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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74화 (174/197)

제174화

산크투아리움에서 추앙받는 황도 12기사 중 한 명인 미카엘라의 목이 날아갔다.

사람들의 동공이 혼비백산 떨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는 칼과 키이라의 모습이 붉은 눈과 머리칼을 지닌 악마의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미친놈들.

이 녀석들한테는 애국심이라는 게 존재는 하는 거야?

그저 전쟁에 미친 족속들.

이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루콘을 방위해왔단 말인가?

이것은 전쟁을 알리는 봉화를 스스로 지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 자네들 지금 제정신인가?”

리제타 공작은 믿기지 않는지 창백하게 질린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우웅.

키이라는 스산한 공명을 자아내는 검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말했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루콘의 방위를 위해 노력하는 무가에요. 산크투아리움과 당신의 은밀한 접촉은 매국의 행위로 의심당해도 타당하다고 보는데요?”

“지나친 억측이네! 상대는 세계를 정복하려고 하는 초강대국이네. 그런 나라에 도발을 가한다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네. 라마스 슈타크 경! 이것은 큰 오해일세!”

대화가 통용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에 리제타 공작은 뒤늦게 라마스 슈타크를 쳐다봤다.

스릉!

때마침 라마스는 검신을 내비치며 공작가의 병사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무기를 버려라. 리제타 공작 각하는 지금 이 시간부로 스파이 혐의로 압송될 것이다. 저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스스로 생각하도록.”

스윽.

라마스는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대신, 목이 날아간 미카엘라의 시신을 보여주었다.

그것만으로 상황을 파악한 병사들은 일제히 무기를 버렸다.

이후 라마스는 뒤늦게 칼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칼리언트. 너는 공작가의 자제를 폭행한 폭행 혐의로 압송이다. 이견은?”

“없어.”

칼은 짤막하게 대답을 하며 스스로 몸을 돌렸다.

“사, 사령관님.”

“괜찮아.”

당황한 괴츠가 급하게 만류하려고 했지만, 칼은 한쪽 어깨를 으쓱이며 다가오는 병사들의 포박에 순순히 응했다.

“카, 칼.”

당황한 릴리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 대체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알테어에 정신적 지주와 다름없는 칼이 이렇게 어이없는 사건으로 감옥에 갇힌다는 것에 릴리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듯 보였다.

그런 릴리에게 칼이 마찬가지로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해줘야 할 일이 있어. 아마 예상이 맞는다고 하면, 이렇게 느긋하게 있을 수 없어.”

“해, 해줘야 할 일? 그게 뭔데?”

웬만한 일은 스스로 극복하는 칼이 자신한테 의지를 하는 것에 릴리는 부담과 기대를 한 몸에 끌어안으며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를 만나. 그리고…….”

속닥속닥.

마지막 말을 마친 뒤, 칼은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릴리는 새파래진 안색으로 칼에게 반문했다.

“너, 너 제정신이야?”

* * *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킨다고 했던가.

리제타 공작가에서 칼리언트 슈타크가 일으킨 난동으로 인해 보수파의 결집에는 일제히 균열이 갔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강대한 힘을 자랑하던 보수파의 수장 리제타 공작이 스파이 혐의로 구속된 것.

두 번째는 더욱 극단적인 일이 일어났는데 이는 루콘을 비롯한 전 세계를 큰 경악에 빠뜨렸다.

그 주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신성국가, 산크투아리움.

성지탈환 전쟁을 개시한 그들은 첫 번째 목표로 잡은 국가인 라이올라 왕국의 마도 유산 중 하나인 크리티우스를 강탈하는 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까지 저항한 라이올라의 병사 10만은 모조리 목이 베여 그 피는 고일 대로 고여 거대한 호수로 변해버렸다.

전쟁의 여파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성지탈환이라는 거룩한 사상을 정쟁 명분으로 삼은 것과 달리 성기사와 병사들은 약탈을 멈추지 않았고, 여인은 노리개 혹은 노예로 삼아버렸다.

그 외 광산이나 문화재 약탈 등을 일삼았고, 끝내는 식민지로 삼아버렸다.

한 줌의 자비도 없이 모든 것을 강탈당하고, 생살여탈권까지 가로챈 그 광경에 전 세계는 혼란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상대는 라흐만 대륙에서 제일 강대한 국가, 산크투아리움.

그들의 손에서 살아남으려면 굴욕적이더라도 항복의 의사를 표하는 것뿐이라 생각한 주변국 레타냐가 항복을 선언했지만.

그들의 최후 역시 라이올라 왕국과 다를 바 없이 많은 국민들이 거룩한 전쟁의 희생이라는 명분으로 피를 흘려야 했다.

무엇을 하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저항하는 자도, 저항하지 않는 자도 흘리는 피의 양은 같다.

그 사실만을 대륙의 사람들이 깨달은 것뿐이다.

산크투아리움의 광기의 진군에 결국 라흐만 대륙의 모든 국가는 다급하게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에 리제타 공작에게 스파이 혐의가 씌워졌다면, 보수파의 결집에는 자연히 금이 갈 수밖에 없었다.

간수를 통해 이 사실을 접한 리제타 공작은 감옥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크크크, 크하하하하.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죄를 시인하건, 말건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시끄러워.”

그때.

리제타 공작의 감방 옆에 갇혀 있던 칼이 나른한 목소리로 그를 제압했다.

콰아앙!

리제타 공작은 핏발이 선 눈으로 감옥의 철문을 내려치며 칼에게 소리쳤다.

“이게 다 네놈 때문이다! 결국 루콘을 망하게 한 건 네놈의 겁대가리 없는 발길질 하나였어.”

“매국 놈이 할 말인가?”

칼은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데제스! 데제스의 정체를 네놈이 알고 있다고 하면, 네놈이 날 비웃을 수 있을까?”

리제타 공작의 항변에 칼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정체?”

“크하하하하, 네놈은 모르고 있군. 그 녀석한테 인간은 한낱 노리개에 불과해. 진작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음에도 그렇지 않은 것은 녀석이 그런 방식으로 대륙을 정복하고 싶지 않아서야. 알아들어?”

“흐음. 녀석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거지?”

하지만 흥미가 있는지 칼은 눈매를 좁혔다.

아카데미 시절부터 지내왔지만, 데제스 싱클레어의 정체만큼은 쉽사리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단한 녀석일 거야. 그렇게 대단한 녀석이니, 이제 심문이고 뭐고 의미가 없으니까 마음대로 주절거리는 걸 테고, 아들 역시 살리기 위해 유학이라는 명분으로 산크투아리움에 내보내려고 했던 거겠지.”

“…….”

정곡을 찔렸는지, 리제타 공작은 말문을 잃었다.

“그리고 아직 수도인 이곳에서 네놈의 힘이 막강하니까, 간수 자식들도 이런 더러운 꿀꿀이 죽이랑 곰팡이가 핀 빵을 갖다 주는 걸 테고.”

찌릿!

칼은 거슬리다는 표정으로 쇠창살 밖을 노려보았다.

틈새 사이로는 간수들이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리며 칼을 노려보고 있었다.

“전하께서는 내 마음을 알아주실 것이다. 그리고 내 혐의가 없음이 드러나면, 네놈은 공작가를 능멸한 죄로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분명 슈타크 가의 계략으로 이곳에 끌려왔지만.

리제타 공작은 아직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예로부터 왕가와 리제타 공작은 혈연으로 이어진 데다가 왕가에는 분명 데제스의 정체에 대해서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가가 진정으로 산크투아리움과 협약을 맺는다면, 이 땅에서 슈타크가의 혈족은 완전히 밀어버릴 수 있다.

“……잔머리 굴러가는 소리 들리네.”

그의 속내를 어느 정도 간파한 칼은 오히려 그런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내기할래?”

“내기라니?”

“누가 여기서 먼저 빠져나갈지 말이야. 만약 네가 이긴다면, 뭐든 들어주지. 내 목숨을 끊고 싶으면 끊어도 좋아.”

울컥!

압도적인 확신, 그리고 자신감은 리제타 공작의 심기를 크게 어지럽혔다.

“마음에 안 들어. 슈.타.크! 이 미친 집안의 핏줄. 특히 그중에서 광견으로 태어난 네 녀석. 칼리언트 슈타크. 네놈한테 물리면 전부 광견병에 걸려 죽는 거였어.”

“진심으로 개 취급하지 말라고. 경고니까 잘 새겨들어.”

목소리에 살기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간파한 리제타 공작은 싸늘한 표정으로 내기에 응했다.

“좋다. 내기에 응해주마. 내가 이기면 네놈의 목숨은 강탈해주지. 그리고 네놈이 이기면, 네놈이 원하는 걸 들어주지.”

“그러지.”

칼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벽에 등을 갖다 대고선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협상 성공은 그 녀석의 손에 달렸겠지.”

* * *

칼이 리제타 공작과 감옥에 수용되고 있는 사이.

알테어에 머물고 있던 크림슨 게일 기사단이 크게 사고를 일으킬 뻔했지만, 다행히 마틴이 수습해 진정시켰다.

그러나 긴장이 고조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가장 큰 사건 사고를 일으킨 슈타크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평소 방위를 명목으로 본가에 주둔하고 있던 루드거 슈타크마저 현재는 수도에 마련된 한 저택에 머무는 있는 중이었다.

“제대로 미친 녀석이 들어왔군.”

루드거 슈타크는 테이블 위에 놓인 지도를 보며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하얀 말들은 현재 무차별적으로 진군하고 있는 산크투아리움의 병사들의 위치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실로 위태로운 데다가 정복지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최악, 최강의 적을 두고 그는 어떤 방어 태세를 취해야 될지 깊은 고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의견이 있나?”

가신들에게 질문을 건넸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똑똑.

그리고 고심이 깊어지는 찰나.

누군가 노크를 하는 소리에 루드거가 입을 열었다.

“들어오게.”

끼익!

허가가 떨어지자, 문이 열리며 릴리가 크린슨 게일의 기사단 제복을 입은 채로 루드거에게 예를 갖추었다.

“……너는 필시.”

일전에 아카데미 재학 시절에 만났던 루드거가 눈매를 좁히는 찰나.

릴리는 스스로 자신의 소개를 했다.

“현 알테어의 사령관, 칼리언 슈타크 경의 참모로 부임하고 있는 릴리아나 아벤티스트라고 합니다. 사령관의 명령으로 백작 각하께 긴히 보고드릴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흐음. 엄청난 사고를 저질러 놓고 내게 할 말이 있다는 건가?”

루드거는 이번 사건으로 여러모로 칼에게 실망한 상태였다.

그가 가지고 있는 권위라면 능히 칼을 감옥에서 꺼내주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슈타크가의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죄송하다는 말도 남겼습니다.”

“허허허, 그 아이는 허세가 아님을 늘 나한테 증명했지. 하지만 이번에 한해서는 납득할 수 없는 점이 있다네. 겨우 시녀 한 명의 부상으로 그렇게 흥분해서 우발적으로 사고를 일으켰다고 들었는데, 내 말이 틀린가?”

“…….”

릴리는 쉽사리 답을 하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이미 루드거는 뛰어난 혜안으로 모든 것을 간파한 뒤였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그 누구도 루드거의 앞에서 쉽사리 부정하지 못했지만…….

“우발적이 아니라 계획된 것이라면 어떻습니까?”

기왕지사 일이 이렇게 된 거, 릴리는 거짓말로 일관하기로 했다.

싸아.

그녀의 대답에 모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루드거의 말은 부정하는 것은 곧 그에 대한 기만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릴리의 말은 루드거의 분노를 사버렸다.

“계획적이라고? 자네는 지금 내 앞에서 되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놓으려는 겐가?”

쿠구구구구.

자신이 부정당했다는 사실에 크게 노한 루드거가 살기를 발산했다.

파르르르르.

그 기세에 모두가 손을 떨었다.

릴리는 주먹을 굳세게 쥐며 말했다.

“백작 각하께서는 더 이상 지위나 소속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게, 사령관의 판단이었습니다.”

“감히 누가 누구에게!”

건방지게 혈족 중 가장 막내가 가주에게 건방진 조언을 하려 한다는 생각에 차남, 리슈타가 급격히 흥분했지만.

“계속해보게.”

루드거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한 뒤, 릴리의 발언을 허용했다.

허가가 떨어지자 릴리는 장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알테어에 대한 슈타크가의 숙원은 칼리언트 슈타크 경이 이루었습니다. 그렇기에 가문의 비전과 명예가 전락하는 일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라흐만 대륙 전체는 검은 교황, 데제스 싱클레어의 음모에 온 땅이 피로 물들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도 루콘의 왕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능력하게 이를 방치한 데다 오히려 그들에게 항복을 선언하려 한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습니다.”

“……나는 복잡하게 말하는 걸 싫어한다네. 그 아이는 나한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콰앙!

루드거가 반문을 제기하자, 릴리는 세차게 발을 내디디며 말했다.

“지금 슈타크가가 책임져야 될 것은 왕실의 안위가 아니라 이 땅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생명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마땅히 루콘의 왕가를 찬탈해야 된다는 겁니다.”

“…….”

예상치 못한 쿠테타 권유에 슈타크가 혈족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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