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칼리언트가 머무는 방.
그 방문 앞에서 괴츠가 입을 열었다.
“사령관님의 스승이시다.”
크르르르.
늠름한 자태로 서 있는 바그로바를 보며 마틴과 헤이젤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먼저, 마틴이 말했다.
“스승이라고 해서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했지만, 설마 이런 비밀이 있을 줄이야.”
“하긴 그 인간을 어떻게 사람이 가르쳐. 그동안 철부지 사자라고 했는데.”
헤이젤은 납득이 갔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앞에 있는 맥캘리를 내버려 두고 바그로바를 쳐다보고 있었다.
빠직! 빠직!
“야, 너희들 일부러 시비 거는 거지?”
맥캘리는 얼굴에 핏대가 가득 솟구친 상태로 마틴과 헤이젤을 노려봤다.
설마 면전에서 이런 개무시를 당할 줄이야.
바로 그 때.
“다들 진지하게 생각해주세요. 칼리언트님은 아직 위독해요.”
디아나가 차가운 표정으로 마틴 외 두 명에게 으름장을 주었다.
“…….”
머쓱했던 세 남자는 뒷머리를 긁적이거나, 뒷걸음질을 하며 그녀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디아나는 맥캘리에게 예를 갖춘 뒤, 정식적으로 그녀를 소개해주었다.
“칼리언트님의 유일무이한 스승이자, 파르테스 아카데미 오닉스 스퀘어 학파의 수장이며 에클라 세트로 칭송받는 맥캘리 교수님입니다.”
“에, 에클라 세트?”
괴츠와 헤이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표정이 단숨에 변모했다.
반면 마틴은 눈매를 좁히며 맥캘리의 역량을 파악하기 위해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그렇지. 그렇게 날 경외하라고.”
맥캘리는 이제야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다 곧 진지한 눈빛으로 디아나를 쳐다봤다.
“그 녀석은 이 방에 있나?”
맥캘리가 디아나의 뒤에 있는 문 쪽을 쳐다보자, 디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동안 식사조차 제대로 못한 채로 가까스로 암피스바에나 독에 저항하고 있어요. 해독제를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암피스바에나 독을 해독할 수 있다고?!”
디아나의 말에 헤이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하면서도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디아나는 간절한 희망이 담긴 눈빛으로 맥캘리를 바라보았다.
한 학파의 교수인데다 남들과는 궤가 다른 통찰력과 분석력을 지닌 맥캘리라면 해독제를 만드는 게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맥캘리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절대로 희소식은 아니었다.
“지금 와서 해독제를 만들어봤자, 늦었어.”
“그, 그게 무슨?!”
“바, 방법이 없는 겁니까?”
경악한 디아나와 마틴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맥캘리는 검지를 추켜세우며 말했다.
“이미 독이 침투되어서 단순하게 해독제를 복용한다고 해서 쾌유를 바라기는 어려워.”
“그, 그런.”
모두의 얼굴에 실망이 감돌 때.
맥캘리가 팔짱을 끼며 문 앞에 서며 입을 뗐다.
“망나니 제자야. 이 스승님이 없으니까 죽겠지?”
“…….”
위독한 사람을 두고 저런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한다는 것에 모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타악.
그때 문에 쿵 소리가 나며 칼의 목소리가 들렸다.
“……죽겠으니까 방법을 찾아봐.”
정말 기운이 없는 건지, 칼이 시름시름 앓는 목소리로 말하자, 맥캘리는 진지하게 눈매를 좁혔다.
“상태를 말해봐.”
“……축적만 되고 배출은 되지 않아. 팔다리에 경련은 일어나고 있고, 조금만 상처가 나도 출혈이 멈추지 않을 거야. 숨을 뱉을 때마다 독기가 스며들어서 방안은 독기로 가득해.”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맥캘리는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다 입을 열었다.
“반응을 봤을 때, 아마 네 몸에 암피스바에나의 독을 생성하는 무언가 있을 것 같아.”
“……그 무언가를 제거해야 된다는 말이로군.”
칼은 단번에 자신의 상태를 이해했고, 맥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니 직접 얼굴을 봐야겠어. 내가 짚어준 혈도로 독을 배출하든지, 네 무식한 마력으로 태워버려야 돼.”
“방금 내 말 못 들었냐? 들어오면 키 작아지는 독에 중독된다고.”
“닥쳐! 그딴 말 안 했어! 여기서 더 작아질까 보냐!”
진지했던 맥캘리는 다시 눈에 독기가 실렸다.
“…….”
그리고 옥신각신 다투는 두 사제의 대화에 주변의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이 인간들 긴장감이라는 게 없는 거야.’
‘분명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대로 있다가는 쓸데없이 이야기가 길어질까 재빨리 디아나가 중재에 나섰다.
“어, 어쨌든 두 분 다 자중해주시고, 맥캘리 교수님은 지금 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인 건가요?”
“그렇지.”
맥캘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디아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사실상 불가능해요.”
어떻게든 칼을 살리고 싶다.
하지만 이대로 그녀가 방 안에 들어가면, 단숨에 암피스바에나 독에 중독될 게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피식.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 최고의 우군과 같이 동행했거든.”
이에 맥캘리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뒤로 고개를 돌렸다.
‘누가 있다는 거지?’
기척을 감지할 수 없었던 마틴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실례할게요.”
바로 뒤에서는 우아한 흑단의 머리칼을 흩날리며 아름다운 소녀가 사람들 사이로 스쳐 지나갔다.
* * *
책만이 가득한 방.
그곳은 칼이 이 2년 동안 알테어의 사령관으로서 지내왔던 곳이다.
하지만 그 2년 동안 무엇을 하고 지내왔는지, 방 안에는 박제된 동물의 머리라든가, 유명한 장인의 작품, 혹은 예술가의 그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2년 동안 이 혹한의 대지에서 모두를 살리기 위해 분주히 일했기 때문에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몸조차…….
‘난생처음 겪는 일이야. 내가 이렇게 될 줄이야.’
문 가까이 있는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칼은 거칠게 호흡을 하고 있었다.
방안에서는 숨을 쉴 때마다 매캐한 독 연기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실제로 몸은 곧 죽음으로 가고 있었다.
아니, 사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몸에 침식된 독은 체내의 기운을 모조리 고갈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어.’
그러나 이대로 죽지 않는 것은 전생 최강 마왕의 영혼이 이를 납득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울컥!
주륵!
그때 강한 정신이 몸에 악영향을 미친 건지,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칼은 자연히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나약하군. 인간은…….”
콰앙!
바로 그 순간 칼의 허락도 없이 대뜸 문이 벌컥 열리며, 두 여인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한 명은 검은 드레스를 갖춰 입은 맥캘리.
사락!
또 한 명은 고풍스런 정장과 베레모를 쓴 릴리아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 너?!”
깜짝 놀란 칼은 보기 드물게 심홍색의 동공을 크게 뜨며 당황했다.
오랜만에 만나 놀란 점도 있지만.
문제는 그녀들을 향해 곧장 독기가 스며들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파직!
하지만 그런 일은 애초에 염두에 두지도 않았는지, 릴리의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온 보랏빛의 파문이 장벽이 되어 독기의 침투를 막았다.
‘……저건 페트로의 결계?!’
파르테스에서 가장 큰 난동을 일으킨 주범이자, 한때는 백색의 마도사로서 최고의 결계술사라고 불리는 남자의 전용 마법.
놀랍게도 릴리는 그것을 익혀 놀라울 정도의 활용을 선보이고 있었다.
스윽!
칼을 놀라게 한 릴리는 반쯤 눈매를 좁히며 칼을 쏘아보며 말했다.
“사람이니까 당연히 나약하지. 고집불통아. 가끔은 남의 도움을 받을 줄도 알아야 하고. 여전하구나.”
“네가 여기에는 왜?”
칼의 질문에 릴리는 새침한 표정으로 답했다.
“어떤 무자비한 사령관님께서 정성껏 써준 제 편지에 대해 답장을 무려 2년 동안이나 안 해주시길래, 그 뻔뻔한 낯짝을 보러 왔습니다. 이유 충분했나요? 칼리언트 사령관님.”
“…….”
오랜만에 쏟아진 질타에 칼은 조용히 말문을 잃었다.
“세상에!”
반면 뒤에서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던 마틴과 헤이젤, 괴츠는 크게 놀라 입을 쩍 벌렸다.
루콘의 광견이라고 불리는 남자.
성정 또한 흉포해서 누구도 함부로 말을 걸 수 없는 칼에게 저렇게까지 몰아붙이다니 실로 믿기지 않은 광경이었다.
반면 맥캘리는 훗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칼의 몸 상태를 살폈다.
“이건 생각보다 심각하네. 릴리.”
우웅.
짧게 이름을 호명한 것만으로도 그녀의 의도를 간파했는지, 릴리의 결계 마법이 맥캘리의 전신에 퍼져나갔다.
‘서킷과 결계를 동시에 쓰고 있어.’
학생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마법의 운용 폭에 칼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스윽!
바로 그때.
맥캘리가 눈을 감고서 칼의 명치를 검지 끝으로 누르며 말했다.
“짚어준 혈도로 마나 연공을 진행해. 그리고 이참에 이 연공식의 끝 경지에 다다라보자고. 잘해 낼 수 있을지 장담은 못 하지만.”
“……무슨 말이지?”
칼은 숨을 헐떡이며 피로가 가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가 끝에 남긴 의미심장한 한마디는 똑똑히 들었다..
“만들어 보자고. 인간이 신에 도달하는 초석, 마나기관을…….”
* * *
잠재의식에 깊이 집중한 칼은 체내에서 암피스바에나의 맹독에 기맥 곳곳이 헝클어지고 손상된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독에 의해 부식된 기로는 서킷을 생성해서 강제로 잇는다. 먼저 일월혈에서 명문혈까지 이어붙여.]
그녀의 지시에 칼은 서킷을 활용해 강제로 마나가 진입할 수 있는 기로를 이어 붙였다.
[백랑에서 기문, 다섯 갈림길에서는 운고 혈쪽만 이어 붙여. 신궐에서 기해 혈도는 압박하면서 길을 좁혀.]
스스스스.
그녀의 지시에 맞춰 칼은 차례차례 체내에 서킷을 생성했다.
시간으로 약 1분.
그사이 내려진 지시는 무려 백 가지나 넘었고, 칼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기운을 운용했다.
우웅!
어느덧 칼의 피부 곳곳까지 서킷의 문양이 드러났다.
그 모습이 마치 문신을 한 것처럼 화려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화아아아악!
칼의 전신에서 뜨거운 기운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크윽! 이건!”
“독기를 배출하고 있어요. 지금부터는 방해가 되니 문은 닫아주세요.”
사람들은 릴리의 지시에 조용히 물러났다.
릴리는 눈을 감고 있는 칼과 맥캘리에게 원형을 결계를 생성했다.
두 천재가 초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 만큼, 절대로 이 시간에 방해가 있어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두근! 두근!
‘뭐, 뭐야?!’
느닷없는 거대한 박동 소리에 릴리는 크게 놀라 칼을 쳐다봤다.
크르르르르르.
어떤 상황을 겪고 있는지, 칼은 평소처럼 냉철한 심홍색의 눈동자를 보이는 대신 흰자위만 남은 채,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냈다.
****
‘찾았다.’
맥캘리와 함께 마나 연공식을 운용하며 독기를 바깥으로 배출할 때.
칼은 마침내 자신의 몸을 오염시키고 있는 근원을 만날 수 있었다.
스으으으.
체내에 둥지처럼 자리 잡힌 것은 암피스바에나의 비늘 파편. 하지만 단순한 파편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크르르르르.
왜냐하면, 파편의 주변에 나타난 쌍두룡의 형상이 칼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