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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83화 (183/197)

제183화

마틴이 공격하는 순간, 마르첼 역시 지지 않고 반격을 가했다.

파앙!

교차하며 작렬하는 두 주먹은 철괴를 부술 만큼 강인했다.

저릿! 저릿!

죽을 수도 있다는 아찔한 감각이 정신을 혼란케 만들었다.

끼에에엑!

한편 쿠라빌의 뿔에 옆구리가 관통당한 자우버는 크게 흥분하며 앞의 발을 들어 쿠라빌의 목을 강하게 옥죄였다.

콰드득!

히이이이잉!

벼려진 검처럼 날카로운 발톱이 살점을 파고들자, 쿠라빌은 괴로운 듯 몸을 버둥거렸지만.

콰아아아앙!

자우버는 기세를 끌어올려 그대로 신전 벽에 쿠라빌의 머리를 박아 넣었다.

그라지아종 그리폰.

데제스의 심복으로 활약을 단단히 해온 이 신수와 견주기에는 애석하게도 쿠라빌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저리 꺼져!”

당황한 마틴은 즉각 고삐를 고쳐 잡은 뒤, 자우버를 제지하려고 했으나.

“너부터 걱정하시지?”

마르첼은 미리 준비해둔 또 하나의 검으로 마틴의 정수리를 파고들었다.

반격하지 않으면 두개골 자체가 쪼개진다.

그 사실을 인지한 마틴은 양 주먹을 교차해 건틀렛으로 마르첼의 일격을 막아냈다.

까드드드드득!

검에 실린 기합이 만만치 않았는지, 마틴은에 마르첼과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리고 이것은 마르첼과 자우버가 바라던 상황이었다.

끼에에에에엑!

힘껏 울부짖던 자우버는 그대로 쿠라빌의 머리를 벽에 박은 채, 질풍 같은 속도로 비상했다.

콰드드드득!

콰아앙!

쿠라빌은 머리가 신전 벽과 연신 충돌해 극심한 상처를 입었고, 마틴 역시 벽과 충돌하며 파편에 머리를 연신 두들겨 맞았다.

……이겼다.

히죽!

승리를 확신한 마르첼은 잇몸을 드러내며 머리를 피로 흠뻑 적신 마틴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세상은 데제스 싱클레어의 세상이다. 악이든 선이든 상관없어. 나는 이 빌어먹을 세상을 바꿀 힘만 있으면 돼!”

빠득!

야심을 드러낸 그의 말에 마틴은 이를 갈며 반박했다.

“그 빌어먹을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한 녀석이 그런 야망을 품으면 안 되지?!”

“네놈 주인이라고 다를 게 있어? 네놈은 폭군을 섬기면서 야심도 없는 멍청이지. 그냥 하라는 대로 하면서 주인에게 헐떡대는 개새끼마냥 살아왔잖아!”

“닥쳐!”

콰드드드드득!

콰앙! 콰앙!

셀 수 없이 날아온 파편에 직격당한 쿠라빌과 마틴은 격통에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고통이 가중되자, 어느 순간 귓속에서 이명이 울려 퍼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마틴은 그 고통을 모조리 인내하며 소리쳤다.

“하찮은 잣대로 날 평가하지 마! 난 칼리언트 슈타크의 오른팔이다!”

콰앙!

화아아아악!

동시에 마틴의 손목에 착용 돼 있던 팔찌에 담청색의 기운이 대폭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마틴과 쿠라빌의 벌어진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쿠직!

자우버와 마르첼은 힘에 밀려 주춤거렸다.

“뭐?!”

‘축적된 마력이 한꺼번에 발동하면서 이상 현상을 퍼뜨리고 있어!’

놀라울 정도로 빠른 분석력이었지만, 한풀 꺾인 기세는 되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이미 늦었어!’

콰드드드드득!

하나, 상황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

자우버에 의해 벽에 머리를 박고 질질 끌려가야 했던 쿠라빌의 몸이 또 다른 건축물에 들이받기 직전이었다.

스스스스스.

순간 쿠라빌과 마틴의 몸이 투명해지며 그대로 성전 건축물을 통과했다.

“뭐?!”

당황한 마르첼이 재빨리 자우버의 고삐를 고쳐 잡으며 위로 오르려는 순간.

콰아앙!

신전 건축물을 부수고 돌격한 쿠라빌이 다시 한번, 자우버를 들이받았다.

우지끈!

끼에에에에엑!

통증이 상당했는지, 자우버가 길게 포효를 내지르며 브레스를 쏠 준비를 했다.

마르첼 역시 곧장 적의 공격에 대비해 검을 고쳐 잡았다.

하지만.

쇄액! 쇄액! 쇄액! 쇄액!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신전 곳곳을 질주하는 쿠라빌이었다. 쿠라빌의 잔상이 주변 검은 띠처럼 길게 늘어지며…….

콰앙! 콰앙! 콰앙!

정신없이 자우버를 들이받고 있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마르첼은 검으로 쿠라빌의 뿔을 가까스로 흘려내며 치명상을 피하기 급급했다.

끼에에에에엑!

반면 쿠라빌의 일격을 정통을 받고 있는 자우버는 온몸은 피칠갑이 된 데다가 깃털이 뽑혀 허공에 넘실넘실 흩날리고 있었다.

“크윽!”

‘……어떻게 이 정도로 체력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자, 마르첼은 이해가 되지 않는지 수세를 펼치다가…….

콰앙!

아래에서부터 찌르고 들어오는 마틴의 주먹에 턱을 가격당해 고개가 위로 치솟았다.

“쿨럭!”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마르첼의 눈은 표독스럽게 마틴을 포착했다.

이 거리라면 분명히 벨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서걱!

마틴이 재빨리 검을 집어 자우버의 목을 베어버리기 전까지는.

‘언제?!’

파앗!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무는 찰나, 마틴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마르첼의 동공에 아주 느리게 펼쳐졌다.

서걱!

무척이나 깔끔한 일섬, 군더더기 없는 공격은 마르첼의 검을 통과하더니 마르첼의 흉갑을 사선으로 베어버렸다.

콰직!

흉갑이 갈라지며 분출된 피가 자신의 피라고 인식하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털썩!

자우버의 머리가 지면에 떨어졌다.

마르첼 역시 그 몸 위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없었기에 몸이 고꾸라졌다.

그는 무척이나 초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트리거.”

그것은 에클라 세트 중 하나인 맥캘리에 의해 탄생한 기술.

자투리 마력을 보관했단 한꺼번에 발산시켜 소유자에게 잠재돼 있던 마나의 고유특성을 깨운다.

이미 데제스의 숙적인 칼리언트에 대해 조사할 때 알아내 기술이다.

단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기에 또 다른 사람이 익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못해 대비 하지 않았었다.

‘한심하군.’

인정할 수밖에 없는 깔끔한 패배에 마르첼은 입가에 씁쓸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그게 너의 비장의 한 수였군.”

상처 틈새로 꿀렁꿀렁 피가 흘러나왔지만, 마르첼에게는 지혈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마틴은 힘겹게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내 마나의 고유특성은 재생이다. 생명에 활력을 불어넣어 체력을 회복시킬 수 있지.”

‘그 움직임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밖에…….’

마르첼은 기염을 토해냈던 쿠라빌의 움직임을 떠올리고는 눈을 감았다.

“다 지껄였으면, 이제 그만 죽어라.”

마틴은 곧 냉혹한 표정으로 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스릉!

검 끝이 마르첼의 목에 닿기도 전에 어디선가 튀어나온 여우 수인, 이리스가 마르첼을 감쌌다.

양손에 수갑을 차고 있는 그녀는 마틴에게 적의를 드러내며 이를 세웠다.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다. 내 패배야.”

마르첼의 명에도 불구하고 이리스는 고개를 이리저리 저었다.

“마르첼이 죽는 건, 싫어.”

“나와. 두 번 말 안 해.”

“싫어! 싫다고!”

이리스는 눈물을 흘리며 격렬하게 마르첼의 명을 거부했다.

“마르첼은 노예가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한테 약속했어! 그 약속을 지키기 전에 절대로 죽으면 안 돼!”

심지를 굳힌 눈빛에 마틴은 그녀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움찔!

이에 크게 놀란 마르첼이 강하게 호소했다.

“그만둬. 그 녀석은 아무 상관도 없어! 내 목숨만 끊으면 되잖아!”

“이건 전쟁이다. 마르첼 발렌티노. 적의 숨통을 끊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지 않나? 어설프게 동정심을 자극할 속셈인가?”

“그냥 나만 죽이라고. 새꺄.”

빠득!

마르첼은 이빨을 갈며 강렬하게 적의를 품으며 마틴을 노려보았다.

마틴은 표정 하나 구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노예가 사라지는 세상이라…… 그것을 위해 너는 악마한테 목숨을 바친 건가? 확실히 그 녀석이라면 불가능할 것도 아니지. 아니 훨씬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겠지.”

“…….”

정곡을 찌른 말이었을까?

마르첼은 쉽사리 반박하지 못했다. 별의 축복을 받은 인재일지라도 세상을 바꾸기에 그 한계는 명백했다.

바뀌지 않는 세상에 좌절하고 절망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순간 나타난 것이다.

세상을 차근차근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는 데제스 싱클레어의 존재가…….

“하지만 그 녀석의 방식은 노예가 사라지게 하는 게 아니야. 온 세상의 인간을 자신의 노예로 전락하게 만드는 방식이지. 그 녀석은 투항한 사람들까지 학살했으니, 구태여 증거를 내밀 필요도 없겠지.”

머릿속으로 산크투아리움의 군사가 벌인 학살의 풍경을 떠올린 마틴은…….

빠직!

콰앙!

더 이상 분을 참지 못하고 마르첼의 오른팔을 발로 짓밟아 부러뜨렸다.

“크아아아악!”

“마르첼!”

예상치 못한 일격에 그는 강하게 격통을 호소했다.

당황한 이리스는 손톱을 세워 달려들려고 했으나…….

꽈악!

마틴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그녀의 목을 움켜쥐어 강하게 옥죄였다.

“끄으으으윽!”

끼긱!

끼이이이익!

그녀는 손톱으로 마틴의 팔을 할퀴기 위해 들이밀었지만, 그녀의 손톱은 단단한 건틀렛을 뚫지 못하고 흉측한 소음만 자아냈다.

“그만둬!”

마르첼은 강하게 동공을 떨며 마틴을 쳐다보았다.

그런 마르첼에게 마틴이 말했다.

“그 빌어먹을 학살에 가담한 것으로 네놈은 스스로 야망을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야. 게다가 아무리 도와주더라도 스스로 바뀌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마르첼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반박했다.

“……노예들에게 저항하라는 건가? 그러다가 목숨을 잃으면?”

“신념을 지킨 떳떳한 인생이다. 누가 그 인생을 조롱할 수 있지?”

“말장난이다. 궤변이다!”

“그걸 정하는 건, 네놈이 아니야. 확실한 건 네놈들이 저지른 만행은 노예들에게 전혀 득이 될 게 없다는 거지.”

콰직!

콰앙!

발설 직후, 마르첼은 남은 왼팔마저 산산이 짓밟아 부러뜨렸다.

“끄아아아아악!”

마르첼은 격통에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뚝뚝.

그 모습을 지켜본 이리스의 눈가에 눈물이 마틴의 손에 떨어졌다.

“살려……주세요. 제발. 제 목숨을 드릴 테니까 마르첼을 살려주세요.”

두려움에 떨면서도 이리스는 간절하게 호소했다.

그 눈빛을 보던 마틴은 목을 옥죄던 손아귀에 힘을 풀며 그녀를 놓아주었다.

“……동정하는 거냐? 그냥 죽이라고?”

마르첼은 이해가 되지 않는지 거듭 죽여 달라고 시인했지만, 아예 의지가 꺾인 마틴은 검을 검집에 넣었다.

“빚으로 남겨두지. 노예가 스스로 너를 살리려고 했으니, 그 의지를 존중해 줘야 되지 않겠어?”

이것은 동정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내뱉은 신념을 지킬 뿐이었다.

마틴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무엇보다 내 주인이 여자랑 아이를 건드리는 걸 금지해서 말이야.”

“하.”

어처구니없는 이유에 마르첼은 허탈한 한숨을 내뱉다가 그에게 물었다.

“어째서 너는 그렇게까지 그 남자를 섬길 수 있는 거지?”

“최강의 기사를 섬기는 자부심, 아니 긍지라고 하지.”

그 말을 끝으로 마틴은 쿠라빌 위에 올라타 유유히 동료들의 곁으로 사라졌고, 마르첼은 허탈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질 수밖에 없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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