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휘잉!
북서풍이 기승을 부리는 날이었다.
루콘, 사테라 영지에 위치한 한 주점은 오늘도 한 불청객으로 인해 방문객들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꿀꺽꿀꺽.
목울대가 심하게 꿀렁일 정도로 맥주를 들이켜는 이는 머리카락과 수염이 거친 걸걸한 30대 중반의 사내였다.
“푸하! 이 맛이지! 어이, 잠깐! 어디서 꼼수를 부리고 있어!”
그는 주점의 한 테이블을 차지한 채, 카드놀이를 즐기고 있었는데.
콰앙!
갑자기 인상을 홱 찌푸리더니 테이블을 세게 후려치며 맞은편에 있는 남자의 카드를 지목했다.
“무슨 억지야?!”
맞은편의 남자는 무척이나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죽고 싶냐? 앙! 개수작질 하면 팔 잘리는 거야? 나처럼 되고 싶어.”
끼익.
남자는 자신의 오른손을 대치하고 있는 강철 의수를 흔들어 보였다.
꿀꺽!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모두가 고인 침을 삼켰다.
‘또 시작됐군.’
고성방가 소리를 지르고 있는 이 남자의 이름은 강철팔의 괴츠.
도박과 술에 연명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하루살이 인생이지만.
젊었을 적의 그는 전투광으로 용병 생활 중에 오른팔을 잃었음에도 그 기질을 죽이지 못하고 한 대장장이가 만들어준 의수를 단 뒤 다시 용병으로서 활동했던 자였다.
소문으로는 숲의 현자를 만나 마나를 부리는 재주를 터득했다는 말까지 돌고 있었지만.
워낙 하는 짓이 망나니인지라 그저 허세라고 사람들은 치부했다.
“……졌어.”
결국 맞은 편에 있는 남자는 감춰둔 패를 드러내고서는 기권했다.
“진작 그랬어야지.”
남자는 무척이나 호쾌한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에 있는 돈을 싹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끼익.
주점의 문이 열리며 머리카락이 심홍색인 소년이 괴츠가 있는 테이블에 오기 시작했다.
“응? 뭐냐? 꼬맹아, 형들 놀고 있는데 얼씬거리지 말고 저기 가서 우유라도 마시고 있어.”
돈을 주머니에 쓸어 담은 괴츠는 다시 카드를 집으며 나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고.
칼은 괴츠의 맞은편에 있는 남자를 쏘아보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나와.”
“네, 넵!”
칼의 분위기에 압도된 그는 자연스레 자리를 지켜주었고, 칼은 빈자리에 앉았다.
“뭐야? 귀족 나부랭이였냐? 웬만해서는 귀족님들은 고용인을 통해서 접근하지, 직접 내 얼굴을 보지 않아. 내가 워낙 성질이 지랄 맞거든. 아, 나랑 대화하고 싶으면 판돈 은화 50닢부터 시작이다.”
“배포가 작군.”
“뭐?”
괴츠가 미간을 지그시 좁힐 때, 칼은 테이블 위로 허리춤에 있는 은화 주머니를 덜그렁 내려놓았다.
“우와!”
족히 200닢은 돼 보이는 그 양에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감탄했고.
칼은 자연스레 카드를 집어 들었다.
카드놀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치기 어린 마음으로 까불다가 다치는 수가 있다. 꼬맹아.”
괴츠는 의수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는 카드를 뽑아 테이블에 탁 내려놓았고.
칼 역시 카드를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괴츠 크라프트. 몰락한 크라프트 가문의 장남이라고 하던데. 그 팔은 가문을 몰락시킨 적들에게 대항하다가 잃은 거라고 들었어.”
“…….”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괴츠가 워낙 망나니인지라 카드놀이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눈앞에 칼이 심하게 다칠까 싶어 우려스런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괴츠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자신의 과거가 언급되자 풋 하고 웃으며 말했다.
“시시껄렁한 옛날이야기인가. 어이, 도련님. 죽고 싶지 않으면 여기서 돈만 헌납하고 빠지는 걸 추천하지. 기분이 무척 거슬리거든.”
탁.
칼은 아랑곳하지 않고 카드를 내놓으며 입을 열었다.
“리히트라고 알고 있나?”
“잘 알고 있지? 내 처지가 불쌍하다며 나한테 멍청하게 가문의 비전을 가르쳐준 영감탱이니까. 뭐야, 그 영감이랑 알고 있는 사이냐?”
흥미로운 주제에 괴츠는 잠시 불쾌한 감정 없이 웃어 보였다.
“내 부하야.”
“하하하하, 그래서 나를 찾아온 용건이 뭔데? 도련님. 당신 밑으로 들어가 달라고 하소연하는 건가? 이거 어쩌나? 난 귀족이 아니라 망나니라서 통제 불가능이거든.”
“그건 더 한 망나니를 만나면, 달라질 거야.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원래 사람은 자신보다 강한 사람한테 굴복하기 마련이거든.”
괴츠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칼을 쏘아보며 말했다.
“호오. 그래서 네가 나보다 강하다는 소리냐?”
촤르르륵.
칼은 눈앞에 있는 카드를 줄지어 늘어놓았다.
“로,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
평생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어마어마한 확률의 패를 늘어놓자, 괴츠의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칼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그런 괴츠에게 말했다.
“모든 면에서 너보다 강하지. 카드도 주먹도 말이야.”
“어디서 사기질이야!”
콰아앙!
괴츠는 왼손으로 테이블에 놓인 카드와 은화들을 날려버린 뒤, 그대로 칼을 기습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일찍 칼의 양쪽 발이 괴츠의 의수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무겁다?!’
체격만 보면 자신보다 한참 부족했다. 그런 상대가 여유롭게 의자에 앉아 탁자에 발을 올려놓은 꼴인데.
그 발에 짓눌린 괴츠의 의수는 저항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칼은 여유롭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칼리언트 슈타크다. 최악의 전선, 알테어의 사령관으로 부임하고 있지. 이렇게 오게 된 건, 너를 포섭하기 위해서고.”
빠직!
그 여유로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괴츠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아까 내가 말하지 않았나, 도련님? 귀족들이 내 얼굴 보기가 무서워서 고용인을 통해서 본다고!”
우지끈.
콰아앙!
칼의 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괴츠는 그대로 나무 탁자를 우그러뜨려 박살 낸 뒤, 칼에게 주먹을 뻗었다.
그 순간조차 칼은 여유로이 말했다.
“너야말로 아까 내 말을 기억하지 못하나 보군. 망나니는 더한 망나니한테 굴복할 뿐이라고.”
쇄액!
콰앙!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칼이 엄청난 속도로 괴츠의 턱을 후려쳤다.
두개골이 흔들리는 그 충격에 괴츠는 감히 발악도 못 하고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끝이냐?”
칼은 곧장 마무리를 가하지 않고 괴츠를 향해 도발적인 한마디를 내뱉었고.
“까불지 마!”
괴츠는 가까스로 충격에서 벗어나자마자 칼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물론 그 주먹이 닿기 전에 칼의 주먹이 다시 한번 턱을 후려치는 바람에 괴츠의 공격은 가볍게 무산됐다.
‘이, 이 녀석 뭐야? 저렇게 어린 나이에…….’
괴츠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충격에 부르르 떨다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세상에 저 괴츠가 단 두 방에 나가떨어졌어.”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칼을 바라봤고.
스윽.
칼은 그대로 괴츠의 목덜미를 잡고서 질질 끌고 갔다.
“…….”
그 모습을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우두커니 바라만 보았다.
* * *
주점 밖에서 칼을 기다리고 있던 제이크는 괴츠의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오는 칼을 보며 말했다.
“저 사, 사령관님.”
“왜?”
“전부터 생각했지만, 이거 영입이 아니라 납치 아닌가 싶은 우려가…….”
“별 필요 없는 고민을 하는군.”
쿵.
칼은 괴츠의 목덜미를 놓아주었고, 제이크는 자연스럽게 그런 괴츠를 부축하며 칼에게 물었다.
“마지막 한 명의 이름은 헤이젤이라고 했었죠.”
칼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테어에서 떠나기 전, 리히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괴츠의 경우는 성장하는 데 제가 일조했지만, 헤이젤은 저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안개 같은 놈입니다. 무척이나 영악하고 위장을 잘해서 덜미를 잡기란 생각보다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그를 추천해 드리는 건 그의 실력을 확신하게 된 소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루콘의 포어트 지방 영지에 위치한 한 골목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헤이젤이 마나 유저로 이루어진 기사단을 단신으로 때려잡아 피투성이로 만든 사건이었다.
그 당시에는 영주에 대한 반역자가 출현했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리히트가 파악한 내막은 조금 달랐다.
포어트 지방의 기사단은 말만 기사일 뿐이지.
실제로는 꽤나 실력 있는 용병 집단을 명칭만 변경한 집단이었다.
그리고 이 기사단은 무척이나 성정이 사납고 포악해 자신들의 권세를 이용해 악질적인 범죄를 벌이기 일쑤였는데.
어느날 한 골목에서 두 아녀자를 겁탈하려다가 얼굴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사내에게 개박살이 나 다시는 두 발로 걷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의인을 두고 ‘헤이젤’이라고 지칭했는데.
헤이젤은 포어트 지방에서 내려오는 장난꾸러기 요정의 이름이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었으면 의인으로 여겼겠지만, 사실 리히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조금 더 남아있다.
-그날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일단 이 헤이젤이란 녀석은 돈 많고 부유한 귀족들을 속여서 돈을 뜯어내는 놈인지라 상당히 조심하셔야 됩니다. 워낙 사람을 속이는 재주가 능수능란해서 실체를 간파한 사람이 아직 한 명도 없습니다. 하하하.
리히트가 한 말을 되짚어보던 제이크는 곧 곤혹스런 표정으로 칼을 보며 말했다.
“사령관님.”
“왜?”
“기사단이라고 하면, 귀족 출신들을 선출해서 뽑는 게 낫지 않을까요? 왜 이런…….”
제이크는 자신도 모르게 입에 게거품을 물며 쓰러져 있는 괴츠를 보며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신분은 상관없어. 강하기만 하면 돼.”
“프루아 님이 만든 기사단의 단장, 마크보다 괴츠가 강합니까?”
“훨씬 강해.”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괴츠의 역량은 마크를 뛰어넘었다.
마크가 졸속한 검술의 완전체라면, 괴츠는 아직까지 성장이 가능한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지금 상태에서도 괴츠는 마크를 압도할 것이 분명했다.
“한 가지, 그 성격이란 게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기사단을 꾸려나가기에는 조금 괴팍한 게 아닐지…….”
“두 가지만 들으면 돼. 그리고 이 녀석도 알 거야. 날 거스르면 어떻게 될지…….”
칼은 아주 잠깐 벼려진 눈동자로 괴츠를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끄응.”
괴츠는 불편한 신음소리를 냈다.
바로 그때.
쇄애애액.
사테라의 하늘에서 한 마리의 매가 날개를 펄럭이며 칼에게 날아왔다.
칼이 팔을 내밀자, 매는 자연스럽게 칼의 팔에 착석했다.
칼은 매의 발목에 묶인 쪽지를 열어 쭉 읽다가 ‘헛’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무척이나 드문 반응에 제이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칼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마틴이 당했어.”
“네?!”
천하의 마틴이 누군가한테 당하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실에 제이크가 눈을 부릅떴다.
그 반응에 칼은 자신이 오해할만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닫고는 정정했다.
“무력으로 졌다는 게 아니야.”
“그럼요?”
“헤이젤에게 군자금이 털렸다는데.”
“네?!”
더욱이 믿기지 않는 사실에 제이크는 경악했다.
범인이라면 모를까.
줄곧 음지의 조직이 가득한 곳에서 주먹 하나로 군림해왔던 마틴이 누군가한테 속아 군자금이 털리다니.
반면 그 사실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는지, 칼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재밌는데. 요 녀석.”