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칼이 일으킨 무시무시한 폭동에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시선이 한데 모여 있었다.
“대책은 생각하고 일은 저지르는 거야? 저 바보가…….”
“…….”
릴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키이라는 이마에 손을 짚으며 탄식했고, 라마스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는 머릿속으로 지금의 혼란을 중재하기 위한 방법을 급히 모색하기 시작했다.
칼이 저렇게까지 분노하게 된 것은 필시 이유가 있을 터였지만, 지금 상황은 칼에게 절대 유리하게 흘러가는 방향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칼이 위협을 하고 있는 대상이 바로 이 저택의 주인이자 보수파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리제타 공작의 아들, 라이너 리제타였기 때문이다.
이 순간 정신없이 술에 흠뻑 취해 있었던 괴츠는 진지한 눈으로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웅성웅성!
자리에 있던 귀족들의 분위기도 점점 불안과 공포로 뒤덮여 갔다.
공작가를 위협하는 변방의 귀족.
지금까지 어떤 역사를 들춰봐도 이런 전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루, 루콘의 광견이라는 게 헛소문이 아니었어.”
“진짜 이러다가 무슨 사달이 벌어지는 거 아니야?”
여기서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공작가의 위세가 아니라 칼의 기세였다.
‘좋은 기회군.’
그것이 자신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한 미카엘라는 오만한 표정으로 칼에게 경고했다.
“무례를 사과하고 무릎을 꿇으시오. 혹여 여기서 더 일을 키우겠다면, 만류하고 싶소. 전 산크투아리움의 성기사. 외교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
모두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지금까지는 지형적인 위치 때문에 루콘과 마찰을 빚을 일은 거의 없었지만, 산크투아리움은 세계가 알아주는 초강대국이었다.
100만에 육박하는 군대와 7성급의 성기사단이 주를 이루고 있는 종교 국가였다.
‘어째서 산크투아리움의 성기사가 공작가에?!’
미카엘라의 자기소개에 릴리의 머릿속으로 어쩌면 이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해결책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건을 일으킨 주동자 칼은 분노가 지펴진 눈빛으로 미카엘라, 아니 미카엘라를 방패 삼아 웃고 있는 라이너를 노려보고 있었다.
“조무래기 하나 믿고 알량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부터가 네놈의 오만한 착각이다. 버러지.”
쿠구구구구구.
다시금 칼의 살기가 공작가 전체로 피어올랐다.
꿀꺽!
칼이 멈출 의사가 없다는 것을 재확인하자, 주변의 모두가 숨을 죽였다.
알테어를 정복한 남자, 루콘 최강의 무가에서 다른 혈족들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아버지의 자리까지 위협할 정도로 강한 남자.
그 남자가 칼이라는 것이 모두의 머릿 속에 각인된 것이다.
꿈틀.
칼의 발언에 상당히 비위가 상했는지 미카엘라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조무래기라고 하셨습니까?”
“자신 있으면 휘둘러. 내 목숨을 끊어도 아무도 복수 같은 건 하지 않아. 안심해. 너처럼 비열한 협박은 하지 않으니까.”
미카엘라의 반문에 칼은 그가 겨눈 검 끝을 검지로 툭 치며 도발을 가했다.
울컥!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리죠.”
칼의 도발에 넘어간 미카엘라는 검 끝에 힘을 쥐어 그대로 칼의 목을 베려고 들었다.
카앙!
하지만 검 끝이 칼의 목에 닿기도 전에 불똥이 튀기며 강철의 팔이 미카엘라의 검을 튕겨냈다.
정면에서 칼을 보호한 것은 다름 아닌 괴츠였다.
덩치에 맞지 않는 엄청난 속도에 모두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괴츠는 분노 어린 표정으로 미카엘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뒤지고 싶냐?”
“당신을 비롯한 당신의 가신들은 입이 험하군요.”
미카엘라는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여유를 과시하려고 했지만.
쿠직!
콰앙!
기합과 함께 뻗쳐진 괴츠의 일격에 다급히 칼등으로 맞받아쳤다.
촤르르륵!
콰아앙!
쨍그랑!
“꺄아아아악!”
그 힘이 어찌나 거세던지 미카엘라의 몸은 음식이 가득한 테이블까지 밀려났다.
충격의 여파로 테이블보가 잔뜩 구겨지며 뒤로 밀려났고, 접시들이 바닥에 잔뜩 떨어졌다.
“…….”
예상치 못한 기습에 미카엘라는 혼란스러운 듯 동공이 흔들렸다.
그의 당혹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황도 12궁의 기사에게 이런 일격을 가할만한 자는 루콘에서도 슈타크가 사람밖에 없다고 평가됐었기 때문이다.
지릿!
이윽고 두 사내는 서로를 노려보며 급격히 간격을 좁혔다.
위이이이잉!
이때, 괴츠의 강철 의수에서 마나 서킷이 두드러지더니 평소에 왼손으로 일일이 조작했던 의수가 괴츠의 의지에 맞춰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앙!
카카카카카캉!
충돌한 두 사내 사이에서는 위험한 일격이 연신 오고 갔다.
미카엘라는 오러를 실은 검으로 괴츠의 몸을 들쑤시려고 했지만, 괴츠는 의수를 방패 삼아 그 일격들을 모조리 튕겨낸 뒤.
채앵!
허리에서 뽑은 검으로 미카엘라에게 반격을 가했다.
피잇!
‘처음 보는 전투 방식이야. 팔은 방어를 위해, 검은 공격수단으로 삼는군.’
뺨에 긴 혈흔이 그어졌지만, 미카엘라는 괴츠의 검술을 간파하고는 왼쪽 사각으로 검을 휘둘렀다.
키이이잉!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공격은 빗나갔다.
미카엘라의 은밀한 속내를 간파한 괴츠가 왼손의 검을 역수자로 쥐어 아슬아슬하게 막아냈기 때문이다.
씨익!
괴츠는 잇몸을 활짝 드러내며 말했다.
“이쪽이 공격이라고 생각했구나. 돌대가리냐?”
위이이이이잉!
괴츠의 오른손 의수가 백열 하더니 강렬한 오러가 발산되어 미카엘라의 정수리로 향했다.
일격을 막기 위해 미카엘라의 검신이 괴츠의 팔을 튕겨내려고 했지만.
쿠직! 쿠직!
쨍그랑!
막아내기는커녕 그의 검은 유리처럼 깨져나갔고 겁을 집어먹은 미카엘라가 재빨리 뒤로 발을 뺐다.
콰아앙!
빗나간 괴츠의 일격은 연회의 중심이 되는 정원의 지면을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앙!
“꺄아아아악!”
거대한 후폭풍과 함께 거대한 토사물이 연회와 사람들을 휩쓸어버렸고, 타격지점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성됐다.
“마, 말도 안 돼.”
“휘하에 있는 부하가 황도 12궁의 기사를 압도하다니…….”
연회를 위해 정갈하게 입은 의상과 머리는 잔뜩 흩뜨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피난하지 않고 괴츠를 지켜보는 것은 이 승부의 결과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네, 네 녀석.”
무시무시한 타격에 어딘가 타격을 입은 건지, 미카엘라는 입가에 피를 흘리며 분개하고 있었다.
“자신 있으면 와봐. 다음에 그 머리가 호박처럼 쪼개지는 걸 보여줄 테니까.”
괴츠는 거만한 자세로 오른손 의수의 검지를 까닥까닥 움직여 보였다.
“우리가 너무 우습게 보였나 보네.”
릴리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결투를 벌이고 있는 두 기사를 바라보았다.
국경의 최전방, 그것도 제일 위험한 사선의 정복은 냉정히 말하면 칼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를 따르고 추종하는 크림슨 게일 기사단의 힘이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괴츠와 마틴, 헤이젤은 기사단의 핵심 중추로 이미 마스터 경지에 다다른 기사였다.
이명은 강완의 괴츠.
강철의 의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위협적인 기세에 적군들이 두려워서 붙여진 이명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명은 루콘에서 알려질 기회가 적어 이에 대해 아는 이들은 전무했다.
“미, 미친 어, 어떻게 저런 몰상식한 남자가 스승님을.”
머리에 피를 흥건히 흘리는 라이너는 믿기지 않았는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칼은 눈 밑에 그늘이 진 상태로 입을 뗐다.
“……괴츠.”
“부르셨습니까?”
“저놈이 디아나를 상처투성이로 만들었는데, 너라면 어떻게 할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괴츠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답했다.
“죽여도 되겠습니까?”
뒷정리 같은 건, 전혀 개의치 않는다.
죽음의 땅 알테어에서 함께 동고동락해온 동료이자 여동생같이 소중한 디아나를 상처투성이로 만들었다는 데서부터 이미 이성의 끈은 끊어졌다.
꿀꺽!
그가 진심을 피력한 것을 깨달은 라이너는 목구멍으로 고인 침을 삼켜 넘겼다.
아까까지만 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물론. 내가 허락할게.”
칼은 광기를 내뿜으며 결코 희망을 가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너, 너희 제정신이야?”
라이너는 기겁하며 손바닥으로 땅을 짚으며 물러섰다.
바로 그 순간.
쿠구구구구.
미카엘라가 검신을 오러로 두르며 칼과 괴츠에게 마지막 경고를 읊조렸다.
“산크투아리움의 성기사로서 경고한다. 내 에스콰이어에 손대지 마라.”
어느 순간, 존칭은 사라졌다.
지금은 바닥까지 추락한 황도 12궁의 성기사로서 위엄을 선보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듯 보였다.
물론 칼이 그 협박에 굴할 리는 없었다.
“여긴 루콘이다. 버러지. 타국의 성기사가 왜 자꾸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 거지?”
칼은 눈매를 좁히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때, 뒤늦게 사고가 벌어진 현장에 도착한 리제타 공작은 즉각 칼에게 말했다.
“카, 칼리언트 슈타크 경.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면 완만하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걸세. 내 아들에게서 떨어지게.”
“아, 아버지.”
경황이 없는 눈동자는 피투성이가 된 라이너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내가 허용할 수 있는 기준점을 넘었습니다.”
협상할 의사는 없다.
칼의 기세에 리제타 공작은 싸늘하게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각오하고 있나? 아무리 자네라고 해도 우리 가문의 힘을 얕보면 곤란할 걸세.”
“변하는 건 없어.”
칼이 빠득 이빨을 갈며 거부를 표명하며 발을 성큼 옮겼다.
그 행보에 리제타 공작은 물론 미카엘라는 크게 당황해 연신 협박을 가했다.
“조금이라도 위해를 가했다가는 그에 대한 응징은 슈타크가. 네놈들 혈육 전체…… .”
콰직!
콰아앙!
그러나 그 말이 채 매듭도 짓기 전에 칼의 발이 라이너의 얼굴을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
이빨이 송송 빠지며 날아가는 아들의 모습에 리제타 공작은 덜덜 몸을 떨었다.
“네놈!!”
분노한 미카엘라가 크게 언성을 높이려는 찰나.
“닥쳐.”
가까스로 인내하던 칼의 살기가 일제히 확산 되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시선은 칼을 주목하고 있었다.
“내 분노를 샀다면, 그 대가는 응당 치러야 되는 거야.”
긴장이 촉발되자, 공작가에 있는 군세가 일제히 칼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에 지지 않겠다는 듯 칼이 끌고 온 기사단, 크림슨 게일이 칼의 전면에 나섰다.
숫자는 아득히 적지만, 그 기세는 결코 작지 않았다.
크아아앙!
바그로바도 그 위협에 맞서 거칠게 포효하며 공작가의 군세를 위협했다.
지이이잉!
일이 이렇게 될 것을 미리 간파하고 있던 릴리는 사전에 쳐둔 결계로 공작가의 군세를 각각 삼 분의 일로 분리시켰다.
“꺄아아아악! 이, 이건 뭐야?”
그 덕분에 결계에 의도 아니게 갇힌 귀족들이 두려움을 떨어야 했다.
바로 그 순간, 두 세력 사이에서 키이라가 갑작스레 웃음을 터뜨리며 끼어들었다.
“호호호, 정말 멍청하네요. 리제타 공작 각하. 겨우 아들 한 명 때문에 지금까지 쌓은 지지기반을 잃을 생각인가요?”
다정하게 웃으며 내뱉는 그녀의 한마디에 리제타 공작은 고개를 수그렸다.
“키, 키이라 슈타크 경. 그대가 중재해준다면 여기서 물러설 용의도 있다네.”
반쯤 굴복의 의사를 표한 것이지만.
이에 키이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중재라니요?”
“자, 자네는 그러면 뭐 때문에…….”
당황한 리제타 공작이 말을 붙이려는 순간.
쇄액!
콰직!
키이라가 뽑아 든 검이 미카엘라의 목을 베어버렸다.
찰나의 기습을 눈치채지 못한 미카엘라의 머리는 동공에 초점을 잃은 채 날아갔고, 키이라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며 말했다.
“싸움이 붙었으면, 끝은 보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