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57화 (157/197)

제157화

기사 임명식을 끝마친 밤.

슈타크 일가에서 또 한 명의 기사와 기사단이 창건된 것을 축하하기 위한 연회가 펼쳐졌다.

루콘 최강의 무가인만큼 그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왕실과 귀족 인사들마저 초청된 자리.

아이러니한 것은 초청된 귀족들이 연회의 주인공인 칼을 제치고, 자신들이 지지하고 있는 슈타크 가의 혈족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것 참 너무 한 것 아닙니까? 이럴 거면 부르지를 말던가.”

칼의 곁을 지키고 있던 괴츠는 손가락 사이에 고기와 야채가 끼워진 꼬치를 잔뜩 끼운 상태로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물우물.

괴츠의 입가에 소스가 묻을 걸 본 칼은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됐으니까 많이 먹어. 별로 신경 쓰지 않아.”

“사령관님도 같이 드시죠.”

“별로 먹고 싶지 않아.”

그르르릉.

칼은 연회에 대동한 바그로바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녀석은 그 손길이 기분이 좋은지 눈을 감으며 재롱을 떨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덩치가 커서 그런지, 그 모습에 위압감을 느끼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이미 연회에 데리고 와도 된다는 허락이 있었기 때문에 칼은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다.

우물우물.

괴츠는 입안 가득 고기와 야채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생겼는데, 사람 말은 유난히 잘 따르나 보네요.”

그릉.

그의 말이 거슬렸던 탓일까?

바그로바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괴츠를 올려다보았다.

“어쭈.”

그 시선에 흥미를 느낀 괴츠는 그대로 쪼그려 앉으며 왼손을 스윽 내밀었다.

“개를 훈련시키는 거랑 별다를 게 없나? 손!”

빠악!

손바닥 위에 손을 포개는 것을 바랐을 테지만.

순순히 넘어가 줄 리 없었던 바그로바는 괴츠의 머리통을 힘껏 갈겼다.

“크아아아아악!!! 이 망할 고양이 나부랭이가.”

살살 툭 친 것 같은데, 생각보다 강력한 위력에 괴츠는 격통을 호소하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지나치게 산만한 분위기에 칼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닥치고 저기 가서 처먹기나 하고 있어.”

“넵!”

그 분위기에 압도된 괴츠는 머리에 피가 철철 흐름에도 절도 있게 예의를 갖추며 물러났다.

끼잉!

칼의 화낸 기색을 눈치 챘는지, 바그로바는 불안해 하는 소리를 내며 눈치를 살폈다.

“호호호호, 다른 형제들과 달리 부하를 다루는 데 있어서 자유분방한 느낌이 있네요.”

그때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한 여인이 칼에게 다가왔다.

곱게 기른 선 분홍색의 머리칼을 하나로 묶어 땋은 그 모습은 상당히 유려해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등장에 모두가 은근슬쩍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칼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예를 갖췄다.

“하기 싫은 인사는 억지로 안 받아요.”

그녀는 난처한 웃음을 선보인 뒤,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루콘의 왕녀, 프리실라 드 카스티유라고 해요. 루콘의 광견을 이렇게 보니 과연 그 이명에 걸맞은 인상이라고 생각되네요.”

칼은 눈꼬리를 치켜뜨며 그녀에게 말했다.

“어째 비아냥거리는 것 같습니다.”

쩌저저저적!

일순간 얼음이 얼어붙은 것처럼 정적이 찾아왔다.

칼의 한 마디에 연회는 누군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진 것이다.

‘이 미친놈아!!!’

‘선을 지켜! 선을!!’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슈타크가의 형제들은 일제히 막내를 향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제 아무리 루콘 최강의 무가라고 해도 왕족에게는 엄연히 지켜야 되는 법도가 존재하는 법이다.

칼이 제 아무리 루콘의 광견이라고 불려도 그냥 넘어가 줄 수 있는 선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파르르르르.

지금까지 이런 무례한 발언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받지 못 했던 건지, 프리실라는 경직된 표정을 풀지 못 하고 어설프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용건이 뭡니까?”

칼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른쪽 어깨를 으쓱거렸다.

할 말만 하고 꺼지라는 태도에.........

“네 녀석! 감히 주제도 모르고!”

결국 그녀를 호위하던 기사들이 장갑을 벗어 던지려는 사태까지 찾아왔으나........

“호호호호 연회에 초를 치면 곤란하겠죠.”

미소를 겻들인 프리실라의 경고에 기사들은 자중하기 위해 두 걸음 이상 물러섰다.

“호호호호 이렇게 노골적인 언사를 듣는 건 처음이라 당황했어요. 이야기 좀 할까요?”

“그러시죠.”

잠시 후.

작은 소란이 정리되고 난 뒤, 칼은 무도회장의 풍경을 바라보며 프리실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크르르르.

바그로바는 그런 칼의 곁에서 편안한 자세로 잠들고 있었는데, 프리실라는 그런 바그로바를 보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노빌레 레오네. 제국 황실조차 탐을 내고 있는데, 이렇게 주인 앞에서 온순하게 구네요.”

“탐이 나나봅니다.”

날이 선 칼의 말투에 프리실라는 익숙지 않은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건, 루콘의 광견이에요. 얼마 전에 베허트와 대화하니, 광견의 목에 목줄을 채우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칼리언트. 당신은 왕권의 권위에도 감히 도전해볼 생각입니까?”

원하는 것은 칼의 복종과 포섭이라는 것을 프리실라는 사심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목줄이라....... 죽고 싶어서 개소리를 지껄이나봅니다. 베허트란 놈은? 하하하하”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칼은 풋웃음을 터뜨리며 와인잔 대신 와인병을 집어 들어 코르크 마개를 엄지로만 뽑더니 그것을 그대로 꼴깍꼴깍 들이켰다.

과격한 그 행동에 프리실라는 경계심이 짙은 표정을 지었다.

“.......왕족의 앞입니다. 체면을 차리세요.”

“예절 지키라는 시시껄렁한 소리를 하려고 온 거면 가주십시오.”

울컥!

무례가 도를 넘어섰지만 프리실라는 가까스로 화를 참았다.

“에클라 세트에 대해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모습을 드러낸 지 반년도 안 돼서 그들은 상징과 함께 두각을 드러내고 있죠.”

“예를 들면?”

“대표적으로 산크투아리움의 차기 교황으로 내정된 데제스 싱클레어는 그라지아종 그리폰을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성기사단을 구축해 활동을 전개하고 있고, 그 밑에는 마르첼 발렌티노는 사텐에서 산크투아리움으로 국적을 변경해 대동하고 있는 여우수인과 함께 그 기세에 가담했고요.”

‘행동력 하나는 알아줘야 되겠군.’

아카데미 시절부터 재수 없는 놈이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그 능력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알테어를 하루 빨리 정복하려는 것도 그 녀석 때문이기도 하지.’

“상황이 이렇게 되니, 파르테스에 통학 중이던 엘프, 베르데와 소서러, 델피나도 중도 휴학을 내고 만전을 기하고 있죠.”

“그렇습니까?”

오랜만에 동창에 대한 소식을 들었지만, 칼의 표정에는 변화의 기색이 없었다.

“그 때문에 당신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어요. 모든 에클라 세트가 경계대상으로 삼은 남자를.........당신이 원한다면 루콘의 권좌에 앉게 도와드릴 수도 있어요.”

결연한 그 표정에는 혼담에 대한 각오도 실려 있었지만.

“일 없습니다.”

칼은 자리에 일어서서 확실한 거절의 의사를 표명했다.

울컥!

예의라고는 전혀 없는 의사표현에 프리실라는 얼굴을 화끈 붉히며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조금 높였다.

“어째서 거절하는 거죠?”

“사양하는 이유라........”

왕족이 지지하면 분명 큰 힘을 얻었을 텐데, 왜 거절했을까?

그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칼은 가까스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아서라고 하죠.”

“........”

여인으로서 굴욕적인 한 마디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프리실리아는 대꾸도 하지 못 하고 수치심에 몸을 떨었고.

칼은 바그로바와 발을 성큼성큼 내딛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연회에 참가했던 마틴과 괴츠, 그리고 크림슨 게일의 기사단이 그 뒤를 따랐고 칼은 그런 그들에게 나지막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돌아간다. 알테어로.......”

* * *

그워어어어어어!

콰앙! 콰앙! 콰앙!

단단하게 방비한 알테어의 요새로 오랫동안 굶주림에 시달린 아이스 트롤들이 물밀 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콰앙!

하지만 이전과 달리 병사들은 일제히 끓는 기름을 끼얹고 플레임 월의 마법스크롤을 찢어 성벽을 올라타고 오는 개체를 떨어뜨렸다.

콰앙!

그러나 아이스 트롤은 자신들의 특유의 재생력을 믿고 화염의 세례를 견디며 가까스로 성벽에 손을 얹었다.

스팟!

그런 광경을 두고만 볼 수 없었던 헤이젤이 쾌속의 검으로 트롤의 손가락을 절단내버렸다.

키에에에에엑!

몸을 지탱할 방법이 없던 트롤은 자신들의 동료와 함께 지면에 추락했고.

콰직! 콰직!

그 틈을 노려 병사들이 바위를 집어던져 그 살점을 완전히 뭉개버렸다.

“하아, 하아 젠장!”

반나절 넘게 지속된 공방전에 헤이젤은 피로를 이기기 어려웠는지, 숨을 헐떡이며 호흡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전황을 전두지휘하고 있던 리히트는 물밀 듯이 밀려오는 트롤의 군세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이상하군.”

“허억, 허억 뭐가 문제입니까?”

헤이젤의 질문에 리히트는 자신의 경험을 늘어놓았다.

“원래 트롤들은 알테어의 단독 포식자야. 이렇게 무리를 지어서 올 몬스터들이 아니란 말이지.”

“고블린들이 없어져서 굶주림에 시달려서 그런 거 아닙니까?”

헤이젤의 질문에 리히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여겼지만, 저 군세는 이상해. 마치 트롤이 공방전을 경험해본 느낌이야.”

몬스터 중에 상위 개체는 분명 사람을 긴장시킬 만한 지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부이고.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야생의 본능으로만 살아가고 있다.

쉽사리 결론을 낼 수 없는 현상에 리히트는 냉정한 표정을 짓다가 헤이젤에게 말했다.

“전세가 기울어지면, 한 마리만 생포해주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헤이젤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다 리히트의 진중한 눈빛을 보고 곧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최대한 노력은 해보죠.”

“고맙네.”

잠시 후.

전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성벽에 균열이 간 곳은 없었고 성벽의 밑으로는 트롤들의 시체가 한 무더기가 있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

그리고 알테어의 성벽 안으로는 거친 쐐기와 사슬에 몸이 구속된 트롤이 힘껏 포효하며 자신을 제압한 병사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저벅저벅.

그리고 그런 트롤에게 다가간 리히트는 검집에 검을 뽑아들었다.

“위, 위험합니다.”

모두가 기겁하며 리히트를 보호하려는 찰나.

푸욱!

리히트는 대담하게 트롤의 머리를 검으로 찔러 넣었다.

파르르르르.

머리가 관통당한 트롤은 흰자위만 남긴 채, 부르르 떨었다.

‘이런 식으로 제압하는 방법이 있었다니.’

헤이젤이 감탄하며 리히트를 바라보았고.

리히트는 평소보다 훨씬 냉정한 표정으로 트롤을 제압한 뒤, 병사들을 시켜 해부를 가하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익!

우선적으로는 힘줄을 자른 뒤, 다시는 재생을 못 하게 인두 장으로 달구었다.

그리고는 혈맥을 따라 뱃가죽을 가르고 피를 빼낸 뒤, 대퇴부의 살점을 쥐어뜯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해부가 시작됐다.

쫘아아아악!

“으윽!”

살가죽과 속살이 벗겨지는 그 괴악스런 광경에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눈을 돌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촤아아아악!

트롤의 심장 부근에서 피와 끈쩍 끈쩍한 용액과 함께 넝쿨처럼 무언가 튀어나왔다.

“으아아아아악!”

“이, 이건?!”

기겁한 병사들은 일제히 엉덩방아를 찍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트롤의 몸에 삐져나온 것은 다름 아닌 한 젊은 남자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트롤의 신경에 엉켜있는 그 모습은 심히 그로테스크하기 짝이 없었다.

“리, 리히트님. 이건........”

헤이젤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고, 리히트는 냉철한 눈빛으로 트롤의 신경에 감겨있는 사람의 머리를 보며 말했다.

“키메라 제조의 역발상이라고 보네. 야성만 가득한 몬스터에게 인간의 지능을 심어보자는 취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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