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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84화 (184/197)

제184화

칼의 참격에 직격을 당한 데제스는 권좌에서 눈을 감은 채 회복 중에 있었다.

그와 동시에 대륙 곳곳에 계약해둔 정령의 눈으로 전황의 흐름을 엿보았다.

머릿속에서 비친 산크투아리움의 병력은 크나큰 고전을 겪고 있었다.

깃발을 쥐고서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는 에릭 듀란트.

해상전에서 함선의 돛대에 달린 밧줄을 한 발로 건진 채, 적의 지휘관을 이마로 꿰뚫어버리는 엘프, 베르데.

혁신적인 이론을 토대로 대규모 마법진을 형성해 수성전에 힘쓰는 맥캘리.

중력 마법으로 연신 산사태를 일으켜서 보급로를 끊어버리는 델피나.

에클라 세트들은 로가하 연맹의 결속을 강화시키며 산크투아리움의 진영을 조금씩이지만 무너뜨리고 있었다.

거기에 난세의 영웅이라고 불릴 수 있는 슈타크 왕국의 왕족들 활약도 만만치 않았다.

만약 여기서 데제스가 본진을 지키고 지휘를 했다면 적의 진격을 멈출 수 있었겠지만, 데제스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칼과의 교전을 선택했다.

그만큼 이곳에는 절대로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처구니없이 당해버렸지.’

본래라면 브레스를 쏘았을 때 결판이 나야 했다.

제아무리 막강한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하늘에서부터 쏟아지는 재앙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칼리언트는 이변을 일으켰고 데제스에게 상처까지 남겼다.

그리고 그 상처는 지금까지 데제스를 괴롭히고 있었다.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상태에서 칼이 남긴 상처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참격은 날개를 도려냈을 뿐만 아니라, 심장 부근까지 파고들었다.

파직! 파직!

체내에 침식된 붉은 오러가 그의 체내를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브레스를 꿰뚫어버린 이 힘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력한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키고 있었다.

만약 이 참격이 드래곤 하트까지 다다랐다면, 데제스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파앗!

데제스는 신성력으로 칼의 힘을 걷어낸 뒤, 지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녀석 대체 정체가 뭐지?”

라흐만 대륙의 역사를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인데도 이 정체불명의 흉포한 마력에 대해서는 도저히 밝혀낼 수 없었다.

“칼리언트. 네놈의 정체는 뭐지?”

그의 병력은 모두 칼의 기사단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데제스의 질문에 답해줄 이도 없었다.

* * *

와아아아앙!

챙! 챙! 챙!

성역, 디바인에 펼쳐진 크림슨 게일 기사단과 산크투아리움의 성기사단의 전쟁은 밀고 당기기의 반복의 연속이었다.

팔에 부상을 입은 칼 역시 데제스와 마찬가지로 회복에 전념하고 있었다.

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던 릴리는 그런 칼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묻고 싶은 게 있어.”

“뭔데?”

“이 전쟁 의미가 있는 거야?”

“학살을 방치하자고?”

칼의 질문에 릴리는 보기 드물게 우물쭈물 거리다 말했다.

“그러니까 데제스 싱클레어한테 의미가 있는 거냐고. 이런 방법이 아니어도 데제스는 라흐만 대륙의 인간을 전부 죽일 수 있잖아.”

중간계를 지배하는 수호자인 드래곤.

그들은 찬란하고 유구한 역사를 이루어 왔다. 지능도 마법도 그리고 마력의 양도 인간은 결코 드래곤에 범접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래곤 한 마리가 대륙의 인간을 전멸시킬 수 있을까?

냉정하게 말하면,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제아무리 중간계를 수호한다고 해도 결국 이 대륙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왕국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지만, 대륙은 정복할 수 없다.

이것은 누구 한 사람의 판단이 아니라 유서 깊은 현자가 남긴 기록.

하지만 릴리는 데제스에 한해서만큼은 그 기록조차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데제스 싱클레어.

이 드래곤은 놀랍게도 성향이 인간에 가장 가까운 드래곤이었다.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수족이 되어줄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게끔 만들었다.

게다가 뛰어난 지식을 이용해 전염병을 일으켜 인간을 멸망시킬 수도 있다.

한데, 그런 데제스가 어째서 산크투아리움을 만들어 지금에 이르렀을까?

릴리는 쉽사리 그 답을 되찾을 수 없었다.

칼 역시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느낌이라는 것은 있다.

압도적인 강자로서 한 세계를 멸망시켜본 장본인이기에 데제스의 마음을 어렴풋이 짐작 정도는 할 수 있다.

“그 녀석의 성향이야.”

“성향?”

“녀석은 치밀한 설계자야. 그는 닥치는 대로 죽이는 게 아니야. 정성을 다해서 죽이지.”

“그게 무슨…….”

“한 종족이 멸망하면, 그 종족이 다시 태어나지 못하게끔. 아주 산산이 부서뜨리는 계획이야.”

“어, 어째서 그렇게까지?!”

릴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정복을 하고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키면, 전쟁은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사상, 누군가와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

칼의 질문에 릴리는 머리에 둔탁한 둔기로 맞은 것처럼 충격을 맞았다.

“……페트로 스타니슬라프.”

그는 과거 전 파르테스의 학장이자, 비밀 결사 메노스 템벨을 지도한 남자.

그는 이실리아에서 만행을 저질렀고, 끝내는 칼에게 저지당했다.

이후 그의 결계 마법은 릴리가 계승했다.

한데, 칼이 어째서 지금에서야 그를 언급하는 것일까?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이전에 들었던 그의 사상이 지금과 너무 유사했기 때문이다.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페트로는 사람이라면, 평생 알 수 없는 진리에 대해 고민을 해왔고, 이실리아를 완전히 괴멸시키고 나서 섬의 생태를 관찰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자면,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원초를 알고 싶은 지적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오싹!

상황이 여기까지 오니, 릴리는 무언가 깨달은 듯 안색이 창백해졌다.

“……데제스는 설마.”

“그 사상은 데제스가 원조야. 어떤 계기로 그 영향을 받은 페트로가 그 실험을 직접 자행했고, 데제스는 아카데미에서 그것을 지켜봤던 거지.”

울컥!

릴리는 눈꼬리를 삐죽 올리며 분노했다.

“그 녀석은 대체 어디까지 사람을 기만하는 거야! 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 단순히 심심해서?”

그녀가 제기한 의문에…….

“……아니.”

칼은 무언가 깨달았는지 자연히 부정했다.

지금 칼의 머릿속으로는 뒤죽박죽 흐트러졌던 정보들이 퍼즐처럼 짜 맞춰졌다.

타라도 페트로도 모두 데제스에 의해 점지되고 만들어졌다.

특히 타라는 어디까지나 세피로트를 만들려다가 실패한 기생수목.

수천 년이 흘렀음에도 데제스는 세피로트에 집착했다. 세피로트는 생명과 종족을 탄생하는 나무라는 것을 고려하니, 그제야 데제스의 목표가 뚜렷이 엿보였다.

이 사실을 토대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세피로트를 완성시키기 위해 마도 유산을 정복한 뒤, 거기서 얻은 지식으로 새로운 세피로트를 만든다고 한다면?

거기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녀석은 신이 되고 싶은 거였어.”

칼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 * *

채앵! 채앵! 채앵!

와아아아아!

누군가는 성지탈환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적과 교전을 펼친다.

누군가는 어지럽힌 대륙의 질서를 확립하고 위선자들을 퇴치하기 위해 검을 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이 사태를 야기한 주동자에게 별반 흥미를 주지 못했다.

그저 세속에서 벌어지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다툼일 뿐이다.

스스스스.

데제스는 자신의 얼굴을 뒤덮는 초록빛을 보며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아버지가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오는 건 너무 당연한 도리지.”

눈앞에 발광하는 초록색의 물체는 20미터는 훌쩍 넘는 거대한 수목으로 수목에 맺힌 열매에서는…….

-그르르르르.

꺼림칙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 *

“으랏차차차차!”

괴츠는 기합을 내뱉으며 주먹을 내질러 적군의 방어진을 가볍게 부서뜨렸다.

그 뒤를 따라 사기를 끌어 올린 괴츠의 부하들이 따라나섰다.

쇄액!

서걱! 서걱!

반면, 그를 유유히 쫓고 있는 헤이젤은 잔당 처리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잔당이라고 해도 괴츠가 못 보고 지난 강인한 적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싹둑싹둑 가르는 모습에 그의 부하들을 일제히 경악하다……

“저희도 기세를 모아 가겠습니다.”

곧 거리가 벌어진 괴츠의 군단을 보며 의욕을 끌어올렸다.

“내버려둬. 편하고 좋잖아. 왜 힘들게 힘 빼려고 그래.”

미끄덩!

그러나 헤이젤의 허무한 한마디에 앞서가던 부하가 발을 미끄러뜨렸다.

“하, 하지만.”

“전공을 세우는 데 주력하지 마. 중요한 건 목숨이다. 전장이니만큼 신중하게 행동해.”

“그, 그 말씀은 괴츠님도 포함되는 겁니다만.”

“바보는 맞지만, 저만큼 실력이 되고 말해야 되는 게 맞겠지?”

“죄, 죄송합니다. 주제도 모르게 제가 감히!”

뒤늦게 자신이 실언을 했다는 것을 자각한 부관이 고개를 숙일 때.

헤이젤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착각한 게 있어 말하는 건데…….”

“네?”

“이곳의 불길함은 알테어 이상이다. 방심하지 마.”

그 직후였다.

콰아아아앙!!

콰직!

“끄아아아아악!”

바로 옆에 있던 신전이 부서지며, 갑주와 비슷한 광택의 비늘을 지닌 거대한 드레이크가 순식간에 병사 중 한 명을 갈기갈기 찢었다.

“전열을 가듬어라!”

헤이젤과 괴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명을 내렸고, 병사들은 일제히 진을 펼쳐 드레이크와 주변을 경계했다.

쾅! 쾅! 쾅!

그 순간을 기점으로 정면에 숨어있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꿈틀꿈틀!

그것은 3미터 크기의 덩치를 가진 흉포한 오우거.

하지만 일반적인 오우거와 달리 두툼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마른 근육을 지닌 거대한 인간처럼 보였다.

휘리릭!

손목에 적절히 힘을 주며 대검을 다루는 그 모습이 보통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등 언저리에 두 마리의 드레이크가 한 몸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쿠구구구구.

“저, 저건 또 뭐야?”

“아, 알테어에서도 저런 건 없었는데?!”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노출된 것만으로 병사들의 공포심은 더욱 극대화됐다.

보다 못한 헤이젤과 괴츠가 동시에 앞으로 나섰다.

괴츠는 눈매를 좁히며 헤이젤에게 말했다.

“야. 비실이. 정신 차려라.”

“네 걱정이나 해. 멍청아.”

서로 한 마디씩 투덕거리던 그들은 곧 경직된 낯빛으로 오우거를 바라보았다.

오우거 역시 그들의 눈동자를 마주 보더니…….

[성지탈환이라는 대의명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됐다.]

무척이나 중후한 목소리로 인간의 말을 구사했다.

“오, 오우거가 어떻게 말을?!”

괴츠에게 있어서 이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사태였다.

알테어에서도 돌연변이 몬스터들은 많이 봐왔지만, 인간의 말을 구사하는 고등 몬스터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릉!

반면, 헤이젤은 전투 자세를 취하며 입을 뗐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 저건 우리가 이전에 한 번 봤던 기술이다.”

“……인간의 지성을 심은 키메라.”

안 좋은 추억을 떠올렸는지, 두 기사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반면 오우거는 그들의 날카로운 감에 찬사를 남겼다.

[그거랑은 조금 다르지만 접근하는 방향이 좋군. 보기보다 머리가 좋아. 천하의 칼리언트 슈타크가 선택한 인재들은 역시 다르다는 건가?]

“네까짓 게 뭔데?”

괴츠는 이를 갈며 의수의 서킷을 가동하려고 할 때.

헤이젤이 손을 들어 제지한 뒤, 입을 열었다.

“헤이젤이다. 귀공의 이름은 뭐지?”

‘귀공?’

몬스터한테 적절하지 않는 호칭에 괴츠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지을 때.

오우거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모리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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