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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59화 (159/197)

제159화

리히트와 헤이젤은 부하들과 함께 눈발 사이를 전력으로 질주했다.

샤텐의 음모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고 그 사실을 눈치 챈 그들은 아울 아비스라는 강적에게 쫓기고 있었다.

커엉! 커엉! 커엉!

사냥개들이 혓바닥을 내밀며 정신없이 질주하는 도중.

콰아아앙!

깨갱!

“크아아아아악!”

뿌리째 뽑힌 나무가 날아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불시의 기습을 눈치 채지 못 한 사냥개와 병사 중 일부가 나무에 직격당해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빠득!

부하의 시체를 본 헤이젤은 분노 어린 시선으로 뒤를 돌아봤다.

크워어어어어.

우렁찬 포효가 설원 사이에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알테어를 습격한 아이스 트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덩치를 지닌 아이스 트롤 세 기가 헤이젤 일행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콰앙! 콰앙!

사뿐사뿐 걸음을 내딛는 것 같은데, 눈길을 가르는 그 속도는 마치 인간이 뛰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실제로 빠르기도 그 정도였다.

놀라운 것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이스 트롤들은 인간의 병장기조차 다룰 수 있는지 거대한 할버드를 들고 있었다.

‘……어떤 느낌인지 알겠어.’

눈앞의 몬스터를 보며 헤이젤은 어째서 리히트가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까지 정체를 밝혀내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히 몬스터의 사체를 조합해서 만든 키메라는 인체 개조 기술 중 가장 하급에 속한다.

몸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 몬스터는 곧장 자신의 넘쳐난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결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신에 몬스터의 육신을 옮기는 것도 그 한계는 명백했다.

지능을 지니게 되기에 그 힘을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을 테지만, 근본이 되는 몸이 인간의 것이기에 수명은 극도로 짧아진다.

그렇기에 몬스터의 육신에 인간의 지능을 심는 것은 어찌 보면 가장 적절한 타협안이 될 수 있었다.

몸의 밸런스가 유지되고 야성 속에서도 인간의 기지를 발휘해 극도로 강해질 수 있으니까.

그 결과물이 바로 눈앞에 있는 아이스 트롤들이다.

‘……어떻게 하지?’

병사들이 동요하고 있는 그때.

저벅저벅.

벌써 추격을 가세해온 샤텐의 병사들 백 명과 아울 아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표정들을 보니, 이제야 상황파악을 했나보네. 저런 거 한 마리가 알테어 성벽을 올라타고 넘어간다면, 마을은 과연 어떻게 될까? 중요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너희가 이렇게 있다면 말이야.”

빠직!

그의 말에 헤이젤이 처음으로 이맛살을 찌푸리며 분노의 음성을 드러냈다.

“민간인을 건드리겠다는 거냐?”

히죽!

아울 아비스는 잇몸을 활짝 드러내며 만개했다.

“그게 전쟁의 묘미 아니겠어? 매번 생사를 넘나드는 병사들에게는 최고의 만찬이잖아. 여자도 술도 재산도 마음껏 약탈할 수 있어. 영토를 넓히고 국력을 확장시켰다면,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아도 되잖아. 구태여 국가가 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 쟁취하고 말이야. 하하하하하”

“크크크크크.”

바로 뒤에 있던 병사들은 벌써부터 흥분을 만끽하고 있는지 혐오스럽게 웃고 있었다.

스윽.

아울 아비스는 팔짱을 끼며 본격적으로 헤이젤과 리히트에게 말했다.

“항복하고 왕의 휘하에 든다면, 용서해주지. 네 실력은 솔직히 여기서 썩히기에는 아까워. 아까는 진짜 죽이고 싶었지만, 그 실력을 보니 이번 한 번은 눈 감고 딱 한 번 용서해줄 정도의 아량이 생기더라고.”

“괜찮겠어? 눈 감고 있을 때, 난 그 눈깔 찔러버릴 얍삽한 놈이거든.”

헤이젤은 얼굴을 이죽이며 약 올리는 표정을 지었고.

“……또 잔 대가리 돌리는 소리 돌린다?”

아울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헤이젤을 노려보다가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근데, 이번에는 힘들걸.”

바로 그때, 세 마리의 아이스 트롤들이 전력으로 발을 박차 헤이젤과 리히트를 습격했다.

크우어어어어어!

녀석들은 매섭게 포효하며 들고 있던 할버드로 병사들을 휩쓸었다.

“크아아악!”

“쿨럭, 쿨럭!”

절반의 병사들이 중상을 입었다.

그들은 입가와 코에 뿌연 김을 토해내며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냈고.

크르르르르.

아이스 트롤 바로 앞에 있던 병사는 눈물, 콧물을 짜며 중얼거렸다.

“히, 히익! 사, 살려줘.”

우지끈!

그러나 아이스 트롤은 거대한 발을 들어 병사를 힘껏 짓밟았다.

쾅! 쾅!

마치 벌레를 죽이는 것처럼 잔학하게 학살하는 모습에는 몬스터 특유의 식사를 위한 사냥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히죽!

오히려 그 입가에는 인간처럼 죽이는 것에 대한 희열과 교활함이 실려 있었다.

파앙!

“죽인다!”

순식간에 부하들이 죽어 나가자, 흥분으로 얼굴 곳곳에 핏대가 솟구친 헤이젤이 시체에서 거둔 두 자루의 검으로 아이스 트롤의 눈깔을 터뜨린 뒤.

서걱!

그대로 발목의 힘줄을 절단했다.

연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검이 곧장 아이스 트롤의 목을 향하려 했지만.

“헤이젤!”

움찔!

리히트의 경고에 헤이젤은 검을 멈추고 습관적으로 전황을 파악했다.

콰콰콰쾅!

그의 동공에는 순식간에 병사들의 포진을 뚫고 뛰쳐나간 두 마리의 아이스 트롤 둘이 엿보였다.

아이스 트롤들이 향하는 곳은 바로 알테어였다.

‘위험해!’

병사들에게는 아이스 트롤의 위험성을 알리지 않았다.

성곽에 있는 병사들은 아직도 승리를 자축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벽 쪽에 달려드는 두 마리의 아이스 트롤들을 보며 비웃으며 방어태세를 취할 테지만 제압은 가능하되 엄청난 인명 피해가 일어날 것이다.

히죽.

절망하는 헤이젤을 보며 아울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다.

“조만간 알테어 쪽에서 조사원을 파견할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대처가 너무 빨라서 놀랐어. 너희들. 루콘의 광견 쪽 진영 같은데. 지금 빨리 가서 막아야 되지 않겠어?”

“네 녀석!”

몰아붙일 상대는 자신들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힘없는 민간인들을 끌어들이는 것에 헤이젤은 분노가 극에 이르렀다.

“사적인 감정에 대의를 그르치지 말게. 헤이젤.”

바로 그때, 리히트가 앞으로 나서며 헤이젤에게 말했다.

“자네는 칼리언트님의 가장 중요한 부하 중 한 명이네. 주군의 신뢰를 배반하는 짓은 수하로서 가장 어리석은 짓이지.”

스릉.

발언과 함께 리히트는 검을 뽑아 들었다.

반짝!

검날 표면에 반사된 빛무리는 작지만 어째서인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보게.”

“……리히트님.”

리히트의 의도를 깨달은 헤이젤은 동공을 파르르 떨다…….

“끝나고 곧장 돌아오겠습니다.”

파앗!

한마디 말만 남긴 채로 부하들과 일제히 아이스 트롤의 뒤를 쫓았다.

웅성웅성.

이게 무슨 일이지?

리히트의 맞은 편에 있던 샤텐의 병사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 여기서 오직 아울만이 리히트의 속뜻을 간파했다.

“설마 겨우 혼자서 우리와 싸워서 시간을 벌어보게. 저 녀석들한테는 아이스 트롤들을 맡기고?”

아울이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짓자, 리히트는 싱긋 웃어 보였다.

“몬타이 밑에 있어서인지, 부하인 자네 역시 비겁하군. 자네들이 둥지를 찾지 못하는 것은 필시 그 성정이랑 관련이 깊을 게야. 하하하하.”

사근사근한 말투는 마치 덕담이라도 나누는 느낌이지만.

실상은 물론 그 반대였다.

여유를 만끽하던 아울은 싸늘한 눈빛으로 리히트를 쳐다보며 말했다.

“말라 비틀어 빠진 영감탱이가 다시 한번 귀하신 분의 존함을 입에 올렸다. 그 죄는 나 아울 아비스의 이름으로 단죄한다.”

파앗!

더 이상 지체할 것도 없이 샤텐의 병사들이 몰려와 단숨에 리히트를 덮쳤지만.

콰직!

“크아아아아아악!”

리히트는 초승달 같은 궤적으로 병사들의 사지를 검으로 절단내버렸다.

쏴아아아아아!

시체에서 쏟아지는 붉은 피가 새하얀 눈발을 붉게 물들이는 괴악스런 풍경이 펼쳐졌다.

리히트는 같잖다는 표정으로 아울에게 말했다.

“자네. 개소리를 신랄하게 지껄이는구먼.”

“…….”

신출한 검솜씨에 모두가 넋을 놓고 바라볼 때.

아울의 보좌관으로 있던 참모가 급하게 아울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 아울 님. 저들의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스윽.

리히트 쪽에 눈동자를 굴리던 아울이 입을 열었다.

“……저 노인. 정체가 뭐지?”

“혈귀의 괴검. 과거, 슈타크 가문에서 혈족 대신 내놓은 정체불명의 기사로 단신으로 아벤트로트의 천 명의 병사를 사흘 동안 농락하다 죽인 괴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 알테어에서 두 번이나 살아남은 망령이라는 소문이…….”

“…….”

리히트의 정체를 들은 아울은 한숨을 쉬며 새삼스럽다는 듯 리히트에게 말했다.

“더럽게 고인 물이라는 거네. 전성기 때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할 건 뻔히 보이고. 그럼 이제 그만 씻겨 내려가야지.”

크워어어어어어!

때마침 헤이젤에게 부상을 입었던 아이스 트롤이 재생을 끝마치고 리히트를 향해 전력으로 발을 박찼다.

“우와아아아아!”

그 뒤를 샤텐의 병사들이 깃발과 검을 들고 진군을 가해왔고.

리히트는 냉철한 표정으로 검을 들고선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 * *

“하아, 하아, 하아.”

호흡이 흐트러지는 가운데, 노인은 상념에 잠겼다.

죄는 결코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공훈으로 포장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노인은 그런 죄를 무려 여든을 넘긴 나이에 몸소 감당해야 했다.

그렇다고 일생이 절망으로 가득했냐면, 그것은 결코 아니었다.

분명 살면서 행복한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노인은 동화책을 좋아했다.

언젠가 악의 무리로부터 모두를 구해줄 그런 영웅이 그려진 일대기는 늘 마음이 설렜다.

죄수의 신분으로 검을 들었지만.

그 검이 모두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꼈으며, 잔혹하게도 가족끼리 죽고 죽이는 주인의 혈족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품었다.

그런 남자 앞에 한 명의 소년이 등장했다.

다른 혈족과 달리 불타오를 것 같은 심홍색의 눈빛과 눈동자를 가진 소년.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전에 봤을 때는 분명 유약해 보이기만 했던 눈매는 무척이나 매섭고 강건했다.

우연이겠지?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품었지만.

얼마 안 가 그가 슈타크가의 불행한 명운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남자라는 것을 자연스레 깨달았다.

강하면서도 모두를 포용하려는 자세를 지닌 남자였던 것이다.

콰직! 콰직!

상념에 오래 잠겨있던 탓일까?

한순간의 방심으로 노인의 상체에는 두 자루의 창이 꽂혔다.

살점이 찢어고 날이 뼈를 긁어대며 생긴 격통에 근육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노인은 표정 하나 바뀌지 창을 악력으로 박살 낸 뒤.

콰직!

그대로 자신을 찌른 병사들의 목구멍에 부러진 창자루를 꽂아 넣었다.

“쿨럭!”

다시금 한 사람이 죽어 나갔다.

새하얗기만 했던 설원에는 벌써 수십도 넘는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아이스 트롤이 무릎을 꿇은 상태로 경직하고 있었다.

머리 단단한 창자루가 관통당한 채 말이다.

카앙! 카앙!

보다 못한 중장갑을 걸친 병사가........

콰앙!

리히트의 갑주를 박살내며 정면에서 참격을 날렸다.

콰직! 콰아앙!

울컥!

리히트의 몸이 크게 들썩이며 조각난 갑주들이 눈발 사이로 흐트러졌다.

그뿐만 아니라 목울대를 통해 죽은 피가 꿀렁거리며 목구멍을 통해 삐져나왔다.

그러나 몸 상태를 볼 겨를도 없이 리히트는 비틀거린 상태로 반격을 가해, 상대의 갑주를 완전히 박살내고 가슴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이 노인네가!!”

지칠 대로 지쳤는지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몸.

내구성이 극에 달했는지, 혈관이 팽창해지고 곳곳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빛은 생기는 점차 바래졌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히트는 쉬지 않고 검을 휘둘러 전력으로 병사들을 도륙해나가고 있었다.

“죽여!!! 샤텐의 병사들이 노인네 한 명을 왜 끝장을 내지 못하는 거야!”

흥분한 보좌관은 더욱더 부하들을 독촉했지만.

파르르르르.

병사들은 리히트의 눈빛을 보고는 떨려서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기세는 꺼지기는커녕, 더욱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은 그런 리히트를 보며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지?”

전성기가 한참 지난 노인네라고?

더군다나 상대는 이미 죽어가고 있어. 근데, 근데 어째서?

그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찰 때, 리히트가 지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내 뒤에 뭐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한마디는 한 사내가 생애를 바치며 지켜온 신념.

그리고 단 한 번의 어긋남도 없는 순수한 결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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