괴츠는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용케 그 팔의 관절을 꺾어서 비틀었다.
쇄액!
서걱! 서걱! 서걱!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헤이젤이 적의 급소를 향해 연신 오러로 공격을 가했다.
마치 한 송이의 화려한 꽃을 보는 것처럼 쇄도하는 일격은 아름답고 섬세하며 무자비했다.
그러나 모리스의 몸은 변종 키메라가 되었기에 쉽사리 죽지 않는다.
헤이젤 역시 이 부분은 확실히 간파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일격은 어디까지나 견제기였다.
이 찰나의 순간은 모두 적의 심장을 관통하기 위한 시간 끌기에 가까웠다.
‘통상적으로 급소라고 생각할만한 부위는 훨씬 단단해. 반면 재생이 쉽게 가능한 곳은 도마뱀 꼬리처럼 버리기 쉽게 만들어 놨어.’
강박관념에 가까울 정도로 상대를 분석해내던 헤이젤은 미세한 마나의 흔적이 엿보였다.
지잉!
지표면에 깔린 미세한 거미줄 같은 힘의 잔재.
‘마나가 아니야. 신성력이야.’
헤이젤은 마나라고 생각했던 오류를 정정했다. 그는 잔재가 모리스가 상처를 재생할 때와 오러의 힘을 방어할 때, 강렬하게 내비치는 것을 간파했다.
‘……이 힘?! 설마!’
찰나의 순간 헤이젤은 손목에 착용했던 실로 엮어 만든 팔찌를 기동해 지면에 갖다 댔다.
파직!
붉은 마력을 일으킨 팔찌는 점차 붉게 빛나더니…….
콰아아앙!
모리스가 내딛던 지면에 강렬한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켰다.
동시에 드레이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던 모리스의 초점이 모호해지며 근육이 일시적으로 경직됐고.
“으아아아아악!”
콰직!
콰앙!
괴츠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혼신의 힘으로 모리스의 얼굴을 터뜨리며 쓰러뜨린 뒤.
그래도 몸을 선회시켜 등에 부착된 드레이크 머리들을 각각 붙잡고 양손으로 쥐어 뜯어냈다.
“오오오!”
그 엄청난 괴력에 병사들이 감탄사를 자아낼 때.
헤이젤이 다급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전부 도망쳐! 함정이다! 빨리 퇴로를 만들어!”
“네, 네?”
좀처럼 보기 어려운 그 긴박한 표정에 모두가 낯설어 했다.
어떤 상황이든 절대 병사들을 동요시키지 않는 자가 저렇게 초조한 기색을 드러내다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저벅저벅! 저벅저벅! 저벅저벅! 저벅저벅!
꿈틀꿈틀! 꿈틀꿈틀!
대답은 구태여 어렵게 찾을 필요가 없었다.
수십의 발굴리는 소리, 그리고 끔찍한 흉성을 토해내는 드레이크의 울음.
크아아앙!
“크아아아아악!”
방심하고 있던 병사 몇몇은 드레이크에게 물려 즉사했다.
“뭐, 뭐야? 이거…….”
동요는 급격히 확산해 주변 병사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주륵.
심지어 지금껏 동요하기는커녕 전투광처럼 날뛰던 괴츠조차 이마에 한가득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진짜냐? 이거.”
이에 대한 대답은 눈앞에 있는 적이 뜻을 모아서 해 주었다.
[현실을 부정하면 무슨 의미가 있지?]
[현실을 부정하면 무슨 의미가 있지?]
[현실을 부정하면 무슨 의미가 있지?]
[현실을 부정하면 무슨 의미가 있지?]
[현실을 부정하면 무슨 의미가 있지?]
신전 도시를 꽉 채울 정도의 음성.
놀랍게도 그 음성은 모두 똑같은 음색이었다. 그리고 그 음색은 방금전 격렬한 전투 끝에 숨통을 끊었던 수상쩍은 오우거 키메라들이었다.
‘저렇게 많은 건 무리야.’
일반 병사 수십, 수백을 상대하는 것은 괴츠나 헤이젤같은 소드 마스터들에게는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기본 체력과 근력에다가 소드 마스터에 버금가는 오러와 뛰어난 검술까지 갖춘 변종 오우거들을 수십을 상대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이미 승리는 모리스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호기심이 가시지 않았는지 모리스는 곧장 병사들에게 공격을 가하기 전에, 헤이젤에게 물었다.
[방금 저의 그 힘은 칼리언트 슈타크의 힘이군. 네놈 어디까지 간파한 거지?]
[방금 저의 그 힘은 칼리언트 슈타크의 힘이군. 네놈 어디까지 간파한 거지?]
힐끔.
모리스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 대신 퇴로를 끊임없이 살폈지만.
“……퇴로는 이미 막혔군.”
괴츠의 냉담한 어조에 곧 고개를 푹 수그렸다.
“별수 없이 싸워야 되겠네.”
이 난관을 타파하지 못하면, 전부 전멸할 게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병사들 역시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했는지,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괴츠 역시 같은 표정으로 헤이젤에게 물었다.
“야, 무슨 상황인데? 이야기 해봐.”
“아마 모리스란 녀석은 몬스터가 아니고 인간이야.”
“인간이라고?”
납득하기 어려웠는지 괴츠가 눈썹을 꿈틀거렸고, 헤이젤은 연이어 설명했다.
“몬스터에게 정신감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걸 거야. 아니면 저렇게 동시에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해.”
이번에는 비교적 쉽게 설명해서 그런지, 괴츠는 고개를 끄덕이며 반문했다.
“그러니까 어디선가 숨어서 저 개체들을 혼자서 통솔하고 있다는 거야? 그게 가능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야?”
“가능성은 세 가지. 저 녀석의 정신력이 우리를 아득히 뛰어넘었거나, 저만한 몬스터를 통제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아티팩트나 마법의 도움이 있을 수 있지. 아니면 지금 디디고 있는 이 성역, 디바인과 관련이 있을 거야.”
“아까 사령관님의 트리거를 사용한 것은?”
“저 녀석들을 통제하게끔 신성력을 공급해주는 서킷이 이 지면에 잔뜩 깔려져 있어.”
“서킷이라고?”
괴츠는 놀라서 휘둥그레 눈을 떴다.
“이상할 것 없어.”
그러나 헤이젤은 동요는커녕 냉담하게 괴츠의 말을 잘랐다.
맥캘리에 의해 창안된 기술이지만 타국의 간부가 쓴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원래 인간이란 누군가 위험한 것을 창안하면, 그것을 모사하고 더욱 위험한 것으로 개량하기 마련이다.
“이길 방법은?”
“정면돌파해서 녀석들을 통제하고 있는 녀석의 목을 따야 돼.”
“따야 된다는 게 뭐냐? 격식 없기는…….”
“농담이 나오냐?”
“이때, 아니면 언제 하게?”
기이이이잉!
괴츠는 곧장 의수의 서킷을 가동해 다시 의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휘관임에도 불구하고 괴츠는 이번에도 병사들의 앞에 서서 변종 오우거들을 노려보았다.
꿀꺽!
그 기지와 용기에 병사들은 궁지에 몰렸음에도 사기를 꺼뜨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불태웠다.
[무의미한 항쟁이 될 것이다. 어리석은 종자들아.]
[무의미한 항쟁이 될 것이다. 어리석은 종자들아.]
모리스는 그런 그들을 비웃으며 변종 우우거 군단들을 조종해 단숨에 그들을 도륙하기 위해 발굴림을 하는 찰나.
크아아아아아앙!
일순간 눈앞에서 붉은빛을 내뿜는 사자가 거대한 포효를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