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쇄액!
공기를 날카롭게 찢으며 다가오는 비수들이 칼의 몸을 꿰뚫으려는 찰나.
“으랏차차!!”
카캉! 카캉! 카캉!
급습을 간파한 괴츠가 강철 팔로 흉기들을 튕겨냈다.
좌우로는 마틴과 헤이젤이 흉기들을 쳐냈다.
“?!”
불시의 기습이 실패하자 암살자들은 두 눈을 부릅떴다.
제아무리 검에 통달한 검사들도 쉽사리 막을 수 없는 전 방위의 공격을 너무 가뿐하게 막아 내다니…….
“이, 이전에는 이런 자들이 없었는데.”
당황한 암살자는 자신도 모르게 말실수를 했고, 칼은 그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호오, 전에도?”
말꼬리를 늘어 잡는 말투에 암살자는 움찔 몸을 떨었다.
“크윽!”
우웅.
마틴은 검 끝에서 오러를 방출하며 칼에게 물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모처럼 재미를 보려고 했는데, 아쉽군.”
칼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아쉬운 기색을 드러내다 곧 칼날처럼 벼려진 눈으로 암살자들을 쳐다보며 명령을 내렸다.
“한 명만 살려놓고 전부 죽여.”
명령이 떨어지자, 세 남자는 일제히 발을 박찼다.
“퇴각이다! 서둘러 진형을…….”
그들의 무위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암살자가 퇴각 진형을 구축하려고 했지만.
콰직!
그 말에 매듭을 짓기도 전에 괴츠의 강철 주먹에 완전히 얼굴이 으스러져 숨을 거두었다.
“모처럼 몸이 쑤셨는데, 잘됐네.”
괴츠는 강철 의수를 어루만지다가…….
콰직! 콰직!
곧 엄청난 돌파력으로 암살자들의 몸을 으깨고 부서 나가기 시작했다.
한편 암살자들의 냉정한 대처로 헤이젤은 순식간에 그들에게 포위당했다.
다시 한번 비수가 쇄도했다.
푸푸푸푸푸푹!
헤이젤은 즉각 자신이 쓰러뜨린 암살자의 머리칼을 붙잡아 방패처럼 내세워 그 공격들을 모조리 막아냈다.
“쿨럭, 쿨럭.”
피를 머금은 암살자는 허망하다는 눈초리로 숨을 거두었다.
그걸 본 헤이젤이 조롱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불쌍하네. 평생 동고동락해온 동료들의 손에 죽다니…… 아, 잔인해라.”
울컥!
“으아아아아악! 닥쳐!”
그의 말을 듣고 흥분한 암살자들은 일제히 달려들었고.
쇄액! 파앙!
헤이젤의 쾌검이 일제히 그들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아예 도망치지 못하게 분노를 유발해 달려들게끔 만든다라…… 실로 교활한 수야.”
마틴은 그의 무위보다는 혀 굴림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너만큼 강하지는 않으니까 그런 꼼수 정도는 부려도 되잖아.”
헤이젤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마틴의 뒤를 쳐다보았다.
암살자들은 평소 자랑하던 비수를 투척해볼 기회도 없이 마틴의 검에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이게 고작 검을 잡은 지 열흘도 되지 않는 상태라고?’
슈타크가의 검술을 훔쳐 벌써 자기 것으로 만든 마틴의 재능에 헤이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 젠장!”
유일하게 남은 암살자는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혀를 깨물려고 했지만.
그 기색을 눈치챈 괴츠가 의수의 손가락을 조작한 뒤, 암살자의 입에 재빨리 넣었다.
까드드득!
마치 돌을 씹는 것 같은 격통에 그는 숨을 헐떡였다.
괴츠는 그런 암살자의 머리칼을 쥐고 거칠게 뜯을 것처럼 고개를 추켜세우며 진노가 깃든 음성을 내뱉었다.
“건방진 게 감히 내 주인의 목에 비수를 겨눠?”
쿠구구구구.
물론 칼이 비수에 꽂혀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시도를 했다는 것 그 자체로 어느새 괴츠의 눈동자에는 살벌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
암살자로서 제법 훈련을 받은 그지만, 괴츠의 살기는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덜덜 떨었다.
헤이젤은 멀뚱히 있는 칼에게 고개를 돌리며 암살자의 신변을 어떻게 할지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저놈.”
“배후를 밝혀내. 날 건드리면 어떤 최후를 맞을지를 가르쳐야 되니까. 방식은 너한테 맡기지. 헤이젤.”
“명을 받듭니다.”
헤이젤은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칼에게 예를 갖췄다.
* * *
기사 임명식을 위해 떠날 채비를 하던 도중..
기사단을 만드는데 필요한 서류를 처리하던 칼은 집무실에 앉아 재단사에게 받은 함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의식용으로 짜인 화려한 붉은 망토가 놓여 있었다.
재단사는 특유의 아부하는 표정을 지으며 칼에게 말했다.
“걸치기만 한다면, 정말 늠름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탁.
함을 닫은 칼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재단사에게 말했다.
“수고했어. 그만 가봐.”
“네?”
그 반응에 당황한 재단사의 표정이 경직됐지만.
“아, 네. 하하하하.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는 당황의 기색을 풀고 조용히 물러났다.
곧이어 리히트가 칼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방문을 나가던 재단사의 시무룩한 표정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하하하, 칼리언트님. 가끔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해줘야 힘이 나는 법입니다. 군주로서 인색하다는 평은 최대한 듣지 않는 게 좋습니다.”
칼은 함을 집어 수납장에 비치한 뒤, 리히트에게 답했다.
“내가 칭찬해봤자,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거든.”
“네?”
칼은 이실리아에서 릴리와 지냈던 시절을 떠올리며 말했다.
“오지랖 넓은 녀석이 있었어. 구태여 신경 쓰지도 않아도 되는 부분에서 챙겨주기에,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으니 곧장 뺨을 맞아서 말이지.”
“…….”
안 봐도 빤히 보인다.
분명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 취급을 받는 굴욕을 겪었을 게 분명했다.
“?!”
바로 그때 리히트는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칼을 바라보았다.
어떤 애잔한 감정에 잠겨있는 건지, 놀랍게도 칼이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거칠고 딱딱한 표정만 짓던 남자가 저렇게 부드러운 웃음을 짓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이에 리히트는 곧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분을 좋아하시는군요.”
“딱히.”
칼은 뒤늦게 자신의 표정이 풀어진 것을 자각했는지, 다시 얼굴에 힘을 주었다.
‘이럴 때 보면, 그 나이에 맞는 소년 같군.’
리히트가 훈훈한 웃음을 짓자, 칼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크흠. 갑자기 허리가 아프군요.”
연륜은 괜히 쌓인 게 아닌 건지.
리히트는 허리를 토닥거리며 헛기침을 해 보였다.
발끈하려던 칼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졌는지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래서 무슨 일이지?”
“암살자들의 배후를 밝혀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누구지?”
같은 혈족인가? 혹은 타국의 사람인가?
긴장이 팽배하게 흐를 때, 리히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는 너무나 뜻밖이었다.
“아벤트로트의 보석 여왕입니다.”
“?!”
아벤트로트의 가장 많은 재화를 쌓고 있는 마성의 여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녀는 마미안트 후작 부인으로 불리고 있다.
“그 여자 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지?”
이실리아에서 그녀와 연이 있었던 칼은 인상을 대번에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듣자하니, 그랑고스트 산맥이 존재하는 알테어 주변에 희귀광석이 매장된 광산을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그 때문에 그녀는 알테어와 접한 영지를 사들이고 군력을 대번에 강화해 정복할 심산으로 보입니다.”
“거기서 더 가질 생각인가?”
가지면 가질수록 끝이 없는 게 사람의 욕심이라고 했단 말인가.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그녀는 아직까지도 마음의 갈증을 해소하지 못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샤텐 쪽은?”
“정보 길드를 통해 정보를 사보려고 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사전에 정보방지를 해놓았기 때문에 유출을 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느긋하게 있을 상황이 아니겠군.”
마미안트 후작 부인이 움직인다는 소식에 느슨했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아직 칼이 모르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깊이로 따지자면 베일에 감춰진 데제스 싱클레어의 정체, 나아가 마족의 계약자들이 운영하고 있는 금융 길드, 프리메이슨만큼 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시기에 알테어를 비우는 것도 꺼림칙하군.’
드물게 칼의 고심이 깊어지자, 리히트가 입을 열었다.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여기는 저와 헤이젤이 지키고 있으니까요.”
“걱정은 무슨.”
괜스레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던 칼은 고개를 홱 저었다.
“뒤를 부탁하지.”
“하하하하, 물론이죠. 저만 믿어주십시오.”
리히트는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 * *
부와아아앙!
거대한 호른 소리와 함께 현악기의 음률이 울려 퍼지며 슈타크 가의 본가를 가득 메웠다.
이 자리에 참여한 혈족들은 모두 엄숙한 표정으로 인파 사이에 놓인 길을 쳐다보고 있었다.
팔락!
그곳에는 칼이 은백색의 갑주와 망토를 두른 채, 당당한 기세로 걸어오고 있었다.
“…….”
그 기백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설마 저 칼리언트가 기사가 되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아.’
가문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나약한 공자에서 세상에 위협을 끼칠만한 역량을 가진 사내가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칼은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공자님.’
의식의 홀 근처에서는 칼과 오랫동안 동고동락해온 시녀, 레인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어머니인 사라 슈타크는 눈물이 흐르려는 눈가를 손수건으로 꾹 누르고 있었다.
마틴과 괴츠는 평소와 달리 엄숙한 표정으로 칼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벅저벅.
발끝이 멈춘 곳은 루드거 슈타크의 앞이었다.
가문의 가주로서 혈족을 기사로 맞이하는 자리.
이 자리는 혈족을 정식으로 가문의 일원으로 맞이하는 자리이며 그 힘을 가주가 직접 인정하는 자리였다.
칼은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예를 갖췄다.
“……칼리언트 슈타크.”
근엄한 목소리에 분위기는 금세 숙연해졌고, 모두가 칼리언트에게 집중했다.
“예.”
칼은 그의 음성에 답했고, 루드거는 절차대로 의식을 진행했다.
“그대는 슈타크가의 기사로서 검과 방패가 될 것을 맹세하는가?”
“저 칼리언트 슈타크는 슈타크가의 검과 방패로써 외적을 물리치는 검이 될 것이며, 가장 먼저 순혈을 흘림으로써 외적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겠습니다.”
피식.
흔들림 없는 그 맹세에 루드거는 입꼬리를 올렸고, 이윽고 부하들이 가져온 예식용 검을 들어 칼의 어깨와 머리에 갖다 댄 뒤, 칼에게 말했다.
“나 루드거 슈타크는 칼리언트 슈타크를 기사로 인정한다. 이 칼을 받으라. 그대는 이제 기사로 봉해졌노라.”
칼은 그 검을 받아들인 뒤, 스릉 소리를 내며 검집에 넣었다.
그 상태로 루드거는 입을 열었다.
“아울러 그대가 새로운 기사단을 창건하는 것을 허락한다.”
“이름을 하사하여주십시오.”
의식의 절차대로 루드거는 근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그대는 어둠 가운데서도 강렬한 색채를 발하는 자, 전설이라고 일컬어지는 게어트너를 쓰러뜨린 무력, 알테어에 서식하고 있는 메뚜끼 떼와 같은 고블린 떼를 박멸한 저력은 모두가 인정했다. 따라서 나는 그대와 함께할 기사단에 ‘크림슨 게일’이라는 이름을 하사한다.”
“영광입니다.”
예를 갖춘 칼은 그대로 몸을 일으켜 모두가 있는 곳으로 등을 돌렸다.
“…….”
형제들은 아직도 인정하기 싫은지, 박수를 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추하게 굴지 마.”
짝짝.
키이라가 중얼거리며 박수를 쳤고, 리슈타도 덩달아서 박수를 쳤다.
큰 영향력을 지닌 두 사람이 적극적으로 지지하니…….
짝짝짝짝짝짝!
박수갈채는 자연히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가슴 속에 벅찬 감동을 느끼던 칼은 주먹을 쥐었다 피며 다시금 의지를 가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