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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80화 (180/197)

제180화

데제스 싱클레어.

그는 라흐만 대륙 중앙에 위치한 그라니아 산맥에서 알에서 부화했다.

하지만 그를 낳아준 부모는 보이지 않았다.

그 시절 모든 드래곤은 수면기를 맞아 눈을 뜨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식과 마법, 그리고 중간계의 수호자로서 지녀야 되는 사명 등, 익혀야 할 것을 익히는데는 크게 지장은 없었다.

모든 드래곤의 기억을 전승 및 계승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에고스톤, 리바이어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의지와 감정이었다.

감정이 결여된 채로 성장을 거쳐온 데제스는 무미건조하게 사냥을 하고 마법을 익히던 도중 때마침 산맥 부근에서 살던 목초지의 소녀를 발견했다.

발랄한 미소를 지니고 있는 아이였다.

막대기로 양을 몰고 있는 그 모습에 데제스는 호기심을 가지고 소녀를 지켜봤다.

그렇게 몇 날 며칠.

마법을 수련하는 것마저 잊어버렸다.

벌에게 쏘여 얼굴이 퉁퉁 부어 부모님의 속을 썩이거나, 때때로는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분주히 헤매다 본인이 길을 잃어 헤매는 모습까지…….

그때마다 어김없이 소녀의 부모는 혼을 냈지만 마지막에는 꼭 끌어안아 주었다.

빠득!

그 모습을 지켜보던 데제스는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졌다.

화아아아악!

차가운 눈길로 화목한 그 가정을 지켜보던 데제스의 손에서는 지옥의 업화 같은 불길이 피어올랐다.

마침 오랫동안 생계를 위해 집 밖으로 나가 있었던 소녀와 부모가 서로 끌어안기 위해 달리던 참이었다.

화르륵!

콰아앙!

데제스의 손에서 피어오르던 불길은 그녀의 부모들을 삽시간에 불살라버렸다.

비명을 지를 틈새도 없이 완전히 타버린 부모를 보며 소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발랄했던 초점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믿기지 않는지, 연신 고개를 세차게 흔들다…… 곧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히죽!

그리고 데제스는 난생처음으로 희열이란 감정을 깨달았다.

무언가의 희망을 부수고 절망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누군가의 얼굴을 보는 게 이렇게 즐거운지 그는 몰랐다.

그 뒤 데제스는 소녀가 애지중지 기르던 양들을 광기로 빠뜨려 소녀를 먹게끔 명령을 내렸다.

양들에게 살점이 뜯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소녀는 울부짖으며 아빠, 엄마를 외쳐댔지만, 구원의 손길은 누구도 내밀어주지 않았다.

“아아.”

순식간에 한 가정을 파탄 내버린 데제스는 자신이 비뚤어진 의지를 갖춘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중간계의 수호자?

드래곤으로서 지켜야 하는 사명?

그딴 건 태어날 때부터 안중에 없었다.

자신은 그저 누군가의 절망하는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드래곤 중 누군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당장 데제스를 제거하려 했으나, 그를 말릴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이전 세대의 드래곤들이 눈을 뜨려면 족히 수천 년은 더 걸릴 것이고 널브러진 알에서 해츨링이 태어날 일도 없었다.

왜냐하면…….

콰드득 쾅!

부화한 드래곤들을 다스리고 책임져야 하는 데제스가 스스로 알들을 깨부수고 자신의 종족을 없애는 대참사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콰앙!

인간으로 폴리모프를 한 데제스는 자신의 신장만 한 해머를 들고 정신없이 알들을 깨뜨렸다.

콰직!

알 속에 있던 아직 몸이 다 만들어지지 않은 해츨링은 파르르 눈꺼풀을 떨며 증오스럽게 데제스를 노려봤지만.

화르륵.

콰앙!

데제스는 강력한 헬파이어로 손수 그 생명을 끊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불에 휘감긴 동족의 시체를 뜯어 포식했다.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다시 한번 극도의 희열이 온몸을 뒤덮었다.

드래곤 역사상 있을 수 없는 만행에 에고스톤인 리바이어가 데제스에게 강력히 경고했지만. 데제스는 그동안 배우고 익힌 마법으로 리바이어를 단단히 봉인시켜버렸다.

이제는 자신을 제지할 수단까지 완전히 처리한 데제스는 욕망을 대폭 키워나갔다.

이후 그는 판을 키우기 위해서 산크투아리움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목표는 드래곤 다음으로 강하면서도 드래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커다란 정복욕으로 대륙의 주인이 된 인간이었다.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여 그들을 조롱하는 것은 엄청난 쾌락을 느끼게 해주는 유희였다.

그리고 그만큼 고된 작업이었다.

한 명, 한 명 계산대로 되지 않는 굴지의 영웅이 탄생하기도 했으며…….

반대로 사소한 이유로 나라를 말아먹는 무능력한 왕이 나오기도 했다. 인간은 그가 계산한 틀을 늘 벗어났다.

하지만 데제스의 설계는 어렵지 않게 진행됐다.

그래봤자 한낱 인간, 그 정도 변수 따위는 늘 뛰어넘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한 남자만큼은 결코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녀석만큼은 한낱 인간 따위가 아니야!

쇄애애애액!

온몸에 빛무리를 휘감으며 날아가는 데제스 싱클레어는 어떤 남자와 조우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떠올렸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하지만 한 편으로 인생 처음으로 재미를 느끼고 말았다.

호적수를 만났다는 것이 이런 기쁨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네놈은 내 스스로 자존심을 포기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그 기지 하나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칼리언트 슈타크. 네놈은 반드시 없애버리겠다.

화르륵.

기염을 토해낸 데제스의 입가에는 어느새 백색의 불꽃이 이글이글 피어올랐다.

그가 멈춰선 지점은 산크투아리움에서 선정한 성지, 디바인.

데제스는 그곳에서 씨보그와 격전을 벌이고 있는 칼의 함선을 발견하고는 입안으로 마나 입자를 끌어들였다.

스멀스멀.

대기 중에 있는 마나들이 일제히 집합되며, 점차 빛나기 시작했다.

브레스.

그것은 드래곤들이 사용할 수 있는 원초의 마법이자 모든 것을 멸하는 숨결이었다.

-……네놈만큼은! 결단코!

데제스는 눈을 번뜩였고 그 순간, 칼이 심홍색의 눈빛으로 정확히 그를 직시했다.

* * *

쏴아아아아!

씨보그와 마틴의 격전은 일전에 칼이 암피스 바에나와 격전을 벌일 때만큼이나 강렬했다.

그럼에도 주변의 피해가 적은 이유는 난잡한 상황 속에서도 릴리가 심혈을 발휘해 결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쏴아아아!

콰아앙!

릴리는 자신이 쳐둔 결계에 파도가 강타하자,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카, 칼리언트 님.”

옆에서 릴리를 보조하고 있던 디아나는 초조한 표정으로 칼을 지켜봤다.

크림슨 게일의 모든 기사단원이 씨보그와 격전을 벌이고 있는 마틴을 미칠 듯이 엄호하고 있었지만.

칼만은 유일하게 흔들거리는 갑판 위에서 눈을 감고 왼손에는 인페르노를 쥐다가 뒤이어 시엘로를 뽑아 두 자루의 검을 결합했다.

검자루가 합쳐진 검은 마치 하나의 창을 보는 것 같았다.

“……쌍날검.”

생소한 형태에 헤이젤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자, 릴리가 입을 뗐다.

“씨보그에 집중하세요. 지금은 방해하면 안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마틴 다음으로 제일 고전을 겪고 있는 마당에, 저렇게 차분한 어조로 지시를 내리니 헤이젤은 긴장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뭐를 준비하고 있는 거지?’

암피스바에나를 쓰러뜨린 뒤, 칼이 과연 어떤 힘을 터득했을까?

의문은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증폭됐지만, 헤이젤은 씨보그와 사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전생의 감각을 모두 깨우친 칼의 감각은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아니었다.

현재 칼이 눈을 감고 부감해서 보는 것은 엄청난 빛무리가 집속해 자신들을 향해 비상하고 있는 풍경이었다.

사아아악!

그것은 정확히 칼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스스스스.

빛무리가 걷히자 그곳에는 은백색의 광택과 위용을 뿜어대는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났다.

피식.

모습을 확인한 칼의 입꼬리는 초승달처럼 휘었다.

‘용의 역린을 건드렸나 보군. 이곳에 있다는 거겠지. 너가 숨기고 싶었던 너의 약점, 혹은 진실이…….’

그렇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바로 지금의 모습이었다.

데제스의 성격상 유희를 포기하고 드래곤으로 변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이곳에 침투했다면, 데제스는 별반 망설이지 않고 전쟁에 전념했을 것이다.

하나, 그 장소를 침투한 게 칼이라면?

천하의 데제스 싱클레어도 직접 몸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멍청한 놈. 초조해하는 걸 드러내면 어쩌자는 건지? 더 후벼 파고 싶잖아. 여기가 어딘지?”

칼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쪽 눈을 뜨며 허공 저 너머, 구름 속에 모습을 감춘 데제스 싱클레어를 직시했다.

“……?!”

당황한 데제스는 눈을 부릅뜨다 이내 입가에 맺힌 브레스를 쏟아냈다.

쏴아아아!

새하얀 빛이 지상섬멸을 위해 낙하했다.

그 강렬한 빛에 모두가 잠이 눈이 멀었다..

생명을 소거하는 신의 심판.

데제스가 그렇게 믿고 확신한 일격이었다.

파지지직!

그 순간 칼의 전신에서 붉은 마력의 기운이 팽창하며 번개처럼 번뜩였다.

“오만하기 짝이 없어. 도마뱀 주제.”

칼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는 신적인 존재를 하찮은 미물로 격하시켰다.

쇄액!

콰칭!

그와 동시에 칼의 들끓는 마력을 원 없이 흡수한 두 자루의 명검, 인페르노와 시엘로가 검명을 터뜨리며 날린 붉은 참격이 브레스와 충돌했다.

콰치이이이잉!

[뭐?!]

마치 유리창처럼 균열이 일어난 브레스는 파편째로 부스러져 흩날렸다.

믿기지 않는 풍경에 데제스는 눈을 부릅뜨다……,

[대체 뭐야?! 네 녀석!]

곧 온몸의 활력을 쏟아내 브레스를 쏟아냈다.

힘과 힘의 격돌이 펼쳐졌다.

그것은 지진이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와 같았다.

콰아아아앙!

칼의 크림슨 게일을 악착같이 괴롭히던 씨보그조차 격류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암초에 부딪쳐 바닥을 뒹굴었고, 디딤돌이 돼주고 있는 함선은 일찌감치 부서져 흐트러졌다.

“사, 사령관님!”

뒤늦게 크림슨 게일의 기사단원들은 칼이 미지의 존재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경악했다.

지이이잉!

릴리는 처절하게 박살 나는 배를 결계로 한데, 묶어 침수되는 것을 방지하며 불안이 가득한 눈빛으로 칼을 지켜봤다.

빠각!

그때 데제스의 힘을 완전히 떨치기 어려웠는지, 칼의 팔이 부러졌다.

“칼!”

릴리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으아아아악!”

칼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합을 터뜨리며 트리거를 발동해 참격에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켰다.

콰치이이잉! 콰아아앙!

힘의 상쇄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간신히 버티며 데제스의 위용을 세워주던 브레스가 완전히 부스러지며, 칼의 붉은 참격이 데제스의 날개를 완전히 절단내버렸다.

[……?!]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데제스는 눈을 부릅뜨다 이내 당초 목적지였던 디바인으로 추락했다.

콰아아앙!

그 충격으로 성역, 디바인을 중심으로 지진이 크게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뭐가 떨어진 것 같은데?”

이 순간 무슨 광경이 펼쳐졌는지, 크림슨 게일 기사단 중 누구 한 명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칼이 어떤 미지의 존재를 허공에서 추락시켰다는 것 외에는 말이다.

빠득!

그 사실에 칼은 이를 갈며 분통을 터뜨렸다.

‘빗나갔어. 빌어먹을 자식!’

여기서 베어버려야 했건만, 가장 좋은 기회를 팔이 부러져서 놓치고 말았다.

‘백병전으로 이곳 정복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군.’

씨보그는 방금 전의 칼과 데제스의 충돌에 휩쓸려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상황.

하지만 씨보그를 제외하더라도 성역 디바인에는 수많은 성기사들이 포진해 크림슨 게일, 아니 로가하 연맹의 중추인 적을 경계하고 있었다.

칼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들을 직시하다 입을 열었다.

“……적진이다. 모두 검을 들어라.”

그의 말에 기사와 병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었고, 칼 역시 멀쩡한 손으로 검을 고쳐 잡으며 외쳤다.

“이 정도 사선은 늘 뛰어넘었고 오늘도 우리는 승리를 쟁취할 것이다. 가라! 로가하의 용사들이여!”

“와아아아아아!”

그 말과 동시에 크림슨 게일의 기사단이 일제히 상륙해 산크투아리움의 성기사와 전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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