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두둑!
검을 쥔 프루아의 손은 격분으로 미미하게 떨고 있었다.
‘이놈도 저놈도 같잖은 것들이 날 얕보고 있어.’
그 분노는 한낮 애송이에 불과했던 심홍색 눈길을 가진 소년으로부터 비롯됐다.
태생 때부터 연약한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
그 아이는 루콘 최강의 무가라고 일컬어지는 슈타크에서 경멸과 외면을 받았다.
반면, 그 자신은 어떻단 말인가?
아직 라마스와 키이라를 뛰어넘지 못했을 뿐.
그는 집안에서 굴지의 강자로 인정받은 남자였다. 그리고 그 자존심에 흠집을 낸 대가는 상당히 혹독하고 무서웠다.
싸아.
기세가 변했다.
경박하게 남을 괄시하며 무시해왔던 이전 모습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죽고 싶어서 안달 났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프루아의 검이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마틴의 검을 통과했다.
아니 스며들었다고 착각할 정도의 환검이 구현됐다.
카앙!
깜짝 놀란 마틴은 자신의 목덜미에 다가온 검을 종이 한 장 차이로 빗겨내는 데 성공했다.
찌릿찌릿!
하지만 충격으로 인해 손아귀가 마비된 것처럼 떨렸다.
프루아는 마틴에게 파고들어 정신없이 몰아붙였다.
카카카카카카캉!
휘두른 일격 하나하나가 매섭게 전신을 두들기는 것만 같았다.
어느새 주변은 두 남자가 공방을 주고받으며 생기는 격철소리로 가득했다.
카앙! 카앙! 카앙!
‘이게 슈타크 가문의 검술인가?’
마틴은 미간을 좁히며 프루아의 검술을 집요하게 관찰했다.
검을 휘두르는 궤적부터 내딛는 발의 보폭, 그리고 검날의 예리함까지…….
지금의 프루아를 만든 모든 요소를 하나씩 베껴 나갔다.
방어를 하기에 급급했던 마틴의 검이 점점 프루아의 검술에 맞춰 더욱 매섭고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카카카카카카카캉!
그 변화는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검극에서 비롯됐다.
“뭐?!”
불과 오 분도 채 되지 않아서 마틴이 자신의 검을 튕겨내자 프루아는 당황했다.
변화를 눈치챈 리슈타 역시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저, 저 녀석이 어떻게?”
팔짱을 끼며 지켜보던 키이라는 지그시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폭풍검.”
폭풍검은 슈타크 가문의 초대 가주, 라파가에 의해 창시된 검술로 슈타크 가문의 검사라면 반드시 익혀야 되는 비전 검법이다.
말 그대로 돌풍을 빗어낸다고 할 정도로 격렬한 검세가 특징이었다.
카카카카카카캉!
지금 이 순간에도 프루아와 마틴 사이에서는 검이 충돌할 때마다 무시무시한 굉음과 풍압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가문의 검술을 훔쳤다?! 내가 5년 만에 이룬 경지를…… 단 몇 분 만에!’
꽈악!
어처구니가 없던 프루아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검술에 미묘한 변화를 추가했다.
카앙!
검 끝이 부딪쳤다.
끼이이이익!
그와 동시에 프루아가 마틴의 검날 사이로 자신의 검을 미끄러뜨리며 파고들었다.
범인이라면 식별할 수조차 없는 빠르기.
대처할 방안은 검을 버리고 이 거리에 벗어나야 하지만.
끼릭!
마틴은 가소롭다는 듯 자신 역시 검을 미끄러뜨리며 오러를 싣기 시작했다.
“까불지 마!”
이에 질세라 프루아 역시 검신에 군청색의 오러를 실어 보냈고.
끼릭! 끼릭! 파앗!
군청색의 오러와 담청색의 오러는 서로 반발을 하더니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앙!
마틴과 프루아는 폭발로 인해 2미터 이상 밀려나며 지면에 몸을 굴렸다.
삐그덕.
“크윽!”
두 남자는 격전으로 인해 관절은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입에서는 격통으로 인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미 자존심 싸움이 된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그렇기에 두 남자는 다시 서로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콰아앙!
이번에는 오러가 실린 검격이 서로 맞붙으며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디아나는 정신없는 마틴이 다치지 않을까 싶어 노심초사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었고, 키이라는 상당히 냉정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무래도 위험한데요.”
“그러게, 프루아 녀석 완전히 눈깔이 뒤집혔어. 저 녀석 곱게 죽기는 틀렸어.”
리슈타는 이미 프루아의 승리를 단정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그 반대에요.”
“뭐?”
리슈타의 반문에 키이라는 수심에 찬 얼굴로 마틴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 남자. 이미 슈타크 가문의 검술을 완전히 체득한 것 같아요.”
“…….”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키이라의 예측에 리슈타는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그게 가능할 리 없잖아!!!”
“노력을 기만하는 재능이라면 어떨까요?”
“그게 무슨?!”
키이라의 의중을 간파한 리슈타는 저도 모르게 마틴을 쳐다봤다.
우우웅.
격렬한 격전이 이어지는 와중에 어느새 마틴의 몸에는 담청색의 성운 같은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 * *
빗줄기처럼 쏟아진 참격의 세례를 아슬아슬하게 빈틈을 파고들어 피한 마틴은 생각했다.
……강하다.
정교하면서 매서운 검세는 지금까지 치른 험난한 전투에서 보던 강자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가뿐하게 뛰어넘었을지도 모른다.
홰액!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마틴은 프루아의 역량을 간파하고 그 검술을 흉내 낼 수 있는 데 이르렀다는 것이다.
검을 휘둘러본 경력은 적지만, 슈타크 가문의 검술을 자신의 몸에 맞게 조정해 더 세련되게 다듬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노력조차 기만하는 재능, 척박한 땅에서도 꽃을 개화시킬 수 있는 재능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이 사실을 아직까지 눈치채지 못한 프루아는 격정을 토해내며 마틴을 베려고 했다.
카앙!
마틴은 단 한 합으로 그 일격을 파훼시켰다.
마치 둔탁한 벽을 때린 것 같이 프루아는 균형을 잃고 뒷걸음질 쳤다.
“?!”
그리고 크게 놀랐는지, 눈을 휘둥그레 뜨다…….
“웃기지 마! 이 개자식이!!!”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발악하듯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검세를 이어가면 이어갈수록, 프루아의 오러는 마틴의 오러에 점점 깨져나갔다.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상황에 프루아는 초조함을 느꼈다.
뭐야? 난 지금껏 져본 적이 없어.
근데 어째서?
너 같은 약골한테 내가 압도당해야 하는 거야?
미미하게 떨리는 그 동공을 본 마틴은 그 생각마저 정확히 간파했는지, 프루아가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진실을 일러주었다.
“강자에게 도전해본 적이 없는 거겠지. 질까 봐 겁나서.”
그 한마디에 프루아의 기세가 변모했다.
“프루아!!!”
당황한 키이라가 급히 소리를 질러 만류해 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정곡을 찔린 사람 만큼 위험한 건 없다. 왜냐하면든 그것을 외면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프루아가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두둑, 두둑.
그 증거로 그의 팔뚝에는 핏줄이 팽팽하게 돋아났다.
슈타크 가문에서 내려온 또 하나의 비전인 마력 증폭.
체내의 마력을 단숨에 끌어올려 연달아 중첩 시킴으로 그 위력을 증폭시키는 이 비전 무공은 그 부작용이 극심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결과는 제쳐두더라도 프루아의 오러는 그 농도부터 크기까지 마틴을 위협하기 충분했다.
마틴은 그 참격을 프루아에게 날렸다.
콰콰콰콰콰콰쾅!
대지를 부스며 날아오는 참격.
“마틴 님! 피하세요!”
그 위력을 알아본 디아나가 다급하게 소리를 내질렀으나…….
“재밌는 방식이네.”
두둑.
순간 마틴의 팔도 마력 증폭을 사용한 프루아처럼 핏줄이 팽창했다.
“?!”
그 광경을 보던 프루아는 허망한 표정으로 마틴을 쳐다봤고.
이윽고 마틴은 자신에게 날아온 프루아의 참격을 베어 갈랐다.
콰콰콰콰콰콰쾅!!!
대지를 휩쓸며 날아간 일격은 종이 한 끗 차이로 리슈타의 옆을 스친 뒤 우뚝 솟은 한 그루의 나무에 닿았다.
콰앙!
마틴의 참격에 베인 나무가 기우뚱 쓰러지며 지축이 흔들릴 정도의 굉음을 자아냈다.
“…….”
정적이 흘렀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마틴의 압도적인 승리.
패배한 프루아는 바위처럼 경직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리슈타는 격분과 당혹이 섞인 얼굴로 마틴을 노려보았다.
“너 이 새끼. 일부러!”
“이제 잠자코 따라오지.”
칼의 수하에게 깨진 게 어지간히 충격이었는지, 프루아의 눈은 아직까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있을 수 없어. 말도 안 돼.”
키이라는 그런 프루아를 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프루아. 인정해. 그는 에클라 세트야.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독보적인 재능을 가진 자라고.”
“에클라 세트?!”
그제야 자신의 패배에 이해할 수 있게 된 건지, 프루아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그는 아직까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마틴에게 물었다.
“어째서 그 정도 재능을 가지고 그 녀석을 따르는 거지?”
“너희와는 그릇이 다른 남자니까. 하찮은 이유로 여자와 아이를 때리거나 하지도 않지.”
꽈아아아악!
마틴의 말에 프루아는 주먹을 쥐며 이빨을 갈았다.
부정하고 싶지만, 패자인 자신이 그 말을 부인할 권리도 없었다. 속으로 부정해봤자, 추해지는 것 또한 자신이었다.
파르르르.
그렇게 굴욕감에 몸을 떨 때.
스릉.
느닷없이 키이라가 검을 빼 들며 마틴의 앞에 섰다.
어째서일까?
단지 검을 빼든 것뿐인데, 마틴은 프루아가 검을 뽑을 때와 차원이 다른 감각을 느꼈다.
등골이 오싹하고 전율에 절로 몸이 떨렸다.
키이라가 마틴을 노려보며 말했다.
“주인에 대한 애착과 긍지는 훌륭하다고 칭찬은 해주겠다만. 멋대로 슈타크 가문의 비전 검술을 훔친 대가는 어떻게 치를 생각일까?”
“……글쎄 생각해본 적 없는데. 돈이라도 줘야 되는 건가? 근데 어쩌나, 나는 길바닥 출신인데다 딸린 식솔들도 많아서 줄 돈이 없는데.”
마틴의 비아냥거리는 한마디에…….
피식.
키이라는 요염하게 웃으며 그 답을 일러주었다.
“그 대답은 말이야. 없는 것으로 만들면 된다는 거야.”
발설과 함께 키이라가 검을 빼 들었고 마틴은 그에 대응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
크아아아앙!
우렁찬 사자의 포효가 두 사람 간의 고조된 분위기를 깨뜨렸다.
깜짝 놀란 키이라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바그로바와 함께 걸어오고 있는 칼이 있었다.
“늦어.”
칼은 인상을 찌푸리며 마틴을 노려봤다.
움찔!
그 시선에 마틴은 어깨를 떨며 검을 거두었다.
‘저 정도 기백을 가진 남자가 막내한테 겁을 집어먹고 기세를 꺼뜨렸다고?’
그 광경이 믿기지 않아 키이라가 은근슬쩍 칼을 쳐다봤을 때.
평소 무뚝뚝한 표정 대신 그 입꼬리가 살짝 말아 올라가고 있었다.
‘설마?!’
게 칼의 의도된 계획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은 키이라는 눈매를 좁히며 질문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너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